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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너희는 두려워 말라 (느 4: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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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두려워 말라 (느 4:7-14)

북이스라엘 아합왕 시대에 활동했던 엘리야 선지자는 구약에서 활동했던 많은 선지자들 중에서도 탁월한 능력을 가졌던 선지자입니다. 바알을 섬기는 아합왕에게 가뭄을 예언하여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갈멜산에서 850명의 바알 및 아세라 선지자들과 목숨을 건 영적 대결에서 우상을 섬기던 선지자들을 다 죽임으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보여 주었습니다. 하지만 이 소식을 들은 아합왕의 부인 이세벨이 그의 사자를 보내어 엘리야의 목숨을 찾겠다고 하는 말에, 그 담대하고 위풍당당한 하나님의 종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이세벨을 칼날을 피해서 광야의 로뎀나무 아래서 죽기를 구하는 연약한 한 인간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능력의 선지자였던 엘리야에게 왜 영혼의 침체가 왜 오게 되었습니까? 그것은 바로 두려움에서 오는 절망 때문이었습니다. 

철학자인 키에르케고르가 쓴 책 가운데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는 유명한 책이 있습니다. 그는 이 책에서 사람으로 하여금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은 병이나 사건이나 실패가 아니라 절망이라고 했습니다. 인간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가장 무서운 것이 암이나 에이즈 같은 질병이 아니라 바로 절망이라는 것입니다. 만일 절망적인 상태에 빠진 것을 알면서도 절망하지 않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이 그 사람으로 하여금 새로운 삶으로 인도하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벽재건 공사를 하다가 낙심하고 절망하는 모습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느헤미야의 인도를 따라 열심히 성벽재건 공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산발랏과 일당들이 조롱하고 비방했음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이 힘을 모아 한 마음으로 성벽재건 공사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 결과 이제 성벽이 전체 연결이 되었고, 높이도 절반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누가 봐도 어려운 성벽재건공사이지만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벽재건 공사에 또 다시 어려움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성벽재건을 방해하던 산발랏과 그 대적들이 다시 방해를 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데 7절과 8절을 보시면 이전보다 더 노골적으로 위협하며 방해를 하기 시작합니다. 이제는 주변에 있는 이방의 여러 민족들과 합세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죽이겠다고 협박하며 성벽재건공사를 방해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자 유다 백성들 중심으로 “우리가 성을 건축하지 못하리라”고 하면서 낙심하며 좌절하게 됩니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부 마음을 모아 일어나 건축하자고 했던 사람이었고, 그리고 실제로 모든 백성들이 힘을 모아 성벽 재건에 힘썼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대적들의 위협과 방해로 이제 백성들은 낙담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공사가 절반정도 끝났으니 남은 기간 모두가 좀 더 열심을 내어 일을 하면 되겠지만, 순조롭게 마무리가 되기 어려운 상황에 부딪친 것입니다. 

여러분, 사탄은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사탄은 여러 가지 방법과 궤계를 사용하여 하나님의 사역을 좌절시키려고 합니다. 이제 사탄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낙심과 실망이라는 무기를 사용하여 이 공사를 중단시키려고 하고 있습니다. 

거짓, 탐심, 정욕, 이기심, 미움, 분노, 질투 등은 우리가 사탄의 무기임을 알기에 경계를 하지만 그러나 낙심과 실망은 사탄의 도구라고 흔히 생각하지 않기에 방심을 하게 됩니다. 사탄이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무기가 절망과 낙심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탄의 두목이 부하들에게 인간을 공격하는 각종 무기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사탄은 황금, 돈, 술, 마약, 미녀 등 자신이 애용하는 도구를 보여주다가 낡은 도끼 한 자루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때 한 부하가 “이런 낡은 도끼로 어떻게 똑똑한 인간들을 무너뜨릴 수가 있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두목은 부하에게 자랑스럽게 말하기를 “이것이 가장 많은 효과를 보고 있는 나의 애용 무기인데, 이 도끼는 인간의 가슴 속에 있는 희망의 줄을 끊는 도구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탄은 언제나 우리의 희망과 비전을 끊어 버립니다. 그리고 낙담에 빠지게 하고, 실의와 좌절에 빠지게 합니다. 

6절 말씀을 보면 “이에 우리가 성을 건축하여 전부가 연결되고 높이가 절반에 이르렀으니 이는 백성이 마음 들여 일을 하였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백성들은 처음에는 의욕을 가지고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일에 대한 새로움이 점차 사라지고, 너무 장시간 일하는 동안 몸과 마음이 지치기 시작합니다. 

오늘 본문 10절을 보시면 “유다 사람들이 이르기를 흙 무더기가 아직도 많거늘 짐을 나르는 자의 힘이 다 빠졌으니 우리가 성을 건축하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한마디로 “이제 우리는 흙을 짊어질 힘도 없을 만큼 육체적으로 힘이 다 고갈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마 현실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대적들의 위협으로 공사에만 집중할 수 없고 이들을 방비하기 위해 주야로 보초를 서면서 일을 했기 때문에 몸과 마음이 더 빨리 지치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백성들 정말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쇠진하고 탈진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때때로 낙담하고 깊은 슬럼프에 빠지는 요인 중 하나는 곧 힘의 고갈과 탈진으로 인한 피곤입니다. 이럴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던 일을 포기하고 낙담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낙담하게 되는 이유는 바로 두려움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7-8절에 “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과 아스돗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이 중수되어 그 허물어진 틈이 메꾸어져 간다 함을 듣고 심히 분노하여 다 함께 꾀하기를 예루살렘으로 가서 치고 그 곳을 요란하게 하자 하기로”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11절을 보면 "우리의 대적은 이르기를 저희가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가 저희 중에 달려 들어가서 살륙하여 역사를 그치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산발랏과 이방인들이 연합하여 유대인들을 죽이겠다고 협박을 하고 있습니다. “만일 너희들이 계속 성벽을 건축하면 우리가 너희들을 죽여 버릴 것이다” 바로 이것이 백성들을 두렵게 만든 것입니다. 이 두려움이 느헤미야를 도와야 할 유대인들을 좌절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면 두려움으로 낙담하며 절망하는 상황에서 느헤미야가 취한 방법이 무엇입니까? 어떻게 느헤미야가 이 어려운 상황을 이겨낼 수 있었습니까? 

느헤미야는 어려운 문제를 만날 때 이 문제를 푸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바로 기도입니다. 4-5절을 보면 “우리 하나님이여 들으시옵소서 우리가 업신여김을 당하나이다 원하건데 그들이 욕하는 것으로 자기들의 머리에 돌리사 노략거리가 되어 이방에 사로잡히게 하시고 주 앞에서 그들의 악을 덮어 두지 마시며 그 죄를 도말하지 마옵소서”라고 했습니다. 

보세요. 원수들이 잔혹한 말로 온갖 공갈, 협박, 비난으로 공격해 오는데도 느헤미야는 절망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께 기도하고 성벽을 재건하는 사역을 계속 밀고 나갑니다. 여기에 절망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자 7절과 8절에 보시면 원수들이 이방인과 연합하여 더욱 거세게 위협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완벽한 절망적 상황을 만들어 위협하고 있을 때, 느헤미야는 다시금 어떻게 대처 합니까? 역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9절에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기도하며”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기도를 보면 특별한 사항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이 기도는 이스라엘 백성 모두가 드린 합심 기도였다는 것입니다. 느헤미야 1장부터 3장까지는 계속 자신 혼자서 기도해 왔지만, 오늘 9절에서는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만큼 지금의 상황이 어렵다는 것임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어렵고 힘든 문제일수록 함께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함께 합심하여 드리는 기도는 역사하는 힘이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가 능력 있게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려면 몇 사람의 기도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다함께 모여 기도해야 합니다. 모두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전무후무한 놀라운 축복을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느헤미야는 대적자들에게 직접적으로 대응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대적자에 대한 승리의 비결입니다. 많은 경우 우리의 실수는 대적자와 싸우는 일로 우리의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입니다. 불필요한 힘의 분산이 목표로부터 멀어지게 만들고 결국 싸움에서 지게 되는 것입니다. 적이 노리는 것은 무엇인지를 바로 알아야 합니다. 성벽재건이 아닌 다른 것에 관심을 쏟게 하는 것입니다. 

사탄은 오늘도 우리로 하여금 목표에 집중하지 못하도록 합니다. 우리 인생의 본질적인 것을 추구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사탄은 교회도 본질을 추구하지 못하도록 산란하게 만드는 일을 합니다. 목표를 이루려고 하면 힘의 집중력이 있어야 합니다. 감정에 휘둘리면 안 됩니다. 힘들고 어려울수록 본질에 집중해야 합니다. 감정에 빠지면 핵심적인 목표를 놓쳐버립니다. 그러면 쓸데없는 에너지를 낭비하게 되고 목표로부터 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기도가 주는 유익 중에 한 가지는 집중력을 놓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기도보다 좋은 집중력은 없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에게 집중하는 것이고, 하나님이 주신 뜻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기도할수록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 일어납니다. 기도는 내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내가 무엇을 향해 달려가야 하는지를 정확하게 확인시켜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절망이 없습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하기 전에 기도부터 시작하는 것은 지극히 정상적입니다. 기도는 위대한 역사를 만들어 내는 능력의 통로입니다. 기도를 과소평가 하지 마십시오. 

모든 일이 하나님에게 달려있기에, 기도할 때에는 미온적으로, 소극적으로 기도하지 말고, 야곱이 얍복강가에서 생명을 걸고 하나님과 씨름했듯이 우리들도 뜨겁게, 전심을 다해 기도해야 합니다. 

무엇이 우리의 삶을 좌절하게 합니까? 두려움에서 오는 좌절을 이기는 비결은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하여 깨어서 느헤미야처럼 계속해서 기도하십시다.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이 주신 비전을 이루어 가는 성도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느헤미야는 이처럼 기도하는 사람이기에 대적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전능하신 하나님을 더욱 두려워하였습니다. 

오늘 본문 14절에 보시면 “내가 돌아본 후에 일어나서 귀족들과 민장들과 남은 백성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지극히 크시고 두려우신 주를 기억하고 너희 형제와 자녀와 아내와 집을 위하여 싸우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 원수들의 공격으로 인하여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오직 하나님만을 두려워하면서 경외하고 있었기에 원수들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느헤미야는 백성들에게 우리가 마땅히 두려워해야 할 대상과 두려워해서는 안 될 대상을 올바로 가르쳐 주었습니다. 

낙심하고, 실망하며, 두려워하고 있는 백성들에게 느헤미야는 대적들을 두려워 말고 지극히 크시고 두려우신 주를 기억하라고 했습니다.  

느헤미야는 백성들에게 말합니다. “너희는 이 흙무더기, 이 돌무더기, 그리고 적군들과 너희 자신에게만 눈을 돌리고 있다. 이제 주님께로 너희 시선을 맞추어라. 위대하시고 두려우신 하나님, 영원하시고 전능하신 우리 하나님을 바라보자”라고 말합니다. 

여기에서 주를 기억하고 하나님을 바라보자는 말씀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이것은 주께 맡기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영적인 권능을 더욱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 문제가 되는 것은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가정과 사업, 나의 일터는 어떻게 될 것인가? 우리 교회는 어떻게 될 것인가?’등등 우리는 많은 두려움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어진 환경과 형편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믿음으로 산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을 승리로 이끄실 것입니다. 

마 14:22-36절에는 물위로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고 베드로가 물위로 뛰어드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 모습을 가만히 보면, 베드로가 예수님께 시선을 집중했을 때는 물에 빠져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파도에 시선을 빼앗겼을 때는 물속에 빠져 들어갑니다. 

베드로의 몸무게가 순간 더 무거워졌습니까? 아니지요. 하나님께 시선을 고정하면 문제를 극복할 수 있지만, 그러나 문제에 시선을 빼앗기면 침몰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성도들이 상황이 힘들어서, 문제가 많아서, 세상이 강해서, 헤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에 대한 시선이 흔들려서 헤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작아 보이니까 세상이 커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커 보이게 되면 세상은 작아 보이게 되는 법입니다. 문제의 돌파구는 하나님을 보는 시각, 하나님에 대한 믿음에서 열려집니다. 

성도 여러분, 실망하고 낙심하고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주님을 바라봅시다. 영원하시고 두려우신, 위대하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영원토록 사랑하시며, 그의 자녀 삼아주시는 하나님만을 바라보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성취하게 될 때 원수가 멀리 물러가고, 사단의 공격도 중지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교모하게 공격할 틈을 보면서 우리를 깊은 침체의 수렁으로 빠뜨린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해서 모든 과정이 순조로운 것은 아닙니다. 어떤 면에서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하지 않는 일이기 때문에 더 많은 오해를 살 수도 있고, 더 심한 반대 세력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또, 뜻밖의 장애물이나 장벽에 부딪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일을 포기할 이유가 아니라, 오히려 더욱더 열심히 힘쓸 이유인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위해 싸워 주시고, 우리 앞에 놓인 모든 장애물을 디딤대로 삼게 해 주시고, 장벽을 뛰어넘게 해 주십니다. 아무 쪼록 우리 모두 하나님을 믿고 최악의 상황에서 최선의 노력을 다하여 하나님의 귀한 일을 잘 감당하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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