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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승리의 깃발을 높이 올려라! (출 17: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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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의 깃발을 높이 올려라! (출 17:8-16)


인터넷에 보니까 세대별로 성공한 기준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10대에는 성공한 아버지를 두었으면 성공이라고 했습니다.  20대는 학벌이 좋으면 성공이라고 했습니다.  30대는 좋은 직장에 다니면 성공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교회에는 40대가 많으니까 그렇다면 40대의 성공의 기준은 무엇이겠습니까?  40대는 2차를 쏠 수 있으면 성공이라고 합니다.  50대는 공부 잘하는 자녀가 있으면 성공이다.  60대는 아직도 돈 벌고 있으면 성공이다.  70대는 건강하면 성공이다.  80대는 본처가 밥을 차려주면 성공이다.  90대는 전화 오는 사람이 있으면 성공이다.  100세는 아침에 눈을 뜨면 성공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모든 인생들에게 있어서 진정한 성공의 기준의 무엇일까요?  하나님이십니다.  그 인생에 하나님을 모시고 있느냐, 없느냐?  이것이 인생 성공의 조건입니다.  성공한 사람들을 보십시오.  요셉이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입니까?  그가 하나님을 중심에 모시고 살았기 때문에 성공한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밧세바와 동침하고, 충신 우리야를 전쟁터에서 죽게 한 이후에 선지자 나단이 찾아와서 책망했을 때 그는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다윗이 그의 인생에서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떠나가시는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나를 떠나가실 수 있다?  여러분은 이 물음 앞에서 정말로 두려워 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인생에서 정말로 힘이 드는 것은 재정적으로 어려워서가 아닙니다.  살아가면서 가장 힘이 드는 것은 내 안에 주님의 임재가 느껴지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보지만, 주일마다 주님의 성전에 나와서 예배를 드려 보지만 주님의 임재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힘들고, 그것이 두려운 것입니다.
♬"나를 주님 앞에서 멀리하지 마시고 주의 성령을 거두지 마옵소서."♬

한때 도둑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아이스크림이 있었습니다.  길을 가다가도 이 아이스크림만 보면 질색을 했다고 합니다.  "누가바"입니다.  컴퓨터가 발달되면서 탄생시킨 인물들 가운데 하나가 해커들입니다.  해커들은 먼 거리에 있으면서도 상대방의 컴퓨터에 침입을 해서 그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알아낸다고 합니다.  내가 컴퓨터를 하고 있는데 세계 어느 곳인지는 모르지만 누군가가 내 컴퓨터에 침입을 해서 나의 일거수 일투족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무섭고 두렵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을 고백할 때 그분은 세상 어디에나 계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라고 고백을 합니다.  그 예수님은 지금도 저와 여러분의 마음에, 우리의 마음에 계십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무엇을 본다는 사람은 무서워하면서 전능하신 예수님은 무섭지 않습니까?

아니 솔직히 이야기해서 우리가 예수님을 의식이나 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기독교의 교리를 온전히 알고 있다고 해서 그가 온전한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마음에 예수님을 모시고 살아가는 내가 언제 어디에서든 그분을 의식하고 그분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드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한국 교회는 예수님만 믿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팽배해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예수님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다른 그 무엇인가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여러 가지 방법들을 찾아서 배우려고 합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솔직히 말해서 우리가 정말 예수님을 제대로 믿기는 했습니까?  그저 지식으로만 믿어왔던 것은 아닙니까?  내 안에 있는 예수님도 행복하게 해 드리지 못하는데, 누가 나를 행복하게 할 수가 있겠습니까?  잊지 마십시오.  교회 생활에서 가장 힘이 드는 것은 재정적으로나 헌신이 많아서가 아닙니다.  내 안에 예수님의 임재가 느껴지지 않는 것입니다.

가만히 보면, 신앙생활에서 정말 무서운 사람은 주님의 임재가 없는 사람입니다.  주님의 임재가 없는 사람은 그야말로 막가파입니다.  말도, 행동도 자기 감정에 따라서 자기 마음 대로입니다.  그러나 정말 그 마음에 주님의 임재가 느껴지는 사람, 그래서 주님의 임재를 아는 사람은 말과 행동을 지극히 조심합니다.  그것이 바로 다윗의 인생이었습니다.  그리고 성경에 나오는 모든 믿음의 선배들이 살았던 삶의 모습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복음이 무엇입니까?  나는 죽고 예수님이 사는 것이 복음입니다.  그렇습니다.  핵심은 예수님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축복이고, 행복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우리는 살아 계신 예수님이 바라보아져야 합니다.

행복은 누군가로부터 사랑 받고 사랑하며 사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생에서 참된 행복은 내 삶의 주인이시요, 모든 것이 되시는 예수님으로부터 사랑 받고, 그분만을 사랑하며 사는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인생에서의 불행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는 것이요, 행복은 하나님으로부터 쓰임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진정한 행복을 원하신다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 하나님 앞에 쓰임 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우리의 인생은 한 번밖에 살지 못합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한 번밖에 살지 못하는 이 소중한 삶, 하나님이 주신 이 축복의 삶을 사랑도 즐거움도 없는 그런 공허한 인생으로 시간을 속절없이 보내고 있는 그런 사람을 만나는 일입니다.  목회를 하다보면 그런 사람들을 많이 만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천하보다 귀한 삶입니다.  오늘이 가면 다시는 없습니다.  인생은 재탕을 할 수 없습니다.  2라운드도 없습니다.  그런데 삶의 즐거움도 사랑도 전혀 느끼지 못하고 그냥 속고 속으면서 속절없이 그 많은 날들을 고통과 두려움과 불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혼란 속에 끝없이 묶여서 비전의 날개를 펴보지 못하고 늙어 가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보다 더 아름다운 세계가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가고 있는 길보다 더 아름다운 길이 있습니다.  지금 내가 시도하고 있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똑같은 방법, 똑같은 길, 똑같은 판단으로 가면서 그 소중한 삶을 낭비하고 있는 사람들을 볼 때 얼마나 안타까운지 모릅니다.

오늘 우리는 건강과 즐거움과 기대와 행복이 넘치는 다른 삶을 찾기 위해서 여기에 왔습니다.  주님 안에 그 길이 있습니다.  내가 길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그 길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가장 절실하게 붙잡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임재와 그분의 도우심입니다.  저는 하나님만 개입하시면 가장 절망적일 때에 가장 큰 기회가 오는 것을 믿습니다.  제일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하나님만 개입하시면 인생의 새로운 기회가 펼쳐지는 것을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제가 목사라서 여러분이 듣기 좇으라고 위로하는 말이 아닙니다.  이것은 삶의 간증입니다.  이것은 내 생애에 일어났던 삶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복음 앞에 서서 금보다 귀한 믿음을 붙드십시오.  지금 우리들에게 있어서 정말 중요한 것은 승리의 깃발이 되시는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내가 어떻게 하더라도 변하려고 하는 강력한 믿음을 붙잡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여행하다가 아말렉으로부터 공격을 받고 전쟁을 치르는 상황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이 전쟁은 그냥 전쟁이 아니라 영적 전쟁이라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싸움은 무기를 가지고 싸우는 싸움이 아니라 기도로 싸우는 싸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극적인 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승리했던 그 자리에 제단 하나를 쌓습니다.  그리고 그 제단의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고 부르게 됩니다.  여기에서 '닛시'는 승리를 상징하는 깃발이라는 뜻으로서 "승리의 깃발이 되시는 여호와"라는 의미가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이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말씀하시고자 하시는 메시지가 무엇이겠습니까?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여전히 인생의 광야를 지나가야 하는 우리들입니다.  그리고 이 인생 광야에서 어려움을 당하지만 이 어려움들 가운데 어떤 것들은 사탄의 공격을 통해서 우리가 승리해야 할 영적인 싸움을 싸워야 할 경우들이 있습니다.  사실, 악한 원수 사탄은 우리를 넘어뜨리기 위해서 갖은 계략으로 오늘 본문의 아말렉처럼 공격해 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구원받은 저와 여러분이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여 승리의 깃발을 높이 올리는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우리는 이미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더 이상 그 어떠한 정죄함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의 권속인 우리는 이 영적 전쟁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뜻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가 있겠습니까?
영적 전쟁에서 승리의 깃발을 높이 올릴 수 있는 비밀이 무엇이겠습니까?

첫째로, 기도의 손을 들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 묘사된 이 전쟁은 이상하게도 모세가 손을 올리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이스라엘이 패배하는 식으로 전쟁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그것이 본문 11절의 내용입니다.  11절을 다같이 읽도록 하겠습니다.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

도대체 손을 드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다는 말입니까?  성경은 많은 경우에 손을 드는 것을 기도의 상징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시편 28편 2절입니다.  "내가 주의 지성소를 향하여 나의 손을 들고 주께 부르짖을 때에 나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소서."  다윗은 주의 지성소를 향하여 손을 들고 기도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와 여러분이 살고 있는 오늘 이 시대야말로 손을 들어 기도해야 할 때라고 느끼지 않으십니까?

오늘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기도의 필요성을 알고 있습니다.  기도는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기도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기도에는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기억하십시오.  기도는 그냥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노력을 필요로 합니다.  그래서 옛날 우리의 신앙의 선배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도는 노동이다!"  "Prayer is labor!"  그런데 여기에서 'labor'이라는 단어는 노동이라는 뜻도 있지만, 여인들이 아이를 출산할 때 감내해야 하는 분만의 '진통'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기도에는 이와 같은 진통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모세의 손이 내려 왔다는 것은 기도가 힘을 잃을 수도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기도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독려해 주는 기도의 동역자들이 필요합니다.  함께 모여 기도하면 좀더 효율적으로 기도할 수가 있습니다.  모세의 행복은 기도의 동역자들이 자신의 주변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아론과 훌, 이들 두 사람이 손을 들고 있었던 모세의 양편 팔을 붙들어 올리고 있음을 볼 수가 있습니다.

본문 12절의 말씀을 다같이 읽도록 하겠습니다.
"모세의 팔이 피곤하매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의 아래에 놓아 그가 그 위에 앉게 하고 아론과 훌이 한 사람은 이쪽에서, 한 사람은 저쪽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한지라."

사랑하는 여러분, 이 시간 질문을 하겠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런 기도의 동역자들이 있습니까?  내가 어려움을 만났을 때, 아픔이 생겼을 때 즉각적으로 그것을 알리기만 하면 함께 기도해 줄 수 있는 기도의 네트워크가 있습니까?

유대 역사학자인 요세푸스에 의하면 아론은 모세의 형이고, 훌은 모세의 누이 미리암의 남편이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인척관계입니다.  가족들이 기도의 힘이 되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가족들이 기도의 힘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와 여러분,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앞에서 영원한 하늘 가족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한 가족입니다.  우리의 가족들 가운데 누군가가 힘들어하고, 아파할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서 기도할 수 있는 손이 내려져 힘을 잃고 있을 때 서로를 독려하면서 함께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의 의무요, 축복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때로 우리는 온 교회가 공동체로서 하나님 앞에 나와 함께 모여 중보의 손을 들고 기도를 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도는 능력입니다.  기도는 하늘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기도하는 어머니가 있는 자녀는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아버지들은 기도하지 않아도 됩니까?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남자들이, 각 가정의 가장들이 한 가정의 문제들을 하나님 앞에 아뢰고, 그 가정을 영적으로 파수하고 지키는 가정의 제사장이 될 것을 기대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옆에 있는 남자분들에게 이렇게 말씀을 전해 보시기 바랍니다.  "당신은 당신의 가정에 제사장이십니다."  기도를 해야 제사장이지요.

디모데전서 2장 8절에서 사도 바울은 남자들을 향해 이렇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각처에서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이 없이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기를 원하노라."

남자들이 분노와 다툼을 없이 하라고 했습니다.  사실 남자들이 모이면 싸우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싸워보았자 거기에서 생산적인 결과를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남자들에게 그럴 시간이 있거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논쟁하고, 흥분하고, 싸울 시간이 있거든 기도하라!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남자들이 각 가정의 문제를 놓고, 자녀들을 위해 주 앞에 나와 기도하기를 시작한다면 우리의 가정은 얼마나 행복하고 평안할까요?

저는 우리 교회 남자분들이 주 앞에 나와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거룩한 손을 들어 기도하라!  기도를 위해서 올려진 손은 거룩한 손입니다.  잊지 마십시오.  지금이야말로 우리 모두가 기도의 손을 올려야 할 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영적 전쟁에서 승리의 깃발을 높이 올리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두 번째로, 하나님의 임재를 주목하셔야 합니다.

기도할 때 우리가 경험하는 승리는 단순히 기도의 승리가 아닙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기도를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승리입니다.  기도할 때 경험하는 능력은 단순히 기도의 능력이 아니라 기도를 통해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오늘 우리가 본문을 설명할 때 일반적으로 모세가 손을 들었더니 승리했다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본문을 보다 자세히 보면, 모세가 손만 든 것이 아닙니다.  그 손에 지팡이를 잡고 있었습니다.  본문 9절의 말씀입니다.  9절을 다같이 읽도록 하겠습니다.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우리를 위하여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 내일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 꼭대기에 서리라."

모세는 전쟁터에 나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신이 산꼭대기에 설 때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서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모세는 손만 들어올린 것이 아니라 그 손에 지팡이를 잡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손이 내려왔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모세는 왜 이 힘든 순간에 지팡이를 잡았을까요?  도대체 이 지팡이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한 마디로 말하면 그 지팡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임재의 상징이었던 것입니다.
출애굽기 4장에 보면 하나님이 모세를 애굽으로 보내고자 할 때 모세는 자신의 처지를 보면서 완강하게 거부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모세는 지팡이라고 대답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그 지팡이를 잡고 바로에게로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지팡이가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임재의 상징으로써 하나님의 손에 잡힌 지팡이가 된 것입니다.  출애굽기 4장 20절에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그의 아내와 아들들을 나귀에 태우고 애굽으로 돌아가는데 모세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았더라."

여기에 보면, 모세가 지팡이를 잡았습니다.  그런데 그 지팡이는 보통 지팡이가 아니라 하나님의 지팡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지팡이는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었던 것입니다.
사실 나중에 모세가 전쟁에서 승리를 하고 제단을 쌓았을 때 그 제단의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고 불렀습니다.  '닛시'의 뜻은 깃발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깃발이라고 하면 어떤 헝겊이나 천으로 만든 것을 연상할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성서 고고학자들은 그 당시의 이스라엘이 천이나 헝겊으로 사용한 흔적은 전혀 없다고 합니다.  그 대신 성서 고고학자들은 전쟁이 일어났을 때 한 부대를 대표하는 것으로써 지팡이 같은 데에다가 쇳조각 같은 것을 붙여서 사용하는 흔적들을 많이 발견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지팡이에 글씨가 쓰여진 쇳조각을 붙여서 높이 올리면 태양의 빛을 받은 쇳조각은 반짝 반짝 빛을 발합니다.  여기에서 배너, 깃발이라는 히브리말은 그냥 깃발이 아니라 번쩍 번쩍 빛나는 깃발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모세가 산꼭대기에서 자기 지팡이에 쇳조각을 붙이고 흔들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그때 산 아래 골짜기에서 싸우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우리의 응원단이 저기 산꼭대기에 올라가서 깃발을 흔들고 있다.  하나님이 저기에 함께 하신다.  저들이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번쩍이는 깃발은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으로 다가왔던 것입니다.  그 지팡이를 향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시선, 그것은 하나님을 향한 백성들의 시선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진지하게 기도하기 시작하면 그저 단순히 기도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을 집중하고, 그분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라고 부르짖는 순간 우리는 하나님을 주목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참으로 하나님을 집중하여 주목할 때 그때부터 위대한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그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그 하나님은 우리의 소망이십니다.  그 하나님은 우리의 능력이십니다.  그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이십니다.  그 하나님은 우리의 도움이십니다.  그 하나님은 우리의 승리이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아무데서도 도움을 얻지 못할 때 어디를 쳐다보십니까?  시편 121편 1절과 2절의 말씀을 기억하십니까?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시편 기자는 나의 도움이 천지를 창조하신 여호와에게로서 온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이 별로 도움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럴 때가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어떤 사람을 기대했다가 좌절과 실망을 겪었던 일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성경은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람은 우리가 의지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베풀어야 할 대상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진정한 도움이신 하나님만을 의지하십시오.  그러면 도움이 올 것입니다.  승리가 올 것입니다.  우리는 그때 비로소 여호와 닛시라고 찬양하며 승리의 깃발을 높이 올리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인생은 싸움입니다.  하루하루가 싸움입니다.  이 싸움의 마당에서 승리의 깃발을 높이 올리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이제 인생의 골짜기에서 일어나 눈을 뜨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을 주목하십시오.  그리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십시오.  그분이 내 인생 속에 개입하는 순간 우리의 상황은 역전될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의 원수들 앞에서 승리의 깃발을 높이 올리게 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영적 전쟁에서 승리의 깃발을 높이 올리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세 번째로, 하나님이 도우신 승리를 기억하셔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승리를 거두자마자 하나님은 모세로 하여금 이 승리의 사적을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본문 14절의 말씀입니다.  다같이 읽도록 하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 내가 아말렉을 없이하여 천하에서 기억도 못 하게 하리라."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왜 기록하게 하고, 기념하게 하셨을까요?
저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첫째 이유는, 아말렉과의 싸움은 아직 완전히 끝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전쟁에서 승리했지만 아말렉은 또 다시 공격해 올 것입니다.  본문 16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런 경고를 하십니다.  "아말렉과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인생은 단 한 번의 싸움이 아닙니다.  하나의 싸움이 지나가면 또 다른 싸움이 찾아옵니다.  이 사람과의 싸움이 끝나면 저 사람과의 싸움이 시작됩니다.  남편과의 싸움이 끝나면 자식과의 싸움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인생은 전쟁의 연속입니다.  계속되는 전쟁 속에서 우리가 승리의 깃발을 높이 올리려면 과거에 내가 승리했을 때 어떻게 승리했는가를 곰곰히 생각해 보십시오.

사랑하는 여러분, 내가 앞으로 나아갈 길이 없는 사면이 꽉 막혀 있는 상황에서 정말 엎드려서 기도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했을 때 하나님이 승리를 주셨다고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이 사실을 잊어버리시면 안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자주 잊어버립니다.  그렇게 힘들고 암담하던 때에 기도하고 부르짖던 내가 그 싸움에서 승리하고 나니까 공로를 자신에게로 다 돌려버립니다.  내가 잘 해서 그 문제를, 그 싸움에서 승리했노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다른 상황에서 동일한 문제를 만났을 때 전혀 기도하지 않고 나 혼자만의 힘으로 싸우고 버티려고 몸부림을 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잊어버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잊어버리기 쉬운 존재입니다.  한때 그렇게 간절히 기도했던 내가 지금은 기도를 잊어버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기록하라고 하십니다.  기록만 할 것이 아니라 기념하라고 했습니다.  계속해서 그것을 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과거에 하나님께서 나에게 어떻게 승리하게 하셨는지를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지나간 역사에서 배우지 못한 사람은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승리할 수가 없습니다.  과거의 역사에서 배우지 못한 사람은 오늘과 내일에 승리자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기록하고 기념하게 했을까요?
두 번째 이유는, 우리의 승리의 원인이 되시는 하나님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존재로 살 것을 기대하시기 때문입니다.

15절에 보면 모세는 승리했던 그 자리에 제단을 쌓았다고 했습니다.  그 제단이 구실을 하고 역할을 하려면 두 가지가 있어야 합니다.  제물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어떤 제물을 드렸을까요?  이 전쟁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승리할 수 있었다.  내가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도와주셔서 이렇게 승리할 수가 있었다.  이것을 확실히 체험했다면 그들은 제단에 감사의 제물을 드렸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제사는 감사의 제사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여호와 닛시'의 제단은 단순히 승리의 제단이었을 뿐만 아니라 감사의 제단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감사하는 영성이야 말로 미래의 또 다른 승리를 준비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감사는 또 다른 영적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디딤돌이 될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감사를 잊어버린 사람을 쓰신 일은 없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했다가 하나님께서 내 삶에 도움을 베풀어주시면 우리는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맙니다.  그래서 감사가 생활화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안타까운 것은 오늘 현대인들은 감사에 대해서 감사하지 않습니다.  옛날 우리의 부모님들은 아주 작은 감사한 일이 있어도 분에 넘치게 감사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고 세상 속에서 승리의 깃발을 높이 올리는 인생이 되기 위해서는 감사의 영성을 회복하셔야 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아주 작은 일들 앞에서도 감사의 제단을 쌓으십시오.  작은 일에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큰 일 앞에서도 결코 감사할 수 없습니다.  지난 날 우리를 도우시고 승리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인정하고 감사할 줄 아는 성도들에게 하나님은 또 다시 감사드릴 승리의 미래를 열어 주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의 이름이 '여호와 닛시'이십니다.

오늘 말씀을 마치면서 저는 성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우리 모두에게 권면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인생 광야에서 끊임없이 다가오는 영적 전쟁에서 승리의 깃발이 되시는 하나님, 여호와 닛시가 되시는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승리하십시오.  제발 세상 속에서 이리 박히고, 저리 쳐 박혀서 맥없는 인생을 살지는 마십시오.  바람에 나부끼는 소리에도 겁을 먹고 두려움에 떠는 나약한 인생을 살지는 마십시오.  작은 일들 앞에서 넘어져서 허우적거리는 부끄러운 인생을 살지는 마십시오.  그러기 위해서는 다시 예수 그리스도의 피 묻은 복음 앞에 서십시오.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내가 믿고 의지하는 하나님께서 승리의 깃발이 되신다면 그분을 믿는 우리도 당연히 인생 광야에서 승리의 깃발을 올릴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진리의 검을 들고, 복음의 전신 갑주를 입고, 복음의 군기를 손에 높이 들고 앞으로 나아가십시오.  승리는 반드시 우리의 것이 될 것입니다. (오주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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