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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막대기 예언의 영적의미 (겔 37: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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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대기 예언의 영적의미 (겔 37:15-23) 


에스겔서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에스겔 37장만큼은 잘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에스겔 37장 전반부가 골짜기의 마른 뼈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골짜기에서 마른 뼈들이 생기를 받아 큰 군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후반부에 나오는 막대기 예언은 잘 알려지지 않습니다. 에스겔 37장 후반의 막대기 예언은 에스겔서의 38장 이후의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서 중요한 열쇠가 됩니다. 즉 막대기 예언을 어떻게 이해하고, 해석하는지에 따라 38장 이하의 내용에 대한 이해와 적용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먼저 막대기 예언의 내용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겠습니다. 본문 15절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이 말씀은 에스겔 개인이 연구한 말씀도 아니고, 묵상해서 생각해 낸 말씀도 아닙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증거하라고 에스겔에게 맡기신 신탁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에스겔에게 막대기 두 개를 가져오라고 했습니다. 막대기 하나에는 유다와 그 짝 이스라엘 자손이라 쓰고, 또 하나의 막대기에는 에브라임의 막대기 곧 요셉과 그 짝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쓰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두 막대기를 하나로 붙여 하나의 막대기로 만들라고 했습니다. 이 내용을 어떻게 이해하는지에 따라 기독교 진영을 나눌 만큼 큰 차이를 보이는 중요한 내용입니다. 


Ⅰ. 표면적인 의미 

다윗 왕이 즉위한 때는 B. C 1010년입니다. 다윗이 40년 동안 왕 노릇하다가 죽고, 그의 아들 솔로몬이 왕이 된 때가 B. C 970년입니다. 그리고 솔로몬이 죽고, 아들 르호보암이 왕이 된 때가 B. C 930년입니다. 그런데 르호보암이 왕은 어른들의 말을 듣지 않아 나라를 두 개로 만들었습니다. 남 왕국은 유다 지파를 중심으로 해서 베냐민 자파와 레위 지파가 약간 가담하여 예루살렘을 수도로 형성되었습니다. 다윗의 후손들이 왕이 된 것입니다. “유다와 그 짝 이스라엘 자손이라” 즉 이 말씀은 유다와 유다 지파에 동조한 이스라엘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바로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한 남 왕국 유다입니다. 
 
북 왕국은 요셉의 아들 가운데 에브라임이 주축이 되었습니다. 요셉은 애굽에서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낳았습니다. 요셉은 야곱과 그 아들들이 생존하는데 큰 공헌을 했기에 하나님이 열두 지파 가운데 두 지파의 몫을 주었습니다. 레위 지파는 빠지고 므낫세와 에브라임이 각각 하나의 지파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이 두 사람 중 에브라임이 더 뛰어났습니다.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 가운데 열 지파를 취하여 사마리아를 수도로 하여 북 왕국을 형성했습니다. 여로보암을 첫 번째 왕으로 하여 사악한 왕들이 북 왕국을 다스렸습니다. 그래서 북 왕국을 에브라임의 막대기라고 하는 것입니다. “요셉과 그 짝 이스라엘의 온 족속이라” 에브라임은 요셉의 아들이기 때문입니다. 
 
북 왕국은 이스라엘 열 지파를 취해 사마리아를 수도로 삼아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습니다. 남 왕국은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를 중심으로 하여 유다를 건설했습니다. 이스라엘은 남, 북으로 갈라지게 된 것입니다. 남 왕국과 북 왕국 두 나라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위반했습니다. 

북 왕국은 B. C 721년에 앗수르에 의해 멸망했습니다. 그 당시 앗수르는 멜팅팟(Melting Pot)이라고 불렸습니다. 이 말은 뭐든지 집어넣어 녹여버리는 냄비라는 뜻입니다. 북 왕국 사람들은 앗수르에 포로가 되어 끌려가 앗수르 사람들과 섞여 살면서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오래 살다 보니까 앗수르 사람과 결혼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앗수르 사람들을 데려다가 사마리아에 살게 했습니다. 

신약 시대에는 그들을 사마리아인이라고 불렀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유대인이 아닌 것입니다. 남 왕국 유다도 드문드문 좋은 왕이 있었지만,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어기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유다는 B. C. 587년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에게 포로 되어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에스겔의 예언을 표면적으로 보면 하나님은 때가 되면 포로가 된 두 나라를 열국에서 취해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게 하여서 한 나라를 이루어 다시는 두 나라로 나뉘지 않게 하겠고, 한 임금 다윗이 영영한 왕이 되어서 다스릴 것이며, 한 나라를 이룬 통일 이스라엘은 다시는 우상숭배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Ⅱ. 표면적인 이해의 문제점 

만약 이 예언이 역사적으로 실현되었다고 한다면 피상적인 이해를 해도 문제는 없습니다. 그런데 이 예언을 표면적으로만 이해할 수 없는 세 가지 중요한 문제점이 있습니다. 
 
첫째, 북 왕국 이스라엘은 앗수르로 옮겨가서 유대인으로서 정체성을 상실했고, 북 왕국이 포로귀환 했다는 기록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북 왕국은 포로에서 귀환한 적이 없습니다. B. C. 721년에 앗수르에 끌려가 민족의 정체성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둘째, 남 왕국 유다도 B. C. 539년에 고레스 칙령으로 예루살렘에 귀환하기는 했으나, 통일된 이스라엘 국가를 세운 것은 아닙니다. 에스라 2장 64절에 보면 고레스 칙령으로 돌아온 유대인의 수가 사만 이천 삼백육십 명이라고 했는데, 유다 지파의 자손(스 2:1)입니다. 포로에서 귀환한 유다 백성도 통일 이스라엘 왕국을 이룬 것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셋째, 포로에서 귀환한 유다 백성에게도 한 임금 다윗이 영영히 왕 노릇 했던 것도 아니고, 우상숭배에서 완전히 해방된 것도 아닙니다. 유다 백성은 포로에서 귀환한 후에도 속국으로 지냈습니다. 페르시아의 속국이었고, 페르시아가 망하자 알렉산더 대왕의 속국이었습니다. 또 셀류시드 왕조의 지배를 받았고, 그 후에는 로마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유다의 왕이 있어도 속국의 왕이었지 독립된 국가의 왕이 아니었습니다. 더구나 하스모니안 왕조 때 혹은 헤롯 왕조 때에 왕이 있었다고 해도 그들은 다윗의 후손들이 아니었습니다. 이두매(에서) 후손이었습니다. 야곱의 후손도 아닌 에서의 후손이 왕 노릇 하고 있었던 것이지 다윗 임금이 왕이 되어 영영히 왕 노릇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에스겔 후반부의 막대기 예언은 결코 표면적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우리는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Ⅲ. 문제점의 해결방식 
  
성경의 영감성을 믿지 않는 불신자들은 막대기 예언을 거짓된 예언이며, 두드러진 예라고 말합니다. 거짓말이라고 공격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비판은 에스겔의 예언을 표면적으로 이해하고, 피상적으로 공격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신앙인들은 이 예언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습니까? 신앙인들 가운데에도 두 줄기의 이해가 있습니다. 

먼저, 20세기를 지배했던 근본주의(fundamentalism)자들은 세대주의 종말론(dispensational)을 취하며, 막대기 예언을 아직 실현되지 않은 미래의 사건이라고 해석합니다. 북 왕국 이스라엘과 남 왕국 유다가 통일 이스라엘을 과거에 이룬 적이 없었기 때문에 앞으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해석입니다. 미래에 통일 왕국이 되어 다윗의 후손이 왕이 되고, 예루살렘에 성전이 지어질 것이고, 피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려 구약 시대처럼 하나님을 섬기게 되는 날이 올 것이라는 말입니다. 성경을 미래적으로, 특별히 에스겔 37장을 미래적, 여자적으로 해석하려는 방식입니다. 
 
세대주의 자들은 1948년에 시오니즘 운동의 결과로 가나안 땅에 현대 이스라엘 국가가 탄생한 것을 보고 흥분했습니다. 그들은 이 예언이 성취되는 시발점이라 믿고 좋아했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에게 현대 이스라엘 국가는 아직도 우상숭배에서 해방되지 못하고, 다윗 임금이 왕이 되지 못했는지 물어보면, 이 예언의 실현은 현재 진행 중이고,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20세기에 수많은 부흥사가 이런 내용의 설교를 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책이 이런 내용을 기록하여 판매했습니다. 

대한민국은 세대주의의 영향력이 너무나 컸습니다. 1948년도에 이스라엘이 건국되자 예수님이 한 세대만 지나면 온다고 했습니다. 1988년도에 예수님이 오신다고 했다가 안 오시자 날짜를 바꿔서 1992년도 오신다고 했습니다. 하얀 옷 입고 산에 올라가 예수님을 기다렸습니다. 이것을 지켜본 불교인들은 광신자 집단이라고 말을 했습니다. 이렇게 올바른 신학을 갖지 않으면 광신도가 될 가능성이 큰 것입니다. 이런 근본주의의 세대주의 종말론은 성경과 맞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해석이 아닙니다. 그러나 아직 한국에는 세대주의 종말론 사상이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것은 가나안 땅에 현대 이스라엘이 세워졌다고 할지라도 통일 이스라엘로 볼 수는 없습니다. 두 막대기가 붙어서 통일된 것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더욱 예루살렘에 성전을 짓는다고 해도 그것을 성전이라고 부를 수 없습니다. 참된 성전은 예수 그리스도의 육신인 것입니다. 참된 성전은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성전을 헐라. 그러면 삼 일 만에 다시 세우리라.”는 말씀은 자신의 육신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가 되고,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교회와 그리스도가 참된 성전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가서 물리적이고 가시적인 성전을 짓는다고 해도 그것을 성전이라고 부르지 않을 것입니다. 더욱 에스겔의 내용은 통일된 이스라엘은 통일되면서 즉시 우상숭배가 제하여지고, 다윗이 목자가 되어서 영원히 왕 노릇 한다는 것이지 시간의 간격을 두고 점진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세대주의는 성경에 무지한, 무식한 보수주의라 할 수 있습니다. 한국 기독교가 세대주의에서 벗어나려면 성도들도 성경을 연구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에스겔 37장의 막대기 예언을 어떻게 이해하는 것이 올바로 이해하는 것입니까? 
 
첫째, 막대기 예언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에스겔 37장 24~28절의 내용을 고려해서 이해해야 합니다. 이 구절은 통일된 이스라엘 왕국의 특징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특징을 살펴보면, 통일된 이스라엘 왕국은 하나님의 종 다윗이 영원히 왕 노릇 하는 나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B. C. 에 죽었는데 영영히 왕 노릇을 하겠습니까? 여기서 다윗은 문자 그대로의 다윗의 아니며, 환생해서 온다는 말도 아닙니다. 다윗의 후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통일된 이스라엘 왕국은 예수 그리스도가 영영히 왕 노릇 하는 나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통일된 이스라엘 왕국은 다시는 가증한 물건과 우상을 숭배하지 않고,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 통일된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화평의 언약을 맺어 하나님과 화목하고, 견고하여 번성할 것입니다. 

마지막 특징은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너희는 구원받은 백성이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통일된 이스라엘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원한 목자로 삼고, 구원받은 백성, 즉 교회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확실한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둘째, 막대기 예언은 신약성서를 고려해서 이해해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통일된 이스라엘을 가리켜서 “온 이스라엘”(롬 11:26) 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세대주의 자들은 과거, 현재, 미래의 이스라엘이 모두 구원받는다고 가르칩니다. 이것은 잘못된 해석입니다. ‘온 이스라엘’은 통일된 이스라엘이고, 이방인 중에 하나님의 택한 자, 유대인 중의 택한 자가 충만 수에 이르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바울은 ‘표면적인 유대인은 유대인이 아니요, 이면적인 유대인이 유대인이라. 하나님의 교회가 참 이스라엘이라.’고 말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초대교회의 복음 전도와 선교를 “무너진 다윗의 장막을 다시 짓는 것”(행 15:16)이라고 했습니다. 퇴락한 성전을 다시 짓는 것은 복음 전도를 통해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성장시켜 나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모리아 산에 다시 성전을 건축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요한계시록 7장에 보면 이스라엘 열두 지파에서 인을 맞은 14만 4천 명 이야기가 나옵니다. 인 맞은 14만 4천 명은 각 나라와 족속과 방언에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을 상징적으로 의미하는 숫자입니다. 그러면 가나안 땅으로 돌아온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가나안 땅은 “더 낳은 본향 곧 하늘에 있는 것”(히 10:16)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겠다고 했지만, 아브라함은 한 평도 소유하지 못했습니다. 아내가 묻힌 묘지 밖에 소유한 것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절망하고 죽은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바란 것은 하늘에 있는 가나안 땅 ‘천국’을 바랐다고 히브리서 기자가 해석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론 

 막대기 예언은 하나님이 전 세계에 흩어진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불러 모아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원한 목자로 삼고, 하나님이 거하시고, 영영한 천국을 소유할 백성 즉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예언입니다. 여러분, 성경은 한 하나님이 한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한 나라를 완성해 나가는 이야기입니다. 이 세상에는 여러 나라가 있습니다. 이 나라들은 때가 되면 망할 것입니다. 망하지 않는 나라는 어떤 나라입니까?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약 이스라엘 역사와 예언을 볼 때에도 신약교회에 대한 예표로서의 의미로만 이해해야지 독립적인 의미가 있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세대주의 종말론 자들은 하나님이 유대인을 위한 계획과 교회를 위한 계획을 각각 갖고 있다고 말합니다. 원래 하나님의 나라를 유대인에게 주려고 했는데 유대인이 싫다고 하자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주어 교회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즉 교회는 유대인이 불순종해서 나온 차선책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교회에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천하 모든 민족이 복을 받겠다는 것이 바로 교회입니다. 참된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요, 교회는 영생할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구성되어서 영생을 누리며 살게 되는 영원한 나라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서 부활하여 영생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관심이 교회에 있기 때문에, 대한민국이 교회를 위하면 하나님이 대한민국을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가족이 교회를 위하면 하나님이 가족을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하지만, 교회를 적대시하고, 우습게 여기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적대시하고 우습게 여기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교회를 사랑하고, 헌신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관심과 같은 관심을 두고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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