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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역하는 교회가 건강합니다 (고전 3: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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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역하는 교회가 건강합니다 (고전 3:5-11)

: 5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냐 그들은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 6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 7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 8 심는 이와 물 주는 이는 한가지이나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 9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10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울까를 조심할지니라. :11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누리는 행복하고 건강한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우리교회의 2013년도 표어는 “행복한 사람, 건강한 교회”입니다. 행복과 건강은 모든 사람들이 원하고 기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살펴본 행복은 세상이 말하는 것과는 사뭇 다릅니다. 우리의 행복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사람의 행복입니다. 

성도들과 교제하는 사람의 행복입니다. 영성 있는 사람의 행복입니다. 또 건강도 열심히 운동을 해서 누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건강한 교회가 되기 위하여 신앙의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훈련은 깨우치는 것이요, 연단하는 것이요, 수고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훈련한 그리스도인은 좋은 일꾼의 삶, 조화로운 삶, 소망스러운 삶을 살게 됩니다. 이런 그리스도인이 바로 건강한 교회입니다. 우리교회가 신앙을 훈련을 통하여 건강한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이제 사역하는 교회가 건강하다는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교회가 사역을 할 때, 교회가 사역할 수 있을 때 건강합니다. 

그런데 사역이란 무엇입니까?

‘장발장’으로 널리 알려진 ‘레미제라블’이 요즘 영화로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이를 기회로 레미제라블을 패러디한 공군버전 ‘레 밀리터리블’도 유명하게 되었습니다. 그 내용은 ‘제설! 제설! 제설!’ 제설 작업하는 군인의 애환을 다룬 것입니다. 

군 생활을 하신 분들이 대부분 달갑지 않은 기억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겨울에는 눈 치우고, 가을에는 낙엽 줍고, 여름에는 잡초 뽑는 일입니다. ‘내가 나라를 지키려왔지 잡초나 뽑으려 왔나!’하며 중얼거리던 기억이 제게도 있습니다. 군대에서 이런 일을 사역이라고 하였습니다. 

사역은 ‘본래의 임무 이외에 임시로 하는 잡무’입니다. 군인의 임무라기에는 좀 아리송한 일을 군대에서는 사역이라고 합니다. 주로 졸병들의 몫이었습니다. 쉬는 시간에 ‘사역병 몇 명 집합!’하면 휴식을 포기하고 달려가야 하는 것이 군인들에게 사역입니다. 그런데 이 사역(使役)이 ‘사람을 부리어 일을 시킴. 또는 시킴을 받아 어떤 작업을 함’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생각하려는 것은 사역입니다. 
  
I. 사역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사역을 위하여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다른 사람을 섬기고 봉사하는 일을 하여야 합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사역 또는 섬김이라고 합니다. 성도들이 일하는 교회, 봉사하는 교회가 건강한 교회입니다. 이 시간에는 사역의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사역의 원칙에 대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사역이란 무엇입니까?
5절 말씀입니다.

: 5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냐 그들은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오늘 말씀의 배경은 그리 썩 유쾌한 것이 아닙니다.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이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과 같다고 꾸짖는 내용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젖으로 먹이고 밥을 먹일 수 없는 연약한 교회였습니다. 그것은 그들에게 시기와 싸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 중에는 ‘나는 바울 편이다’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또 ‘나는 아볼로 편이다’ 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사람을 따라 편을 갈랐습니다.

이런 그들을 향하여 “그렇다면 아볼로는 무엇이고, 바울은 무엇입니까? 아볼로와 나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각각 맡겨 주신 대로 일하였을 뿐입니다.”[새번역]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자신과 아볼로를 사역자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을 믿음으로 인도한 일꾼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믿음을 위하여 섬기는 일을 했습니다. 아볼로도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믿음을 위하여 섬기는 일을 하였습니다. 바울과 아볼로는 같은 목표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이었습니다. 

1. 사역은 같은 목표를 위하여 일하는 것입니다.

사역을 이해할 때 첫 번째로 꼽아야 하는 것은 바로 공동의 목표를 위하여 일한다는 것입니다.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서 같은 일을 하지만 목표가 다르다면 사역이 아닙니다. 교회에서 사역은 하나님의 선하신 일이라는 한 목적으로 일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일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사역을 위해서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b)는 말씀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교회에 함께 모여서 열심히 일하기는 하는데 자신의 영광이나 이익을 위하여 일한다면 그것은 교회의 사역이 아닙니다. 

교회에서 목사는 하나님을 위하여 일하여야 합니다. 장로님들도 하나님을 위하여 일하여야 합니다. 권사님들도 하나님을 위하여 일하여야 합니다. 집사님들도 하나님을 위하여 일하여야 합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위하여 일하여야 합니다. 만약 개인적인 이익을 위하여 일한다면 그것은 사역이 아니라 사욕(私慾)이 됩니다.

정말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하여 함께 일하는 교회가 더욱 되어가기를 소원합니다.
  
또, 사역이란 무엇입니까?
다시 5절 말씀입니다.

: 5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냐 그들은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우리는 사역에 대하여 첫 번째로 같은 목표를 위하여 일하는 것이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로 반드시 기억하여야 할 것은 각각 맡은 일을 한다는 것입니다. 사역의 이해를 위하여 아주 중요한 내용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각각 맡겨 주신 대로 일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각각[e{kasto"/헤카스토스]’은 ‘한 사람 한 사람으로써 모두’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 각자 자신에게 주어진 은사를 따라서 일하는 것입니다.


2. 사역은 각각 주신 대로 일하는 것입니다.

사역은 위하여 자신이 하나님께 받은 은사대로 섬기는 것이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이 맡겨주신 일은 각각 다릅니다. 바울은 복음의 진리를 선포하여 고린도 교회를 세우는 일을 하였습니다. 아볼로는 성경의 지식을 활용하여 고린도 교회를 훈련시키는 일을 하였습니다. 바울과 아볼로는 각각 받은 은사가 달랐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일로 교회를 섬겼습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의 어떤 사람은 ‘나는 바울이 더 좋다’고, 어떤 사람은 ‘나는 아볼로가 더 좋다.’고 편을 갈랐습니다. 이것은 각자의 은사를 이해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일입니다.

얼마동안, 저는 식당에 가서 고기를 먹으면서 ‘갈매기살’을 갈매기처럼 생긴 살인 줄 알았습니다. 갈매기살을 갈매기 고기로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돼지의 뱃속을 가로로 막고 있는 막이라 해서 붙여진 가로막살이라는 것이 있는데, 가로막살이 변형되어 갈매기살로 불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쇠고기도 돼지고기도 부위 별로 이름이 다르고, 부위별로 용도가 다릅니다. 요리마다 사용하는 고기의 부위가 다릅니다. 제대로 된 맛을 원한다면 적합한 고기를 사용하여야 합니다.

사람마다 더 좋아하는 고기의 부위가 있듯이 사람마다 더 좋아 하는 은사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역은 그야말로 하나님께서 각각 나누어 주신 대로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은사로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각각의 은사를 주셨습니다. 내가 받은 은사로 봉사하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교회는 선교를 위하여 일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예배와 속회를 위하여 섬기는 분들이 있습니다. 교육을 위하여 일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교회학교 각 부서에서 섬기는 교사들이 있습니다. 사회봉사를 위하여 일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여러 봉사 기관에서 섬기는 대원들이 있습니다. 문화를 위하여 일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찬양대와 찬양단 등에서 섬기는 대원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재무와 관리를 위하여 일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각각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대로 일하여 섬기는 분들입니다. 주님을 위하여 진심으로 섬겨 일하시는 모든 사역자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각각의 은사를 따라서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배우는 사역이란 또 무엇입니까?
6절 말씀입니다.

: 6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여기에 사도 바울의 사역관이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바울 자신은 고린도교회에 복음을 심는 일을 하였고, 아볼로는 복음에 물을 주는 일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복음을 자라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성도들의 믿음을 자라나게 하여야 한다는 한 가지 목표를 가졌습니다. 이 목표를 위하여 심고 물주는 일을 각각 하였습니다. 그러나 오직 하나님이 자라게 하셨습니다. 사역자들은 자신들을 통하여 하나님이 일하실 것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3. 사역은 자라나게 하심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사역은 하나님께서 나를 통하여 일하실 것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내가 순종한 바로 그 일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통하여 일하셨습니다. 모세를 통하여 일하셨습니다. 다윗을 통하여 일하셨습니다. 또 우리를 통하여 일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할 때 바로 그 일을 통하여 하나님은 다른 사람의 믿음이 자라나게 하십니다.

빌리 선데이(Billy Sunday)라는 미국의 유명한 전도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사역 초기에 이런 에피소드가 있었습니다. 

그는 말을 아주 잘 할뿐더러 야성적인 스타일의 전도자였습니다. 한 번은 아주 열렬하게 침을 튀기면서 열심히 설교를 끝낸 후였습니다. 교인들과 인사를 나누기 위해 현관에 서있었습니다. 한 교인이 와서 “아! 목사님, 그런 열렬하고 뜨거운 설교는 처음 들었습니다.”라고 칭찬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옆에 서계셨던 나이 많은 목사님이 옆구리를 쿡 찌르면서 “기도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뭐라고 기도할까요?”했더니 그 목사님은 “교만하지 말게 하소서”라고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다음, 어떤 교인이 오더니 “목사님! 무슨 설교를 그렇게 무례하게 하십니까? 시험 들겠어요?”라고 했습니다. 그 순간 또 옆에 있는 나이 많은 목사님이 “기도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또다시 그는 “뭐라고 기도할까요?”라고 물었더니, 이번에는 “낙심하지 말게 하소서!”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잘한다고 해서 교만해서 안 되고, 못한다고 해서 낙심해서도 안 되다는 가르침이었습니다. 다만 자신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일하신다는 것을 인정하고, 자신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일하실 것을 바라고 소망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교만하지도 말아야 하지만 낙심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낙심하지도 말아야 하지만 교만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다만 주님이 나를 통하여 일하심을 감사하며 기뻐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통하여 놀랍게 일하실 것을 바라보시기를 축원합니다. 
  
사역은 같은 목표를 위하여, 각각 자신에게 주신 은사대로, 하나님께서 일하실 것을 바라보고 섬기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역하는 그런 교회가 건강합니다.

  
II. 건강
  
사역함으로 보게 되는 건강한 교회의 모습은 어떤 것입니까?
8절 말씀입니다.

: 8 심는 이와 물 주는 이는 한가지이나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바울은 복음의 씨앗을 심은 자신이나 복음에 물을 준 아볼로나 동등한 사역자로 보았습니다. 그리고 각각 수고한 만큼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상[misqov"/미스도스]’은 일에 대한 대가로 지불된 급료나 보상을 가리킵니다. 수고하고 애쓴 사람에게 주는 상급입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상 주실 것을 기대하였습니다. 인생의 만년에 바울은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딤후 4:8a)라고 하였습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주실 상을 분명하게 바라보았습니다.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고전 9:24)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실 상을 기대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상이 많은 사람이 영적으로 건강한 사람입니다. 

1.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습니다.

우리가 사랑하며 섬기는 사역이 오로지 상 받기 위한 목적이라면 문제가 있습니다. 상을 받으려고 일하는 것은 기복신앙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 칭찬받으려고 교회 일을 하는 사람은 사역의 목적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사역의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사역의 결과로 하나님의 상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상을 주시기를 기뻐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의 수고에 반드시 보상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작은 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마 10:42)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상이 많다는 것은 행복한 신앙의 모습입니다. 기왕에 주님을 위하여 봉사하고 섬기는 것이라면 반드시 주님께 칭찬 듣고 상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상이 풍성한 사람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사역하는 교회의 건강한 모습은 또 어떤 것입니까?
9절 말씀입니다.

: 9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바울은 앞에서 자신을 하나님의 심부름꾼이라고 하였습니다. 바로 사역자라는 말은 심부름꾼이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하나님의 동역자하라고 하였습니다. ‘동역자[sunergov"/쉬넬고스]’는 ‘함께 수고하는 자’, ‘협조자’라는 말입니다. 우리에게는 함께 일하는 협조자가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와를 창조하신 이유는 아담의 돕는 배필이 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부족한 인간에는 반드시 돕는 자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부족함이 없는 하나님께 우리가 동역자라면 신성모독이 아닙니까? 하지만 분명히 오늘 말씀은 하나님의 동역자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부족하여 우리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말이 결코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의 일에 참여 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게 하십니다.

건강하지 못한 교회의 모습은 사람들이 모여서 사람의 일을 하는 또 하나의 이익집단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건강한 교회의 모습은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이 세상에서 일하시는 것을 세상이 보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것을, 하나님이 우리를 사용하시는 것을 세상에 보여주어야 합니다.

데이비드 리빙스턴([David Livingstone: 1813-1873), 그는 아프리카 선교의 아버지라고 불립니다. 그는 중국에 의료선교사가 필요하다는 말을 듣고 의학을 공부했습니다. 그러나 중국의 혼란스런 상황 때문에 선교지를 아프리카로 바꾸었습니다. 리빙스턴이 아프리카로 떠난다는 소식을 듣고 그의 형 존이 찾아왔습니다. 스코틀랜드에서 병원을 개업하면 탄탄한 앞날이 보장된다며 아프리카로 가지 말라고 설득하였습니다.

“네 소원대로 미개인들에게 가면 네 인생은 매장되겠지만, 나는 이곳 영국에 머물면서 이름난 의사가 될 것이다.”

동생 데이비드는 소명대로 아프리카로 갔습니다. 형 존은 영국에서 유명한 의사가 되어 돈과 명예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100여년의 세월이 흐른 뒤, 누가 더 유명하게 되었습니까? 데이비드의 활동은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 14줄로 자세히 기록되어 있지만, 그의 형 존은 겨우 한 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도 리빙스턴의 형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일한 사람의 공적은 영원히 남습니다. 하나님의 동역자, 감히 하나님의 일에 참여하는 영광을 누림이 우리 모두의 기쁨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교회가 사역을 하게 되면 어떤 건강한 모습을 갖습니까?
10절 말씀입니다.

:10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울까를 조심할지니라. 

바울은 복음을 위하여 터를 닦았습니다. 여기에서 ‘터[qemevlio"/데멜리오스]’는 ‘기초로 놓여진’ 것입니다. 바울이 기초를 놓았더니 그 기초 위에 다른 사람은 집을 짓게 되었습니다. 바울의 사역이 다른 사람들의 사역의 발판이 되었습니다. 내가 한 일이 다른 사람이 더 큰 일을 할 수 있는 기초가 된다면 이보다 영광스러운 일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것이 건강한 교회의 모습니다.


3. 또 다른 사역의 기초가 되게 하십니다.

하나의 사역은 또 다른 많은 사역의 기초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의 사역이 또 다른 많은 사역의 기초가 될 때 발전이 있습니다. 기초 과학이 중요한 것은 그것을 발판으로 다른 많은 발전을 도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앙을 통하여 또 다른 많은 사람이 신앙을 가지게 될 때 건강한 신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이 교회를 위하여 수고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닦아둔 터가 있었기 때문에 그 위에 우리가 집을 지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의 수고를 발판으로 더 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세워져야 합니다. 아버지를 능가하는 아들이 나와야 합니다. 할아버지가 한 일을 기초로 하여 더 큰 일을 할 수 있는 손자가 나와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이 더 큰 사역의 기초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모든 사역, 선교, 교육, 사회봉사, 문화 등등의 사역이 더 많은 사역으로 활짝 꽃피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순자는 “푸른색은 쪽에서 취했지만 쪽빛보다 더 푸르고, 얼음은 물이 이루었지만 물보다 더 차다.”고 하였습니다. 어제가 오늘의 기초가 되었듯이, 오늘이 내일의 기초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터 닦고 있는 기초 위에 더 많은 사역을 이루어지는 것을 보기를 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건강한 교회의 역설이 있습니다. 건강한 교회의 특징은 분쟁(?)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교회가 그랬습니다(행 6:1). 고린도교회가 그랬습니다(고전 3:4). 이것은 교회에 분쟁이 있어야 한다거나, 분쟁이 좋다는 말이 아닙니다. 분쟁은 아름다운 것이 결코 아닙니다. 다만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죽은 듯이 잠들어 있기에 갈등도 없는 교회보다는, 사역에 힘씀으로 역동적인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몸을 활발하게 움직일 수 있을 때 건강한 몸이 듯이 교인들이 활발하게 사역할 때 건강한 교회입니다. 

사역은 같은 목표를 위하여, 각각의 은사를 발휘함으로,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입니다. 그 때 일한 사람들은 자기의 상을 받고, 하나님의 동역자 되며, 또 다른 사역으로 발전됩니다.

모든 성도가 사역하는 건강한 교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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