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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전신갑주는 임마누엘이신 예수님이시다 (엡 6: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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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전신갑주는 임마누엘이신 예수님이시다 (엡 6:14-18)


오늘 설교하는 마음이 비장합니다. 현재도 우리는 마귀와 싸우지만 성경은 마지막 때가 될수록 마귀의 엄청난 역사가 있을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마귀의 공격과 미혹은 더 철저하고 강력한 것이 될 것입니다. 

물론 마귀의 공격이 아무리 강해도 두려워할 문제는 아닙니다. 이미 결론은 난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대비해야 합니다. 마귀는 단순히 성도들을 괴롭게 하는 자가 아닙니다.
마귀의 진짜 목적을 알아야 속지 않고 당하지 않습니다.
마귀가 노리는 것은 예수 안 믿는 자들은 아예 복음을 듣지 못하게 만들려는 것이고, 이미 예수 믿는 자들도 죽은 믿음을 갖게 만들려는 것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죽은 믿음이 있다고 했습니다. 
약 2:17 “이와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야고보 사도가 말한 행함은 세상에서 흔히 말하는 ‘선행’이 아닙니다. 믿음의 증거로서 나타나는 행함입니다. 예를 들어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친 것, 라합이 이스라엘의 정탐꾼을 숨겨준 일 등입니다. 이것이 선행입니까?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을 정말 믿었기에 할 수 있었던 행동이었습니다.

우리가 정말 예수님을 믿는다면 반드시 삶이 달라집니다. 대표적인 것이 원수도 사랑하는 것과 거룩한 삶입니다. 마귀는 구원받았다는 그리스도인들이 이 두 가지 열매가 없는 믿음에 안주하도록 발악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귀신들리는 것을 두려워할 것이 아닙니다. 귀신들린 사람이 생기면 차라리 교회는 더욱 마귀의 존재에 각성하게 되고 집중 기도하게 하니 유익한 점도 있습니다. 우리가 정말 두려워할 것은 사랑을 잃은 기독교, 거룩함을 잃은 기독교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무서운 마귀의 역사입니다. 그러나 마귀의 공격인지 모르고 싸울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더 무서운 것입니다.

마귀는 지금도 그리스도인들이 속죄의 감격을 잃어버리고 서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싸우게 만듭니다. 마음에 오신 예수님을 모르고 은밀한 죄를 지으며 죄책감에 빠져 살게 만듭니다. 예수 믿는 것도 힘들다! 부담된다! 하며, 기도 생활의 능력을 잃어버리고 살게 만듭니다.  

어느 전도사님의 상담 메일이 왔습니다.
“뜨거운 성령 체험도 하였고 지금 교회에서 찬양 인도와 교육전도사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누구에게도 밝힐 수 없고, 말할 수 없는 고통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음란의 문제입니다. 다른 모든 죄는 끊었는데, 멀어졌는데 음란죄 만큼은 여전히 저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하루에 한 시간 이상은 뜨겁게 기도하고 있습니다. 성경도 보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금식도 해봤습니다. 그러나 그런 효과들이 얼마간만 지속될 뿐, 저를 여전히 넘어뜨리고 쓰러뜨리는 것은 음란죄였습니다. 정말 어떻게 해야 합니까?”

지금 정도의 상황에서도 이 정도라면 앞으로 마귀가 마지막 발악을 할 때 어떻게 견딜 것입니까?

그러나 걱정은 하지 마십시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대비책 없이 우리를 내 버려두시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전신갑주를 주셨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진리의 허리띠, 의의 흉배, 평안의 복음의 신발, 구원의 투구, 믿음의 방패, 성령의 검과 성령 안에서 하는 기도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전신갑주는 사실은 하나입니다. 진리입니다. 14절에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라” 하였는데, 영적 무장의 첫 단계이면서 모든 영적 무장의 기본입니다.

“진리로 허리띠를 띠라”는 것은 절대 체험이나 감정에 의지하여 예수님을 믿지 말라는 말입니다. 
체험은 분명히 확신을 주고 마음을 뜨겁게 만듭니다. 기적이 일어나고 기도하는대로 응답되고 모든 일이 잘되어 가면 예수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 같고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환경이 힘들어지고 느낌이 식어지면 확신이 흔들려 버린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를 떠난 것 같고 하나님의 사랑도 다 의심이 됩니다. 그래서 더욱 더 강한 체험을 추구하고 인위적으로 뜨겁고 황홀한 감정을 가지려고 애쓰게 됩니다. 

그러면 반드시 마귀의 밥이 되고 맙니다. 왜냐하면 사단은 우리 인간의 감정을 기만하는데 선수이기 때문입니다. 사탄이 마지막으로 준비하고 있는 미혹은 인간의 눈과 감정을 자극하여 우리의 판단력을 흐리려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적 그리스도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예언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진리에 굳게 서지 못하고, 기적을 추구하고 뜨거운 감정과 체험을 바라는 자는 마지막 때 다 넘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도 감정이 아니라 진리로 무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진리가 무엇입니까?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독생자를 구주로 보내주셨다.는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가 죄사함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예수님과 함께 우리 옛 사람도 죽었으며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지금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있으며 예수님의 재림과 함께 이 땅에 온전히 임한다는 것입니다.   

진리로 마귀의 공격을 이긴 대표적인 예가 마틴 루터의 회심입니다.
마틴 루터는 수도사였으나 죄짐에서 벗어나지 못하여 괴로워하다가 로마에 있는 '스칼라 산타' 성당에 갑니다. 그곳에는 예수님께서 빌라도 앞에서 재판 받으실 때에 올라가셨다고 하는 나무로 된 28계단이 있습니다. 

콘스탄틴 대제의 어머니, 헬레나가 이것을 뜯어다가 로마 스칼라 산타 성당 안에다가 갔다 놓았다고 해서. 많은 사람이 이 계단을 무릎으로 기어 오르내리면 죄 사함 받는다고 믿었습니다. 루터도 이 계단을 무릎으로 기어오르면서 한 계단 한 계단 올라갈 때마다 계단에 입을 맞추고 주기도문을 외우면서 올라갔습니다. 다 올라갔으나 해결된 것이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 때 마치 큰 불빛을 보는 것처럼 깨달아지는 것이 있었습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 진리를 깨닫고 죄 사함의 확신을 갖게 되고 결국 종교 개혁을 단행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이 진리 위에서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누구나 새로 교인이 되실 때, 10주 동안 일대일로 새가족 과정을 갖습니다., 처음에는 거부감을 갖는 분도 계시지만 10주 과정이 마치고 나면 기존 성도들도 큰 은혜를 받았다고 고백합니다. 그것은 자신이 진리로 무장된 것을 느끼는 것입니다. 진리에 근거하여 예수를 믿지 않으면 신앙생활은 다리가 풀린 마라토너와 같습니다.   

17년 간 승려 생활을 하던 "김일규"라는 사람이 어느 날 시주하러 갔는데 한 청년이 책 한 권을 자루에 넣어 주면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니 한번 읽어보고 예수를 믿으시오."라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불쾌하게 느꼈지만 호기심에 그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다섯 번을 통독하는 동안 성경이 불경과 다르다는 네 가지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① 속죄의 가르침이 있다. ② 예수님이 죽음에서 다시 살아 나셨다. ③ 예수님은 속세와 함께 하신다. ④ 예수만 믿으면 구원받는다. 이 진리를 깨닫고 절에서 나와서 신학교를 가서 목사가 되었습니다.

마귀는 체험이나 감정에 의지하여 예수님을 믿는 자는 사자처럼 삼킬 수 있지만 진리를 결론 삼는 성도는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진리를 아는 자가 거짓말하는 자 앞에서 당당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마귀가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공격하는 것은 우리 죄를 가지고 공격하고 두려움과 염려로 공격하고 의심으로 공격하고 온갖 나쁜 생각으로 공격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진리로 무장하면 그 모든 공격이 다 허사가 됩니다.

14절에서 또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했습니다. 
마귀는 우리를 죄인이라고 정죄합니다. 지금도 그런 공격을 받고 있는 분이 계실 것입니다. 그것이 사실이기에 우리는 저항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면 성경의 진리가 얼마나 놀라운 지 아십니까? 

우리는 분명 죄인이 맞지만 이미 죽었다는 것입니다. 
롬 6: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그리고 이제는 우리가 예수님의 생명으로 사는 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고전 1:30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예수님이 우리의 의가 되었으니 마귀가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15절에서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하였습니다.
마귀는 계속 두려움과 염려로 우리를 공격하지만 진리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오셨고 예수님이 평안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요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 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16절에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라고 하였습니다.
마귀는 계속하여 우리에게 의심을 심어줍니다. ‘우리가 정말 모든 이를 사랑할 수 있을까?’ ‘죄 짓지 않고 거룩하게 살 수 있을까?’ ‘도대체 하나님이 계시긴 계신거야?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왜 이런 일이 하필 나에게?’ 

그러나 진리는 무엇입니까? 히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24시간 예수님을 바라보면 믿음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믿어지면 끝난 것입니다. 마귀가 어떤 공격을 해도 이길 수 있습니다. 

로마서 8장 35-37절에 보면 성도들이 예수 믿는다는 이유 때문에 “환난을 당하고 곤고해지고 박해를 받고 굶주리고 헐벗고 위협을 당하고 칼에 맞으면서”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 당할 양 같이 여김을 받으면서” 했습니다. 환경을 보면 하나님을 부인하고 배교할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감정이나 느낌에 의지하지 않고 진리 가운데 늘 함께 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고 있었다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17절에 “구원의 투구”를 쓰라고 하였습니다. 
사탄은 우리의 생각을 공격합니다. 온갖 쓰레기 같고 악한 생각을 심어주는 것입니다. 가룟유다가 이것을 깨닫지 못하여 예수님을 팔고 자살한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무엇 보다 생각을 지키라고 한 것입니다.
잠 4:23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마음을 지키는 것은 항상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빌 4:6-7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 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17절에서 또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마귀의 공격을 방어만 할 필요는 없습니다. 얼마든지 공격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마귀를 공격하는 것은 성경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마귀의 시험을 말씀으로 물리치셨습니다. 

컴퓨터 중독에 빠진 아들을 둔 성도님이 계셨습니다. 아 아들은 정신 안정제까지 복용하고 있었습니다. 목사님께서 그 아이의 부모에게 성경을 큰 소리로 읽게 하라고 권했습니다. 특히 마가복음을 읽으라고 했답니다. 마가복음에는 예수님이 귀신 쫓는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처음에는 부모도 반신반의하고 아들도 거부하더니 엄마가 크게 읽어주기도 하고 억지로라도 읽게 하였더니 얼마 후 변화를 보이기 시작하더랍니다. 그렇게 악하게 거스리고 반항하던 아이가 부드러워지기 시작했고, 불면증으로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던 아이가 성경을 들으면서 잠을 잘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얼마 후엔 학교도 제대로 출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말씀의 능력입니다.

18절에서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 하였습니다.
우리의 공격 무기는 말씀만이 아닙니다. 성령 안에서 드리는 기도도 있습니다.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고 계십니까? 
눅 22:31-32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탄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사탄은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를 가지고 놀았지만 예수님의 기도로 다시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성령님은 우리에게 기도를 시키십니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사람 때문에 고통당하는 교우가 계셨습니다. 그 분이 메일을 보내 오셨습니다.“아주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금요성령집회 때 기도를 하는데 하나님이 저에게 말할 수 없는 죄를 진 그 사람을 용서하라고 하셨습니다. 목사님의 설교를 통해 도무지 용서할 수 없는 자를 용서하라는 말씀을 듣게 하시고 기도하던 중 정말 그 사람이 긍휼해지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의 마음과 다르게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그 사람과 그 가정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펑펑 울며 기도하게 하시더라구요. 그후 제 마음도 평안해지게 되었구요 이후에 남편도 주일설교 중 손양원 목사님 말씀에 대해 설교를 들으며 그 사람에 대해 마음 속에서 놓아지게 되었다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전신갑주인 진리가 교리나 원리가 아니고 임마누엘이신 예수님 그 분임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마귀는 이론이나 교리로 이길 수 없습니다. 마귀는 오직 주 예수님으로 만 이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진리라고 한 것은 신비한 체험으로 예수님을 알려고 하지 말고, 말씀으로 예수님을 알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체험으로 알려고 하면 오히려 예수님을 바로 알지 못하게 됩니다. 체험은 우리를 속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다가 떠나셨다가 하는 분으로 느껴집니다. 이런 믿음은 결코 마귀의 공격을 이겨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진리의 말씀으로 예수님을 알면 예수님은 24시간 365일 언제나 항상 함께 하심이 믿어지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전신갑주입니다. 이리 보아도 예수님, 저리 보아도 예수님입니다. 마귀와 싸우는데 이 보다 강력한 무기는 없습니다. 
 
앞에서 음란 문제로 상담 메일을 주신 전도사님 예를 들었는데, 음란에서 이기신 목사님의 메일도 왔습니다. 
“목사님 저의 삶에 많은 변화가 생겼습니다. 가장 큰 변화는 예수님이 내 안에 오셨고, 예수님이 나의 주인, 나의 생명되셨다는 고백을 계속 하면서 끊어지게 된 죄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음란이었습니다. 교회에서 사역자로 오랫동안 해왔고, 단독 목회자로서 교회의 담임을 맡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음란의 죄는 참 끊기 힘들었습니다. 그러나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면서 "예수님은 내 안에 오셨고, 성령님은 나와 늘 함께하신다."는 믿음을 갖게 되고 계속하여 고백하면서 정말 음란의 죄가 끊어졌습니다. 이것은 저에게 정말 놀라운 변화입니다.

결코 이길 수 없었던 죄라고 생각하여, 다시는 죄를 짓지 않으려고 결심하고 넘어지고 결심하고 넘어지고를 여러 번, 아니 수없이 반복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 믿음의 눈이 뜨이고 나서는 음란이 더 이상 저에게 큰 유혹거리가 되지 않아졌습니다. 예수님이 나와 함께하시는데 어떻게 내가 음란물을 볼 수 있어?라고 생각되면서 그 유혹이 이겨지고 있습니다. 정말 주님이 하셨습니다. 

여러분, 왜 마귀에게 당하고 사신 줄 아셨습니까? 느낌으로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되어지는 일을 보고 하나님의 존재와 사랑을 판단하였기 때문입니다. 

이제 진리의 말씀을 붙으시기 바랍니다. 진리의 말씀이 예수님입니다.
우리가 진리의 말씀으로 예수님을 믿게 되면 마귀가 아무리 강해도 우리에게서 신령한 복을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 우리는 분명히 마귀를 이기고 우리 발 아래 짓밟을 것입니다. 

고전 15: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이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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