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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늘 위의 것을 구하라 (전도서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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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위의 것을 구하라 (전도서 1:1-18)

전도서는 인생의 가장 궁극적이고 기본적인 문제를 다룹니다. 이 글을 쓴 사람은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 왕 전도자의 말씀이라”(1절)고 했으니 솔로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 역사상 가장 지혜로왔던 사람이 내린 결론은 ‘인생은 헛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어떤 질문 속에서 이 말을 한 것입니까? 그 질문은 3절입니다.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 즉, 솔로몬은 사람이 일평생 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를 생각했다는 말입니다. 사람이 일평생을 살아서 궁극적으로 남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 질문에 대해 가장 명확한 해답을 제시해 주는 글이 전도서입니다. 

솔로몬은 이 해답을 얻는 과정 속에서 인생의 모든 분야를 다루고 있습니다. 종교, 도덕, 철학, 문학, 쾌락, 부귀, 사업, 명예, 학식 등의 모든 분야를 그 나름대로 다루며 이 질문에 대해 뭐라고 답변하는지 살펴보고 있습니다. 

이제 전도자는 이와같은 질문을 제시해 놓고 먼저 결론을 내리길 ‘다 헛되다’고 합니다. ‘헛되다’는 원어의 구체적인 의미는 ‘수증기’, 또는 ‘입김’이라는 뜻입니다. 인생 70, 80년을 살았더니 기껏 남는 것이 아무 것도 없더라는 이야기입니다. 어떻게 솔로몬이 이런 결론을 내렸습니까? 인생의 의미를 알아내고자 하는 전도자는 논리적인 방법과 경험적인 방법, 이 두 가지를 사용합니다. 

우선 전도자는 첫번째 방법으로 논리적인 방법을 채택했습니다. 그는 먼저 바깥 세계, 즉 우주의 피조계에 대해 살펴봅니다. 그는 땅을 생각합니다.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4절). 해를 생각합니다. “해는 뜨고 해는 지되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가고”(5절). 

지금 솔로몬이 강조하는 태양의 특성은 밝음이나 뜨거움 등이 아니라 되풀이입니다. 태양은 반복되는 특성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람은 남으로 불다가 북으로 돌아가며 이리 돌며 저리 돌아 바람은 그 불던 곳으로 돌아가고”(6절). “모든 강물은 다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합니다”(7절). 즉, 물의 운행에 대해 관찰합니다. 

아무튼 솔로몬은 이렇게 자연계와 우주계를 살펴보면서 그러한 것들 속에 인생의 의미를 줄만한 것이 있는지를 관찰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결국 발견한 공통점은 “모든 만물이 피곤하다는 것을 사람이 말로 다 말할 수는 없다”(8절)는 것입니다. 

이 말은 피곤해서 지쳤다는 뜻이 아니라 다람쥐 쳇바퀴처럼 뺑뺑도는 모든 만물에 질렸다는 뜻입니다. 언뜻 보기에는 이 세상은 뭔가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 같은데 가만보니 새로운 변화는 없고 똑같은 일만 반복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우주는 기계적이며 어떤 반복의 굴레가 이 세상을 사로 잡고 있음을 발견하였습니다. 따라서 전도자는 피조계를 살펴본 결과 거기서는 인생의 의미를 찾을만한 것이 없다고 결론을 내립니다. 

오스왈드 챔버스의 글은 다른 신학자들과 달리 평범과 되풀이에 대해 대단히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그의 글들을 읽다보면 진부함, 평범, 되풀이, 단조로움, 지침, 사소함, 일상… 등등의 단어가 계속 나옵니다. 그러면서 그는 솔로몬과 마찬가지의 결론을 내립니다. 

“주의 영광을 보지 못한다면 우리의 삶은 너무나 단조로워서 살고 싶지 않게 된다.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이 가장 많이 필요한 때는 단조로운 삶에서 한없는 기쁨과 감사와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다. 날마다 되풀이 되는 평범한 상황에 주의 말씀을 적용해 보라. 당신은 평범한 나날 속에서 하나님을 잘 순종하고 있는가? 평범한 상황과 나날 가운데 순종하지 않는다면 나는 아무리 노력을 한다고 해도 하나님의 신비를 결코 누리지 못할 것이다. 되풀이 되는 단조로운 삶 가운데 순종을 통해 무한하신 하나님과 친분을 나누며 주께 우리의 마음을 집중한다면 당신의 삶은 더 이상 단조롭거나 지루하거나 헛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비를 더욱 누리며 무한한 행복과 감사를 누리는 삶이 될 것이다.” 

“주를 향한 당신의 충성은 위기 때보다는 되풀이 되는 단조로운 삶 가운데서 입증되어야 한다. 단조로운 삶 속에서 주님을 망각하지 않고 꾸준히 순종하는 것이 주님께 충성하는 것이다.” 

“우리가 성령을 받으면 평범하고 구체적인 일들 가운데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을 배우게 된다. 그때에 단조로움의 어두움이 걷힐 것이다. 이는 단조롭던 삶에 변화가 생긴다는 뜻이 아니라 단조로운 삶을 살면서도 더 이상 지치지 않고 더 신나고 감사한 초월하는 기쁨을 누리기 시작한다는 뜻이다.” 

“영적으로 좌절에 빠졌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가장 평범한 일을 하는 것이다. 가장 자연스러운 일들을 하는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영혼에 부드럽고 조용한 음성을 들려주신다.” 

“성경은 물질적인 것과 영적인 것이 주 안에서 하나가 된다고 알려준다. 성령께서는 우리의 진부한 삶을 어린아이같이 신나는 천국의 삶으로 이어주신다. 성령께서 우리의 몸을 성전으로 만드시면 우리의 비천한 삶의 현실은 지극히 높은 삶의 동기를 가지고 가장 큰 사랑 안에서 하나님께 부어지는 향유가 된다.” 

이상은 오스왈드 챔버스의 <도움의 장소>에서 인용한 내용입니다. 참으로 깊고 귀한 깨달음이 아니겠습니까? 

아무튼 솔로몬이 전도서를 쓸 때는 ‘해 아래 있는 모든 것이 헛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쓴 것입니다. 그러면서 ‘해 위의 세계만이, 영원한 세계만이, 하나님과 연결된 삶 만이’ 헛되지 않음을 독자들에게 알리기 위해 쓴 것입니다. 

이제 솔로몬은 두번째로 경험의 방법으로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즉, 인간에 대해 생각합니다. 그것이 12절에서 18절까지의 내용입니다. 특별히 창세기 1장과 이 부분을 연결시키면 솔로몬의 생각을 이해하는데 크게 도움이 됩니다. 

창세기 1장은 자연계와 우주계를 먼저 다루고 그 다음에 인생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계에서 그 중심을 차지하는 존재가 인간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창조기사에서도 인간을 창조하는 처음 장면에 스포트 라이트를 비치는 것입니다. 전도서도 마찬가지 구조를 취하고 있습니다. 전도서는 피조물들 가운데 최고의 피조물인 이성을 지닌 인간에게 초점을 맞춥니다. 

13절에는 “모든 일을 연구하며 살핀즉”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즉, 인생의 참된 의미를 찾기 위해 온 마음을 기울여 노력하고 애쓰는 것을 말합니다. 솔로몬이 평생을 걸쳐 인생의 참된 의미를 찾기 위해 ‘하늘 아래에서’ 찾아 보았다는 것입니다. 13절은 대부분의 번역이 오역을 하고 있는데 킹 제임스 버전만이 바르게 번역했습니다. 

“And I gave my heart to seek and search out by wisdom concerning all things that are done under heaven: 
this sore travail hath God given to the sons of man to be exercised therewith.”  

“나는 나의 마음을 다해 해 아래 되어 있는 모든 일들에 대해 지혜를 가지고 찾고 살폈다. 이 힘든 수고는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하라고 주신 일이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솔로몬처럼 이 세상을 바라보고 생각하면서 그 의미를 찾아보도록 하셨다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셨을 때는 도대체 이 땅에서 왜 살라고 하신 것인지를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며 이를 찾기 위해 나름대로 생각해 보고 궁구하며 살도록 만드셨다는 의미입니다. 

여러분은 궁극적으로 ‘왜’ 살고 있는지 고민하며 생각해 보았습니까? 그리고 그 답을 찾으셨습니까? 

그렇다면 문제는 무엇을 수단으로 해서 그것을 연구하며 살피느냐 하는 것입니다. 13절은 지혜를 써서 살펴야 한다고 말합니다. 즉, 지혜를 사용해서 삶의 의미를 궁구해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솔로몬은 지혜를 사용합니다. 역사상 솔로몬보다 더 큰 지혜를 가진 사람은 없었습니다. 이때 솔로몬이 취한 방법은 자기가 가진 이성을 가지고 피조물의 의미와 인생의 의미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마찬가지입니다. 이성을 가지고 인생이 무엇인지를 궁구하며 살필 수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렇게 인생의 의미를 찾으려 애쓰는 과정에서 솔로몬은 한계에 부딪힌 것입니다. 즉, 15절 “구부러진 것도 곧게 할 수 없고 모자란 것도 셀 수 없도다”라는 것입니다. 지혜를 가지고는 이 세상과 인간들의 구부러진 것과 모자란 것들을 고쳐내거나 회복시킬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인간의 지혜로는 이 일이 불가능한 것을 본 것입니다. 15절은 이 세상에 들어와 있는 죄와 죄의 결과들입니다. 인간은 이 세상에 실제하는 죄의 세력과 죄로 인한 비참의 결과에 부딪히면 인간의 지혜와 능력으로 그 문제를 풀 수 없다는 사실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특히 모든 인생에게 닥치는 죽음의 문제에 대해 인간의 지혜는 답을 주지 못합니다. 따라서 인간은 죽음 앞에서 낙망과 좌절 가운데 삶의 의미를 잃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인간의 이성은 모든 피조물 가운데 우리 인간을 가장 으뜸으로 만드는 기능입니다. 또한 그 기능은 인간이 가진 가장 큰 능력이기도 합니다. 성경은 이를 인간의 지혜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 지혜는 이 세상의 타락과 부패와 인간들의 구부러진 것과 모자란 것을 고치거나 채울 수 없습니다. 즉, 죄와 사망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철학이란 논리를 가지고 우주 만상을 파악하려는 학문입니다. 그러나 철학이 결코 풀지 못하는 것은 죄와 사망입니다. 

여러분들은 13세기에 시작된 르네상스를 아실 것입니다. 르네상스 시대는 인간의 이성이 얼마나 뛰어난 지를 발견한 시대입니다. 그 당시의 인간들은 인간의 이성이 우주의 왕이며 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성이 모든 문제를 결정하고 모든 것의 의미와 이해에 도달할 수 있으며 모든 것을 다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는 그러한 사상이 지배적이던 시대를 ‘르네상스 시대’라고 부릅니다. 

따라서 그 시대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간은 교육만 잘 시키고 이성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하게 되면 모든 것이 가능할 줄 믿었습니다. 그러나 2차례의 세계대전을 지나면서 인간들의 이러한 사상은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그 이유는 인간의 이성은 “구부러진 것도 곧게 할 수 없고 모자란 것도 셀 수 없도다”라는 현실을 체험하였기 때문입니다. 즉, 인간의 이성으로 헤아릴 수 없는 일들이 이 세상에는 너무나 많다는 것을 체험하게 되면서 이성의 한계를 알게 된 것입니다. 

결국 이성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철학자 ‘칸트’는 그의 책 ‘순수이성비판’에서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하지만 칸트가 내린 결론은 사실 벌써 몇 천년 전에 솔로몬에 의해 내려진 결론입니다. 그럼에도 성경은 인간 이성의 중요함과 가치를 인정합니다. 

특히 전도서는 이성을 지혜라고 부르며 지혜로 간주합니다. 물론 영원한 지혜나 거룩한 지혜, 또는 하늘로부터 오는 지혜는 아닙니다. 인간 그 자체 안에 남아 있는 지혜로운 기능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삶의 의미를 풀 수 없다는 것이 가장 지혜가 많았던 솔로몬의 입을 통해 나온 결론입니다. 

결국 솔로몬은 자신의 지혜로 인생의 의미를 알아내지 못하였습니다. 이에 솔로몬은 그렇다면 최소한 어떻게 사는 것이 현재에 유익인지, 그리고 어떻게 사는 것이 미친 짓인지를 알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궁극적으로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따라서 인간을 인간되게 하는 유일하고 최고의 기능인 이성, 즉 지혜와 지식마저도 어떤 뭔가가 더 있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내가 다시 지혜를 알고자 하며 미친 것들과 미련한 것들을 알고자 하여 마음을 썼으나 이것도 바람을 잡으려는 것인 줄을 깨달았도다. 지혜가 많으면 번뇌도 많으니 지식을 더하는 자는 근심을 더하느니라”(17-18절). 

지금 솔로몬이 겪는 문제는 성경 전반에 걸쳐서 볼 때 죄의 문제와 죄로 인한 결과에 대한 문제입니다. 죄의 결과로 인해 망가진 ‘해 아래 세상’에 대해서 인간의 이성으로는 풀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가장 큰 문제며 이 문제를 풀지 못하면 부자든 거지든, 학자든 미친 사람이든, 유명한 사람이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사람이든, 한 가지로 다 같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솔로몬은 일차적인 결론을 내립니다. 

“무엇을 가리켜 이르기를 보라 이것이 새 것이라 할 것이 있으랴 우리가 있기 오래 전 세대들에도 이미 있었느니라. 이전 세대들이 기억됨이 없으니 장래 세대도 그 후 세대들과 함께 기억됨이 없으리라”(10-11절). 

사랑하는 여러분! 
영원한 세상을 발견하지 못하면 그 사람에게 궁극적으로 남는 것은 ‘허무’입니다. 하나님을 발견하지 못하면 그 사람의 인생은 죄와 썩음 밖에 없습니다. 전도서를 통해 우리가 얻는 하늘의 지혜는 수단과 목적이 바뀌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지혜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지혜입니다. 이 세상 그 자체로는 영원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이 세상에 속한 것을 위해 사는 것은 임시적이며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하지만 영원한 나라와 영원한 세계가 있습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우리는 지금부터 살 수 있습니다. 그 삶을 믿음의 삶이라고 부릅니다. 그것은 이 세상을 수단으로 삼고 영원한 세계를 목적으로 삼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것을 가지고 이 세상을 위해 사는 사람은 미친 사람과 별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것이 오늘 솔로몬이 내린 결론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것을 가지고 저 세상을 위해 살 때는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지혜자가 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모든 만유를 창조하신 영원한 나라의 왕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십니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마 13:44-46). 

자신의 모든 소유를 다 팔아 좋은 진주를 사는 사람만이 헛됨 속에서 빠져나오는 사람입니다. 멸망 속에서 빠져 나오는 사람입니다. 하늘의 지혜로 사는 가장 지혜로운 자들인 것입니다. 

더욱이 예수님께서는 저 세상을 위해 이 세상을 희생할 줄 아는 사람이 영생을 얻으며 또한 이 세상에서도 이 세상의 것을 수단으로 여기며 살 수 있기에 참으로 풍성하고 보람된 삶을 살 것을 약속하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막 10:10-26-27). 

이에 바울이 진리를 선포하며 권면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고후 4-16-18) 

그리고 우리의 현재의 삶에 대해 가장 유익한 말씀을 남깁니다.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미쁘다 이 말이여 모든 사람들이 받을 만하도다. 이를 위하여 우리가 수고하고 힘쓰는 것은 우리 소망을 살아 계신 하나님께 둠이니 곧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시라. 너는 이것들을 명하고 가르치라” (딤전 4:7-11).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골 3:1-2). 

사랑하는 여러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주의 말씀을 그대로 전합니다. 마음 깊은 곳에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이 말씀을 우습게 여기지 않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 2:15-17).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 외에는 전부 허무로 끝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들을 부러워하지 말기 바랍니다. 이 세상에 속한 모든 것은 고작 잠깐 있다 없어지는 안개와 같은 영광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직업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지루하지 않은 직업은 이 세상에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는 일에 만족하며 하나님께서 일용할 양식을 주시면 날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며 사는 삶이 가장 행복하고 보람된 삶입니다. 즉, 매일 되풀이 되는 단조로운 삶 가운데서도 영원한 진주인 주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는 삶은 가장 보람된 삶인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도 나의 인생이 왜 존재하는지 돌아봅시다. 또한 이 땅에서 가장 지혜로왔던 솔로몬의 음성을 기억합시다. 동시에 ‘해 아래’만 보는 것이 아니라 ‘해 위에’ 계시며 모든 만유를 창조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을 기억합시다. 더욱 우리의 남은 삶이 영원한 세상을 바라보며 살기를 바랍니다. 금방입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죽음을 지나면 더 이상 기회가 없습니다. 우리는 언제든지 이 세상을 떠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날 때의 우리의 영적 상태, 영적 깊이만큼 영원한 세계에서 우리의 위치와 우리의 신분이 결정날 것입니다. 이 말씀을 하신 분이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 그분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주의 백성이 되기를 원합니다. 

여러분은 이 세상이 아닌 해 위의 나라인 하나님의 나라를 아십니까? 그 나라는 지금 성령 안에서 영적으로 이 땅에 임하여 있습니다. 단지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하나님없이 허망하게 살던 인생을 회개하고 하나님 나라의 왕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살되 하나님의 나라의 영원한 영광을 바라보며 날마다의 평범한 삶을 영원을 위해 사시는 주의 백성 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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