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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께서 입히신 가죽 옷 (창 3: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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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입히신 가죽 옷 (창 3:14-24)

목회자들은 비교적 다른 분들에 비해서 조금은 일찍 일어나는 편입니다. 저도 늘 새벽 3:30이면 집에서 일어납니다. 오늘도 교회 왔는데 4시가 좀 못되서 도착해서 4층 주차장에 차를 대려고 비집고, 주차가 많이 되어 있어서 들어가는데 옆에 대리석 보호대가 있는 것을 어두워서 잘 못봤어요. 대리석도 하도 차들이 부딪쳐서 깨뜨리니까 대리석을 보호하도록 돌로 만든 말뚝을 세워놨어요. 그 있는 걸 모르고 가는데 뭔가 차에 붇딪쳐요. 그래서 앞으로 갈까 뒤로 갈까 고민하다가 에라 그냥 앞으로 가자. 그러며 그냥 갔습니다. 그랬더니 차가 좀 많이 부딪쳐서 기스가 크게 나고 좀 찌그러졌어요. 차를 세워놓고 그걸 보니까 너무 마음이 아픈거예요. 그냥. 세찬데 이거. 일 년 밖에 안됐는데. 

그래 제가 늘 주일에 하듯이 강단에 와서 오늘 하루를 위해서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제 마음에 이런 질문을 주세요. “야, 이영무 목사야 너 차 찌그러지고 기스 나니까 기분 나쁘지?” “예! 기분 나쁩니다.” “마음이 아프지?” “마음이 너무너무 아파요” 그랬더니 하나님 그래요. “그게 바로 내 마음 같단다.” “네가 내 말에 불순종하고, 네가 범죄할 때, 내 마음은 그렇게 아프단다.” 생명도 없는 차가 찌그러졌다고 마음 아파하지만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작품들이 범죄 할 때,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할 때 하나님의 마음은 얼마나 아프신가. 우리가 하늘 아버지의 심정을 좀 이해 할 수 있으면 좋겠다. 하나님께서 그 깨달음을 제게 주셨어요. 

여러분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 가장 아름답게 창조하셨어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서. 인간을 흙으로 빚어서 직접 만드셨어요. 그리고 인간의 코에 생기를 불어 넣어주시니까 인간이 움직이는 생령이 되었다. 인격체가 되었어요. 이 동물과 사람은 근본적으로 다른 거예요. 인간은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는 성품을 가지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신 후에 어떻게 하셨어요? 너무 좋으셔가지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그렇게 말씀 하셨어요. 

그런데 인간이 며칠도 못 되어서 하나님이 금하신 명령을 어기고 뱀의 유혹에 빠져서 선악과를 따먹고 말았어요. 인간에게 죄가 들어오고 범죄하게 되고 타락이 왔어요. 하나님은 그것을 보시고 너무너무 마음 안타까워 하셨어요. 그 아름다운 작품 속에 기스가 가고, 쭈그러들고, 더러움이 생기고 파괴되어지고, 그 보기 흉한 모습으로 변모되어질 때 하나님의 마음은 얼마 나 아프실까 여러분들도 뭔가 아름다운 걸 만들어 놨는데 친구가 거기에다가 잉크를 부었던가. 뭔가 부수던가 발로 걷어차면 얼마나 가슴이 아파요. 그게 바로 하나님의 심정이라는 거예요. 

여러분 인간은 뱀의 꾀임에 넘어간 것입니다. 그 뱀의 배후에 있는 사단의 유혹에 넘어간 것이지요. 네가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 눈이 밝아질 것이다. 선악을 알게 될 것이고, 너는 위대해 질 것이다. 행복해 질 것이다. 정말 그렇습니까? 그건 다 거짓말이었어요. 인간이 선악과를 먹은 이후에 찾아온 것은 수치와 부끄러움입니다. 

벌거벗은 모습을 보고 너무 부끄러워요. 그래서 무화과 나무치마를 만들어서 스스로 가렸어요.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는데 아담은 너무 부끄러워 하나님의 얼굴을 볼 수가 없어요. 그래서 숲에 들어가서 숨어버렸어요. 하나님이 두려워서. 당신이 두려워서 내가 숨었나이다. 그것만이 아니예요. “너희가 왜 이렇게 했느냐? 왜 내 말을 듣지 아니하였느냐?”하고 말씀하시니까 서로 핑계하기 시작했어요. 책임전가해요. “당신이 내게 준 저 여인이 내게 먹으라고 해서 내가 먹었나이다.” 아담은 죄가 없어요. “하와야 너는 왜 그렇게 했느냐?” “저 범이 꾀어서 그렇게 했습니다.” 여인은 책임이 없어요. 범죄한 사람, 타락한 사람들의 특징은 서로 책임전가 하는 거예요. 분열하는 교회 를 보면은 서로 책임전가를 해요. “목사님 때문에 교회가 안돼!” “장로님 때문에 우리 교회가 안돼!” “집사들 때문에 교회가 안돼!” 서로 책임전가해요. 

자기 때문에 교회가 안 된다고 하는 분은 제가 한 분도 못 봤어요. 다 남 때문에. 이게 오늘 교회의 모습 이예요. 우리들의 모습, 가정의 모습. 

장관임명 동의안이 빨리 안 되니까 야당은 뭐라고 그럽니까? 청와대가 좀 훌륭한 사람을 인선하지 자격 미달자를 인선해서 이 꼴이라고. 다 책임전가예요. 또 청와대 쪽에서는 야당이 정치 못하게 발목을 잡는다고 말해요. 저 사람들 때문에 정치 못하겠다. 서로가 핑계대요. 

이것이 타락한 인간의 모습이다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이 모습을 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공의로우시기 때문에 인간의 허물을 덮어둘 수가 없어요. 하나님께서는 인간에 심판을 내리십니다. 그래서 먼저는 뱀을 저주하시죠. 그래서 뱀은 이제는 네가 이렇게 하였음으로 너는 평생을 기어 다닐 것이다. 그래서 이 모습 보면은 예전에 아마 타락하기 전에는 뱀이 걸어다녔는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저주를 받아가지고 뱀이 기어다니기 시작했어요. 너는 평생 흙을 먹는다. 실제로 흙을 먹지는 않지만 그들은 결국 흙냄새를 맡으며 기어다니는 존재가 되었어요. 구약의 율법에 보면 기어 다니는 것은 다 부정한 것이요 인간이 먹을 수가 없어요. 뱀이 저주를 받았어요. 

두 번째는 여인이 저주를 받습니다. 여인에게 고통이 오는데 무슨 고통이와요? 임신의 고통, 10개월 동안 여인들은 아이를 뱃속에 담고 다니잖아요. 얼마나 힘들어요. 그렇죠? 혼자도 힘든데 하나를 담고 다니니까 얼마나 힘들어요 여자가. 그것만이 아니예요. 해산하는 수고. 해산의 고통이 또와요. 그 여인들이 아이를 출산할 때는 정말 생명의 위험을 느낄 정도로 고통이 심하다고 그러잖아요. 남자들은 아기를 안나봤으니 아무것도 모라요. 그냥. 여자분들 얼마나 힘들어요. 

또 성경에 보니까 뭐라고 그래요. “네가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다.” 이 다스린다는 건 지배한다는 거예요. 사실 하나님이 창조하실 때 남자와 여자의 모습은 서로 돕는 베필이예요. 서로 존경하고, 사랑하고, 위로하는 돕는 베필인데 이제는 남편으로부터 다스림 받는 존재가 되었다는 거예요. 이건 뭐예요? 남자들에 의해서 여인들이 힘들고 고통스러운 삶을 산다는거예요. 

여러분 지금이야 남편가 평등해서 별로 그런 일들이 없지만, 어느 통계를 보니까 작년 일년동안 남편이든지, 남자친구든지 남자에 의해서 살해당한 여자가 일년에 120명이예요. 우리나라에. 그러니까 그 만큼 여인들은 오늘도 남자에 의해서 고통을 당하고 있다는거예요. 

뭐 예전시대는 말할 것도 없고, 한 번 시집가면 그 남자에게 메여가지고 그 집의 노예가 되어서 평생 여필종부라고 살아가는 것 아닙니까. 그저 그렇게 살다가 죽는거예요. 남편 하나 잘만나면 잘 살고 남편 잘못만나면 그 일생은 끝나는거예요. 그냥. 이 뭐예요? 남편에게 다스림 받는 그런 신세가, 그 고통이 온 거예요. 

아담에게도 마찬가지예요. 자 오늘 우리 성경 17절 말씀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내게 먹지 말라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어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아멘.

아담에게도 하나님의 저주가 임했어요. 아담의 잘못은 뭐예요.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그렇다고 아내의 말을 듣지 말라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의 소리를 듣지 말라는 거죠. 아담은 적어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되요.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먹으면 정녕 죽이리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되는데 하와가 자기도 먹고 남편에게도 주어 먹게 했다는, 그 아내의 말을 듣고 선악과를 먹었다가 결국 공범자가 되고 말았어요. 또 하와는 누구의 소리를 들었어요? 사탄의 소리를 들었어요. 뱀의 소리를 들었어요. 하나님의 소리를 듣지 않았어요. 여러분은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물론 사람들도 지혜로운 말을 하지만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되요. 하나님이 아담을 저주하셨어요. 그래서 그로 인해서 땅이 저주를 받고, 땅이 엉겅퀴를 내고 네가 수고하여 그 소산을 먹을 것이다. 그 때부터 남성들은 노동이 저주가 되었어요. 그러니까 타락하기 전에는 노동자체가 즐겁고 행복한 거예요. 하나님도 인간을 흙으로 빚어서 만드셨어요. 일하신거예요. 그리고 하나님도 7일째에 안식하셨잖아요. 

그런데 타락이후에는 이 모든 노동이 고통이 되었어요. 그래서 사람들은 일하기를 싫어하고 일하면 힘이 빠지고, 힘들고 어려운거예요. 여러분 그러나 타락하기 전에는 노동은 즐겁고 행복한 것이었어요. 생각이 달라진 거예요. 그래서 사람들은 일 안하는데 좀 편안한 직장을 원하는거 아닙니까? 육체적으로 힘든 육체노동을 하는 직장은 아무도 안 가려고 그러잖아요. 다 편안하게 의자에, 책상에 앉아서 도장만 찍고, 어디 볼펜만... 이런 것만 다 원하는게 아닙니까? 원래 육체노동이라는 것은 신성하고 거룩한 거예요. 그런데 타락한 이후에 인간의 생각이 바뀌어진겁니다. 그것이 인간에게 고통이 되었다는거예요. 그리고 너는 흙에서 왔으니 결국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 

아담을 통해서 땅이 저주를 받고 그리고 그의 생애가 고통가운데 살아가는 인생이 되었다. 자 이것이 바로 범죄의 결과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3장은 어찌 보면 가장 어둡고 허망한 장입니다. 마치 어느 가정의 옥동자가 태어나서 온 가족이 축하를 하고 잔치를 벌이고 기뻐하는 그 사이에 거기에 폭탄 하나가 떨어져가지고 쑥대밭이 된 모습이예요. 

에덴동산의 그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마음껏 과실을 먹고 하나님과 교제하며 살아가도록 인간을 만드셨는데 인간은 여호와의 말씀에 불순종하고 범죄하여 결국 에덴동산이 쑥대밭이 되어 버렸어요. 인간은 서로를 비난하고 비판하고 정죄하고 그리고 하나님의 저주가 인간에게 임하게 되었습니다. 

자 그러면 창세기 3장은 절망으로 끝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여기서 시작이 됩니다. 인간이 무서운 저주와 고통을 당하고 심판 가운데 있을 때 하나님은 인간에게 사랑의 손을 내밀어 주시는 거예요. 우리는 세 가지를 묵상해 보려고 합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께서 내미신 첫 번째 사랑의 증거는 무엇이냐? 하나님이 범죄 한 인간을 찾아오신 거예요. 우리 창세기 3장 9절 말씀을 다시 한 번 읽어 보겠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아멘 

하나님이 범죄 한 인간을 찾아 오셨어요. 그리고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하고 부르시는 거예요. 부끄러워하는 아담,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여 숨은 아담을 하나님이 찾아 오셨어요. 범죄 한 인간이 하나님 앞에 나아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범죄 한 인간을 찾아 오셨어요. 

그것은 왜 그러냐?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도저히 포기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결국 끊어 질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인간을 찾아 오셨어요. 결국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계속 진행되어질 거예요.

아마 하나님이 이렇게 부르실 때 아담과 하와가 나와서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자복하고 하나님 우리가 범죄했나이다. 했더라면 상황은 달라질 수도 있어요. 그런데 그들은 서로가 책임을 전가하면서 변명하면서 핑계로 일관 했습니다. 이것이 안타까운 것이지요.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하는 것은 하나님이 아담이 지금 어디 숨어 있는지 몰라서 찾는 것이 아니에요. 아이들이 숨바꼭질 할 때 어떻습니까? 완전히 자기 몸을 다 숨기고 나 찾아봐 그래야 하는데 어떤 아이들은 자기 눈만 자기가 가리고 자기 머리만 어디 쳐 박고 엉덩이를 밖으로 다 내놓은 채로 날 찾아봐 하는 것 하고 똑같아요. 

인간이 숨어도 하나님이 모르시겠습니까? 하나님은 다 아시죠.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하는 얘기는 아담아 네가 지금 어떤 상태에 있느냐? 네가 지금 어떤 범죄를 저질렀고 네가 지금 어떤 모습으로 나를 피하고 있느냐? 아담 스스로를 깨닫게 하는 질문이죠. 그렇습니다. 하나님 오늘도 타락하고 범죄한 우리들을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아무개야 네가 어디 있느냐? 네가 지금 어떤 자리에 서 있느냐? 네가 지금 내 말에 순종하고 있느냐고 주님은 묻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 마음에 문을 노크하고 계신 거예요.

요한계시록 3장 20절의 말씀처럼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로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주님의 노크 소리에 문을 열고 회개하고 자복하면 너는 나와 함께 식탁에서 행복한 영광을 누릴 것이다.’ 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주님이 여러분을 찾아오실 때 우리들의 영혼을 노크하실 때 ‘네 제가 여기 있습니다.’하고 나아가서 내 있는 모습을 그대로 주님 앞에 내려놓고 회개하고 주님의 영광에 참여 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이 우리를 찾아 오셨습니다. 

두 번째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 손을 내미신 두 번째 증거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자의 후손을 약속하셨습니다. 우리 오늘 성경 15절 말씀을 다시 읽습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아멘 

이 창세기 3장 15절은 주석가들이 원시 복음, 최초의 복음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복음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인간이 들어야 할 가장 복된 소식, 희망의 소식입니다. 이것이 바로 창세기 3장 15절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지금 죄로 인해서 타락했고 멸망에 이를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길을 하나님이 열어 주신 것이예요. 그것이 무엇이냐? 이 땅에 여자의 후손으로 오신 이가 계신다는 것입니다. 여자의 후손으로 오시는 그 분이 바로 네 뱀의 머리에 상처를 낼 것이다. 그게 뭐예요? 뱀의 배후에 있는 사탄을 무찌를 것이다. 

여자의 후손으로 오시는 분이 누구예요? 예수 그리스도이신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옆에 분들에게 이야기 해주세요. “여자의 후손으로 오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렇습니다. 졸더라도 이것은 꼭 듣고 가셔야 해요. 여자의 후손으로 오신 분,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마태복음 1장 18절에 보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성령으로 잉태되어서 그분은 여인의 몸을 통해서 오셨습니다. 여자의 후손으로. 

이사야 7장 14절에 보니까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그의 이름을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 임마누엘 그분이 바로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바로 그분은 여인의 몸을 통해서 여자의 후손으로 오실 것이고 그분이 바로 사탄을 무찌를 것을 성경은 이미 예고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들은 타락해서 죄의 노예가 되고 사탄의 노예가 되었지만 이 땅의 여인의 후손으로 오시는 동정녀를 통해서 오시는 그분이, 의로우신 그분이 사탄을 무찌를 것이다. 그래서 사탄의 손아귀에서 우리를 건져 내어 주실 것을 성경은 예고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이것이 최초의 복음이예요. 예수님의 오심은 요한 일서 3장 8절에 보니까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라.” 그분이 오셔서 마귀의 모든 일을 다 멸망시킨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제 더 이상 마귀는 우리를 지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성경에 보니까 여자의 후손은 내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뱀의 머리 사탄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다. 그것은 무슨 얘기예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다는 얘기예요. 대제사장과 로마 군병들을 충동질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을 때 사탄은 승리의 개가를 불렀습니다. ‘내가 승리했다. 이 모든 인류는 나의 종이다.’ 아니예요.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셨지만 3일 만에 다시 능력으로 부활하셨어요. 사단의 머리에 치명적인 상처를 주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죽음의 권세, 사탄의 권세를 완전히 무찌르신거예요. 사탄은 더 이상 우리를 지배할 수 없어요. 그래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나아갈 때 여러분은 승리할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 이름, 그 이름이 얼마나 보배로운지 몰라요. 예수님은 바로 마귀를 멸하러 오셨고 그 보배로운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구원 받고 마귀의 매임에서 참으로 자유함을 얻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진리를 얻을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할지라. 진리라는 것은 누구에요. 진리이신 예수님을 가리키는 것이에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그렇죠. 바로 예수님이 진리예요. 예수님이 우리를 자유케 하시는 거예요. 하나님께서는 여자의 후손을 우리에게 약속하셨어요. 이것이 바로 최초의 복음이예요. 

세 번째. 하나님이 우리에게 내미신 사랑의 증거가 있어요. 하나님께서는 가죽옷을 지어 입혀 주셨습니다. 우리 21절 말씀을 함께 읽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의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자 지난주에도 여러분에게 물어봤습니다. 성경 퀴즈! 인간이 최초에 입은 의상은 무엇이었다구요? 치마였습니다. 무엇으로 만들었다구요? 무화과 나뭇잎! 

여러분 무화과나무 잎으로 만든 것은 오래 못 갑니다. 우리가 어릴 때 나뭇잎 가지고 왕관도 만들고 치마도 만들지만 그것은 며칠 못 갑니다. 다 말라 비틀어져서 나중에는 입으나 마나 똑같다구요. 부서져 버리고 만다구요.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너무나 우스꽝스러운 거예요. 하나님께서는 정말 튼튼한 옷을 만들어 주셨어요. 가죽옷, 가죽옷.

하나님께서 가죽옷을 친히 만드셔서 아담과 하와를 위해서 그것을 지어 입히셨다. 이것은 굉장한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닙니까? 여러분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짐승이 죽어야 해요. 이 짐승은 바로 주석가들에 의하면 어린 양이예요. 양 한 마리가 희생되었어요. 두 사람이라 두 마리의 양이 희생되었겠지요. 그 피가 흘려졌어요. 그리고 그 희생 위에 가죽옷을 가지고 인간의 옷을 지어 입혀 주셨어요. 여러분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바로 그 사건을 위해서 구약의 속죄 제사의 출발이 되었어요. 인간이 범죄 할 때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짐승을 잡아 그 피를 흘림으로 인간의 죄가 용서 받는 길을 열어 준 거예요. 

그러나 그것은 불완전한 용서에요. 그래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의 제단에 자신의 몸을 드림으로써 그 피를 흘림으로 우리의 죄가 용서 받고 영원한 속죄를 이루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이 이미 창세기 3장 21절에 예고 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수치와 부끄러움 죄를 하나님께서 가죽 옷을 만드셔서 지어 입히셨단 것은 무엇이에요? 예수 그리스도의 피 흘리심과 그의 속죄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우리가 입은 것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신 거예요.

그 분이 우리대신 저주를 받으시고 의로운 자가 불의한 자리에 서셨기 때문에 불의한 우리가 의롭게 된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너희는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의의 옷을 입히시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내가 공로 때문에 완전하고 의로워서 내가 구원 받는 것이 아니에요. 나는 불의 하고 추악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옷으로 그분의 피 흘리심의 공로로 공로의 옷을 우리에게 입혀주시기 때문에 예수님의 의의 옷을 입을 때 우리는 천국을 통과하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피의 공로 때문에 이것이 바로 의의 옷이에요. 장차 우리가 입을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우리에게 암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3장 21절 말씀은 정말 은혜가 되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부끄러움을 덮어주시고 우리를 위해서 영원한 속죄를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신 거죠. 그래서 성경은 뭐라고 합니까?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을 보라. 바로 그 분이 우리를 위해서 희생당하신 분이었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2장 28절에 보니까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희생가운데서 우리가 속죄함을 입게 되었습니다. 우리를 위해 의의 옷을 준비해 주신 것입니다. 

이것 만 아니에요. 여러분 오늘 성경에 마지막 읽은 부분들 이제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에서 추방하시잖아요. 이거 의미가 있어요. 이거 어쩌면 하나님의 축복인지도 몰라요. 왜? 선악과를 따먹은 인간들은 이미 범죄 해 타락했어요. 평생 죄의 고통 가운데 살아가요. 그런데 거기에 있는 영생나무, 생명나무 열매를 따먹으면 인간은 범죄 함 가운데 영원히 살아가는 거예요. 그러면 얼마나 비극적이겠어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생명나무 열매를 따먹지 못하도록 에덴동산에서 쫓아내셨어요. 그리고 성경에 보니까 그룹들과 불 칼을 든 천사들이 그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셨어요. 

더 놀라운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가 회복된 이후에 요한계시록 3장에 보면 이기는 자에게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게 할 것이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구속함을 받은 이후에 천국에 가면 우리는 생명나무 열매를 마음껏 먹으면서 영생을 누릴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요한계시록은 우리에게 이것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 예수님의 은혜가 얼마나 놀라운지요. 오던 이란 작가가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어느 날부터 너무 복잡하고 너무 많은 세상의 근심과 염려가 밀려 내려오니까 우울증이 찾아왔습니다. 의욕을 잃어버리고 살 싶은 마음이 없었어요. 친구 중에 정신과 의사가 있었는데 찾아갔습니다. ‘여보게 나 어떻게 하면 좋은가?’ 

친구와 이것저것 이야기를 하는데 친구가 이렇게 묻습니다. ‘자네 혹시 추억이 있는 장소나 꼭 가보고 싶은 곳이 있나?’ 그랬더니 ‘나는 말이야. 우리 고향 바닷가가 참 추억이 있는데 거기를 한번 가보고 싶어.’ ‘그러면 여보게 거기를 한번 가보게. 거기 가서 하루 좀 지내고 오게나. 그게 당신에게 도움이 될 걸세’ 하면서 그를 보내면서 처방전을 4장을 써줘요. ‘이걸 가지고 가서 꼭 시간마다 읽고 꼭 그대로 하게나.’ 그래서 그는 어느 날 날을 잡아서 자기 시골 바닷가에 갔습니다. 거기 가니까 너무 좋은 거예요. 가서 첫 번째 처방전을 오전 9시에 봅니다. ‘여보게 그 바닷가에 大 자로 누워서 어린아이 같은 심정으로 돌아가서 이제 파도 소리를 들어보고 갈매기 소리를 들어보게나.’ 

그래서 그는 그대로 했습니다. 파도소리를 들으니까 얼마나 좋은지 행복한지 모르겠어요. 뭐든 것을 다 잃어버리고 거기에 평생을 눕고 싶어요. 12시가 되어서 두 번째 처방전을 펴보니까 거기에 써있어요. ‘여보게 자세가 살아오면서 가장 행복했던 기억들을 한번 되새겨 보게나.’ 자기가 살아오면서 행복했던 기억을 어린시절부터 기억해봅니다. 대학 합격하고 연애하고 아이를 낳고... 그것을 보니까 자기의 인생이 그렇게 비극적인 것이 아니에요. 

‘야! 내 인생에도 행복한 일들이 많았네? 내 인생에도 이렇게 즐거운 일들이 많았네?’ 가슴이 흐뭇해졌어요. 오후 3시가 됐어요. 세 번째 처방전을 펴 보았습니다. 친구는 이렇게 적어놓았습니다. ‘자네 인생에 동기와 의미를 다시 검토해보게나.‘ 그는 생각해봅니다. ’나는 왜 글을 쓰는가? 나는 왜 작가 되었지? 나는 박수갈채를 위해, 돈을 벌기 위해, 명예를 쌓기 위해 작가로 살아왔지.‘ 보니까 자기가 그리스도인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온 것은 하나도 없는 거예요. 다 자기목적을 위해서, 이기적인 욕망을 위해서 살아왔어요. 

그는 그것이 너무나 맘에 후회가 되었어요. 자신의 추한 모습을 발견하면서 빗나간 인생을 돌아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립니다. 내가 인생을 헛살았지. 내가 내 욕망만을 위해 살았구나. 이기적인 삶이었어. 그는 반성하며 눈물을 흘립니다. 

오후10시가 되었습니다. 네 번째 처방전을 펴 보라는 이야기를 듣고 펴 보았더니 ‘여보게 이제 자네의 죄를 하나님께 다 자백할 시간이야. 자네가 자백하는 모든 죄의 목록들을 모래사장에 다 기록해보게나. 그는 어린시절 처럼 손으로 씁니다.’ 하나님 저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지 못하고 저의 욕망과 이기적인 욕심만을 위해 살아왔습니다. 내가 이웃들을 섬기지 못했고 사랑하지 못했습니다.‘ 모래바닥에 다 다 적었어요. 그래서 죄의 목록을 다 적었을 때 마침 밑물이 쫙 들어와서 그 자백한 내용을 다 쓸어 가버렸어요. 그는 그 광경을 보면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모든 죄를 용서해 주셨구나. 그의 인생은 달라졌어요. 우울증은 말끔히 사라졌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의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했어요. 그때 그에게 떠오른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요한일서 1장 9, 7절 말씀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여러분 우울증을 극복합니다. 새로운 인생을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글을 쓰기 시작합니다. 

여러분 우리의 인생이 이래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를 억누르는 세상의 짐이 있습니까? 죄의 갈등이 있습니까? 양심의 가책이 있습니까? 이 모든 죄의 짐을 주님 앞에 내려놓으십시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죄를 깨끗하게 씻어 주실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으시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땅에 창조하신 아름다운 목적을 향해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복되고 감사한 인생이 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이영무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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