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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네 마음을 확정하라 (시 5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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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마음을 확정하라  (시 57:7)
 

우리가 무슨 일에든지 마음을 확고하게 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공자는 열다섯 살에 배움에 뜻을 세웠다고 말했습니다(子曰, 吾十有五而志于學). 곧 열다섯에 일평생 학문을 하면서 살기로 마음을 정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그 같은 뜻을 세우고 나서 쉼 없이 학문을 연마한 결과, 위대한 성인의 반열에 서게 되었습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공자처럼 학문에 뜻을 세울 이유는 없습니다. 각 사람의 개성과 취향이 다르므로 저마다 자유롭게 인생의 목표를 정하면 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인생을 잘 살려면 젊어서 무엇을 하면서 살겠다고 마음을 확고하게 정하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 수시로 마음이 이랬다저랬다 갈피를 잡지 못한다면 무엇 하나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말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데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우리 마음이 확고하게 정해져야 신앙생활을 잘 해 나갈 수 있지, 우리 마음이 하나님과 세상 사이를 오락가락하면 부실한 신자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시편 57편을 지은 성도는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라고 했습니다. 이 시간 저는 우리 각 사람이 마음을 확정해야 하는 이유와 그로 인한 유익이 무엇인지 말씀해 드림으로 다 함께 은혜를 받으려고 합니다.

첫 번째로,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여 확정되어야 믿음의 승리를 누릴 수 있습니다.

마음이 확정되었다는 것은 마음을 확고하게 정했다는 뜻입니다. 한 곳에 고정되어서 변함이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성도들은 그 마음이 하나님께 고정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로 향한 마음이 변함이 없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세상의 유혹과 시험을 물리치고 하나님을 올바로 섬길 수 있습니다. 

열왕기상 18장에 보면, 우리의 마음을 확정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는 사례가 나옵니다. 그것은 엘리야 선지자가 갈멜산 위에서 바알의 선지자 450인과 대결했던 사건입니다. 그 곳에는 엘리야와 450인의 바알의 선지자들 뿐 아니라 아합 왕과 수많은 백성들도 참관하려고 모였습니다. 아합 왕은 왕비 이세벨과 함께 바알 숭배를 온 나라에 가득하게 만든 장본인입니다. 아합은 바알을 섬기지 않는 백성들을 가혹하게 핍박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던 수많은 사람들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리하여 숨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소수의 백성이 남아 있을 뿐, 대다수의 백성은 바알 숭배에 가담했습니다. 

그 날, 갈멜산에 모여든 백성들도 타의반, 자의반으로 바알을 섬기는 사람들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엘리야 선지자가 볼 때, 그 같은 백성들이 얼마나 한심하게 보였을까요? 그가 백성들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찌니라” 

그러나 백성들은 묵묵부답,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이는 백성들의 마음이 여호와 하나님께로 향하여 확정되지 않은 상태였음을 보여줍니다. 그렇다고 바알을 하나님으로 섬기는 것도 썩 마음이 내키는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들 가운데는 왕의 강요에 의해 바알을 섬기며 절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엘리야 선지자가 백성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바알의 선지자들과 대결을 자청한 것은 그 때까지 아무런 신앙의 체험이 없었던 백성들에게 여호와가 하나님이신 것을 보여 줌으로써 그들의 마음을 여호와 하나님께로 향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를 위해 엘리야 선지자는 아합 왕에게 바알의 선지자들과 대결할 것을 요청한 것입니다.

그 때 엘리야 선지자가 백성들에게 이렇게 제안했습니다. 

“여호와의 선지자는 나만 홀로 남았으나 바알의 선지자는 사백오십 명이로다 그런즉 송아지 둘을 우리에게 가져오게 하고 그들은 송아지 한 마리를 택하여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놓고 불은 붙이지 말며 나도 송아지 한 마리를 잡아 나무 위에 놓고 불은 붙이지 않고 너희는 너희 신의 이름을 부르라 나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니 이에 불로 응답하는 신 그가 하나님이니라”

그러자 백성이 다 대답하기를 “그 말이 옳다”고 했습니다. 

엘리야가 바알의 선지자들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많으니 먼저 한 송아지를 택하여 잡고 너희 신의 이름을 부르라 그러나 불을 놓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그들이 그 받은 송아지를 잡아 제단 위에 얹어놓고 아침부터 낮까지 쉬지 않고 바알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바알이여, 우리에게 응답하소서” “바알이여, 우리에게 응답하소서” 

그러나 바알에게서는 아무 소리도 없고 아무 응답도 없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그 쌓은 단 주위에서 뛰어다니면서 외치는가 하면, 심지어는 바알 숭배의 규례를 따라 피가 흐르기까지 칼과 창으로 자기들의 몸을 상하게 하였습니다. 그렇게 하기를 저녁 소제 드릴 때까지 하였으나 바알에게서는 아무런 응답이 없었습니다.

드디어 엘리야 선지자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엘리야는 백성들을 가까이 오게 한 후에, 이스라엘 지파의 수효를 따라 열 두 돌을 취하여 제단을 쌓았습니다. 그리고는 제단 둘레에 약 15리터를 담을 만한 도랑을 만들었습니다. 그런 다음, 제단 위에 나무를 벌이고 송아지의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놓았습니다. 그리고는 백성들에게 통 넷에 물을 채워다가 번제물과 나무 위에 부으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물을 길어다 붓기를 세 번이나 했습니다. 그러니까 12통의 물을 부은 것입니다. 그러자 물이 제단을 흠뻑 적셨고 흘러 도랑에도 물이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저녁 소제 드릴 때가 되었을 때, 엘리야 선지자가 나아가서 하늘을 향하여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 되심과 내가 주의 종이 됨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날 알게 하옵소서.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으로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저희의 마음으로 돌이키게 하시는 것을 알게 하옵소서.”

그의 기도가 마치자마자 곧바로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았습니다. 이를 본 모든 백성이 땅에 엎드려서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고 외쳤습니다. 엘리야 선지자가 백성들에게 이르기를 “바알의 선지자를 잡되 하나도 도망하지 못하게 하라”고 하니, 곧 잡았습니다. 엘리야가 바알의 선지자들을 기손 시내로 끌고 가서 거기서 처형했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서,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이 하나님께로 확정되지 않았을 때에는 바알을 숭배하고, 엘리야 선지자와 바알의 선지자들이 대결할 때에도 엘리야의 편에 서지 않고 수수방관했습니다. 그러나 하늘에서 여호와의 불이 내려와서 제단을 살랐을 때 백성들은 비로소 여호와가 하나님이신 줄을 알고는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기로 그들의 마음을 확정지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게 백성들의 마음이 확정되자 엘리야 선지자의 지시에 따라서 바알의 선지자들을 붙잡아 처형하는 일에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갈멜산 위에서 여호와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그 크신 능력을 목격한 백성들은 더 이상 여호와 하나님과 바알을 두고 갈등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만 섬기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오늘날도 기독교인 가운데는 하나님을 향하여 마음이 확정되지 않은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지 못하고 세상에 대하여 마음이 나누입니다. 하나님을 섬기지만 온 마음과 힘을 다해서 섬기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세상도 사랑하고 동시에 하나님도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한 편을 사랑하면 다른 편을 미워하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세상을 미워하고,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미워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로 우리 마음을 확정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제단을 사르는 광경을 볼 수 있다면 좋겠지만, 오늘날 하나님께서는 구약시대와 같은 방식으로 역사하지 않으십니다. 신약시대의 성도들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 대하여 알고 믿습니다. 로마서 10장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8)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뇨 말씀이 네게 가까와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9)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10)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우리는 복음서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시며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하셨는지 자세하게 알 수 있으며, 비록 예수님을 직접 만나볼 수는 없지만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데 조금도 어려움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부활을 의심한 도마에게 이르시기를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요 20:29)고 하셨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핍박 가운데서도 믿음을 지켜나가는 이방인 신자들에게 편지하기를 “8)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9)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벧전 1:)고 했습니다.  

이 같은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가 눈으로 예수님을 볼 수 없고, 귀로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없고, 손으로 주님을 만져 볼 수 없지만, 예수님을 믿고 살아가는 데는 조금도 방해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마음을 열고 복음을 듣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만을 버리고 겸손한 심령으로 복음을 대할 때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역사하셔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해 주십니다. 우리가 할 일은 성령의 감화를 거부하지 아니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영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번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영접했으면 천국에 들어갈 때까지 그 믿음이 변치 말아야 합니다. 사도들처럼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행 4:12)고 고백할 수 있어야, 진실한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을 고백하는 성도들은 그 마음이 확정된 사람들로서 어떠한 시험과 역경 가운데서도 변함없이 믿음을 지켜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현대를 일컬어 ‘불확실성의 시대’라고 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이 확정적이지 못하고 유동적입니다. 마치 주가가 시간마다 변동하듯이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시시각각으로 변합니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은 상황의 변화에 발맞추어서 자신을 변화시켜 나갑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다 변해도 변치 말아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마음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우리 마음이 확정되었다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믿음이 요지부동한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변화무쌍한 이 세상과 발맞추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불변하시는 하나님께 우리 마음을 고정시키고 하나님의 말씀이 명하는 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여 확정될 때 우리는 범사에 믿음으로 행함으로써 위대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면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우리 마음이 확정되었을 때 받는 은혜가 무엇일까요?

본문에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확정되었을 때 우리 입에서 노래와 찬송이 저절로 나옵니다.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은 실은 우리 마음속에 가득한 것이 흘러나온 것입니다. 우리 마음속에 의심이 가득하면 입에서 의심의 말이 나옵니다. 우리 마음속에 원망이 가득하면 입에서 원망이 터져 나옵니다. 우리 마음속에 불만이 가득하면 입에서 불평이 터져 나옵니다. 우리 마음속에 감사가 충만하면 입에서도 감사의 말과 찬송이 나옵니다. 

우리가 이제부터 하나님 중심으로 살겠다고 마음을 확정하면,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주장하심으로 노래하고 찬송하게 해 주십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범사가 형통하게 해 주십니다.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인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보십시오. 그들은 주전 605년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을 함락했을 때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 갔습니다. 그들은 바벨론 왕립학교의 생도로 뽑혔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은 왕립학교의 생도들에게 특혜를 내려서 매일 같이 왕이 먹는 음식과 포도주를 하사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과 세 친구는 왕이 내린 음식과 포도주가 실은 바벨론인들이 숭배하는 우상에게 먼저 제물로 바치고 내온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으므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으로서 그 음식과 포도주를 먹고 마실 수가 없었습니다. 

다니엘서 1장 8절-9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8)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와 그의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않게 하기를 환관장에게 구하니 9)하나님이 다니엘로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신지라”

다니엘과 세 친구가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겠다고 마음을 확정하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왕의 진미와 그의 마시는 포도주로 그들을 더럽히지 않도록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다니엘이 환관장에게 가서 선처를 구했더니 시험 삼아 열흘 동안 물과 채소만 주어먹게 했습니다. 열흘 후에, 왕의 진미와 포도주를 먹은 소년들과 비교해 보았더니, 다니엘과 세 친구의 얼굴이 다른 생도들보다 더 나아 보였습니다. 이러므로 감독하는 자가 다니엘과 세 친구에게 왕의 진미와 포도주 대신에 채식을 주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문제를 두려워 말고 담대하게 믿음으로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마음을 감화하셔서 우리의 협조자가 되게 해 주시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환경의 문을 열어주십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살기로 마음을 확정한 성도들에게 범사에 형통한 복을 내려주십니다. 

다니엘서 1장 17절 이하에 이 같이 말씀합니다. 

“17)하나님이 이 네 소년에게 지식을 얻게 하시며 모든 학문과 재주에 명철하게 하신 외에 다니엘은 또 모든 이상과 몽조를 깨달아 알더라 18)왕의 명한바 그들을 불러들일 기한이 찼으므로 환관장이 그들을 데리고 느부갓네살 앞으로 들어갔더니 19)왕이 그들과 말하여 보매 무리 중에 다니엘과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와 같은 자 없으므로 그들로 왕 앞에 모시게 하고 20)왕이 그들에게 모든 일을 묻는 중에 그 지혜와 총명이 온 나라 박수와 술객보다 십 배나 나은 줄을 아니라”

이와 같이 우리가 하나님께 대하여 마음을 확정하면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시므로 걱정 할 것이 없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는 포로로 잡혀온 사람들이지만, 하나님께서 높여주시니 바벨론 왕의 인정을 받는 존귀한 사람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마음의 확정은 기도 응답과 관련해서도 중요합니다. 

야고보서 1장에 이르기를 “5)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6)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7)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8)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생이 아니시므로 식언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반드시 이루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 기도하고 나서 “정말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어주실까?”라고 의심한다면, 그런 사람은 기도 응답을 기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런 사람의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지 못하고 의심하는 사람은 그 마음이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과 같아서 하나님의 응답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하고 의심하는 사람의 기도를 듣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을 두 마음을 품은, 믿음이 없는 사람으로 보십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누릴 수도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 마음이 확정될 때 어떠한 형편에서도 진정한 평강을 누릴 수 있습니다. 헤롯 아그립바가 사도 베드로를 체포하여 옥에 가두었습니다. 헤롯이 사도 베드로를 처형하려고 하는 그 전날 밤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도 베드로는 이미 주님께 대하여 그 마음이 확정되어 있었으므로 죽음이 두렵지 않았습니다. 베드로는 두 군사 틈에서 두 쇠사슬에 매인 상태로 누워 깊은 잠이 들었습니다. 주의 사자가 옥에 찾아와서 그의 옆구리를 쳐서 깨워야 했을 만큼 한없는 평강을 누렸습니다. 더구나 하나님께서는 주의 사자를 보내셔서 베드로를 구출해 내심으로 헤롯의 계획이 물거품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마음이 확정된 성도들은 시험과 핍박을 두려워하지 않을 뿐 아니라, 변함없는 믿음으로 너끈히 이겨냅니다.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붙잡혀 많은 매를 맞고 깊은 옥에 던져졌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그 고통스러운 중에도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아니하고 밤중에 일어나 감옥의 죄수들이 다 듣도록 큰소리로 기도하고 찬미했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두 사람의 확정된 마음을 보시고 역사하셨습니다. 홀연히 지진이 나서 옥문이 다 열리고 죄수들의 착고가 다 끌러졌고, 이로 인해 간수와 그의 전 가족이 주님을 영접하는 구원의 역사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우리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여 확정되면 어떠한 환경과 처지에서도 자족하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돈의 유혹에 넘어가서 자나 깨나 돈을 벌기 위해서 애쓰고 힘씁니다. 기독교인 가운데도 물질 때문에 신앙생활에 힘쓰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신자가 돈을 사랑하게 되면 믿음을 제대로 지킬 수가 없습니다. 돈의 유혹을 물리치려면 먼저 우리 마음이 하나님을 향하여 확정되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돈을 사랑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이 확정되었다는 것은 우리 마음이 하나님께 고정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 중심 곧 신본주의로 살겠다는 마음의 각오가 확고하게 된 것을 가리킵니다. 그렇게 우리 마음이 확정되면 어떤 형편 가운데서도 노래할 수 있고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습니다. 주님을 우리 마음에 모시고 살아갈 때 초막이나 궁궐이나 그 어디서든지 천국을 맛보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오늘날 마귀는 우리 마음이 하나님께로 향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온갖 수단방법을 다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심하게 만들기도 하고, 돈의 위력을 보여줌으로 돈의 노예가 되게 만들려고 합니다. 육신의 쾌락을 추구하느라 하나님을 망각하게 만듭니다. 우리 마음을 교만하게 만들어서 은혜로부터 멀어지게 만들려고 합니다. 

어찌 보면, 오늘날 우리는 과거 우리의 선배들보다 한층 더 영적으로 불리한 환경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욱 정신을 차리고 많은 사람들이 인본주의로 살아갈지라도 철저한 신본주의로 살기로 마음을 정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불의한 삶을 살아갈지라도 우리는 진실하게 살기로 마음을 정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일을 위해 살아갈지라도 우리는 주님의 일을 위해 살아가기로 마음을 정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 이 구절이 성도님들의 진실한 믿음이 고백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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