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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수감사절]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단 3: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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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단 3:8-18)


유명한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그의 ‘역사의 연구’에서 인류역사를 도전과 응전의 원리로 설명한다. 개인의 인생사도 도전과 응전의 원리가 적용된다고 본다. 
원하든 원치 않든 도전을 맞이하게 된다. 그때 내가 어떻게 응전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우리가 불신앙으로 응전하면 하나님의 역사는 경험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믿음으로 응전하면 하나님의 역사를 보게 될 것이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은 세상의 도전 앞에 어떻게 믿음으로 응전하는지를 보여주는 모델이다. 
1장에서 다니엘과 친구들은 왕의 명령에 대해 믿음으로 도전한다. 1:8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도록 환관장에게 구하니” 
믿음의 도전의 결과는 무엇이었나?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경험하게 되었다. 

1. 세상의 도전은 파도처럼 밀려온다.
 
3장에 다니엘의 친구들이 또 다시 세상의 도전 앞에 서게 된다. 느부갓네살 왕이 강력한 도전을 해 온다. 
30m 나 되는 커다란 신상을 금으로 만들었다. 그 준공식에 바벨론의 중요한 관리들을 다 소집한다. 오케스트라를 동원하여 연주할 때 모든 신하들이 금 신상에게 절을 하도록 명령을 한다. 만약에 절하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용광로 불에 던져버리겠다고 경고한다. 신하들이 벌벌 떨면서 왕의 명령대로 우상신상에게 절을 한다. 
종교를 이용하여 자기 권력을 강화시키려는 것이다. 이런 신앙을 경계해야 한다. 

오늘 세상도 하나님을 믿는 우리에게도 우상숭배를 하도록 도전한다. 
점점 더 교묘하게 우상숭배 하도록 도전한다. 무슨 신상에게 절하는 교인들은 많지 않다. 
겉으로는 우상숭배를 하지 않는다. 내면으로 우상숭배를 한다. “탐심은 곧 우상숭배니라(골3:5)”고 말씀한다. 돈에 대한 탐심(주식, 펀드, 부동산...), 외모(무슨 라인, 무슨 팩)에 대한 탐심, 소유에 대한 탐심(집, 자동차, 명품...) 성적인 탐심... 
육신으로는 엎드려 절하지 않는다. 그러나 마음으로 절하는 사람이 많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세상의 도전 앞에 어떻게 응전해야 할까? 
다니엘의 세 친구들은 어떻게 응전했는가? 왕의 엄명에도 불구하고 우상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했다. 우상숭배를 거부했다. 거부하면 용광로에 집어넣어 태워죽이겠다고 했는데도. 대담하게 믿음의 응전을 한 것이다. 
잘한 일인가? 박수를 보낼 일인가?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시겠는가? 

이번에는 정치적인 경쟁자들인 다른 신하들이 교묘하게 도전을 해 온다. 
세상의 도전은 파도처럼 계속해서 밀려오는 것이다. 

12절 “이데 몇 유다 사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왕이 세워 바벨론 지방을 다스리게 하신 자이거늘 왕이여 이 사람들이 왕을 높이지 아니하며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 아니하나이다.” 

세 사람만 의도적으로 유심히 살펴본 사람들이 있었다. 기대했던 대로 역시나 우상신상에게 절하지 않자 즉시로 왕에게 세 사람을 참소한다. 참소란 말은 ‘씹어 먹는다’는 의미이다. 
사실과 모함을 교묘하게 섞어서 말한다. “왕을 높이지 아니하며...” 진짜 씹는 말을 한다. 
어디 가도 그런 사람들이 꼭 있다. 참소하는 사람이 되지 말자. 사람을 씹는 일을 하지 말자. 그건 마귀가 하는 일이다. 욥기 1장에 보면 마귀가 교묘한 말로 욥을 하나님께 참소한다. 누구를 씹는 짓을 하는 셈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마귀 짓을 하면 어울리지 않는다. 

왕이 대노하였다. 
13절 “왕이 노하고 분하여” 세 사람이 체포되어 끌려왔다. 

왕이 노하여 다시 세 사람에게만 다시 명령한다. 
15절 “내가 만든 신상 앞에 엎드려 절하면 좋거니와 너희가 만일 절하지 아니하면 즉시 너희를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져 넣을 것이니 능히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낼 신이 누구겠느냐” 

더 강력한 도전을 받게 된 것이다. 얼마나 살벌한 분위기일까? 참소한 사람들이 노려보고 있다. 왕도 분노의 눈길로 쳐다보고 있다. 다른 모든 신하들이 무시하고 경멸하는 눈초리로 쳐다보고 있다. 
누구도 보고 있을까? 하나님도 보고 계시다. 사람만 보고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도 주목하여 보고 계신다. 

왕인 내 명령을 거부하면 너희들이 믿는 하나님이라도 어쩔 수 없다. 내 힘은 보이는 힘이다. 너희 신의 힘이 보이느냐? 내 권력으로 너희를 용광로 속에 쳐 넣을 수 있다. 너희 신인 하나님이 너희를 용광로에서 건져낼 힘이 있겠느냐? 
오늘도 세상이 우리에게 이렇게 위협한다. 눈에 보이는 현실, 믿음으로 보아야만 보이는 하나님의 손길. 무엇이 보이는가? 무엇이 사실인가? 무엇이 더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가? 


2. 세상의 도전 앞에 믿음으로 응전하라. 

왕의 도전에 세 사람이 믿음으로 응전한다. 16-17절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이 계시다면 우리를 맹렬히 타는 풀무 불 가운데에서 능히 건져내시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왕의 권력이 현실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능력도 현실이다. 왕의 권력이 대단하다. 그러나 하나님의 권력은 더 대단하다. 믿음으로 보는 것이다. 그래서 믿음으로 응전하는 것이다. 

사43:1-2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우리에게 이런 믿음이 있는가? 현실보다 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있는가? 
평안 중에는 진짜 신앙을 잘 모른다. 불같은 시험을 당해봐야 진짜 믿음이 드러난다. 
초대교회의 핍박에 대한 말씀이다. 히11:36-38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 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불같은 시험을 믿음으로 감당해낸 사람들이다. 하나님은 불같은 시험을 통과시켜 정금같은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신다. 벧전1:7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라.” 
그래서 세상의 도전을 믿음으로 응전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일으키는 사람이 되게 하신다. 

오늘 우리가 당하는 불같은 시험도 있다. 그래도 초대교회 만큼은 아니다. 100여 년 전 믿음의 선조들이 당한 불같은 시험은 아니다. 그래도 힘들기는 하다. 무시를 당한다. 왕따를 당한다. 자존심이 무너진다. 돈을 손해 본다. 승진에서 밀려난다. 

그러나 그런 불같은 시험이라도 감당하지 못할 시험은 주시지 않으신다. 고전10:13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그러니 안심하다. 너무 두려워하지는 말자. 세상도 현실이지만 하나님도 현실이다. 
세상도 만만치 않지만 하나님도 절대로 만만한 분이 아니시다. 그러니 우리도 대담하게 믿음으로 응전하자. 


3.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순종함으로 응전하자! 

다니엘의 친구들이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순종할 것을 고백한다. 
18절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그렇게 하지 못하실지라도’가 아니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이다.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하는 말이 아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고백이다. 
하나님은 능히 하실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 수도 있다.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이다. 하나님의 뜻대로 결정하실 일이다. 
그리하시든 아니하시든 우리는 우상에게 절할 수 없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이다. 
우리의 주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 분이 어떻게 하시든 우리는 주권에 순종할 것이다. 

우리 신앙의 문제점 중의 하나는 조건적인 순종을 하려는 것이다. 
‘하나님이 무엇을 해 주시면 저도 이렇게 하겠습니다.’ 순종의 여부가 하나님께 있지 않다. 
순종할지 안할지 결정권을 내가 쥐고 있다. 주권이 왕이신 예수님께 있지 않고 내가 가지고 있다. 결정권한이 예수님께 있지 않고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이용대상자가 아니시다. 그 반대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서 지음 받은 존재이다. 하나님을 위해서 사용되어야 할 존재이다. 

하나님은 토기장이 이시고 나는 진흙이다. 그릇을 만들 결정권은 진흙이 가지고 있지 않다. 
절대적으로 토기장이가 가지고 있다. 이렇게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하는 생각을 하자. 
말을 그렇게 하자. 그러면 그 친구들처럼 말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맺는 말 

우리는 세상의 어떤 도전을 받고 있는가? 우리는 오늘 어떻게 응전하고 있는가? 
오늘 우리도 믿음으로 응전하자. 다니엘의 친구들처럼 한번 맞장 떠 보자!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순종함으로 응전하자. 그리 아니 하실지라도의 신앙을 갖자! 
그리고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대하며 기다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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