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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종교개혁] 요셉에게 길을 묻다 (창 45: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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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에게 길을 묻다 (창 45:1-10)
 

오늘은 10월 31일, 이 자리에 앉아있는 우리 크리스천들에게 대단히 의미 있는 날입니다. 1517년 10월 31일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가 당시 가톨릭 교권주의의 상징이었던 비텐베르크 성당에 죽음을 무릅쓰고 95개 조항의 항의문을 내걸었습니다. 그는 동시에 민중들을 향해 세 가지 슬로건을 내걸었습니다. 

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으로(Sola Scriptura), ② 오직 은혜로(Sola Gratia), ③ 오직 믿음으로(Sola Fide). 

이 세 가지 슬로건으로 루터는 당시 캄캄한 중세암흑시대, 도대체 무엇이 진리이며,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 심령들을 향해 선명한 길을 제시했습니다. 

나는 언젠가 이 루터를 일대일로 만나고 싶어 비텐베르크를 향했습니다. 그가 강의한 대학의 교실, 그가 살았던 집, 앉았던 의자, 그가 그렇게 증오했던 면죄부 헌금함, 95개조의 항의문을 내걸었던 성당대문, 그가 낙심했을 때 상복까지 입고 나와 남편을 다시 일어서게 했던 아내 카타리나 폰 보라(Katharina von Bora)를 만났습니다. 

마지막 그가 일평생 설교했던 교회의 높다란 설교단을 바라보며 이렇게 기도했던 것을 지금도 잊지 못합니다. “캄캄한 암흑시대 가야할 길을 알지 못한 채 방황하는 중생들에게 성경, 은혜, 믿음을 제시하여 저들로 하여금 가야할 길을 제시했던 루터의 용기, 희생,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다 걸기(All-in)’ 정신을 나에게도 주십시오.” 

중세 가톨릭을 깜짝 놀라게 했던 바로 그 사건이 창세기 45장에서도 터집니다. 요셉스토리의 클라이맥스는 바로 오늘 본문입니다. 그의 형제들이 놀라 할 말을 잃고 있습니다. 요셉의 울음소리가 온 궁중에 울려 퍼지고 있습니다. 여기 야곱의 아들들이 등장합니다. 이 아들들은 구약시대의 유일한 교회였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하나님의 교회는 야곱공동체 하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중세시대도 마찬가지로 교회는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야곱공동체와 중세교회는 매우 유사합니다. 뿐만 아니라 야곱공동체와 중세교회는 더 중요한 부분에 있어서 유사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 저들 두 공동체는 자신들의 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저들은 사랑하는 동생을 애굽에 팔아넘기고선 거짓말로 아버지를 감쪽같이 속였습니다. 그리고 20년이란 긴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 긴 세월이 죄 문제를 해결했습니까? 결코 해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창 42:21-22). 그러니 마음에 평안도 없습니다. 어떤 일만 생기면 그때 그 일을 떠올립니다. 중세 가톨릭은 어떠했습니까?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당시 교회는 고행, 선행, 면죄부를 죄 문제 해결 방법으로 제시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저들의 죄 문제를 해결해 주었습니까? 

둘째, 저들 두 공동체는 양식이 없어 굶주림상태에 처해 있었습니다. 야곱과 그의 아들들은 지금 극한 굶주림의 상태에 놓여 있었습니다(창 43:1-2). 중세시대는 어떠했습니까? 저들에게 영의 양식이 있었습니까? 영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은 사제 등 극소수의 사람들 외에는 펼칠 수 없는 책으로 닫아두었습니다. 미사까지 라틴어로 드리도록 했으니, 무슨 뜻인지도 모른 채 예배에 참석했던 것입니다.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암 8:11). 

셋째, 저들 두 공동체는 가야할 길을 몰라 방황하고 있었습니다. 창세기 42장부터 44장까지 소개되는 저들의 행동을 보면 모두가 어디로 가며,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방황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무슨 일이 생기면 서로 원망하고, 책임을 전가하는 행동을 보이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우왕좌왕하기까지 합니다(창 44:13). 중세시대를 왜 암흑시대라고 표현하는 것일까요? 사람들이 갈 길을 몰라 방황했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양식이 없어 굶주림에 허덕이며, 길을 찾지 못해 방황하는 야곱공동체에게 어느 날 뜻밖의 사건이 터집니다. 그야말로 청천벽력(靑天霹靂)같은 울음소리가 귀청을 때렸습니다. 요셉의 울음소리였습니다. 

울음의 주인공 요셉의 입에서 어떤 말이 터져 나옵니까?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창 45:8). 이 요셉의 외침 속에서 발견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① 오직 하나님, 아니 성경으로(Sola Scriptura)입니다. 입만 열었다하면 하나님입니다. 칠년풍년에 곡식을 쌓아둔 것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입니다. 흉년이 5년 동안 더 진행될 것이라는 것도 하나님 말씀에 바탕을 둔 외침입니다. ② 오직 은혜로(Sola Gratia)입니다. ③ 오직 믿음으로(Sola Fide)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신다는 믿음입니다. 

요셉은 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양식에 굶주리며 방황하던 야곱공동체에게 이 세 가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지를 세 가지로 선명하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으로(Sola Scriptura), ② 오직 은혜로(Sola Gratia), ③ 오직 믿음으로(Sola Fide). 그렇다면 이 세 가지 슬로건은 루터가 제시한 것이 아니라 주전(主前) 2,000년경 요셉이 이미 제시한 슬로건임에 틀림없습니다. 이 슬로건이 야곱아들들에게만 필요할 것일까요? 중세 그 암흑시대에만 필요한 것일까요? 오늘 현대인들, 아니 우리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프로테스탄트(Protestant), 즉 개신교회는 세상 앞에 이 세 가지를 선포해야 합니다. 아니 선포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살도록 힘써야 합니다. 이 요셉이야말로 당시 유일한 교회공동체였던 형들로부터 본의 아니게 찢겨져 떨어져 나왔으나 결국은 이렇게 승리하여 자기를 찢어 쫓아낸 형들에게 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으로(Sola Scriptura), ② 오직 은혜로(Sola Gratia,) ③ 오직 믿음으로(Sola Fide)의 삶을 살았고 그렇게 선포하는 루터의 원조가 되었습니다. 

오늘 종교개혁주일을 맞이하여 다시 한 번 프로테스탄트 태동의 현장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작은 예수로 산 요셉은 큰 울림이 있었습니다. 그 많은 형제들이 다 놀라워할 정도의 깊은 감동을 주었습니다. 오늘 현대인들은 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양식이 없어 굶주려있고, 가야할 길을 몰라 방황하고 있습니다. 이런 자들에게 죄 문제를 해결하는 길을 제시해야 합니다. 구원을 위하여 노력하고 애쓰는 자들에게 은혜라는 놀라운 진리를 알려줘야 합니다. 믿음으로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이 귀한 복을 알려줘야 합니다. 요셉이 야곱공동체에 길을 제시했듯이 우리 또한 세상을 향해 길을 제시하는 자들이 다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옥성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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