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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아버지께…하라 (마 5:13-16)

첨부 1


아버지께…하라 (마 5:13-16)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13)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14)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15)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16)
<마태복음 5장 13~16절>

할렐루야! 
밝은 모습으로 뵙게 되어 감사합니다. 평안하시지요?

세상에는 별난 식당들이 많습니다.
- 감옥 같이 만든 식당이 있습니다.
종업원은 간수 복장을 하고,
손님은 죄수처럼 철창 속에 가두고 … 음식을 서빙합니다.
교회 주변에도 그런 식당이 있었는데 없어졌는지, 
지금도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 유치원 같은 식당도 있습니다.
손님을 어린이 취급하고 종업원은 선생님 복장을 한답니다.
- 미국 라스베가스(Las Vegas)에는
병원처럼 꾸며진 식당이 있답니다. 
직원들은 간호사 복장을 한 채 서빙을 하고
직원들은 손님을‘손님’이 아닌 ‘환자’라 부른답니다.
‘심장마비 그릴(Heart Attack Grill)’이라는 이름의 이 식당은
대표 메뉴가 ‘심장마비 버거’인데 …
높이가 25cm, 무게가 1.4kg인 
초대형 햄버거를 만들어 판다고 합니다.

심장마비 버거는 
성인 남성의 하루 권장 열량의 4배가 넘는 열량으로 
지난 해 기네스북에 오르기도 했답니다.
그런데 남들과 다른 메뉴 … 
남들과 다른 식당 운영 방식으로 잘 나가던 
심장마비 그릴의 지배인 존 에일맨(John alleman, 52) 씨가
며칠 전(2월 11일) 길을 가다 심장마비로 사망했습니다.
존 에일맨은 건강을 염려하는 주변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식당 홍보 전략의 일환으로 
엄청난 열량의 그 심장마비 버거를 정기적으로 먹었다고 합니다.
<2013년 2월 14일, 조선일보, A18면, 참조>

도전하고 변화하는 것도 좋지만 …
도전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일에 도전해야 하고
변화할 만한 일에 변화해야 합니다.
쓸데없는 일에 경쟁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를 들면 콜라를 한 번에 누가 빨리 마시나 … 
이런 일에 도전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생명을 살리고, 영혼을 살리는 일에 도전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높이 들고 우리의 믿음을 표현합니다.

저는 예수 믿어 구원받았습니다(요3:16).
저는 예수 믿어 하나님 자녀 되었습니다(요1:12).
저는 예수 믿어 천국 백성 되었습니다(빌3:20).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오늘(시118:24),
하나님 말씀으로 가르침을 받습니다(딤후3:14~17).
눈을 열어 주의 법 안에 있는 
놀라운 진리를 보고 깨닫게 하소서(시119:18).
"아멘"으로 순종하여(고후1:20)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 되게 하소서(마5:16).
아멘.

그런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미 … 소금과 빛

예수님께서는 사역 초기 갈릴리 호수 주변의 작은 산에서 
- 8가지 복 (마 5:3~10)
- 소금과 빛으로 살아야 한다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 (마 5:13~16)
- 구제와 금식을 하는 방법 (마 6:1~4/6:16~18)
- 재물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자세 (마 6:19~34)
- 이웃을 대하는 태도 … 등에 대해 가르치셨습니다. (마 7:1~12)
마태복음 5~7장까지 
예수님의 가르침을 ‘산 위에서’ 했다고
‘산상설교(산상수훈, 산상보훈)’라고 합니다.

본문 말씀도 산상설교 중 한 부분에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세상의 소금 …”(마 5:13) 이라 하셨고

“너희는 세상의 빛 …”(마 5:14) 이라 하셨습니다.

소금은 음식의 맛을 내는 역할을 합니다.
빛은 어둠을 몰아내어 볼 수 있도록 해 줍니다.
그러므로 소금과 빛은 변화를 일으킵니다.

유진 피터슨이 번역한 ‘메세지 성경’에는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라는 말씀을 이렇게 번역해 놓았습니다.

“너희는 소금을 쳐서 이 땅에 
하나님 맛을 드러내라고 여기 있는 것이다” (마 5:13, 메시지성경)
“You’re here to be salt-seasoning that brings out 
the God-flavors of this earth.” (The Message)

세상의 소금으로서 그리스도인이 이루어야 할 변화는
이 땅에 하나님의 맛을 내는 것입니다.
하나님 맛을 내기 위해 뿌려져야 하는 양념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세상의 빛도 마찬가지입니다.

“너희는 빛이 되어 세상에 
하나님의 빛깔을 드러내라고 여기 있는 것이다.”
(마 5:14, 메시지성경)
“You’re here to be light, 
bringing out the God-colors in the world.” (The Message)

그리스도인이 추구해야 할 변화는
하나님의 색깔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소금이 되고 빛이 되기 위해 
어떤 특정한 행동을 하라는 명령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예수 믿고 구원 받은 그리스도인은 이미 
「세상의 소금」이요, 「세상의 빛」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어 천국의 소망을 두고 사는 우리는
세상을 하나님의 맛으로 변화시켜야 하는 소금이며,
세상에 하나님의 색깔을 드러내야 하는 빛입니다.
예수 믿는 우리는 이미 그렇게 살아가야만 하는 사람입니다.

소금과 빛의 가치

바닷물에 녹아 있는 소금은 물의 밀도와 부력을 높여 
일반 담수보다 사람을 잘 뜨게 합니다.
그런데 바닷물에 녹아있는 소금의 양은 
3%밖에 되지 않는답니다.
전체 100중에 3으로 인해 물체를 뜨게 하는 
바닷물의 힘이 달라지고 바닷물의 맛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김제완, 『자연과 우주의 수수께끼 78』 
(서울: 서해문집, 1999), p.203. 참조.>

한국 기독교 목회자 협의회에서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2012년 현재 우리나라 기독교 인구가 30.6%라고 합니다.
개신교만 22.5%라고 합니다. 
천주교(10.1%)를 포함하면 30%가 넘지만
조금 부풀려 진 것이라 여겨집니다.

그러므로 기독교 인구가 10%라고 가정했을 때 
전 국민의 10%가 넘는 많은 기독교인들이 있는데
그들이 사회에서 소금의 역할을 하고 있느냐 말입니다.
바닷물은 3%의 소금으로 인해 일반 담수와 구별되는데
세상의 소금인 그리스도인 30%가 살고 있는 우리 사회는
하나님의 맛을 제대로 내고 있지 못합니다.
우리가 소금으로서의 사명을 잘 감당하고 있는가 점검하고 
확인해 보아야 합니다. 
<2013년 1월 31일, 국민일보 29면, 참조>

카레를 요리할 때 카레 분말을 물에 미리 개지 않고 
곧바로 냄비에 넣으면
카레 가루가 풀어지지 않아 덩어리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커피 믹스를 타 마실 때도
잔에 뜨거운 물을 붓고 수저로 잘 저어주지 않으면
커피 가루가 녹지 않고 뭉치기도 합니다.
미숫가루를 타 마실 때도 덩어리가 뭉쳐 있으면
마시기에 불편할 뿐 아니라 맛도 떨어집니다.

가루가 녹지 않고 덩어리가 되면
제 맛을 내지 못하고, 음식 맛을 제대로 내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세상의 ‘소금덩어리’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녹아 없어지는 맛을 내는 소금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뭉쳐서 
덩어리로만 남아 있으려 한다면 아무 필요가 없습니다. 
믿는 사람끼리 너무 세게 뭉쳐있으면 
다른 덩어리끼리 서로 부딪쳐 서로 공격하고 
서로 무너뜨리는 경우도 생깁니다.

목회자들 중에도 출신학교별로 묶여 있고, 
교회들도 교파에 따라 똘똘 뭉쳐 있습니다.
그 뭉침이 그 단단함이 얼마나 심각한 지경임을 잘 알면서도 
떨어지려 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소금인 사람끼리 모여서 / 너무 꼭꼭 붙어서 /
너무 단단한 덩어리가 되어서 
서로 상처주고 … 서로 외면하고 보지 않으려 합니다. 
이런 게 문제입니다.

저는 우리교회 부교역자들에게 자주 얘기합니다.
너무 단단하게 똘똘 뭉쳐 있는 선교회나 속회는 
흩어 놓으라고 합니다.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려 하지 않고, 
새로운 사람이 들어오는 것도 꺼려하며 
자기들끼리만 뭉치려고 합니다.
그런 선교회나 속회는 반드시 흩어 놓아야 합니다.

예전에 고운 분말로 된 기침 약(용각산) 광고 중에 
이런 멘트가 있었습니다.
“이 소리가 아닙니다. 이 소리도 아닙니다.
이 약은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세상의 소금인 성도는 
시끄러운 소리가 나면 이미 성도가 아닙니다.
똘똘 뭉쳐 있으면 
그것은 소금으로서의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가는 곳마다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 …
마주치고 닿기만 하면 소리를 내는 사람은 …
고운 가루가 되지 못한 사람이요, 
녹아지지 못한 소금이 되지 못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깨진 모습으로 녹아져서 일하기를 원하시지
덩어리로 있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교회는 짠맛은 남지만 형체는 없어진 
맛을 낸 소금이 모인 곳이어야 합니다.
<2007년 3월 31일, 국민일보 27면, 참조.>

빛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을 태워 밝히는 역할을 해야 빛이지
자신의 형체를 간직하고 있다면 이미 빛이 아닙니다.

경북 포항 호미곶에는 등대박물관이 있답니다.
한국 등대의 발전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국내 유일의 등대 박물관인 그곳에서는
우리나라 각지에 있던 등대의 역사와
등대지기들의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고 합니다.

등대는 어두운 밤바다에서 배들에게 길을 안내해줍니다.
그러나 박물관에 있는 등대들의 공통점은
형체만 있고 지금은 빛을 발하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를 
‘세상의 소금’, 또한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지금 세상의 빛인 성도들이 모인 교회가
박물관 속의 등대처럼 불이 꺼져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 돌아보아야 합니다.

지난 백여 년 간의 우리 역사에서 교회는 분명 빛이었습니다.
일제강점기부터 전쟁과 민주화 시대에 이르기까지 
교회는 세상 속에서 고난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선교사들은 병원과 학교를 세웠고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독립과 국가 재건을 위해 앞장섰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일은 과거의 역사일 뿐입니다. 
마치 박물관의 등대처럼 고맙고 자랑스러운 일이지만 
과거의 그 추억이 지금도 우리를 빛으로 만들어주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 우리는 박물관의 등대를 보며 추억에 빠지듯
예전에 했던 일 …, 예전에 받았던 칭찬 …
예전에 누렸던 대우만 기억하며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오늘 … 바로 지금 이 순간 빛이 되어 
자신을 태우고 있는가, 자신을 녹이고 있는가 점검해야 합니다.
<2011년 10월 15일, 국민일보 22면, 참조.>

예수님은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하셨습니다.
그러나 녹지 않는다면, 녹지 않으려 한다면
타지 않는다면, 타지 않으려 한다면 존재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

성경은 우리가 소금과 빛으로 존재하는 이유를
명확하게 알려주었습니다.

“ …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사는 것이 쉽지 않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도전하고 변화하려는 이유는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요 15:8)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소금으로 … 빛으로 살며
그 열매를 많이 맺으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기 때문입니다.
착한 행실을 보이라는 것입니다.
인터넷으로, 휴대전화로 말씀을 듣는 분들도 생각해 보십시오.

지난 한 주간 동안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보고
‘저 사람은 정말 착한 사람이다’라는 마음을 가졌을까 생각해 보십시오.
운전을 할 때도 예수 믿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을까?
제가 가끔 부목사님들이나 장로님들이 운전하는 차를 탔을 때 
느끼는 점이 있습니다.
운전대만 잡으면 평상시 알고 있던 모습과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이는 분들이 있습니다.
저도 그분의 그런 모습에 깜짝 놀랄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착한 행실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고 했고
사람들이 우리의 착한 행실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하라고 했는데 
지난 한 주간 어떻게 사셨습니까?

요즘에는 교회 예배 중계나 예배실 화면도
고화질의 HD(High Definition) TV를 많이 사용합니다.
얼마 전 만났던 목사님이 
자기가 섬기는 교회 예배 중계 화면을 
HD급으로 억대의 카메라로 바꾸었다고 자랑하시더군요.
그런데 목사님들 얼굴의 피부 결까지 세밀하게 보여서
모두 방송용 메이크업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HD급 화질에서는 그만큼 실감나고 세밀한 표현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인생도 HD급 고화질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우리를 안보는 것 같지만 예수 믿는 우리를 다 보고 있습니다.
우리의 착한 행실을 통해 다른 사람들이 살맛나게 해주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셔서 영광 받으시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 사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에드 영, 『고품격 크리스천』 
(서울: 사랑플러스, 2004). pp.176~180. 참조.>

예수님은 그렇게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의 방법으로
‘착한 행실’을 말씀하셨습니다. (마 5:16)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의 섬김에 관해 말할 때
마태복음 6장 3절 말씀을 언급합니다.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마 6:3) 하라고 했습니다.

구제는 “자연적인 재해나 사회적인 피해를 당하여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을 도와주는 것”을 말합니다.
드러나지 않게 남을 구제하는 것은
도움 받는 사람의 인격을 존중해 준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특별한 사연이 있어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을 도울 때에는
남들 모르게 / 조용히 / 도움 받는 사람이 불편하지 않게 /
부끄럽게 여기지 않게 … 도와주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구제 이외의 모든 선행을 ‘모르게’ 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이 구제를 은밀하게 하라고 하신 이유는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려고 …”(마 6:2) 하는 것을 
염려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다른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려는 목적이 문제인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섬기는 일은 오히려 드러내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일해야 합니다.
교회가 착한 행실로 인해 세상의 모범이 되고
그런 우리를 보며 세상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 
박수 받고 칭찬 받고 영광 받을 것이 아니라면 … 
착한 행실을 사람들에게 보여지게 하여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게/영광을 돌리게 해야 합니다.

여러분, 지난 한 주간 어떤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이셨습니까?

소금으로 맛을 내고, 빛으로 어둠을 몰아내는 삶이
사람들에게 보여져야 합니다.
사람들은 감추어서 몰래 해야 한다고 하면서 아예 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정체성

이번 겨울에는 눈이 많이 와서 
차량을 관리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강추위에 고장이 나는 차들도 많고
길에 눈이 좀 녹나 싶으면 다시 눈이 내려서
차량 외관을 깨끗하게 유지하기도 어려웠습니다.

어느 목사님이 운전하며 길을 가는데
트럭 한 대(L 슈퍼 운송 차량)가 눈에 띄었다고 합니다.
그 트럭은 겨울이 시작된 이후로 한 번도 세차를 하지 않았는지
그려진 문구가 간신히 보일 정도로 새까맸는데
‘신선한 상품 … ’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새까만 차와 그 문구가 도무지 어울리지 않았고
왠지 그 차 안에 있는 물건이 신선해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중심을 보신다고 했지만(사무엘상 16:7),
그 사람의 중심은 
그 사람의 삶의 태도에/겉으로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
하나님께 예를 갖추어 절하는 사람, 
다시 말해 예배드리러 교회에 올 때에는(절하러 올 때 ~) 
최고로 단정한 옷을 입어야 합니다.
새 옷을 입고, 비싼 옷을 입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단정한 옷차림을 하라는 말입니다. 

여러 교역자들이 모이는 곳에 가도
기둥교회 목사님들은 쉽게 구별됩니다. 
언제 어디서든지 단정한 차림을 하라고 제가 늘 강조합니다.
외모가 중요한 것은 아니나 
복음을 전하는 목회자가 깨끗하지 못하면
사람들에게 거부감을 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단정하고 깨끗한 것이 중요합니다.

소금과 빛의 삶으로 
다른 사람을 하나님께 인도해야 할 그리스도인의 삶이
도저히 가까이 갈 수도 … 만질 수도 없을 만큼 
지저분해 보인다면 신선한 것을 전할 수가 없습니다.
<2009년 5월 2일, 국민일보 21면, 참조.>

예수 믿어 구원 받은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뿌려져 녹아야 할 소금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을 태워 세상을 비추는 빛입니다.

가정과 일터에서 …
여러분이 정말 녹아져 있습니까? 지금 타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가정에서 여러분이 만나는 사람들 사이에서 
정말 살맛나지 않고, 만날 맛이 나지 않습니까?
그것은 상대방에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 자신이 녹지 않은 것입니다.
침침합니까? 여러분 자신이 타고 있지 않은 것입니다.

여러분이 생각하기에 
기둥교회가 하나님 마음에 드는 교회인지 아닌지 …
기둥교회에 다닐 마음이 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다른 사람에게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 녹지 않은 것입니다. 

지금까지 빛을 비추지 못했다면 / 타지 않았다면
이제는 자신에게 불을 붙여 태우는 변화를 감당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미 세상의 소금과 빛이라는
정체성을 부여받은 그리스도인입니다.

가는 곳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고 (고후 2:15)
이야기 하는 것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며 (고후 3:3)
머무는 곳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거울이 되어 (고후 3:18)
우리의 선행을 통해 하나님께는 영광을 돌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살맛나고 
깨끗하고 밝은 모습을 볼 수 있게 우리가 녹아지고 타야 합니다.
우리가 소금이 되기 위해서 / 빛이 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가 소금이며, 빛입니다.
우리에게 맡겨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는
하늘백성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소금이라고, 빛이라고 우리에게 선언해 주셨음을 감사합니다.
하나님과 사람 앞에 부끄러움 없는 하늘 백성으로 살기 위하여
우리가 녹아지고, 타 없어져가며, 맛을 내며, 
빛을 발하는 하늘 백성들 되게 하여 주옵소서.
세상에서 땀흘려 일하며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리하여 얻은 소득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려고 합니다.
성도들의 정성을 받아 주시옵소서.
하나님께서 범사를 지키시고 인도하실 줄로 믿고
예수님 거룩하신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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