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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제는 달라져야합니다 (엡 4:2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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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달라져야합니다 (엡 4:25-32)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된 오바마가 대통령 선거 캠페인을 진행하는 동안 그가 일관성 있게 활용한 화두는 ‘변화’(chqnge)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국민들의 이런 변화의 열망에 부응하기 위한 새 시대의 리더로 선택될 수 있었습니다. 그는 투표에서 그의 승리가 확정되는 순간 그의 당선 스피치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의 승리 그 자체가 우리가 추구하는 변화는 아닙니다. 오늘의 승리는 우리에게 변화의 기회를 제공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과거로 다시 돌아간다면 우리는 변화를 가져올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 변화는 여러분이 없이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함께 변화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변화될 수 있습니다.” 

변화!! 이는 우리 믿는 사람에게도 얼마나 갈망하는 모습입니까? 우리 모두는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영적으로 죽은 상태였는데 하나님이 은혜로 저와 여러분을 살리셨습니다. 그래서 과거의 나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이제 나는 하나님 안에서 새 사람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죄의 노예에서 하나님의 아들로 신분이 바뀐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신분이 바뀌었으니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의 신분이 바뀌었으니까 당연히 그 신분에 맞는 변화의 삶, 좀 이제 달라져야하지 않겠는가?” 이 간단한 말씀을 사도 바울은 22-24절에서 이렇게 표현합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무엇을 입으라고 말씀하십니까? “새 사람”입니다. 우리의 신분이 바뀌었기 때문에 우리의 달라진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25-32절에서 구체적으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1. 언어의 변화입니다. 25절 

25절을 보십시오.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을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도산 안창호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우리 국민이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는 경제의 부흥이 아니라 신용의 회복이다.” 여러분, 그 당시 우리나라가 얼마나 가난했습니까? 그런데도 불구하고 안창호 선생님은 우리나라의 문제는 가난이 아니라 신용의 부족이라고 했습니다. 바로 부정직의 문제야말로 우리나라의 심각한 문제라고 본 것이지요. 그래서 그는 이렇게 권면했습니다. “꿈에서라도 우리 거짓말하지 말자!” 우리 국민들이 얼마나 거짓말을 많이 했으면 이렇게까지 말했겠습니까? 

우리 한국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사람들이 거짓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거짓말을 할 뿐만 아니라 자녀들에게도 거짓말을 가르칩니다. 그래서 온 사회가 정직하지 못합니다. 그 여파로 외국에서 우리나라에 투자하고 싶지만, 나라도 신용하지 못하고 기업도 신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투자를 꺼려서 우리나라 경제가 어려워져 가고 있다고 합니다. 2000년 초, 우리 국민들의 고소 고발 건수가 약 60만 건에 달했습니다. 가히 고소공화국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같은 해에 일본에서는 몇 건의 고소 고발 사건이 있었는지 아십니까? 

단 1만 2천 건 뿐이었습니다. 일본의 인구가 우리의 3배인 것을 감안한다면 우리나라의 고소 고발 사건이 일본보다 150배나 많은 것입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일본의 고소 고발 사건은 대게 폭행 사건이 주를 이룹니다. 이에 비해서 우리나라는 52%, 즉 60만 건 중에 30만 건 이상이 사기 사건입니다. 더욱이 그 가운데 무고 사건이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거짓으로 남을 모함하기 위해 고소를 한 것입니다. 이는 우리 국민의 거짓말 수준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통계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거짓말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혹 삶의 방편으로 어쩔 수 없거나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본문 말씀에 귀를 기울이시고 본문 말씀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거짓말은 삶의 방편으로 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성경에서 철저하게, 엄중하게, 수없이 거짓말하는 것에 대해 경고하고 계십니다. 

25절을 보십시오.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을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 여기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는 말씀의 의미를 아시겠습니까? 우리가 믿는 형제자매에게 거짓말을 하면 그것이 바로 우리의 몸, 나 자신을 죽이는 일이 되고, 그리스도의 몸이 무너지고 병들게 되는 원인이 된다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거짓말은 이와 같은 결과를 초래합니다. 거짓말은 내 개인 뿐 아니라 우리의 가정과 교회, 사회를 죽이는 행위입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가 정말 달라져야 할 언어가 있다면 그것이 무엇입니까? 29절입니다.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베드 데이’라는 사람은 이 구절을 해석하면서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만일 누군가에게 다른 사람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거든 세 개의 문을 통과하라. 첫 번째 문은 사실의 문이다. 그것이 사실인가. 남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전에 반드시 거쳐야 할 것은 그것이 사실인가 확인해 보아야 한다. 두 번째는 필요의 문이다. 내가 그것을 말할 필요가 있는가. 세 번째는 유익의 문이다. 내가 그것을 말하는 것이 나와 그 사람과 내 가정과 이 교회에 유익이 되는가. 이 세 개의 문을 반드시 통과하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말이 중요합니다. 성경은 말에 대해서 얼마나 강조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적어도 말이 바뀌어야 새 사람이 되었다고 성경은 인정하는 것입니다. 저는 목회에서 이것을 좌우명으로 삼고 있습니다. 제 마음의 결심은 직분자를 세울 때 말에 실수가 없는 자를 지도자로 세울 것입니다. 다른 모든 것에 열심이 있고 아무리 봉사를 많이 하고 헌금을 많이 해도 말을 제어하지 못해서 실수가 있다면, 그 사람은 교회의 지도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롬 3:13절에서 “거짓말하는 사람의 입에서는 쉬지 아니하는 악을 발하나니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과 같고, 그 혀로는 궤휼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도다”라고 거짓말하는 자들을 정죄하고 있습니다. 거짓말은 여러분의 입에서 독을 뿜는 것입니다. 여러분을 죽이는 독, 여러분이 사랑하는 사람을 죽이는 독, 가정을 죽이는 독, 교회를 죽이는 독을 내뿜는 것입니다. 내가 거짓말하는 그 순간 내 목구멍에서는 무덤이 뛰쳐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30절을 보세요.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여기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안에서 근심하신다고 얘기합니다. ‘근심하다’는 단어를 찾아보니 다윗이 자신의 아들 압살롬을 잃고 나서 매우 슬퍼해서 근심했다고 할 때 사용했던 바로 그 단어였습니다. 성령 하나님이 우리 마음 안에서 언제 탄식하고 근심하십니까? 내가 덕이 되지 않은 말을 했을 때, 거짓말을 할 때마다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 안에서 근심하신다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이 부분에서 어느 누가 완전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그런 곳에서 교육받아왔고, 저를 포함해서 여기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완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과거는 지나갔습니다. 중요한 것은 현재입니다. 이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으며 이렇게 결심해 보지 않겠습니까? ‘아버지 하나님, 금년도 이제 다 지나갑니다. 비록 짧지만, 남은 시간 입을 열 때마다 남을 세우는 말만 하겠습니다. 거짓말을 중단하겠습니다. 하나님의 편에 서서 말을 하겠습니다. 아버지, 도와주옵소서.’ 하나님의 축복의 도구가 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2. 행동의 변화입니다. 28절을 보십시오. “도적질하는 자는 다시 도적질하지 말고 돌이켜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도둑질’이라는 히브리어 단어는 ‘가나브’(ganab)로 “옆으로 제쳐 놓는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정상적이 아닌, 바르지 못한 방법으로 이익을 추구하는 일체의 행위가 다 도둑질에 속하는 것입니다. 

부당한 뇌물공여에 의한 챙기는 행위, 높은 이자로 부를 획득하는 행위, 빌리고 갚지 않는 행위(책도 포함됩니다.) 허락 받지 않고 물건을 가져오는 행위, 고용주가 피고용인에게 정당한 임금을 지불하지 않는 행위, 피 고용인이 회사의 자원을 남용하는 행위, 부당한 속임수 거래등 일체의 바르지 못한 이익추구 행위를 뜻하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정도를 넘어선 지나친 아파트 투기 행위, 도박심리도 넓은 의미로 보면 도둑 심리라고 할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행위로 진지한 행복을 누린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미국에서 거액의 복권 당첨자들의 당첨 이후의 인생을 추적하여 연구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결론은 그것으로 행복해진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때 미국에서 이런 유머까지 유행한 일이 있습니다. 어떤 부인이 3백만불 복권이 당첨되었다는 통보를 받고 고민에 빠졌습니다. 남편이 심장병을 앓고 있어서 이 사실을 남편에게 알리면 심장마비로 죽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신과 의사에게 상담을 했습니다. 그래서 정신과 의사가 그 남편에게 충격이 안가도록 지혜롭게 통고해 주기로 했습니다. 

의사가 이 남편과 아주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만일 당신에게 백만불의 복권이 당첨되신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했더니 빙그레 웃으며 “제게 무슨 그런 행운이 찾아오겠습니까?” “그래도 그런 행운이 찾아 오신다면요?”하니까? “그럼, 세계 여행이나 한번 해보고 그래도 남으면 고생한 제 아내를 위하여 좋은 자동차나 사주지요”하더랍니다. 그래서 “만일 1백만불이나 2백만불도 아니고 3백만불이 당첨되신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하니까 “주저 없이 ”그럼 선생님에게 절반을 드리지요“하더랍니다. 이 말을 듣자마자 정신과 의사가 심장마비를 일으켜 죽었답니다.

요행을 바라지 말고 일하십시오. 땀 흘려 일하고 일의 정당한 대가를 누리십시오. 바울은 오늘의 본문 엡4:28에서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 드림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기본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나눔을 생활화하는 일입니다. 세상에는 주는 자와 받는 자-두 가지 유형의 인생이 있을 따름입니다. 우리가 어려서는 주로 받는 자의 삶을 살아갑니다. 그러나 성숙해 가면서 우리는 조금씩 주는 것, 나누는 것의 중요성을 배워가기 시작합니다. 그것이 바로 성숙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바울사도도 친히 그가 전도하고 양육한 에베소 교회 지도자들에게 주는 마지막 말씀에서 행전20:35에서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경험한 최대의 사건은 요한3:16에서의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의 사건일 것입니다. 이 소중한 독생자까지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한 사람들-그들이 바로 여러분과 제가 아닙니까? 그런데 요한3:16을 경험하고 이 말씀을 소중히 여기는 성도들이 얼마나 요일3:16을 기억하고 있을까요? 로날드 사이더(Ronald Sider)라는 신학자는 요한3:16을 체험한 모든 성도들이 요일 3:16에 순종하고 있지 않는 한 아직 그의 믿음의 삶은 온전하다고 할수 없다고 했습니다. 요일3:16은 어떻게 말씀하고 있습니까?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어지는 17절의 말씀을 보십시오.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불우한 소녀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홀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먹을 것이 없어 아사 직전에 이른 적이 있을 정도로 가난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그들이 사는 곳에 전쟁이 나서 그들은 매일 죽음을 느끼며 살아야 했습니다. 

그때 UNICEF (국제연합아동구호기금)라는 한 구호단체가 그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펼쳐서 소녀는 굶주림을 해결하고 생명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그 소녀는 장성하여 세계적인 영화배우가 되었습니다. 이 소녀의 이름이 ‘오드리 헵번’입니다. 그가 그렇게 유명한 배우가 되었을 때 그는 자기를 구해 준 분들을 위해 그 단체의 홍보대사가 되어 전 세계를 다니며 구호를 도왔습니다. 말년에는 암으로 고통을 받으면서도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보살피는 일을 했습니다. 

그녀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매력적인 입술을 가지려면, 친절한 말을 하라. 사랑스런 눈을 가지려면, 사람들 속에서 좋은 것을 발견하라. 날씬한 몸매를 원하면, 배고픈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눠 주라. 아름다운 머릿결을 가지려면, 하루에 한번 그 머릿결을 어루만져라. 균형 잡힌 걸음걸이를 유지하려면, 당신이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며 걸으라. 당신에게 도움의 손길이 필요할 때, 당신 역시 팔 끝에 손을 갖고 있음을 기억하라. 나이를 먹어가며 당신이 알아야 할 것은, 당신이 두 개의 손을 갖고 있는 이유이다. 한 손은 당신 자신을 돕기 위해, 그리고 나머지 한 손은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서라는 것을.” 

 헵번의 말 가운데 ‘우리가 두 개의 손을 가지고 있는 이유를 알아야 한다’는 말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한 손은 나 자신을 돕기 위해서, 그리고 나머지 한 손은 남을 돕기 위해서 있다는 말입니다. 손만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시간도, 물질도, 재능도 나 만을 위해 쓰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십계명의 제 8계명은 “도둑질하지 말라”입니다. 그러나 이 명령에 대한 진정한 순종은 도둑질 안하겠다는 결심만으로 부족합니다. 중단했던 도둑질은 언제든지 다시 재개될 수 있습니다. 오히려 도둑질하던 이 손으로 수고하여 일하고 그리고 이 땀의 결실로 이웃들과 적은 것이라도 나누기 시작할 때 우리는 더 이상 빼앗는 자도, 훔치는 자도 아닌 나누는 자, 축복하는 자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을 하나님께서는 축복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3. 인격의 변화입니다. 31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여기에 나오는 단어들을 시간을 두고 연구해 보았는데, 우리 말 성경에서 번역된 것과 의미가 달랐습니다. 악독은 날카로운 마음과 예리한 혀입니다. 말에 대한 언급입니다. 늘 남을 날카롭게 비판하며 다니는 것을 악독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노함과 분냄은 비슷한 단어 같지만, 실제로는 다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노함은 격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분냄은 뿌리 깊은 적대감을 의미합니다. 누가 나를 속상하게 하면 화를 품고 기회가 오기만을 기다립니다. ‘그래, 이 녀석 어디 두고 보자’ 하고 기다리다가 기회가 오면 단 칼에 찌르는 것입니다.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도 다릅니다. 떠드는 것은 흥분한 사람이 소리를 지르며 싸우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그것을 죄라고 말씀합니다. 훼방하는 것은 당사자가 없는 곳에서 그 사람을 비방하여 그의 명성을 손상시키는 것입니다. 그가 하는 일을 훼방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나오는 악의는 다른 사람에게 해를 입히려고 하는 마음 혹은 의도입니다. 그러면 이런 다섯 가지 일을 다 버리고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합니까? 32절 말씀을 보십시오.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최후의 만찬”을 그리기 위해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그림을 완성하기까지 수년이 걸렸습니다. 이렇게 긴 시간이 걸린 이유는 그림 자체가 어려워서가 아니라 열 두 제자의 얼굴을 그리는 모델을 구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먼저 예수님의 모델을 구하러 여기저기 다녔는데, 어떤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나오는 아름다운 청년을 발견하고서 ‘아, 저 사람이다’라고 생각하고 그를 예수님 모델로 찍었습니다. 그의 얼굴에는 평화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얼굴이 아마 저랬을 거라고 여기며 비싼 돈을 주고 그를 데려다가 예수님을 그렸습니다. 이 과정을 반복하여 결국 열 한 제자를 그려냈습니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가장 어려운 것은 가룟 유다였습니다. 가룟 유대의 얼굴이 어땠을까 고민하며 아무리 찾아봐도 마땅한 모델이 눈에 띄지 않는 거예요. 그로부터 수년이 지난 어느 날, 드디어 그렇게 찾던 가룟 유다 같이 생겼을 법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는 막 감옥에서 출소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가룟 유다 모델을 해 달라고 요청하면 쉽게 수락할 것 같지가 않아 돈을 많이 주고 데리고 가서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 유다 모델을 하려던 사람이 펑펑 우는 것입니다. 왜 우냐고 물으니까 그가 하는 말이 “저를 기억하십니까?” “난 잘 모르겠소. 처음 보는 사람인데, 왜 물어보는 것이오?” “제가 바로 몇 년 전에 예수님 모델을 했던 바로 그 사람입니다.” 

단 몇 년 만에 그는 그렇게 변했던 것입니다. 교회 다니며 하나님을 섬길 때는 그의 얼굴에서 광채가 났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그 마음에 일어나는 거짓말을 이기지 못해 함부로 남을 비방하고, 마음에 악의를 품고 악독을 행하고 훼방하다보니 도적질에도 무감각해져 버렸습니다. 그러다가 점점 더 많은 죄를 짓게 되고 결국 감옥에까지 가게 되면서 그의 얼굴은 그렇게 변해 버렸습니다. 가룟 유다의 얼굴이 되어 버렸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우리가 날마다 변화되어야 하는 중요한 이유입니다. 신앙이란 한 번 구원받고 그 자리에서 끝나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보혈의 공로로 말미암아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만, 그 자리에 그냥 머물러 있을 것이 아니라 날마다 자신을 십자가에 못을 박고 주님의 성품에 참예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지금 생각하면 변화 되어야 할 것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제일 소중한 것이 있다면 오늘 내 삶을 인도하시는 하나님 한분입니다. 그분 앞에 나의 삶을 맡기십시오. 

하나님께 여러분 자신을 맡기고 주님과 더불어 동행하는 일평생이 될 때, 나의 연약함을 도우시는 주께서 나를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주님과 동행하며 정말 자기다운 자신을 발견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형제와 이웃, 자녀 그리고 사명을 새롭게 보는 눈이 열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를 사랑하시되 지금도 변치 않고 때를 따라 도우시는 목자 되신 주님을 온전히 섬기며 좁은 길을 기쁨으로 걸어갈 때 우리는 더욱 더 달라지는 기쁨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이 은혜가 여러분 안에 넘치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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