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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 (대상 18: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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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 (대상 18:1-13)


고사성어 가운데 ‘승승장구’(乘勝長驅)라는 말이 있습니다. “싸움에서 이긴 기세(氣勢)를 타고 계속(繼續) 적을 몰아친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한 번 승기를 잡아 계속 연전연승해 간다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의 이야기는 한 마디로 ‘다윗의 승승장구’이야기입니다. 
우선 1절을 보면, 다윗이 블레셋을 완전히 정복했다는 것입니다. 블레셋은 마지막까지 가나안 땅에 남아서 이스라엘을 괴롭혔던 세력입니다. 이제 비로소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온전히 차지하게 된 것입니다.

다음으로 2절을 보면, 다윗이 모압을 쳐서 굴복시켰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넘어 요단 동편까지 그 지경을 넓혀 가기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3-8절을 보면, 다윗이 하닷에셀을 중심으로 한 아람의 연합군을 격파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요단 동북방 일대까지 그 영토를 확장하게 된 것입니다.

게다가 9-10절을 보면, 하맛 왕 도우가 다윗에게 화친을 청해왔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 저 북쪽까지 그 영향력을 미치게 된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11-13절을 보면, 다윗이 에돔까지 정복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요단 서남쪽일대까지 그 영토를 확장하게 된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또 다른 고사성어가 생각이 납니다. 바로 ‘파죽지세’(破竹之勢)입니다. “대나무를 쪼개는 기세”라는 뜻입니다. 대나무는 처음 한 두 마디만 쪼개면 그 이후에는 칼만 대면 손쉽게 쪼개집니다. 이것에 비유해서 적들을 거침없이 물리치고 쳐들어가는 모습을 파죽지세라고 말합니다.
바로 다윗의 이 승승장구의 모습은 다른 말로 파죽지세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역사를 보는 눈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것이 있습니다. 6절 하반절 말씀입니다.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 그리고 이 말씀은 13절에 다시 한 번 반복됩니다.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셨더라.” 
다윗의 이 승승장구, 파죽지세의 승리 이야기를 기록한 역대기 기자가 의도적으로 강조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이 모든 승리는 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것이요,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주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역대기 기자의 아주 특별한 ‘역사관’(歷史觀)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역사관이란 ‘역사를 보는 관점’을 말합니다. 현대 역사학의 대부인 카아(E. H. Carr)라는 분은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책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역사는 어떤 사건이 있을 때 그것을 기록하는 역사가가 어떤 관점을 가지고 해석하고 기술하느냐에 따라서 결정된다.” 

이런 이야기입니다. 과거에 어떤 사건이 일어났다면 그것은 하나의 사실(fact)입니다. 그런데 역사가가 자신의 역사관으로 이 사실을 해석하고 그것을 기록했을 때 역사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사실에 대해 어떤 역사관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 역사는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기록한 역대기 기자는 철저하게 하나님 중심의 역사관으로 다윗의 이 승리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이런 승승장구의 승전보에는 아주 특별한 승리의 요인들이 있습니다. 먼저 다윗의 탁월한 리더십이 있습니다. 백성들에게 비전을 제시하여 마음을 하나로 모았습니다. 정복전쟁의 큰 그림을 그리고 치밀한 전략을 짰습니다. 또한 이 전쟁을 치루는 동안 지도자다운 감동적인 에피소드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역대기 기자는 그 어느 하나도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것들이 관심의 초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한 각 전쟁마다 전쟁의 영웅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저들의 목숨을 건 희생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감동적인 충성의 이야기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백성들의 일사분란한 지원과 감동적인 헌신의 이야기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역대기 기자는 역시 그 어느 하나도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역시 그것들도 관심의 초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역대기 기자의 관심의 초점은 오직 하나님께 맞춰져 있습니다. 그래서 이 모든 승승장구, 파죽지세의 승전보의 승리의 요인을 한 마디로 일축했습니다.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 한 마디로 하나님께서 이기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역대기 기자의 역사관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에게 이런 ‘역사를 바라보는 눈’이 필요합니다. 이런 ‘세상을 바라보는 눈’, ‘인생을 바라보는 눈’이 필요합니다. 그 안에 하나님이 계심을 보는 눈, 그 안에 하나님께서 주인공이심을 보는 눈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무엇인가를 이루게 됐으면 ‘하나님께서 이루게 하셨다’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물론 그것을 이루기까지 내가 남다른 노력과 고생을 했을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의 특별한 도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적절한 환경도 뒷받침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다 조연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 모든 것이 합하여 선을 이루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점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제작하시고, 하나님께서 시나리오를 쓰시고, 하나님께서 연출하셨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하나 주목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왜 다윗이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다윗을 그렇게 승승장구하도록 하셨느냐는 것입니다.
역대기 기자는 이미 그 답을 앞부분 대상 11장에서부터 아주 명확하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어떻게 왕이 되었으며, 왕이 된 후 그가 어떻게 했는지를 기록하면서 그 답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오늘 이 세상 살며 승승장구한 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를 보여줍니다. 이것이 역대기 기자가 오늘 우리에게 주고자 하는 메시지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주권 인정

왜 다윗인가에 대한 우선적인 답은 다윗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다윗은 왕이 되었지만 여전히 하나님을 진정한 왕으로 인정하고 있었다는 점 때문입니다.
역대기 기자는 다윗이 왕이 되고 난 뒤 가장 먼저 하려고 했던 일이 하나님의 궤를 모셔오는 일이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상 13장에서 16장까지 하나님의 궤를 다윗 성에 모셔오는 과정을 아주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하나님의 궤는 일찍이 출애굽 때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명을 받아 모세 주도하여 성막과 함께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 안에 십계명이 기록된 돌비와 광야에서 먹었던 만나 그리고 아론의 싹 난 지팡이가 담겨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하나님의 궤는 그야말로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지극히 거룩한 성물이었습니다. 
이 하나님의 궤는 가나안 정복 이후 중앙 성소였던 실로에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엘리 제사장 시절 블레셋에 빼앗겨 잠시 블레셋 땅에 안치되어있었습니다. 그 블레셋 땅에서 블레셋 신들을 심판한 후 벧세메스를 거쳐서 기럇여아림으로 돌아와 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 하나님의 궤가 기럇여아림 아비나답이라는 사림의 집에 무려 70년 동안이나 방치되어있었습니다. 특히 사울 왕은 자신이 왕이 된 뒤에도 이 하나님의 궤를 거들떠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다 하나님께 버림받아 죽게 되었고 왕조가 다윗에게로 넘어오게 되었습니다.
이제 다윗은 늘 이 사실을 안타깝게 생각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왕이 되자마자 제일 먼저 하나님의 궤를 모셔올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대상 13:3을 보면 이런 말씀이 기록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궤를 우리에게로 옮겨오자 사울 때에는 우리가 궤 앞에서 묻지 아니하였느니라.” 다윗이 이스라엘의 지휘관들과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궤를 모셔오자고 설득하면서 했던 말입니다. 
이 말씀 속에서 다윗이 왜 하나님의 궤를 왜 모셔오려 했는지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의 궤 앞에서 하나님의 뜻을 묻기 위해 하나님의 궤를 모셔오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다윗은 드디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자기가 자기 뜻을 마음껏 펼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자기 뜻대로 무엇이든 해 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하나님의 궤를 모셔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궤 앞에서 하나님의 뜻을 묻습니다. 하나님을 자신의 왕이요,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으로 모시고자 한 것입니다.

얼마 전 한 중견회사를 경영하시는 장로님을 만났습니다. 이분이 한 문화선교단체를 후원하고 계셨습니다. 당신의 이름은 물론이고 당신 회사에 대한 아무런 소개도 없이 그야말로 빛도 없이 이름도 없이 후원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것도 오랫동안 꾸준히 그리고 정말 큰 규모의 후원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넌지시 물었습니다. 장로님 어떻게 그렇게 하실 수 있습니까? 그분의 대답이 이렇습니다. “어디 그 회사가 제 것인가요? 하나님께서 세우게 하셨고, 하나님께서 오늘까지 이끌어 오신 걸요. 저는 다만 심부름꾼일 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후원하라 하시니 후원할 밖에요...”
저는 이분에게서 오늘의 다윗을 보았습니다. 자기가 회사 사장이지만 하나님을 사장으로 모시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런 마음을 귀히 여기셔서 이렇게 이 회사를 승승장구하게 하시는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살아야 합니다. 더더욱 우리 장로교인들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인정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내 인생의 주인이심을 인정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 우리 교회, 우리 회사, 그리고 우리나라의 주인이심을 인정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 대한 온전한 헌신

왜 다윗인가에 대한 또 하나의 답은 다윗이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하려고 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다윗은 왕이 된 후에도 여전히 온전히 하나님께 헌신하고자 했기 때문입니다.
역대기 기자는 다윗이 하나님의 궤를 모셔드린 후에 어떻게 했는지를 자세하게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 역시 주된 관심은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했느냐에 있었습니다.
16장을 보면 다윗은 하나님께 제사부터 드렸습니다. 하나님의 궤를 모셔 놓고 제일 먼저 한 일이 제사를 드리는 일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다윗의 헌신은 제일 먼저 예배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이 왕이 된 후에도 열 일 제쳐놓고 예배드리는 일에 헌신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다윗의 승승장구의 소중한 비결 가운데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예배에 성공해야 인생에 성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예배에 실패하면 결코 인생에 성공할 수 없습니다. 특히 성공한 뒤에도 계속 예배에 성공해야 그 성공이 승승장구할 수 있습니다. 
사울의 경우를 보면 왕이 된 후 예배에 실패했습니다. 왕이 되기 전에는 예배에 성공했습니다. 그래서 왕이 됐을 것입니다. 그러나 왕이 된 후에 예배에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성공은 거기에서 끝이 났습니다.

우리가 예배에 사활을 걸어야 합니다. 성공해서 바빠져도 예배에 실패하면 안 됩니다. 성공해서 바빠져도 계속 예배에 성공해야 합니다. 그래야 승승장구할 수 있습니다.

대상 16장을 보면 다윗은 하나님의 궤를 모셔드린 후에 하나님의 궤를 잘 섬기게 했습니다. 관리자로 제사장들을 세워서 하나님의 궤를 섬기게 했습니다. 그리고 찬양대를 두어 하나님의 궤 앞에서 감사와 찬양을 드리게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궤와 하나님의 전을 섬기는 일에 헌신했습니다. 이것이 또 하나 다윗의 승승장구의 비결이 되었습니다.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교회를 사랑합니다. 교회를 가까이 하고 교회를 위해 봉사하는 일에 적극적입니다. 왜냐하면 교회는 눈에 보이는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입니다.
시 84편 보면 시인은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1) “주의 궁정에서의 한 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10)

우리가 이 시인의 마음을 공감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런 마음으로 주의 몸된 교회를 위해 헌신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우리가 승승장구할 수 있습니다.

역대기 기자는 17장에서 다윗의 속마음을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 1절을 보면 이렇게 되어있습니다. “다윗이 그의 궁전에 거주할 때에 다윗이 선지자 나단에게 이르되 나는 백향목 궁에 거주하거늘 여호와의 언약궤는 휘장 아래에 있도다” 

다윗이 언약궤를 다윗 성에 모셔드려 놓았습니다. 힘들여서 어렵게 언약궤를 모셔다 놓을 수 있었지만 아직도 마음 한 구석에 불편한 것이 남아 있었습니다. 언약궤를 휘장을 쳐 놓고 그 안에 모셔 놓은 것이 마음에 걸렸던 것입니다. 자기는 화려한 왕궁을 지어 그 안에 살고 있는데 하나님의 궤는 천막 안에 모셔져 있었던 것이 마음에 걸렸던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의 성전을 지어 하나님께 봉헌하고자 했습니다. 하나님께 최선을 다해서 멋진 성전을 지어 봉헌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성전을 지으려면 많은 돈이 필요합니다. 물론 백성들도 참여하겠지만 왕인 자기가 앞장을 서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자기가 많은 재물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그런데도 성전을 지으려고 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거절하셨습니다. 다윗을 대신해서 아들 솔로몬에게 성전건축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솔로몬이 성전 건축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준비했습니다. 비록 자신이 성전을 건축하지는 못하지만 자신의 재물을 성전 건축을 위한 준비에 쏟아부었던 것입니다.
요한 웨슬레는 재미있는 말을 남겼습니다. “나는 돈 지갑이 회개하지 않는 사람의 회개를 믿을 수 없다” 회개했다고 하면서 하나님 앞에 인색한 사람의 회개의 진정성을 믿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진정 하나님 앞에 헌신하려고 한다면 우리의 재물을 하나님을 위해 드려야 합니다. 십일조 헌금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지갑을 열어야 합니다. 그럴 때 승승장구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들은 이 땅에서 승승장구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먼저 이점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잘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인정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께 온전한 헌신을 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윗처럼 승승장구할 수 있게 해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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