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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종교개혁] 오직 그리스도 Solus Christus (고후 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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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그리스도 Solus Christus (고후 5:17) 
 
 
오늘을 종교 개혁자들의 사상을 요약한 다섯 개의 오직(Five Solas) 중에서 ‘오직 그리스도’(Solus Christus)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오직 성경,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구호들과는 달리 오직 그리스도는 무엇을 주장한 내용인지 그 의미가 금방 연상되지 않습니다. 개혁자들이 이 구호를 통해 지키고자 했던 복음의 핵심이 무엇이었을까요?

먼저 ‘오직 그리스도’를 강조해야만 했던 당시의 배경을 봅시다. 로마 가톨릭은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의 은혜가 꼭 필요하지만 인간의 선행도 꼭 필요하다는 세미-펠라기안(semi-pelagian)의 사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인간의 공로가 협력해서 구원이 이루어진다는 것이었지요.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충분한 선을 행하지 못해서 구원 얻을 만큼의 공로를 쌓지 못한다는 문제점이 있습니다. 이것을 로마 가톨릭은 부족한 공로만큼 연단 받아야 하는 옥, 즉 연옥(煉獄) 교리로 해결합니다. 또 로마 가톨릭은 충분한 선행으로 이미 이 땅에서 성자가 되었다고 인정하는 사람들, 즉 소위 ‘성자’들의 잉여 공로를 교황이 보관했다가 나눠줄 수 있다는 속임수로 면죄부를 팔았습니다. 면죄부를 사면 연옥에서 연단 받는 시간을 대폭 줄여줄 수 있다는 꼬임이었지요.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인간의 공로가 필요하다는 교리는 사도들이 전한 복음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사도가 저주를 선언했던 다른 복음이었지요(갈 1:6-9). 바울 사도가 말한 다른 복음이란 수정 보완된 또 다른 복음이라는 말이 아니라 전혀 복음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개혁자들은 로마 가톨릭 교리가 성경의 진리를 떠난 것을 지적하며 ‘오직 그리스도’를 선포했습니다. 구원에 있어서 어떤 다른 공로도 필요치 않으며, ‘구원은 오직 그리스도의 공로만으로 충분하다’는 복음 진리를 강력하게 고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만일 ‘오직 그리스도’를 빼버린다면 나머지 솔라 구호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집니다.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오직 하나님께 영광은 모두가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구원 사역을 보고서 도출해낸 원리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가 빠진 오직 성경도 빈껍데기에 불과합니다. 그리스도가 빠진 개혁, 그리스도가 빠진 부흥, 그리스도가 빠진 기독교는 결코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교회는 구원에 있어서 그리스도를 빼려는 경향이 많으며 그리스도만으로 충분치 않은 것 같은 태도를 취합니다.

소비자 시대에 교인들은 쇼핑하듯 교회를 찾아서 자기 구미에 맞는 복음을 선택적으로 들으려하지요. 이런 필요를 민감하게 감지한 교회들은 예수님을 성도의 손상된 자존감을 회복시켜 주시는 심리치료사로, 역기능적 행동을 바로 잡아주는 모범으로, 행복한 결혼과 가정을 만들기 위한 상담가로 소개했습니다. 개혁자들이 그토록 비판했던 로마 가톨릭조차 그리스도를 적어도 구원과 관련시켜서는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현대 교회는 그분을 구원과 무관한 분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자신의 행복과 욕망을 이뤄주는 마술램프의 거인 같은 존재로 생각하고 있지요.

또한 현대의 교회들은 그리스도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심리학과 상품 판매 전략과 흥미와 재미라는 프로그램들로 구원을 보충하려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어떤 분이시며 그분께서 무엇을 행하셨는지에 대한 딱딱한 가르침은 뒷전으로 물리치고 교인들의 필요를 채워줄 수 있도록 개량된 맞춤형 복음을 고안해낸 탁월한 능력의 성자들(?)의 공로로 초대형 교회들이 등장했습니다. 중소교회들도 세미나 비용만 지불하면 그 공로를 덕 볼 수 있게 되었지요. 이렇게 함으로써 개혁자들이 하나님 중심으로 회복시켜놓은 복음을 다시금 인간 중심으로 되돌려놓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대는 다시금 ‘오직 그리스도’를 강력하게 외쳐야 할 것입니다.

구원을 위해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일의 절정은 십자가로 표현되었습니다. 십자가는 만족(satisfaction), 희생제사(sacrifice), 대리속죄(substitution)라는 3s의 의미로 설명되곤 합니다. 이 의미 속에는 심판 받을 수밖에 없는 인류의 죄 된 상태, 누그러뜨려야만 될 죄에 대한 하나님의 철저한 진노하심, 이를 대신한 그리스도의 피 흘림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인간에 대한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추종하며, 사랑의 하나님에 대해서만 듣기 원하는 세련된 현대인들이 싫어하는 관념들이지요. 하지만 개혁자들이 그토록 고수하기 원했던 복음의 진수들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는 6일 동안 말씀 몇 마디로 간단하게 해결하셨습니다. 반면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문제에서는 “하나님은 용서하실 것이다. 그게 그분의 일이니까!”라는 프랑스 철학자 볼테르의 빈정거림과는 달리 말씀 몇 마디로 간단히 해결하지 않으셨습니다. 먼저 언약을 주시고 장구한 구속사의 세월 동안 그림자와 모형을 통해 언약의 내용을 계시하시다가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되게 하셨지요. 구속을 위해 성자께서는 이 땅까지 낮아지셨으며, 죄인들과 동고동락하셨고, 그들에게 찢기시며 피 흘려 마침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장사된 지 사흘 만에 부활하는 과정을 거치셨습니다.

인간 중심으로 십자가를 보면 죄인을 용서하고 이만큼 사랑하신다는 의미부터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 중심으로 보면 십자가는 먼저 하나님을 만족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사랑한다고 해서 죄를 적당히 눈감아주고 적당히 용서해준다면 공의로운 통치자가 아닙니다. 죄에 합당한 형벌을 내려야만 공의롭지요. 하나님께서는 십자가를 통해 인류의 모든 죄를 심판하심으로 죄는 결단코 용서치 않으시는 당신님의 의로우심을 드러내셨습니다(롬 3:25). 당신님의 변함없으신 사랑 속에서도 공의를 만족시키셨지요. 그리스도께서 선택받은 자들의 죄를 대속하시고 대신 저주 받으심으로써, 죄에 대해서는 신실하게 진노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죄인에게 신실하게 은혜로우실 수 있으셨습니다.

이 모든 구원의 과정에서 인간의 공로는 완전히 배제되어 있습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공로만으로 구원이 완성되었지요.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중보 했던 구약시대 선지자와 제사장과 왕의 사역을 오직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이후에는 더 이상 하나님의 뜻을 계시해 줄 선지자가 필요치 않습니다. 죄인을 대신하여 하나님 앞에 나아가 속죄 제사를 드리고 화목을 이루어줄 제사장도 필요치 않지요. 하나님의 백성을 보호하고 다스려줄 왕 역시 필요치 않습니다. 구원을 위해서 그리스도 외에 어떤 사람이든 프로그램이든 사역이든 뭔가 보충되어야만 한다고 주장한다면 그리스도의 사역은 실패라고 고백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은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후 5:17)고 말합니다.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표현에서 구원이 새로운 창조와 같은 성격을 가졌음을 발견합니다. 창조가 오직 하나님만의 사역이었던 것처럼 새로운 창조도 오직 하나님만의 사역입니다. 창조의 사건에서 인간은 전적으로 수동적이었습니다. 아무것도 한 일이 없었지요. 이처럼 새로운 창도도 인간의 공로는 전적으로 배제됩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이지, 새로운 피조물이기 위해서 그리스도 밖의 다른 공로를 의지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공로 때문에 구원을 받고 또한 그리스도의 공로 때문에 그 구원은 영원히 안전합니다.

구원이 인간의 공로에 조금이라도 의존하고 있다면 그 구원은 대단히 불안해서 복음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구원 받은 이후에도 여전히 죄를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는 우리네 삶을 뻔히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이후에 윤리적으로 향상되어갈 것을 기대했지만 그 기대는 여러 차례 반복된 실패를 통해서 여지없이 깨어졌습니다. 아주 성숙한 신앙에 도달한 것 같다가도 다윗처럼 한 순간에 맥없이 죄에 빠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엄청나게 사악한 죄에 빠졌다 할지라도 구원은 나의 선행과 악행에 따라 흔들리지 않습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공로로 말미암아 구원은 영원히 견고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성도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다면 그는 복음을 잘못 이해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성경 말씀을 잘 지켜 순종하며 죄를 짓지 않아야 구원이 유지된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복음을 오해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성도는 구원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미 구원 받았기에,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미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기에 백성 된 자로서 왕께 순종하려는 것이고 그분의 뜻을 거슬러 죄를 짓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복음을 바르게 이해하였다면 죽을 때까지 나에게서는 어떠한 구원의 근거도 발견할 수 없을 것임을 인정하게 될 것입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공로만을 의지하겠지요. 

성경은 성도를 향해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진리만을 선언하지 않습니다. 이 땅에 있는 동안에는 아직 벗어 버려야 할 “옛 사람”(엡 4:22)과 공존하고 있음도 가르쳐줍니다. 비록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으나 죽는 순간까지도 옛 사람의 모습은 성도의 삶에서 완전히 제거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날마다 부인하고 벗어버려야 더러운 옷 같은 것이지요. 새로운 피조물처럼 잘 지내다가도 때로는 강력하게 옛 사람의 모습을 드러내기도 할 것입니다. 한 동안 낙심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때일수록 구원이 나의 공로가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의 공로라는 진리를 확인하고, 그분께 감사하며 찬양함이 마땅할 것입니다.

복음은 ‘오직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가 해결되어졌다는 사실, 그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속죄하셨다는 사실, 그래서 하나님과 화목 되었으며 그분의 상속자로서 완성된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게 되었다는 사실, 그리스도의 공로로 말미암은 받은 구원이기에 영원히 안전하다는 사실의 선포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단지 그렇게 될 수 있는 가능성만 열어 놓으셨을 뿐이고, 열려진 문으로 걸어 들어가서 구원을 성취해야 하는 것은 인간의 몫이라는 가르침은 전혀 복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구원자로 제시하지 않는 왜곡, 우리 삶에 그리스도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왜곡, 그리스도는 단지 내 삶을 윤택하게 하는 조력자라는 왜곡이 난무하는 우리 시대에도 ‘오직 그리스도’의 진리를 담대하게 선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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