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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수감사절] 무엇으로 보답할까? (시 116: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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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으로 보답할까? (시 116:12-14)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 (12)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13)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는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으리로다 (14)
<시편 116편 12~14절>

할렐루야!
오늘은 추수감사절입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언제나 첫 것을 드려야 합니다. 
첫 열매, 첫 시간, 첫 사랑, 첫 마음 … 등 
무엇이나 첫 번째 가장 좋은 것을 드림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를 표해야 합니다.(출23:19. 잠3:9)

요즘의 추수감사절은 기독교 전통 속에서 생겨난 절기입니다. 
1620년 146명의 영국 청교도들은 신앙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117일 동안 항해한 끝에 지금의 미국 동부 해안에 이르렀습니다.
그들이 그 땅에 도착했을 때는 추운 겨울이었습니다. 
낯선 땅에서 얼마나 춥고 배고팠겠습니까?
44명의 동료는 영양실조에 걸려 봄을 맞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그들은 보리와 밀을 심었습니다. 
하지만 낯선 기후와 토양 때문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계속된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지요.
그래서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인디언들이 몇 가지 씨앗을 가져왔고, 재배기술도 알려주었습니다. 
결국 약간의 옥수수, 감자, 호박 등을 추수할 수 있었습니다. 
추수한 곡식들을 가지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위대한 하나님께서 풍부한 수확을 주셨습니다. 
인디언의 도움을 받아 옥수수, 밀, 콩, 호박과 
여러 채소를 심게 해주셨고, 자라게 하셨습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양심에 따라 자유롭게 하나님께 예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축복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릴 것을 선포합니다.”
<전광, <평생감사>, 서울: 생명의 말씀사, p. 98-100, 요약발췌>

그들이 감사의 예배를 드렸을 때는 
모든 것이 풍요로워서 드린 것이 아닙니다. 
약간의 음식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하던 때에 감사한 것입니다.

우리도 “감사절을 지키라”는 
하나님의 명령과 청교도들의 신앙의 전통을 따라 추수감사절을 지킵니다. 
미국에서는 11월 셋째 목요일에 추수감사절로 지킵니다.
한국에서도 미국처럼 11월 셋째 주일에 
추수감사절로 지키는 교회가 많지만 
여러 가지 정황상 추석 후가 좋지 않나 싶습니다.

그래서 우리교회는 매년 11월 첫째 주일을 추수감사절로 지킵니다.
오늘 범사에 복되고 감사가 넘치는 날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작년에도 어떤 분이 이름을 밝히지 않고 
쌀과 라면을 보내주셨는데 올해도 쌀 50포, 라면 100박스를 보내주셨습니다.
사무장에게 누가 보냈는지 알아보라고 했는데 알 길이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가격을 알아보라고 했더니 400~500만원 쯤 된다고 합니다. 
얼마나 감사한지요! 
어떤 분이 하셨는지 모르니까 여러분 옆에 계신 분이 하셨을 지도 모릅니다. 
옆의 분과 “참 잘 하셨습니다. 
내년에도 좋은 일 하시기 바랍니다.”라고 인사합니다.
모두 좋은 일에, 선한 일에 쓰도록 하겠습니다.

"날 구원 하신 주 감사" 찬양

성경을 높이 들고 우리의 믿음을 표현합니다.

저는 예수 믿어 구원받았습니다(요3:16).
저는 예수 믿어 하나님 자녀 되었습니다(요1:12).
저는 예수 믿어 천국 백성 되었습니다(빌3:20).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오늘(시118:24),
하나님 말씀으로 가르침을 받습니다(딤후3:14~17).
눈을 열어 주의 법 안에 있는 
놀라운 진리를 보고 깨닫게 하소서(시119:18).
"아멘"으로 순종하여(고후1:20)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 되게 하소서(마5:16).
아멘.

그런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어떤 안경을 썼나요?

옛날 옛날에 핑크색(분홍)을 광적으로 좋아하는 핑크대왕 퍼시가 살았습니다. 
핑크대왕 퍼시는 자신의 옷 뿐만 아니라 
궁전의 모든 것을 핑크색으로 칠하게 했습니다. 
심지어 먹는 음식까지 핑크색으로 만들게 했습니다. 
그러나 핑크대왕은 이것으로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궁 밖에는 핑크가 아닌 것들이 너무 많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왕의 권력을 이용해 백성들의 모든 소유물을 
핑크색으로 바꾸게 하는 법을 만들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백성들의 옷과 그릇, 가구 등은 모두 핑크색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핑크대왕은 여전히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나무와 풀, 동물들은 핑크색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대규모 군대를 동원해 
산과 들과 동물 모두를 핑크색으로 염색하게 했습니다. 

드디어 핑크대왕이 바라던 대로 모든 것이 핑크로 변했습니다.
왕은 기분이 너무 좋았습니다. 
그러나 핑크로 바꾸지 못한 곳이 있었습니다. 푸른 하늘이었습니다.
푸른 하늘을 볼 때마다 화가 났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하늘을 핑크색으로 바꿀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핑크대왕 퍼시는 자신의 스승을 찾아가 조언을 구했습니다.

그랬더니 스승이 해결책을 하나 주었는데 그것은 핑크색 안경이었습니다. 
핑크색 안경을 끼고 세상을 보니까 
하늘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핑크색이 되었습니다. 
이 날 이후로 핑크대왕은 
핑크색 안경을 끼고 세상을 바라보면서 행복하게 살았다고 합니다. 
[최인철, <나를 바꾸는 심리학의 지혜 프레임>, 21세기 북스. 요약 발췌.]

어떤 마음으로 사느냐, 어떤 눈으로 세상을 보느냐에 따라서
인생이 달라진다는 이야기입니다.
핑크색 안경을 끼고 세상을 보면 세상은 온통 핑크색입니다. 
노랑색 안경을 끼고 세상을 보면 세상은 온통 노랑색입니다. 
우리 마음에 어떤 안경을 끼었느냐에 따라 세상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감사의 안경을 끼고 감사의 마음으로 세상을 보면 세상은 온통 감사뿐입니다. 
그러나 불평과 원망의 안경을 낀 사람은 세상이 온통 불평과 불만뿐입니다. 
여러분 마음에 어떤 안경을 쓰고 계십니까?

구원의 잔을 들고

오늘 본문 말씀에서 시편기자는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시 116:12)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시편 116편 전체를 살펴보면 시편기자에게 
꼭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사망의 줄이 나를 두르고 스올의 고통이 내게 이르므로
내가 환난과 슬픔을 만났을 때”(시 116:13) 라고 했고 
또한,
“주께서 내 영혼을 사망에서, 내 눈을 눈물에서,
내 발을 넘어짐에서 건지셨나이다”(시 116:8) 라고 했고 

“내가 크게 고통을 당하였다 … ”(시 116:10) 고 했습니다. 
조금 고통 당한 것도 아니고 크게 고통을 당했다고 했습니다.

시편기자가 겪은 고통과 환난에 대해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시편기자는 어려움 중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를 내가 어떻게 보답할까 하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주는 은혜로우시며 의로우시며 
우리 하나님은 긍휼이 많으시도다”(시 116:5) 고 했으며, 

“여호와께서는 순진한 자를 지키시나니 
내가 어려울 때에 나를 구원하셨도다”(시 116:6) 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순진하다’는 것은 마음이 꾸밈이 없고 순박하다는 것을 뜻합니다. 
영어 성경(NIV)에 보면 “simplehearted”라고 했습니다. 
즉, 단순하고 온전한 마음을 의미합니다. 
이것 저것 생각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아이들 말로 잔머리 굴리지 않고, 
단순하고 온전한 마음을 가진 사람을 하나님께서 지키신다는 것입니다.

교회도 단순한 마음을 가지고 믿고 순종하는 사람들이 모여야
그 교회가 은혜로운 교회가 되고, 
그 교회가 평안한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속된 표현으로 잔머리 굴리는 사람들이 많으면 교회가 하나되기 쉽지 않습니다.

연말이 되면 남선교회, 여선교회 조직을 다시 합니다.
어떤 여선교회는 회원이 20명 되어도 
실제로 활동하는 분들은 5~10명 정도 밖에 되지 않습니다. 
나머지는 그 틈에 잘 끼지 못할 수도 있고, 
그 중에 몇 사람을 안좋아해서 선교회 활동을 하지 않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것을 고려하여 선교회를 다시 나눕니다.
그러면 교회에서 조직해 놓은 대로 순종하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다른 선교회 사람들이 좋다고 옮겨가는 분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잘 들으세요. 
그쪽 사람들이 자기를 좋아하는 줄로 알고 옮기는데 아닙니다. 
착각하지 마세요. 그쪽 사람들이 안좋아해요.
저도 사람들이 저를 다 좋아하는 줄 알았습니다.
저는 늘 깔끔하려 하고 밥도 잘 삽니다. 
그런데 요즘 저보고 무슨 감투를 쓰라고 하면서 찾아오시는 
목사님, 장로님들이 많이 계십니다.

그런데 그 중에 한 분이 제게 
“목사님, 목사님 다 좋아하는 줄 아세요? 
목사님은 적이 많으십니다.”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왜 저를 싫어합니까?”여쭸더니
“목사님은 너무 각이 지셔서 그 각진 곳에 찔린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즘에 저는 
“날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구나”라는 것을 받아들이느라 마음이 힘듭니다.
여러분도 여러분 자신을 모두 좋아할 것이라는 착각을 내려 놓으세요.
교회에서 조직해 주는(배정해 주는) 선교회도 단순하게 받아들이세요. 
그래야 교회도/자신도 평안합니다.

하나님은 순진한 자, 단순한 사람을 좋아하시고 지키신다고 했습니다.

시편기자는 자신을 환난, 슬픔, 고통, 결박 속에서 구하신
하나님께 구원의 잔을 높이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다고 노래합니다. 
<고대 세계에서 잔은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을 의미하였고, 
잔에는 하나님의 축복 또는 저주가 담길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의 축복으로 가득 찬 자신의 인생을
‘내 잔이 넘치나이다’(시 23:5)라고 노래했습니다. 
반면에 선지자 이사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분노의 잔을
마셨다고 하나님의 징벌을 묘사하기도 했습니다.> (사 51:17)
[ <비전성경사전> 참조. ]

여러분은 어떤 잔을 드시겠습니까?
감사와 찬양과 축복의 잔을 드시겠습니까?
불평과 질투와 저주의 잔을 드시겠습니까?
예수님은 우리 때문에 고난의 잔을 마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도 그 잔을 마시고 싶지 않으셨습니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

죄로 인해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예수님은 고난의 잔을 마셨습니다. 
그로인해 우리는 구원의 잔을 마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 구원과 감사와 찬양의 잔을 높이 드는 복된 날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지금 환경이 힘들고 어려울 지라도 우리는 구원의 잔을 높이 들어야 합니다. 
감사의 잔을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러야 합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 

시편기자는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다’고 했습니다. 
감사는 입술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표현되지 않는 감사는 온전한 감사가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감사하라 감사하라”고 
감사를 원하시고 감사를 명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사람들에게도 감사해야 합니다.
부모에게도, 자녀에게도 감사해야 합니다.

좋은 글을 소개합니다.
<내일이 아버지가 우리 가족을 떠난 지 2주년이 되는 날이다. 
어제는 아이들과 함께 아버지의 납골묘에 다녀왔다. 
조그마한 아버지의 사진을 보면서 늙어가는 나의 모습을 발견 하며 
2년 전 그날의 일들이 내 머리를 스쳐갔다. 
아버지와 사이가 나쁜 것은 아니었지만, 살아계시는 동안 
한 번도 고맙다는 말, 사랑한다는 말을 해드리지 못했다. 
언제나 마음속으로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남자라는 이유로, 내성적이라는 이유로, 쑥스럽다는 이유로 … 
그렇게도 하고 싶은 말을 못해 드렸다. 

2년 전, 그 날 저녁, 아버지의 병상을 지키면서 
아버지의 주름진 손을 잡고 꼭 말을 해야지 하면서도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 속에서도 난 입을 열지 못했다. 
아버지의 차가운 손만 꼭 잡고 
아무 말 없이 눈물만 흐르던 그때의 내 모습을 떠 올리면, 
왜 그렇게 해드리고 싶은 말을 하지 못했는지 알 수가 없다.

어제 아버지의 사진 앞에서 조용히 속삭였다.
“아버지, 고맙습니다. 그리고 정말로 사랑합니다!” 
또 다시 내 두 눈에는 벌써 눈물이 고이며 허전하고 아픈 가슴을 달랠 길이 없었다. 
아버지의 사진은 아무런 응답도 없이 지긋이 내 얼굴을 내려다보고 계셨다. 
너무나 늦게 해드린 말들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후회만 가득 하다.
아버지에게 못해드린 말을, 난 매일 내 아이들에게 해 준다. 

“오늘도 건강해서 고맙다, 너희들을 정말로 사랑한다!” 
이것은 아이들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고, 
아버님을 위한 말이기도 하며, 나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언젠가 나도 아버지 곁으로 가는 날이 된다면 제일 먼저 꼭 할 것이 있다.
아버지의 얼굴을 바라보며 미소 짓는 얼굴로 정말 고맙고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 
<2007년 11월 18일 김영봉 목사(워싱톤 한인교회 담임) 설교 예화 중. 인용>

우리는 자녀에게는 ‘사랑한다’는 말을 잘하지만 부모에게는 잘 하지 못합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한번도 해보지 못했습니다.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아버지 사랑합니다’라고 말씀드리려고 했는데 … 아직 하지 못했습니다. 
하려고 마음먹었다가도 아버지 얼굴을 뵈면 나오지 않았습니다.
솔직히 제 아버님도 제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신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오늘 중에 해야 할텐데 …. 여러분, 표현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중에도 저와 똑같은 마음을 갖고 있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난데없이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쑥스럽고 닭살 돋겠습니까?
그러나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는 엄청난 힘이 있습니다.

오늘 감사절인데, 하나님께 감사하는 날이지만 
그동안 감사를 표현하지 못했던 사람들에게도
감사를 표현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가장 귀한 감사의 대상은 ‘하나님’이십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예수 믿고 구원 받은 것 그것 하나만으로도 감사할 일입니다.
가족에 대해서도 감사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 된 이들에게도 감사합니다.
이런 저런 형편과 사정이 있지만 생각해 보면 그래도 감사의 조건이 많습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오늘, 이 시간, 이 자리에 우리가 함께 있고
여기에 살아 있어 말씀을 전하고 듣는 자리에 있다는 사실이 가장 귀한 감사입니다.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제 아버지가 예수님을 믿고 목사가 되었으니 감사한 일이지요. 
만일 제 아버지가 무당이 되었다면 저는 지금 무엇이 되어 있을까요?
만일 머리를 깎고 산으로 들어가셨다면 제가 이 세상에 존재했을까요?
생각해 보면 아버지께서 예수 믿고 목사님이 되신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우리교회 담임목사로서 일하는 것도 감사합니다.
이 세상에 저처럼 ‘평안하고 은혜롭고, 장로님들과 성도들이 한 마음이 되어 
신앙생활 하는 교회’의 목사가 몇이나 될까 … 정말 감사합니다.
왜냐하면 지지고 볶고 싸우는 교회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런 모든 것을 생각해 보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부실한 부분도 있지만 그래도 힘 있게 열정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건강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사랑받고 사는 것에 대해서도 감사합니다.
어제 어떤 권사님이 장아찌를 만들었는데 
“너무 너무 맛있다”고 드셔 보시라고 가져오셨습니다.
그 사랑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우리가 살면서 생각해 보면 모든 것이 다 감사할 일입니다.
여러분도 범사에 감사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나의 서원을 … 갚으리로다 

시편 기자는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는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으리로다”(시 116:14) 했습니다. 
“서원”은 하나님께 무엇을 하겠다거나 하지 않겠다고
자발적으로 하는 기도입니다.(레 27:1-29)
서원은 보통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기 위해서나 
베풀어 주신 은혜에 감사하기 위해 했습니다. 
(서원에 대해 자세히 알려면 레위기 27장을 잘 읽어보면 됩니다.)

서원은 자발적으로 하는 것이며, 서원을 하지 않는 것이 죄가 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서원한 것은 반드시 지켜야 했으며(민30:2, 신 23:21-23)
서원한 것을 실수라고 하지 말아야 했습니다.(전5:6)
그리고 이행하지 못했을 경우에는 속건제(희생예물)를 드려 용서받아야 했습니다.
(레 5:4-6) [<비전성경사전> 참조 ]

한마디로 서원은 빚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서원한 것은 반드시 갚아야 합니다. 
야곱이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할 때 이렇게 서원했습니다.

20 …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21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22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창 28:20~22)

그러나 하나님께서 20년 동안 야곱에게 많은 복을 주셨지만
야곱은 서원한 것을 갚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사랑하는 딸 디나가 세겜에게 강간당하는 힘든 일을 경험한 후에야 
서원을 갚았습니다.(창35:1,3)
왜 사람들은 혼쭐이 난 뒤에야 약속을 갚는 것일까요?

하나님은 야곱뿐만 아니라 
예수 믿는 우리들 모두에게도 서원한 것은 갚으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서원한 것이 있다면 신속하고 정확하게 갚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시편기자는 18~19절에서 서원을 갚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우리는 종종‘… 해주신다면 … 하겠습니다’라는 약속을 하고 기도합니다. 
그런데 그 약속을 지키지 않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 이번에 취직이 된다면 … ’
‘하나님, 이번에 합격한다면 … ’
‘하나님, 한번만 해결해 주신다면 … ’
‘하나님, 이번만 살려주신다면 … ’

이렇게 절박하게 기도하지만, 막상 문제가 해결되었을 때는
간절함이 사라지면서, 하나님께 감사도 하지 않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그런가 봅니다. 
들어갈 때 마음과 나올 때 마음이 다릅니다. 
옛말에 “원수는 돌에 새기고 은혜는 물에 새긴다”는 말이 있습니다.
은혜를 물에 새기면 안됩니다.
은혜는 마음판에 새기고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서원 갚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서원한 것이 있다면, 약속드린 것이 있다면
그 약속을 꼭 지켜야 합니다.
마음으로, 물질로, 헌신으로, 봉사로 … 
그 어떤 것으로도 하나님께 서원하여 진 빚은 갚아야 합니다. 

우리가 드리는 모든 헌금은 십일조, 감사헌금 … 등 여러 가지 내용이 있지만
거기엔 우리들 마음에 담긴 감사가 들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마음입니다. 
그런데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면서 최선을 다했다고 거짓말 하고 … 
정성을 다했다고 거짓말 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모든 예물의 근본은 감사의 마음입니다.
헌금의 이름이나 내용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뉴욕에 살고 있는‘박한남집사님’이라는 분이 계십니다.
그분은 제가 개척교회 할 때 교회 바로 앞에 사셨던 분입니다.
그분은 제가 몸이 안좋아 보이면 언제나 맛있는 죽을 쒀다 주셨습니다.
지금도 제 몸이 좀 안좋으면 그분이 끓여다 주던 죽이 생각납니다.
그런데 그분에게서 10월 29일에 전화가 왔었습니다.
우리교회 주보를 보고 <일천번제>를 하고 싶어서 전화했답니다.

우리가 드리는 일천번제(一千番祭)는? 
솔로몬이 드렸던 태울 번(燔)자의 일천번제가 아니고 
차례 번(番)자의 일천번제(숫자로 1,000번을 채우는 것)를 말한다.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나 예물이 
한번이냐 100번이냐 하는 숫자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비록 적은 과부의 두 렙돈(눅21:2) 같은 것이라도 
그것이 정말 하나님 마음에 합한 것이냐가 중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솔로몬이 일천번제를 드렸던 것 같은 정성으로 
1,000번을 정해 놓고 예물을 드리며 기도한다면 
소나 양을 잡아 태우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중심을 보시는(삼상16:7)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을 보여 드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매일 해야 하는 것인지 어떻게 하는 것인지 물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매주일 한다고 했더니 ‘그럼 오래 걸리겠네요?’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부터 하려는데 하다가 죽으면 어떡하느냐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제가 “안죽어요. 안죽어 ….”라고 했습니다. 
일천번제 드리다가 천번을 채우지 못했는데 
하나님이 불러 가셔도 그동안 순간순간 정성을 다한 그 마음을 
하나님께서 받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 마음을 다해 감사한다면 하나님께서 그 마음을 받으실 것이고
우리에게 더 큰 감사의 조건을 주실 줄 믿습니다. 

감사의 삶을 살아야 …

감사는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인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명령합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6~18)

감사는 백신이며, 제독제이며, 방부제입니다.
- 우리 마음에 감사가 충만하면 그것이 백신이 되어 
불평불만이라는 바이러스가 침범하지 못할 것이고, 
- 감사가 충만하면 그것이 제독제가 되어 마음속에 있는 독소를 없애줄 것이며,
- 감사가 충만하면 그것이 방부제가 되어
우리 마음이 부패하지 않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그러므로 감사는 우리 삶에 꼭 있어야 하는 필수 요소입니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은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복이요, 감사의 제목입니다. 
일상적이고 평범한 삶은 가장 큰 감사꺼리입니다. 
별 일 없었던 것 그것이 감사입니다.
여러분, 범사에 감사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오늘 오후에는 찬양잔치가 열리게 될 것입니다. 
그동안 연습하시느라 수고 많으셨고
이런 저런 일로 마음 상했던 적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가장 좋아하시는 찬양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물을 드린다고 해도, 최선을 다한다 해도 … 
하나님 앞에 뭐 대단한 것이겠습니까.
최선을 다하지도 않고,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면서
생색을 내려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들의 순수한 찬양을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 작곡되고, 작사된 것을 
‘찬양’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기독교초기에 그런 곡이 작곡되지 않았기 때문에 
요한 칼빈도 당시 유행가에 가사를 붙여 찬양했습니다.
우리가 가진 찬송가에도 영국, 독일 국가 곡이 있습니다.
우리가 즐겨 부르는 복음성가에도 유행가 곡이 있습니다.

그래도 요즘에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곡을 만들고 가사를 씁니다.
어떤 장로님이 제게 염려스럽게 말씀하시는데
남선교회 중에 최근에 유행하는 노래에 가사를 붙여 찬양제에 나온다고 하더군요. 
그 곡은 굉장히 빠르고 춤추는 곡이라고 합니다.
그러시면서 걱정을 하시기에 제가 
‘미리 알려주셨다면 곡을 바꾸라고 했을텐데 어떡하느냐’고
교회 안에서, 우리들끼리 그냥 이해하고 보자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재롱떠는 것이니까 
그 가사를 통해 하나님이 영광 받으실 줄 믿습니다. 
오늘 평안한 날이 되기를 바랍니다.

미국 사람들도 우리의 민요 아리랑에 가사를 붙여 찬양하기도 합니다.
오늘 넓은 마음으로 모든 것을 보시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재롱을 떠는 날이 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행복해서 감사한 것이 아니라,
감사해서 행복해진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예배에 참석한 여러분 모두 부자입니다.
여러분 감사할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면 나쁜 사람입니다.

<준비된 영상을 보시겠습니다. - 영상에 소개되는 내용>

지금 당신의 집에 전기가 들어온다면 
세상에 전기의 혜택 없이 사는 20억이 넘는 사람들보다, 
집에 식수시설이 되어 있다면 그렇지 못해 아무 물이나 마시는 
10억이 넘는 사람들보다 감사할 이유가 있는 사람이다. 
하루 천 원 이상으로 생활하고 있다면 
천원 미만으로 살고 있는 12억 명의 사람들보다, 
하루 한 끼라도 따뜻한 음식을 먹을 수 있다면 
8억 명의 영양실조로 고통 받는 사람들보다 감사할 이유가 있는 사람이다.
오늘 아침 일어났을 때 당신의 몸이 건강하다면 
당신은 이번 주를 넘기지 못할 백만 명의 환자들보다 감사할 이유가 있는 사람이다.

한 번도 전쟁의 위험이나 수용소의 외로움, 고문의 고통, 
굶주림의 쓰라림을 경험하지 못했다면 
당신은 5억 명의 사람들보다 감사할 이유가 있는 사람이다. 
체포, 협박, 학대, 고문, 그리고 죽음의 두려움 없이 교회에 나갈 수 있다면 
당신은 이 세상의 30억의 사람들보다 감사할 이유가 있는 사람이며, 
만일 당신의 냉장고에 음식이 있고, 당신의 몸에 옷이 걸쳐져 있다거나, 
잠을 잘 수 있는 집이 있다면, 
이 세상 사람들의 75%보다 더 감사할 이유가 있는 사람이다.

당신이 은행에, 그리고 지갑에 약간의 돈이 있고, 
어딘가 작은 접시에 동전을 모아 놓았다면 
이 세상의 8%안에 드는, 감사할 이유가 있는 부자다.
두 부모가 아직 살아계시고 지금 혼자가 아니라면 
보기 드물게 감사할 이유가 있는 사람이다.
지금 이 글을 읽고 당신이 축복받은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이 세상의 20억의 사람들보다 
더 감사할 이유가 있는 사람이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생각해 보면 감사합니다. 생각해 보면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우리의 입에 불평을 달고 있었음을 회개합니다.
감사하며 살게 하여 주옵소서.
추수감사절에 기쁨과 감사로 준비한 모든 것을 하나님 받아 주시옵소서.
예수님 거룩하신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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