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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착하고 신실한 종 (마 25: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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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하고 신실한 종 (마 25:14-30)  

 
마태 25장에는 천국에 관한 비유의 말씀이 세 가지 나옵니다. 

즉 ① 마25:1-13 열 처녀 비유 ② 마25:14-30 달란트 비유 ③ 마 25:31-46 양과 염소의 비유가 나옵니다. 

이 비유들의 강조점은 각각 다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달란트 비유는 한 달란트 받은 종이 그 한 달란트를 땅에 묻어둔 사실을 들어 성도들의 섬김의 삶을 돌아보게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시간, 재능, 물질, 인격을 가지고 너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느냐?’ 
‘너에게 준 달란트로 하나님과 이웃을 위해 어떤 열매를 맺고 있느냐?’를 묻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을 차분히 읽어보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말씀 몇 구절이 있습니다. 

① ‘각각 그 재능대로’ ② ‘결산할 새’ ③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④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들을 중심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께서 우리 앞에서 이 말씀을 하시고 계시다는 생각을 가지고 경청하길 바랍니다.

1. ‘각각 그 재능대로’

15절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우리는 먼저, 이 말씀에서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각각 그 재능대로’ 능력에 따라서(each according to his capacity) 다른 몫을 주었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인정해야 합니다. 

여기서 ‘능력’이란 각 사람이 가진 성격(외향적인가, 내향적인가, 다혈질인가, 담즙질인가), 지능(암기능력이 좋은가, 수리능력이 좋은가, 이해능력이 좋은가), 성별(남성인가, 여성인가) 건강(건강체로 태어났는가, 약체로 태어났는가)등 타고난 인격의 바탕을 말합니다. 
그 바탕에 따라서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금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얼굴모양이 다르듯이 달란트도 각각 다르게 주셨습니다. 
이것을 우리가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고통스럽습니다. 
원망스럽습니다. 
내 자신이 미워지고, 하나님이 미워지고, 이웃이 미워집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원망합니다. 

“왜 나는 이 모양 이 꼴로 태어났는가? 왜 나에게는 다른 사람처럼 재물을, 지위를, 직업을, 지능을, 미모를 주시지 않았는가? 하나님은 참 불공평하시다!” 
경쟁사회일수록 이 질문은 심각해질 수 있습니다.

바울은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에게 롬 9:20-21에서 다음과 같이 대답합니다.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

어느 권사님이 저한테 남편과 아들이 대화한 내용을 말씀해주셨습니다. 
아들이 아버지한테 친구들은 얼마짜리 신발을 신고 다니고, 용돈은 얼마나 받고, 하루에 노는 시간은 얼마고… 부모를 닮아 얼마나 멋지고....... 
그 얘기를 한참 듣던 아버지가 아들에게 하는 말이 “그럼 네가 아버지해라”그러더랍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저 사람은 왜 저렇게 만드시고, 나는 왜 이 모양 이 꼴로 만드셨습니까?” 라고 원망한다면 “네가 하나님 해라”고 말씀하실지 모릅니다. 

말이 안 되는 얘기지요?
그러므로 “나는 왜 이렇게 태어났습니까?” 라는 질문은 우리 인간이 할 질문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얼마를 받았느냐?’ 가 아니라 ‘내가 받은 것으로 얼마를 남겼느냐?’입니다. 
‘내 능력이 얼마나 되느냐?’ 가 아니라 ‘내가 가진 능력으로 얼마를 남겼느냐?’입니다. 
하나님이 평가하시는 기준은 ‘네가 최선을 다했느냐?’ 라는 것입니다.

자녀교육도 이렇게 해야 됩니다. 
“엄마는 네가 1등이 되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네가 최선을 다하길 바란다. 네 스스로가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할 수 있도록 열심히 해봐. 엄마는 네가 최선을 다했다면 비록 꼴찌를 했더라도 기쁘단다. 하나님도 기뻐하실 거야.”

지체 부자유아동 운동회를 가보신 적이 있습니까? 
그 운동장에서는 달리기에 1등을 했다는 것이 의미가 없습니다. 
출발신호를 하면 어떤 아이는 지능이 낮아 가만히 서 있고, 어떤 아이는 마음대로 자기 몸을 가누질 못해서 한번 넘어지면 일어설 줄 모르고, 어떤 아이는 응원하는 엄마한테 뛰어가고, 어떤 아이는 너무 긴장하여 바지에 오줌을 누고, 어떤 아이는 골인지점과 상관없이 엉뚱한 데로 뛰어가고… 

그곳에 있는 어머니들은 1등에는 관심도 없습니다. 
단지 내 아이가 뛸 수 있다는 그것만으로도 눈물을 펑펑 쏟고, 골인지점까지 달려온 그 아이를 들쳐 안고 ‘장하다!’, ‘네가 1등이라’고 환호성을 지릅니다. 
‘네가 1등이다!’
그런 모임에 가보면 우리가 자식에 대하여 얼마나 과도한 욕심을 내는지,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감사의 조건들이 있는지........ 느끼는 점이 많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는 나의 길(my way)이 중요합니다. 
곁눈질 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 얼마를 가졌든, 다른 사람이 어떻게 살든,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인생 나그네 길을 다 갔을 때 우리를 기다리실 분은 주님밖에 없습니다. 
그 주님이 우리를 들쳐 안고 ‘장하다’ ‘네가 1등이다’라고 하면 되는 것입니다. 

2. ‘결산할 새’ 

19절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그들과 결산할 새” 
삶을 계산한다는 말씀입니다. 
삶을 평가한다는 말씀입니다. 
삶을 심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나는 것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세상 삶이 다인 것처럼 쾌락을 탐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살이에는 하나님의 평가가 있습니다. 

동물도 죽으면 가죽을 남긴다는데 하물며 인생에 평가가 없을 리 있겠습니까? 
히 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그런데 인생 평가는 한번 떨어지면 재수할 수 있는 그런 대학입학시험이 아닙니다. 
그날 우리가 받아야 할 평가는 뭔가 부족하면 보충하고, 뭔가 잘못되었으면, 돌이킬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심판이 아닙니다. 
두 번도 아닌 단 한번만으로 끝장이 나는 심판입니다. 
그런 점에서 ‘결산할 새’라는 말씀을 긴장하고 들어야 합니다.

오래전에 우리교회에 전라도 내변산교회(20여 가구가 모여 사는 벽촌마을교회) 전도사님이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겨울이 닥쳐오는데 교회지붕을 덮지 못하여 모금하러 오셨습니다. 
그 행색이 참 초라했습니다. 
옷은 후줄근한 것이었고, 구두의 뒤축은 닳아내려 앉았고, 다리마저 절름거렸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저의 신앙고백입니다.’ 하고 부른 찬송이 저에게 큰 감동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주님 내게 오시면’이란 찬송입니다. 

그때 저는 그 찬송을 처음 들었습니다.

1. 세상 부귀 안일함과 세상 근심하다가 주님 나를 찾으시면 어떻게 만날까 

2. 세상일에 얽매여서 세상일만 하다가 주님 나를 부르시면 어떻게 만날까 

3. 지금까지 내가 한 일 주님께서 보시고 훗날에 나를 보고 무어라 하실까 

주님 내게 오시면 나 어찌 대할까 멀리 방황하던 나 불쌍한 이 죄인
이제 주 만 생각하며 세상근심 버리고 두 손 들고 눈물로써 주만 따라 가오리다

지금까지 내가 한 일 주님께서 보시고 훗날에 나를 보고 무어라 하실까? 
우리 마음속에 깊이 와 닿는 말씀이 아닙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의 결산이 있다는 사실을 한순간도 잊지 말고 살아갑시다!

3.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21절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하고” 
23절에도 똑같은 칭찬의 말씀이 나옵니다. 
저는 이 구절을 읽을 때마다 생각되어지는 것이 있습니다. 
주님만을 바라보고 충성했던 종들은 주님이 오시길 얼마나 기다렸을까요? 
또 게으르고 딴전피우고 주님을 까맣게 잊고 살았던 종들은 주님이 오신다는 소리에 얼마나 화들짝 놀랐을까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남의 얘기가 아닙니다. 
바로 나의 얘기입니다. 
바로 우리의 얘기입니다. 
다른 종들은 주인이 떠나자마자 바로 이때가 즐길 때라고 흐드러지게 놀았지만 충성스러운 종들은 남들이 바보라고 하든 말든, 무슨 재미로 사느냐고 하든 말든, 어리석다고 하든 말든, 눈 딱 감고 최선을 다했습니다.

창 6-7장에는 노아의 홍수이야기가 나옵니다. 
노아가 600세 때에 하나님의 홍수 심판이 있었는데 노아가 하나님으로부터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겠다는 경고를 들은 후 홍수 심판이 있기까지는 대략 100년 정도 기간이 있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100년 동안 노아는 맑은 하늘 아래서 비올 때 필요한 방주를 짓고 있었습니다. 
그는 아마 별의별 소리를 다 들었을 것입니다. 
‘늙으려면 곱게 늙어라, 노망도 유분수지, 너만 하나님 믿느냐? 왜 그렇게 유별을 떠느냐?’
그러나 심판받는 그날에 충성스러웠던 노아만 구원받습니다.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적은 일’이란 드러내 놓을만한 일이 못되고, 모든 사람이 주목할 만한 일이 아닌, 문자 그대로 적은 일을 말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맡겨주신 일이기에 순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접시돌리기’란 ‘아나놀 프랑스’의 단편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곡마단의 접시돌리기가 늙어서 수도원에 신세를 지게 됩니다. 
접시돌리기는 하나님께 뭔가 드리고 싶었지만 가진 것이 없었습니다. 
그는 수도원장에게 자기가 가진 유일한 재주인 접시돌리기를 해서 감사와 찬양을 하나님께 돌리겠다고 호소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하고 맙니다. 
신성한 제단 앞에서 접시돌리기가 뭐냐고… 

어느 날 그는 몰래 성당에 들어와 제단 앞에서 정성껏 접시돌리기를 합니다. 
그런데 수도원장이 봤습니다. 
수도원장이 접시돌리기의 무례한 짓을 보고 꾸짖으려고 했을 때, 제단 십자가 위의 예수님의 얼굴이 생전 처음으로 빙그레 웃으시면서 접시돌리기를 바라보고 계셨던 것입니다.
‘빙그레 웃으시는 주님의 얼굴!’
주님께서 맡겨주신 적은 일들을 정말 주님만을 생각하면서 한 마음을 드릴 때, 주님은 우리를 보고 빙그레 웃으실 줄 믿습니다.

주님 앞에 자랑할 것이 있는 종들은 얼마나 떳떳합니까! 

보소서!(20절, 22절) 
‘보십시오(behold!)’ 이렇게 자랑스럽게 내놓습니다. 
얼마나 자랑스럽고 떳떳한 말입니까? 
이 말 속에는 주님을 생각하며 흘렸던 땀방울, 주님을 위해 받았던 괴로운 순간들, 주님을 위해 흘렸던 눈물이 배어있습니다. 
이 말속에는 주님만이 아시는 사랑이 묻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주님께 내놓을 자랑거리를 만드십시오! 
주님께 보여드릴 삶의 성적표를 만드십시오!

4.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29절의 말씀입니다. 
뭔가 이상하지 않아요?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신데 없는 자에게 더 주어야지 왜 있는 자에게 더 줍니까? 
그리고 없는 자에게서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습니까? 
선뜩 이해가 되지 않지요? 
그러나 여기에 삶의 진실이 있습니다. 
아무리 적은 것이라고 하더라도 자기 가진 것을 소중히 여기고, 만족해하고, 감사하면, 더 큰 축복을 받아 풍족하게 됩니다. 
반대로 아무리 큰 것을 가졌다하더라도 가치 없게 여기고, 늘 부족감에 사로잡히고, 불만족스럽게 살면, 그 있는 것까지 없어지고 만다는 것입니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이 왜 그것을 땅에 묻어놓았을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빈곤의식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나는 남보다 적게 가졌느냐?’ 이겁니다. 
한 달란트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 가지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그가 주님으로부터 책망 받은 이유는, 그가 허랑방탕하여 전 재산을 탕진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가 실수를 하여 엄청난 빚을 졌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는 다만 스스로 별 볼일 없다고 생각하여 가진 것을 썩혔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지금 가진 것들을 소중하게 여기십시오. 
여러분의 교회 소중히 여기십시오. 
여러분의 재물-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재능-뛰어나고 평범함에 관계없이, 건강-강하고 약함에 관계없이 소중히 여기십시오. 
그리고 감사하십시오! 
고마워하십시오! 
사랑으로 가꾸십시오! 
이것이 풍족하게 되는 비결입니다. 

오늘 우리교회는 내년도를 위한 사역박람회를 합니다. 
예전에는 교회에서 일방적으로 교우들에게 일을 맡겼습니다.
그리고 순종하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다릅니다. 

교우들 자신의 처지, 관심, 재능, 경험, 환경 등을 고려하여 최고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잘 섬길 사역을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교회사역이 우선순위에서 밀리면 안 됩니다.
시간이 남아서 봉사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힘이 남아서 봉사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돈이 남아서 봉사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사역박람회의 유인물에 보면 많은 일들이 소개되었습니다.
기도함으로 꼭 한 사역 이상씩을 선택하십시오.
그래서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다”는 주님의 칭찬을 받게 되길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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