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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갈급함 위에 부어지는 은혜 (시 4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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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급함 위에 부어지는 은혜 (시 42:1-11)

유럽지방 신년성회 마지막 날, 감기가 너무 심해져서 밤새 앓았습니다. 그런 상태로는 도무지 아침 집회 때 설교단에 설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 날 밤새 기도하였습니다. “이 말씀 만큼은 꼭 전하게 해 주세요.”그처럼 간절히 전하고 싶은 말씀이었습니다.“주 예수님을 사랑하라!”그런데 기적과 같이 아침 집회 때 설교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큰 은혜가 있었습니다.

그 때 제게 밀라노에서 목회하시는 목사님으로부터 메일이 하나 와있었습니다. “목사님, 밀라노 오시면 저희 교회에 꼭 오셔서, 수요 저녁집회에 짧게라도 말씀 전해주시면 너무 좋겠습니다. 목사님은 웃으시겠지만, 저의 지금 마음은 삭개오와 같습니다. 예수님 지나가시는 자리로 얼른 가서 뽕나무에 기어오르고 싶은 마음, 바로 그 마음입니다. 교우들도 그러리라 여겨집니다. [예수님의 사람] 제자훈련하는 교회를 그냥 지나치시면 안되는 것 아닌가요? ”

제가 밤새 기도하여 주님이 응답해 주셨기에 저도 이 목사님의 부탁을 거절할 수가 없었습니다. 가겠다고 답장을 보내고, 밀라노 여행을 포기하고 저녁집회를 인도하고 왔습니다.
갈급함이 있다는 것은 어려움이 생겼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어려움이 생긴 것보다 갈급함이 일어난 것이 더 중요한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읽은 시편 42편은 기록한 자가 누군지 정확하지 않지만 분명한 것은 그가 몹시 낙망하고 있으며 불안에 떨고 있다는 것입니다.

3절 사람들은 날이면 날마다 나를 보고 "너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고 비웃으니, 밤낮으로 흘리는 눈물이 나의 음식이 되었구나.

9-10절 나의 반석이신 하나님께 호소한다. "어찌하여 하나님께서는 나를 잊으셨습니까? 어찌하여 이 몸이 원수에게 짓눌려 슬픈 나날을 보내야만 합니까?" 원수들이 날마다 나를 보고 "네 하나님이 어디에 있느냐?" 하고 빈정대니, 그 조롱 소리가 나의 뼈를 부수는구나. 

그러나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은 시편 기자가 겪고 있는 어려움이 아닙니다. 그의 갈급함입니다.  
 
시 42:1 하나님, 사슴이 시냇물 바닥에서 물을 찾아 헐떡이듯이, 내 영혼이 주님을 찾아 헐떡입니다. 2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계신 하나님을 갈망하니, 내가 언제 하나님께로 나아가 그 얼굴을 뵈올 수 있을까? 

시편 기자는 지금 큰 어려움에 처해있는 것만 아닙니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 안에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힘들다고 다 하나님을 향하여 갈급해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려운 일이 생겼기에 믿음을 잃어버리기도 하고, 두려워 허우적대기만 하고, 아무런 도움이 안되는 이들을 찾아 다니기도 하고, 마음이 강퍅해지는 사람도 많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지 못 하는 이유는 갈급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도 걱정스러웠던 것은 삶의 형편이 괜찮은 사람은 팔짱끼고 듣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꼭 육신적이고 세상적인 어려운 처지에 빠져서만 갈급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형편이 힘들고 어렵지 않아도 우리는 영의 갈급함을 깨달아야 합니다. 
형편이 여유로울 때, 영적으로는 매우 위험한 상태에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에게도 기가막힌 어려움에 처하여 갈급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다리 수술을 받을 때였습니다.
그러나 지금 저는 그렇게 어려움에 처해있지 않습니다. 지금은 제 인생 그 어느 때보다 형편이 좋습니다. 많은 분들이 부러워하는 처지에 있습니다.
그러나 제 마음은 이전 어느 때보다 더 마음이 갈급합니다. 

요즘 이런저런 일들로 실족한 목회자들이 생깁니다. 사람들은 제게 왜 가만있느냐? 입장을 밝히라, 한 마디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다그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오직 하나 두렵다는 것입니다. 제 안에 그 모든 죄가 다 있기 때문입니다. 환경과 여건에 따라 저는 그 보다 더 큰 죄도 지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할 말이 없는 것입니다. 육신을 따라 살면 어떤 무서운 결과가 오는 지를 보면서 저 자신을 돌아볼 뿐입니다.

그래서 더욱 주 예수님만 바라볼 뿐입니다. 육신을 이길 힘은 오직 주 예수님을 바라볼 때 생기기 때문입니다.

2007년 10월 병원에 한달간 입원했을 때, 주님이 주신 말씀이 있었습니다.‘전하는 말씀과 실제로 사는 삶에 틈이 생기는 것을 작게 여겨서는 안된다!’심각한 고민이 생겼습니다. 어떻게 설교한 대로 살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답은 24 시간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영성일기를 쓰게 된 것입니다.

지금 북한 문제가 우리 마음을 무겁게 하고 있습니다. 어떤 일이 앞으로 일어날지 몰라 큰 걱정거리입니다. 개인적으로도 어떤 일이 앞에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는 불안함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할 일은 무엇입니까?
주 예수님과 동행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가 의인 열명이 없어 멸망하였듯이, 지금 우리나라에 필요한 것은 교회에 다니는 사람 수 말고 예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 몇 명이냐 하는 것입니다. 

주 예수님을 바라보는 눈이 뜨이지 않은 자에게는 임마누엘의 엄청난 복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자는 주님이 함께 하시는 은혜 안에서 방황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 앞에 환란이 올 수도 있고 좋은 시절이 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과 동행하는 훈련이 안된 사람은 환란이 와도 무너지고 좋은 시절이 와도 무너집니다. 감당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 교회에 엄청난 은혜의 문을 열어주셨습니다. 믿어지지 않는 은혜입니다. 마음껏 주님과 교제하고 훈련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가운데도 이 복된 기회를 놓지는 안타까운 이들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주님을 바라보는 눈은 뜨였습니까? 주님의 음성을 듣는 귀는 열렸습니까? 

시편 기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많지만 구하는 것은 오직 주님이었습니다.

시 42:1 하나님, 사슴이 시냇물 바닥에서 물을 찾아 헐떡이듯이, 내 영혼이 주님을 찾아 헐떡입니다. 2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계신 하나님을 갈망하니, 내가 언제 하나님께로 나아가 그 얼굴을 뵈올 수 있을까? 

문제를 해결받는 것도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해 달라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의 얼굴을 뵙는 것입니다. 
우리도 주님을 뵙기를 갈망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모든 문제는 다 끝납니다.

하나님께서는 시편 기자의 갈망에 놀랍게 응답하고 계십니다.
5절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그렇게 낙심하며, 어찌하여 그렇게 괴로워하느냐? 너는 하나님을 기다려라. 

11절에도 반복하여 말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마음에 들려오는 하나님의 응답입니다. 시편 기자는 세상 사람들의 조롱을 듣지만 동시에 그 심령에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
갈급한 자는 다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지난 부흥회 후에 어느 성도로부터 질문을 받았습니다. 

“목사님,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그런데 꼭 상담하고 싶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오랫동안 기도하는 문제가 하나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한 마디도 응답해 주시지 않으십니다. 그렇게 간절히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는 왜 침묵만 하고 계시는 것일까요?” 그 성도님의 눈에는 눈물이 맺혀있었습니다.

그 성도님에게 말씀드렸습니다.“주님은 성도님에게 침묵하고 계시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 가지로 응답하고 계십니다.” 

“무슨 응답을 하고 계시다는 것입니까?”

“성도님은 그 어려움 중에도 주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고 있으며, 교회에 계속 나와 예배를 드리시잖아요? 하나님을 믿고 예배하는 일처럼 분명하고 놀라운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없습니다. 누구나 그런 인도하심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성도님은 응답을 받지 못하여 답답하다 하면서도 계속하여 새벽마다 나와 기도하고 계시잖아요? 기도할 마음은 성령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도 집회에 나와 은혜를 많이 받았다고 하셨잖아요? 집사님 안에 역사하시는 성령 하나님께서 은혜를 알게 하시지 않으신다면 결코 은혜받았다고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무슨 이유로 성도님이 겪으시는 어려움을 해결해 주시지 않으시는지는 모르지만 하나님은 결코 아무 말씀도 하지 않고 계신 것이 아닙니다. 지금은 그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갈급함 중에도 주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5절 ...이제 내가, 나의 구원자, 나의 하나님을, 또다시 찬양하련다. 

그러므로 마음이 힘들고 어려울 때, 더욱 24 시간 주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6절 내 영혼이 너무 낙심하였지만, 요단 땅과 헤르몬과 미살 산에서, 주님만을 그래도 생각할 뿐입니다.

주님은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7-8절 주님께서 일으키시는 저 큰 폭포 소리를 따라 깊음은 깊음을 부르며, 주님께서 일으키시는 저 파도의 물결은 모두가 한 덩이 되어 이 몸을 휩쓸고 지나갑니다. 낮에는 주님께서 사랑을 베푸시고, 밤에는 찬송으로 나를 채우시니, 나는 다만 살아 계시는 내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시편 기자가 경험하는 이 놀라운 일들이 갈급함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에게 다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지난 주 토요일 제 서재를 정리하다가 구석에 눈에 뜨이는 책이 하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에게 윙크할 때] 라는 책이었습니다. 책 제목이 사랑스러웠습니다. 왠지 그 순간 하나님께서 제게 윙크를 보내시는 느낌이었다고 할까요?

그런데 주일 김해종감독님께서 설교를 하시면서 이 책 이야기를 하셔서, 깜짝 놀랐습니다. 
그 때 내용이 우연한 일처럼 보이는 일 속에 하나님의 역사가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김해종감독님의 설교를 통하여 제게 윙크를 하신 것처럼 느꼈다면 좀 지나친 것일까요?

어린 시절, 가족, 친척들이 모여서 식사를 하는데, 고개를 들어 보니 누군가가 살짝 윙크를 보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 사람이 엄마나 아빠이든, 할아버지나 삼촌, 이모이든, 이 아이는 그 작은 눈짓 하나로 한껏 기분이 좋아지게 됩니다. 그 윙크의 의미는 ‘얘야, 나는 지금 네 생각을 하고 있단다. 난 네가 정말 자랑스러워. 걱정하지 마, 모든 일이 다 잘될 거야.’하는 의미일 것입니다. 

주님께서 마음이 갈급한 제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습니다.‘내가 너를 주목하고 있어. 네가 하는 모든 것을 다 지켜보고 있어. 내가 네 기도를 다 듣고 있어. 염려하지 말고 계속 나아가기만 해.’그래서 기분이 좋아졌습니다. 주님은 나의 갈급함을 알고 계시다는 믿음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모릅니다.

이 글을 페이스북에 올렸더니, 어떤 이가 비난의 댓글을 올렸습니다. 그게 하나님의 윙크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참 마음이 답답하였습니다. 주님은 제게 얼마나 사랑의 고백을 많이 하시겠습니까? 제가 깨닫는 것이 겨우 몇 가지인 것이 안타까우실 것입니다.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삼중고의 여인인 헬렌켈러 여사가 숲속을 산책하고 부드러운 바람과 신선한 공기가 너무 좋아서, 같이 한 친구에게 어땠느냐고 물었더니, “별 것 없어.”하고 말하는 것에 충격을 받았습니다.‘어떻게 오랫동안 숲 속을 거닐면서도 아무 것도 보고 느끼지 못할 수가 있을까요?’그러면서 유명한 [사흘만 볼 수 있다면] 이란 글을 썼습니다.

“만약 내가 눈을 뜨고 볼 수 있다면 나는 나의 눈을 뜨는 처음 순간에 나를 이만큼 가르쳐주고 교육시켜준 나의 선생님 에미 설리반을 찾아가겠다. 내 손끝으로 만져 알던 그의 인자한 얼굴 그리고 그의 아리따운 몸매를 몇 시간이고 물끄러미 보면서 그의 모습을 내 마음 깊숙이 간직해 두겠다. 

다음엔, 내 친구들을 찾아가고 다음엔, 들로 산으로 산보를 나가겠다. 바람에 나풀거리는 아름다운 나무 잎사귀들, 들에 피어있는 예쁜 꽃들과 그리고 저녁이 되면 석양이 빛나는 아름다운 노을을 보고 싶다. 

다음 날 일어나 새벽에는 먼 동이 뜨는 웅장한 장면 아침에는 메트로 폴리탄에 있는 박물관 그리고 저녁에는 보석같은 밤하늘의 별들을 보면서 또 하루를 보내고 마지막 날에는 일찍 큰 길에 나가 출근하는 사람들의 얼굴 표정들, 아침에는 오페라하우스, 오후에는 영화관에 가서 영화를 감상하고 싶다.  그리고 어느덧 저녁이 되면 건물의 숲을 이루고 있는 도시 한 복판으로 나가서 네온사인이 반짝거리는 쇼윈도에 진열되어 있는 아름다운 물건들을 보면서 집으로 돌아와 내가 눈을 감아야 할 마지막 순간에 나를 삼일 동안만이라도 볼 수 있게 해주신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다고 기도를 드리고 영원히 암흑의 세계로 돌아가겠다.“

하나님은 온 세상 만물을 통하여 우리에게 사랑을 고백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갈급한 자에게 가만히 계시겠습니까?

주위에 위로해 줄 이 없습니까? 주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박동규 서울대 명예교수가 어릴 때 열병에 걸려 열흘 가까이 앓다가 의식이 가물가물하였던 적이 있었는데, 40도가 넘는 고열 속에 헤맬 때 어머니께서 손을 잡고“하나님이 너를 건져 줄 것이다.”하고 귀에 작은 소리로 말씀하시더랍니다. 의사도 고치지 못하는 열병이었지만 어머니의 작고 속삭이는 소리가 마음에 엄청난 믿음이 되었답니다.
주님은 여러분에게 말씀하십니다.

폭력배 전과자인 분, 아내가 생기고 딸이 생기고 유치장에서 눈물로 기도, 기소유예로 IMF로 실직, 아내는 친정에 가고, 강도라도 막상 실행에 옮기려는데‘피 묻은 돈으로 분유를 사 먹인들 아이가 잘 크겠는가?‘ 하는 생각, 그 길로 나쁜 생각을 접고 재기하였습니다.

여러분, 주님을 바라보는 눈이 뜨이고 주님의 말씀을 듣는 귀가 열리기를 기도하시고 24 시간 예수님을 바라보는 삶을 시작해 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요즘 잠잘 때도 주님의 임재와 영광을 바라보는 눈을 열어주시기를 간구하고 지냅니다. 아침에 일어나서는 물론입니다. 밥을 먹을 때도, 길을 갈 때도 하루종일 “주여, 제 눈을 더욱 열어 주님을 바라보게 해 주소서!” 기도합니다.
주님이 그렇게 하라고 강권하시기 때문입니다. 

제게 필요한 것은 기도할 때, 집회를 인도할 때 주님의 임재와 역사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일상생활에서도 같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을 바라보는 눈이 뜨이는 것입니다.
주님을 더 분명히 바라보게 되어야 합니다.

11절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그렇게 낙심하며, 어찌하여 그렇게 괴로워하느냐? 
너는 하나님을 기다려라. 이제 내가 나의 구원자, 나의 하나님을 또다시 찬양하련다.
(유기성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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