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하나님이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요 5:17)

  • 잡초 잡초
  • 792
  • 0

첨부 1


하나님이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요 5:17)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요 5:17)
누구의 일을 하느냐가 그 사람입니다.
마귀 일을 하는 사람은 마귀의 사람입니다.
은행 일을 하는 사람을 은행원이라고 합니다.
학교 일을 하는 사람을 교사라고 합니다.
깡패 일을 하는 사람을 갱단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게으름뱅이 이야기로 오늘 말씀을 열고 싶습니다.
어느 마을에 도무지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일하기 싫어서 밤낮으로 집안에 들어 누워만 있었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게 되어도 그냥 방안에 누워만 있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불쌍히 여기서 먹을 것을 갖다 주어도 게을러서 자기가 떠먹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이 가끔 가서 먹을 것을 입에 넣어 주었습니다. 이제는 동네 사람들이 지쳤습니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이 산 채로 파묻어 죽이기로 작정하였습니다. 거머리와 같은 존재라고 합의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를 지게에 메고 산으로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지나가다가 이 모습을 보고 말했습니다.

<아무리 게으르다고 생사람을 죽일 수가 있겠소? 내가 콩을 주어서 살리리다.>
지게 위에서 태연하게 눈을 감고 있던 그가 말했습니다.
<나에게 줄 콩이 깐 콩인가요? 안 깐 콩인가요?>
이렇게 게으른 사람이 이 세상에는 실제로 존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놀이터로 보내지 않으시고 일터로 보내셨습니다.

첫 사람 아담은 에덴 동산 안에서 창조되지 않고 밖에서 창조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아담을 시온산에서 만드셔서 에덴동산으로 이끌어 가셨다고 믿고 있습니다.
최고의 아름다운 동산 에덴 동산으로 이끄시고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즐겨라. 놀아라. 낮잠 자라. 여행하거라.> 대신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생육하라. 다스리라. 번성하라.>
그래서 아담은 그 큰 에덴동산을 다스리고 생육 번성하여야 할 일터로 부여받으면서 에덴동산에 들어갔습니다.
에덴 동산은 놀이터가 아니라 일터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지구 구경을 하거라. 사람들은 정탐하거라.>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으로 보내시면서 확실하게 임무를 부여하셨습니다.
<내 백성을 구원하라.>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요 5:17)
그러면 하나님이 일하신다고 하셨는데 하나님은 도대체 어떤 일을 하시는 것일까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면 정말 놀랍습니다. 우리는 가정 하나 관리하는 데도 쩔쩔 맵니다. 나는 한 교회를 관리하는 데도 힘듭니다. 대통령은 나라 관리에도 힘들어 합니다. 노무 현은 대통령이 되고 나서 막상 일을 하려고 하는데 너무 어려우니까 신경질적으로 말한 적이 있습니다.
<못 해 먹겠다.> 이 말이 대통령이 하였기에 유명한 말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만일 지구 전체를 관리하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힘들가요?
그런데 하나님은 온 우주를 관리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주를 관리하실 때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신다고 성경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시121:4)
이렇게 하나님이 일하시니 예수님도 일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런 고백을 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이 일하시니 예수님도 일하시고
예수님이 일하시니 우리도 일한다>
그러면 우리가 어떤 일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일가요?

 1. 기도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나라를 위하여, 교회를 위하여, 하나님의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루터는 말했습니다.
<기도는 노동이다.>
하나님의 나라 확장을 위하여 늘 기도하는 것이야 말로 하나님의 일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기도하시니 나도 기도한다>

나는 미국에서 늘 기도하는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가 내게 노트를 하나 보여주며 말했습니다.

<목사님! 나는 내 조국 한국을 위하여 기도하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한국 목사님들 300명 명단을 불러 주셨습니다. 나는 강 목사님을 잘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목사님의 이름을 불러 주셨습니다> 그리고 기도 수첩을 내게 보여 주었습니다. 정말 내 이름도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의 일중에 일입니다. 교회를 위하여 기도하고 목회자를 위하여 기도하고 가족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도 일입니다.
그 사람을 위하여 누군가가 뒤에서 기도하면 그 사람을 하나님은 지켜 주십니다. 롯 사건을 이런 사실을 우리에게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를 하나님이 유황불로 멸하셨습니다.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 하고 다 죽었습니다. 그 때 롯의 가정만 살려 주셨습니다. 롯의 가정만 살려 주신 이유를 성경은 분명히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들의 성들을 멸하실 때 곧 롯의 거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어 보내셨더라>(창 19:29)
기도도 일입니다. 
<누군가 날 위하여 누군가가 기도하네.....>
이렇게 기도하는 사람이 뒤에 있으면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을 통하여 큰 역사를 일으켜 주십니다.
기도는 놀라운 하나님의 일입니다.

세계 그리스도인들은 기도하면 죠지 뮬러를 생각하게 합니다. 뮬러는 6가지 원칙으로 기도하였습니다. 놀라운 기도자가 한 말이기에 관심을 집중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1. 예수님은 우리에게 축복을 주시기를 원하고 곗심을 확신하며 시작합니다.
2. 생각나는 모든 죄를 다 제거하여야 합니다. 회개없이 응답이 없기 때문입니다.
3. 하나님이 주신 말씀은 모두 그대로 믿습니다.
4. 우리의 정욕으로 구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필요로 구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욕망에 응답하시지 않고 필요에 응답하시는 분이십니다.
5. 하나님을 신뢰하고 끈기 있게 응답이 있기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6. 구체적으로 기도하여야 합니다. 심지어 펜이 부러졌으면 펜을 고쳐 달라고 기도하고 열쇠를 잃어버렸으면 열쇠를 찾게 하여 달라고 기도하여야 합니다.
예수님이 기도하셨으니 우리도 기도하여야 합니다.

 2. 전도

전도야 말로 예수님의 가장 큰 일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하실 때에는 전도에 가장 큰 비중을 두시고 하시는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막 1:38)
전도야 말로 가장 큰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런데 나는 얼마전 동두천 교회에 가서 크게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전도 표어가 강대상위에 붙어 있었습니다.

전도는 쉽다.
전도는 즐겁다
전도는 재미있다.
전도는 행복하다.
이 네 가지 표어가 강대상에 붙어 있었습니다. 전도야 말로 가장 큰 하나님의 일입니다.

미국에서 선교사 훈련을 받고 일본으로 배를 타고 가던 청년 선교사 이야기입니다.
오사카에서 나카사키로 향하는 배를 타고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일본을 사랑합니다. 만나는 영혼을 사랑하며 그리스도를 전하게 하옵소서!> 그는 구령의 열정을 가지고 기도를 마치고 일등실 자기 침실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밤에 비가 몹시 쏟아졌습니다. 잠자리에 든 선교사는 이상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배가 기울고 있었습니다. 그는 구명대를 메고 갑판으로 올라갔습니다. 배는 침몰하고 있었습니다. 순간적으로 푹풍 속으로 몸이 잠겼습니다. 그는 바로 앞에서 허우적거리는 할머니를 보았습니다. 구명대는 일등 선실에 탄 사람들에게만 주어진 것이었습니다.

그는 자기의 구명대를 벗어서 할머니에게 입혔습니다. 그리고는 선교사로서 최초요 마지막으로 예수를 전하였습니다. 
<할머니, 나중에 구출이 되면 다른 사람에게 이 말을 전하세요. 
내가 할머니 대신으로 죽고 내 생명을 할머니에게 드리는 것처럼 하나님은 사람이 되어 오셔서 모든 사람의 죄를 위해서 죽었고 자기의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의 이름이 예수입니다. 이 사실을 믿으면 영원히 살게 됩니다.>

이 말을 마친 뒤에 청년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그 후에 할머니는 구출되었습니다. 할머니는 일본 방방곡곡 다니면서 만나는 사람에게마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예수가 누구인지 몰랐습니다. 그러나 나 대신 죽은 그 청년이 있습니다. 그 청년은 내게 어떤 청년이 우리 죄를 위하여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 이름 예수님이랍니다.>
이 말을 할 때마다 할머니는 울었습니다. 그 후에 그 할머니는 전도인이 되었습니다. 청년만 생각하면 그 뜨거운 사랑이 압도되었기 때문입니다.
전도는 우리가 하여야 할 일입니다.
우리는 성탄절에 752명의 영혼이 구원받기 위하여 기도하고 있습니다. 주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성탄절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한 가지 이야기 더 드리고 싶습니다.
스코틀랜드에 무서운 박해의 바람이 몰아쳤을 때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존 웰쉬라는 전도자가 있었습니다. 목숨을 걸고 예수님을 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를 전하는 이에 대한 박해가 너무 심하여 급히 숨을 곳을 찾다가 어느 지주의 집 대문을 두드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날 밤 찾아 들어간 그 지주는 이 지방에서 전도하는 사람들을 제일 증오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다행히도 그는 웰쉬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웰쉬를 친절히 영접했습니다.

그 날 밤 주인은 말했습니다.
<웰쉬, 그 놈을 꼭 체포해야겠는데 어디 숨었는지 알 수가 없네.>
<그래요? 그럼 제가 바로 그 웰쉬라는 놈을 잡아 드리겠습니다. 내일 저와 함께 가시면 틀림없이 그 놈의 손에 당신이 수갑을 채울 수 있도록 해 드리겠습니다.>
이튿날 아침 둘이는 어느 곳으로 갔습니다. 그 곳에는 벌써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지주는 미리 준비된 특별 좌석에 안내되어 앉았습니다. 어쩐지 기분이 이상함을 느꼈습니다. 웰쉬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죄와 구원에 관하여 열렬히 설교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성령은 그 곳에 함께 역사 하였습니다., 마침내 완고한 지주의 심령이 녹아지고 말았습니다. 

설교가 끝나자 웰쉬는 지주의 앞으로 걸어 갔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약속한 대로 합니다. 내 두 손에 수갑을 채우십시요.>
그리고 두 손을 묶으라고 내밀었습니다. 그 때 지주는 대답했습니다.
<수갑을 차야할 사람은 나입니다.> 
전도는 우리가 하여야 할 일입니다. 예수님이 전도하셨으니 우리도 전도하여야 합니다.

3. 사랑

하나님이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무슨 일을 하셨을까요? 하나님의 일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요 3:16)
십자가의 시작은 사랑입니다. 십자가의 결론은 사랑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위하여 오셔서 사랑하여 주시는 것이 예수님의 일이었습니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이렇게 노래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랑받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분이 아닙니다. 사랑하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분이십니다.
우리는 두 가지를 사랑하여야 합니다. 사람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여야 합니다.
지극히 작은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예수님의 일입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5장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31-33)

이렇게 염소와 양을 가른후에 오른 편에 있는 이들에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35-36)
그러면 오른편에 있는 의인들은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을 보고 공궤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37-39)
그러면 심판하시는 분은 대답하실 것입니다.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40)

그리고 다시 왼편을 향하실 것입니다.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아보지 아니하였느니라>(41-43)
그러면 왼편에 있는 이들은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치 아니하더이까.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44-45)
이같이 어려움속에 있는 이들을 섬기고 돌보는 일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느 목사님이 부흥회에 갔을 때였습니다. 한 여자가 세수대야에 물을 담아 오더니 목사님에게 발을 내놓으라고 하셨습니다. 발을 닦아 드리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목사님은 극구 사양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우리 아버지가 나를 기르면서 나를 사모로 서원하셨습니다. 그런데 내가 사모의 길을 가지 않고 다른 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부흥강사님이 오시게 되면 발을 닦아 드리는 것으로 내 마음을 보상하고 싶습니다. 목사님들을 이렇게 섬기고 싶습니다.>

그리고 늘 강사님이 오시면 그렇게 발을 닦아 드리며 늘 말했습니다.
<설교 잘 해 주셔서 우리 교인들 다 은혜 받게 하여 주세요.>
그래서 그 분이 강사 발을 정성껏 닦아 드림으로 부흥강사가 설교를 잘 하게 되어 은혜로운 부흥회가 되곤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남을 섬기며 사랑하는 것이 예수님의 일이었기에 우리고 사랑하며 섬겨야 합니다. 발을 닦아 주신 그리스도를 본받아 우리는 우리 성도들끼리 섬기고 사랑하여야 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드리고 싶습니다.
소련의 스탈린 통치시절이었습니다. 보리스 콘펠드라는 젊은 유대인 의사가 시베리아 강제 수용소로 끌려갔습니다. 그 수용소에서 신실한 그리스도인을 만나 그의 열정적인 전도로 인해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이 의사는 예수님을 영접한 후 영혼의 평안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두 가지 결심을 했습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을 가르쳐 준 그 그리스도인처럼 이웃을 사랑하며 살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그리고 죽기까지 복음을 전하며 살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그는 시베리아 수용소에서 다시 의사로서 일하게 되었습니다. 한 젊은이가 암으로 고생하고 있었습니다. 몰래 수술을 하여 주었습니다. 불법이었습니다. 시베리아 수용소의 죄수를 병 걸리면 죽는 것이지 수술은 없었습니다. 
수용소 법을 어겼기 때문에 사형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사형 전 날 이 의사는 수술해 준 젊은이 곁에 앉아서 밤늦도록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진지하게 전하였습니다. 

이튿날 아침 의사는 처형 직전에 마지막으로 이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신은 당신이 선택한 것에 후회가 없습니까?>
그 때 그는 이런 유명한 대답을 남겼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결코 후회함이 없습니다.> 
그 때 이 의사로 인해 살아난 젊은이가 바로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인 알렉산더 솔제니친입니다.
우리 주변에 그늘진 곳에 사람을 사랑하고 돌보는 것이 우리가 할 일입니다.

그리고 교회를 사랑하여야 합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것이 예수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머리는 그리스도입니다. 따라서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몸된 교회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물질로 봉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하면 엄청난 물질이 요구됩니다.
<나는 돈버는 은사가 있다. 열심히 사업하여 돈을 많이 벌어 드려서 하나님의 일하는 데 물질 봉사를 많이 하겠다.>
이것도 큰 하나님의 일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돈을 벌어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하는 것도 큰 일 중에 일입니다.
바나바가 그랬습니다.
그는 돈을 많이 벌어 초대 교회에 선교 헌금으로 모두 헌금하였습니다(행 4:36)

루디아도 마찬가지입니다.
루디아는 두아디라에서 자주 옷감장사를 하여서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바울이 빌립보에 전도하러 갔을 때에 집을 선교 선터로 내놓았습니다. 그래서 유럽 최초의 교회인 빌립보 교회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이같이 물질적으로 봉사하는 일을 할 일군이 교회에는 필요합니다.
패자는 돈에 끌려 다니지만 승자는 돈을 끌고 다닙니다.
돈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필요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처럼 열심히 벌어서 하나님의 일을 많이 하여야 합니다. 이것도 예수님의 일입니다.
우리는 이웃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한다고 늘 큰 소리치는 농부가 있었습니다.
주님을 위해서라면 그 어떠한 것이라도 드리겠다고 늘 말했습니다. 심지어는 자신의 목숨까지도 다 바치겠다고 서슴없이 말하곤 하였습니다.
어느 날 이웃 마을의 친구가 찾아와서 그에게 넌지시 물었습니다.
<만일 자네에게 소 열 마리가 있다면 그 가운데 한 마리는 하나님께 바칠 수 있겠는가?>
농부는 자신있게 말했습니다.
<그럼! 바치고 말고. 그렇지만 내게는 소가 없다네.> 친구가 또 물었습니다.

<말 열 필이 있다면 그 가운데 한 필을 십일조로 바칠 수 있는가?>
농부는 또 큰소리를 쳤습니다.
<아무렴 바치고 말고! 한 필뿐인가, 열 필이라도 다 바쳐야지. 그러나 내게는 말이 없다네.>
친구가 세 번째로 또 물었습니다.
<자네에게 돼지 열 마리가 있다면 그 가운데 한 마리를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가?>
그 소리를 들은 농부가 갑자기 역정을 내며 말했습니다.
<아니, 나한테 돼지 열 마리가 있다는 걸 도대체 어떻게 알았어?> 
이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주님의 일이 아닙니다. 

반대 이야기를 하나 드리고 싶습니다.
어느 평범한 여인 이야기입니다.
남편이 일찍 세상을 떠났습니다. 혼자서 머리에 물건을 이고 다니며 팔다가 너무 힘들어서 길거리에서 콩나물 장사를 하시면서 자식들을 교육시키셨습니다. 자식들이 다 성공하였습니다. 다 장성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식들과 같이 살지 않고 혼자 자그마한 오두막집에서 살았습니다. 자식들이 졸랐습니다.
<어머니, 이제는 아파트로 이사 가시지요. 아니면 단독 주택으로 옮겨 가시게 해 드릴게요.> 어느 날 어머니는 자식들을 불러 놓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들이 정 원한다면 나를 위해 집을 한 채 지어라. 내가 원하는 집은 바닥을 반드시 유리로 깔고, 기둥도 멋지게 금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 기둥 밑바닥은 반드시 보석을 박아야 한다. 그런데 그 보석의 색깔이 다 달라야 한다. 그리고 문은 12개 만들어야 한다.> 자식들이 말했습니다.
<어머니, 농담하지 마세요. 그런 집이 어디 있어요?> 어머니는 태연하게 말했습니다.
<그렇게 못 하겠다면 그만 둬라. 나는 그런 집을 하늘 나라에 갖고 있다.> 그리고 소박한 삶을 불편하게 살면서 아직도 콩나물 장사를 하면서 교회를 받들고 어려운 이들을 돌보며 사는 여인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이런 분들이 소금과 빛의 직분을 다하는 진정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일하시니 우리도 일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할 일은 예수님이 하신 일입니다. 무엇입니까?

1. 기도
2. 전도
3. 사랑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