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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복음의 제사장 (롬 15: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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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철학자가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느라고 고개를 숙인 채 길을 가다가 지나가던 사람과 부딪혔다. 그 사람이 “도대체 당신은 누군데 이렇게 부딪히며 다니는거요?”라고 소리쳤다. 그랬더니 이 철학자는 “내가 누구냐고요? 나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헤매고 다니는 것입니다. 내가 누구인지 제발 좀 알려 주십시오”라고 말했다고 한다. 나는 누구인가? 사람이 내가 누구인지를 분명하게 알아야 인생을 확신 있게 살 수 있다. 예수를 믿어도 내가 누구인지를 분명히 알아야 확신을 가지고 인생을 살고 올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 

그러면 내가 누구인지, 내가 어떤 존재인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무엇으로 알 수 있는가? 그것은 그 사람의 쓰임새를 보고 알 수 있다. 즉 그 사람이 어떤 일에 쓰임을 받는가를 보고 알 수 있다. 

사람마다 어떤 사람은 지식을, 어떤 사람을 돈을, 어떤 사람은 재능을 가졌다. 그런데 그가 가진 그 지식이나 돈이나 재능이 무엇을 위해 쓰이는가에 따라서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하는 것이 달라진다. 예를 들면 태권도 실력이 뛰어난 사람이 자신의 태권도 실력을 자기의 유익을 위해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데 사용하면 그는 폭력배일 뿐이다. 그러나 그가 그 힘을 다른 사람을 돕는데 사용하고 위험에 빠진 사람들을 구하고 지켜주는 일에 사용하면 그는 남을 섬기는 사람이다. 이처럼 그가 가진 것이 어디에 쓰이는지 그리고 그가 자신이 가진 것을 무엇에 쓰는가를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알 수 있다. 즉 내가 무엇을 얼마나 알고 무엇을 얼마나 가졌는가가 아니라 내가 가진 것과 내가 아는 것을 무엇을 위해 쓰는가가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로마서의 본론의 내용과 교훈은 앞의 15:13까지로 끝났다. 이제 14절부터는 결론이라기보다는 바울의 개인적인 고백 등으로 부록의 성격에 가깝다. 이제 자신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복음의 일군이 되어서 지난 30여 년간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살아온 자신의 복음의 삶을 돌아보고 회고한다. 여기서 우리는 전도자 바울의 모습을 볼 수가 있다. 그는 언제나 예수님에 대해, 율법에 대해 말하면서 “나는” 하고 자기고백을 하곤 했다. “내가” 알고 믿고 따르는 것이 아니라면 아무리 크게 외쳐도 사람들을 감동시키지 못한다. 바울은 여기서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 어떻게 쓰임 받았는가에 대해서 고백하고 있다. 

은혜를 입은 자
“15 그러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더욱 담대히 대략 너희에게 썼노니.” 자신이 이 로마서를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쓴 것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은혜가 무엇인가? ‘은혜’란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 조건 없이, 값없이 과분한 것을 받은 것을 말한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 이런 은혜를 입었기 때문에 평생을 바쳐 복을 위해 헌신했다. 그는 그가 쓴 여러 편지들에서 자신이 하나님께 엄청난 은혜를 입은 자라는 것을 고백하고 있다. 그는 고린도전서 15:8에서 자신을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다”고 했다.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부족하고 못난 사람인가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9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고 했고 “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 했다.

그가 왜 이렇게 자신을 부족하고 못난 사람이라고 하고 또 하나님께 큰 은혜를 입었다고 고백하는가? 자신이 예수를 믿기 전에 어떤 사람이었고 어떻게 살았는가를 잘 알기 때문이었다. 디모데전서 1:12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13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그는 전에는 복음을 반대하고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한 복음의 방해자였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런 그를 벌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그를 부르셔서 구원하시고 복음을 전하는 사도로 삼으셨다. 그렇게 하신 것은 그가 몰라서 그런 것이라고 사랑으로 받아주셨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자신이 하나님께 은혜를 입은 자라는 것을 깨달은 사람은 사는 모습이 다르고 신앙생활을 하는 태도가 다르다. 먼저 은혜를 입은 사람은 다른 사람들 앞에서 겸손하다. “14 내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이 차서 능히 서로 권하는 자임을 나도 확신하노라.” 그는 로마의 교회 성도들이 스스로 선하고 지식이 충분하고 서로를 붙들어 줄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그들이 믿음이 약하거나 부족해서 그들에게 무엇을 전해주거나 가르쳐주려고 이 편지를 쓴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또한 은혜를 입은 사람은 다른 사람 섬기려 한다. “15 그러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더욱 담대히 대략 너희에게 썼노니.”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를 다시 생각나게 하려고 즉 그들을 돕고 섬기려고 이 편지를 그들에게 썼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인정하고 존중하지만 동시에 자신이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다른 사람에게도 나누어 주어서 그들을 돕고 섬기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놓는다.

이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들 중에 하나님의 은혜를 입지 않고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로 죄를 용서받고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이야말로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를 입은 사람들이다.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어렵고 힘들 때에 특별하신 은혜를 입어서 이겨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이런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왔다고 생각하고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교만하게 살아간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자기 마음대로 휘두르고 자기 뜻대로 끌어가려고 고집을 부리곤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고 겸손한 사람에게 은혜를 주신다고 했다. 야고보서 4:6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베드로전서 5:5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도 겸손하지 못하고 교만하게 되면 하나님이 얼굴을 돌리시기 때문에 이미 받은 은혜마저도 잃어버린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께 입은 은혜로 지금 내가 산다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리고 겸손함으로 하나님과 사람을 섬기며 살라.

그리스도의 일군
“16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자신이 하나님께 입은 가장 큰 은혜는 그리스도의 일군이 된 것이라는 뜻이다. 즉 자신이 복음의 방해자였는데도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 복음을 이방인에게 전하는 일군이 된 것이 은혜라는 것이다.

어떤 목사님의 딸이 초등학교에 입학했는데 어느 날 이 딸이 기분이 좋아서 학교에서 돌아오더란다. 그래서 무슨 좋은 일이 있었느냐고 물었더니 선생님이 오늘 자기에게 떡볶이를 사오라고 심부름을 시켰다는 것이다. 아이 공부하라고 학교에 보냈는데 심부름이나 시켰는가 하고 속으로 기분이 안 좋은데 정작 딸아이는 내일도 또 시켰으면 좋겠다고 하더란다. 여러 아이들 중에서 선생님이 자기에게 일을 맡겼다는 사실이 너무나 기분이 좋았던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그리스도의 일군으로 선택받은 것이야말로 가장 큰 은혜인 것이다.

그러면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의 일군이 된 사람은 어떻게 하나님을 섬기는가? 먼저 자원하는 일군이 된다. 여기서 ‘일군’은 ministen으로 종이나 노예가 아닌 자원하는 봉사자이다. 즉 누가 시켜서 일하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원해서 일하는 사람이다. 종은 순종만 하고 책임이 없지만 봉사자는 일도 하고 책임도 진다. 바울은 자신을 이런 자원하는 봉사자라고 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서 스스로 원해서 하나님을 위해 일해 왔다는 것이다.

이것이 은혜를 입은 사람의 모습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시고 내게 일을 맡기셨다는 사실에 너무나 감사해서 힘을 다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이것이 사도 바울의 믿음의 자세였고 그가 평생을 바쳐서 온 힘을 다해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한 이유였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맡기셨다는 것에 너무나 감사해서 힘을 다해 열심히 복음을 전한 것이다. 

우리도 이렇게 자원하는 일군이어야 한다. 무슨 일이든지 시켜서 억지로 하면 사랑과 감사가 없다. 스스로 자원해서 봉사할 때 일하면서 기쁨을 얻고 보람을 얻을 수 있다. 어떤 일이든 그 일 자체에 의미를 두고 자원해서 일하는 기쁨이 있어야 한다. 내가 좋아서 헌신하고, 내가 원해서 봉사하는 것이다. 주님이 좋아서, 주님을 사랑하기에,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해서 스스로 자원해서 일하는 것이다. 그리고 남이 알아주든 안 알아주든 주님을 섬기고 주님의 일을 하는 그 자체로 기뻐하며 일하는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일군의 자세이다.

하나님의 도구
“17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자랑하는 것이 있거니와 18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하게 하기 위하여 나를 통하여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자신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에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자신을 통해서 일하셨다는 것이다. 자신이 복음을 많이 전하고 열매를 많이 거두었지만 그것은 자신이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을 통해서 일하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자기를 통해서 일하신 것 외에는 자랑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렇다.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봉사하고 땀 흘려 수고해도 하나님이 일하시지 않으면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은 내 능력과 수고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는 것이다. 내가 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일하시는 것이고 나는 하나님의 도구일 뿐이다. 

하나님은 오늘날 복음의 역사를 위해서, 영혼의 구원을 위해서 우리를 필요로 하시고 우리를 쓰시려 하신다. 어떤 모양으로든지 내가 하나님의 손에 들려 쓰이는 그릇과 도구가 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직접 일하시고 나는 다만 하나님께 쓰이고 있다는 자세를 늘 분명하게 해야 한다. 

마태복음 7: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능력을 행했다’고 했지만 ‘우리가, 내가’ 했으니 문을 열어달라고 했다. 자기 공로를 내세우고 자기 자신을 내세웠기 때문에 주님이 모른다고 하신 것이다. 내가 아무리 일을 많이 했어도 주님이 나를 쓰신 것뿐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일군으로 부르시고 나를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하시고 나를 통해서 위대한 일을 행하신 것을 영광으로 알고 감사함으로 섬기라.

복음의 제사장
“16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실 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제사장이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사람이다. 제사에는 제물이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제사장이란 하나님께 양이나 소를 잡아서 하나님의 제단에 제물로 올려드리는 사람이다. 

여기서 사도 바울이 자신을 “복음의 제사장”이라고 한 것은 자신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해서 그들을 하나님의 제단에 제물로 올려드리는 거룩한 사명을 하나님께 받았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제물로 이방인의 영혼을 하나님께 드리는 복음의 제사장으로 하나님께서 자신을 부르셨다는 것이다.

제사에는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이 있어야 하듯이 예배에도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이 있어야 한다. 사도 바울이 자신을 복음의 제사장이라고 한 것은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제물은 이방인의 영혼이라는 뜻이다. 오늘도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예물은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의 영혼이다. 누가복음 15: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사도 바울만 복음의 제사장으로 부름 받은 것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다 복음의 제사장으로 부름 받았다. 그러므로 우리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서 그들을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거룩한 제물로 드려야 한다. 

교회의 가장 큰 사명과 목적은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가장 큰 사명은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복음을 전하는 것이고 믿지 않는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에는 매 주일마다, 예배 때마다 새로 예수를 믿기로 한 새가족이 항상 있어야 한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예물, 가장 받으실만한 예물은 바로 예수를 믿지 않다가 믿기로 결심하고 하나님께 나온 새가족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모든 부서와 기관과 모임의 최고의 목적은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남선교회는 남자들이 선교하기 위해 모인 모임이다. 여전도회는 여자들이 전도하기 위해 모인 모임이다. 교육부서도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부서이다. 영아부는 영아들에게, 유치부는 유아들에게, 초등부와 소년부는 초등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부서이다. 중등부는 중학생들에게, 고등부는 고등학생들에게 그리고 청년부는 청년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존재하는 부서이다. 구역도 내가 사는 동네에 있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모임이다. 모든 부서와 기관과 모임의 모든 일들이 다 복음을 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복음을 전하는 일에 집중되어야 한다. 우리 모두가 복음의 제사장으로 부름 받았다는 것을 깨닫고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이 가장 원하시고 가장 기뻐하시는 영혼구원과 복음전파에 힘쓰기 바란다.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반드시 기억해야 할 원리와 원칙이 있다. 첫째, 복음은 성령의 능력으로 전해지는 것이다. “18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하게 하기 위하여 나를 통하여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그 일은 말과 행위로 19 표적과 기사의 능력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졌으며.” 바울 자신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여러 곳으로 돌아다니면서 말로 그리고 행동으로 복음을 전했다. 이처럼 복음을 전하는 것은 먼저는 말로 전해야 한다. 입을 열어 전하지 않으면 아무도 복음을 들을 수 없다. 그리고 행동으로 즉 몸으로 전해야 한다. 내 몸을 움직여야 복음이 전해진다.

그러나 바울은 복음의 열매를 맺은 것은 자신의 말과 행위 때문에 된 것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된 것이라고 고백했다.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표적과 기사와 능력이 나타났고 성령의 능력으로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였다고 했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복음을 전해도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께서 일하시지 않으면 아무 것도 이루어질 수 없다.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이룰 수 없다. 고린도전서 2:4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5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권능을 받아야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할 수 있다. 성령의 일하심을 구하고 성령의 능력을 받아서 복음의 제사장의 사명을 잘 감당하라.

둘째, 복음을 될 수 있는 대로 널리 전해야 한다. “19 그리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 여기서 “편만하게 전했다”는 것은 ‘널리 전했다’는 뜻이다. 지역적으로는 모든 지역에 빠짐없이 전했다는 뜻이고 또한 복음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서 전했다는 뜻도 있다. 예루살렘은 동남쪽에 있고 일루리곤은 서북쪽에 있다. 그러므로 바울은 모든 지역에 골고루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힘썼다는 것이다. 

복음을 전할 때 내가 전도하기로 작정한 사람에게 집중적으로 전도해야 한다. 그러나 몇 사람에게만 집착하지 말고 될 수 있는 대로 여러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기를 힘쓰라. 내가 사는 동네에서만 전도하거나 늘 가는 곳에만 가지 말고 될 수 있는 대로 여러 곳에 가서 널리 전도하기를 힘쓰라. 진도대도 5동에만 가지 말고 8동에도 가고 3동에도 가라. 1,2동에도 가고 6,7동에도 가라. 지금 당장 열매가 없어도 많이 전도해 놓으면 언젠가는 반드시 열매를 맺는다. 

셋째, 복음의 개척자가 되라. “20 또 내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곳에는 복음을 전하지 않기를 힘썼노니 이는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개척자란 매우 어려운 것이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개척자의 사명을 받은 사람만이 한다. 바울의 말은 이미 복음이 전해진 곳은 다시 갈 것 없고 전혀 예수의 이름을 모르는 곳에만 가서 복음을 전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미 예수를 믿는 사람에게는 전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수를 잘 믿고 자기 교회를 잘 다니고 있는 사람에게는 전도할 필요가 없다. 또한 다른 교회나 다른 사람이 전도하고 있는 지역에는 가지 않는다. 몇 년 전 미아 5동에 새 아파트단지가 생겼었는데 바로 그 앞에 우리 교단 우리 노회 교회가 있다. 그래서 우리 교회 전도대에게 그 아파트에는 가지 말라고 했다. 복음을 전할 때에 내가 수고하지 않은 열매를 내가 거두려하지 않아야 한다. 나는 복음의 제사장으로 부름 받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온 힘을 다해 복음을 전하라.

올해는 1907년 평양에서 일어났던 대부흥운동이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그래서 전국교회가 다시 한 번 100년 전의 성령의 역사가 임하기를 간절히 원하고 한국 교회가 다시 부흥하기를 구하고 있다. 100년 전 대부흥이 일어났을 때 한국교회는 100만 명 구령운동을 펼치고 열심히 전도했다. 그래서 우리 총회에서도 100년 전처럼 2월 21일 사순절부터 5월 20일까지 석 달 동안 100만 명 전도, 10만 명 세례를 목표로 힘을 다해 전도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서 총회 산하 7300교회 중에서 170교회를 100만인 전도운동의 시범교회로 선정했는데 우리 교회도 선정되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총회가 세운 목표의 1/1000을 감당해서 올해에 1,000명 전도, 100명 세례를 목표로 전도하려고 한다. 여러분 모두가 한 사람이 한 명씩 전도하기로 결심하고 적극 동참하라. 

교회의 존재목적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적은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우리가 은혜를 입었고 그리스도의 일군이 되었다. 이를 위해 우리가 하나님의 도구로 그리고 복음의 제사장으로 부름을 받았다.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예물은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이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해 복음의 제사장의 사명을 힘써 감당하는 성도가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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