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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씨 뿌리는 사람 (눅 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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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 뿌리는 사람 (눅 8:4-8)
   
어느 수도원에서 아침 기도 시간이 지난 후 한 풋내기 수도사가 원장에게 물었습니다. ‘기도를 통해서 인간이라는 존재가 하나님께 가까워 질 수 있습니까?’ 아마도 그에게는 이른 아침에 드리는 기도 시간이 고역이고, 무척이나 지루하게 느껴진 모양입니다. 이런 눈치를 챈 수도원장은 그에게 대답 대신에 물음을 하나 던집니다. 
‘네 간절한 기도가 내일 아침 해를 뜨게 하겠느냐?’ 
‘그럴 리가 없잖습니까? 해가 뜨는 건 우주의 섭리니까요.’ 
‘그 말 속에 네 질문에 대한 대답이 들어 있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우리 가까이에 계신다. 얼마나 많이 기도하는가와 상관없이...’ 

풋내기 수도사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기도가 쓸모없다는 말씀인가요?’ 
‘절대 그런 말이 아니다. 일찍 일어나지 않으면 해돋이를 볼 수 없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늘 우리 곁에 계셔도 기도를 하지 않으면 느낄 수가 없는 것이다.’ 

브라질의 작가 코엘료의 이야기 중의 하나입니다. 
   
다가온 봄을 시샘하듯 찬바람이 불고 있지만, 이제 봄이 왔다는 것을 누구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같은 찬바람이 불더라도 겨울이 시작되던 때와는 느낌이 사뭇 다르지 않습니까? 겨울이 시작될 때에는 기온이 내려간다는 소식만 들려와도 걱정이 앞서고 몸이 움추러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른 것 같습니다. 날씨가 좀 추워진다고 해도 해마다 찾아오는 꽃샘추위 정도로 치부할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봄이 온다는 것은 이제껏 한 번도 어긋남이 없었던 자연의 질서이고 당연한 일이겠지만, 지난 겨울이 혹독하게 춥고 힘들었기에 새봄을 맞는 마음은 좀 다른 것 같습니다. 

봄이야 말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가장 소중한 선물이 아닐까요? ‘새 봄을 주신 하나님 참 감사 합니다.’ 우리들 모두가 이런 마음으로 새로운 봄을 맞이하였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은 마치 코엘료의 이야기에서 나오는 것처럼 우리의 기도가 해를 뜨게 할 수는 없지만, 그 속에서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느끼는 것과 같은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봄을 단지 겨울에 이어서 찾아오는 시간으로 맞이한다면, 우리는 어떤 감동이나 기쁨 같은 것도 경험하기가 힘들겠지만, 만일 이렇게 계절이 바뀌는 변화 속에서 우리가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느끼게 된다면, 그가 맞이한 봄은 다른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새 봄을 주신 하나님 참 감사합니다.’ 

오늘 이야기 속에 나오는 사람은 우리의 경험이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아마도 이렇게 계획성이 없고, 무모한 사람도 없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이것이 예수님 당시에 씨를 부리는 스타일이라고 합니다. 우리들 같은 방식은 아니라고 합니다. 씨를 뿌리기 전에 미리 밭을 일구고 돌이나 잡초를 다 제거하고 퇴비를 부어서 곡식이 잘 자라날 준비를 미리 하고서 그곳에 씨를 뿌리는 것이 우리의 방식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시대에는 농부들이 일단 씨를 뿌리는 일부터 했다고 합니다. 그런 다음에 땅을 갈아엎어서 밭을 만들었다고 하지요. 이러한 그 시대 사람들의 방식은 오늘 우리들의 관점에서 본다면 얼마나 낭비가 많고 어리석은 일처럼 보이는지요...
  
혹시 이것이 바로 우리를 대하시는 하나님의 방식은 아닌지...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말씀이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들려주신 비유라고 하는 것을 유달리 본문의 뒤에 이어지는 이야기를 통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는 이 말씀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그 좋은 예를 친절하게 우리들에게 설명을 해 주고 있기도 합니다. 

우리들 모두는 마치 밭과 같아서 어떤 마음가짐으로 말씀을 받아야 하는가가 참 중요하며, 우리가 말씀을 대하는 마음가짐에 따라서 열매가 맺게 되고... 그렇지 못하고의 여부가 판가름 나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 이미 알고 있기도 합니다. 우리는 모두 예수님이 결론처럼 말씀하시는 좋은 땅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좋은 땅이란 ‘바르고 착한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서 그것을 군데 간직하며 견디는 사람’(v.15)이라고 주님은 친절하게 설명하여 주십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비유를 좀 다른 관점에서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언급을 했었지만, 과연 씨를 부리는 사람의 행동이 지혜로운 것인지... 자기의 힘이나 소중한 씨앗을 지나치게 낭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씨를 뿌리기 전에 그곳이 과연 싹이 나고 자랄 만한 곳인지... 그렇지 않은지... 우리로 말하자면 시장조사를 철저히 하고 면밀하게 분석한 후에 씨를 뿌렸다면... 적은 노력으로도 좀 더 나은 결과는 얻지는 않았을까? 나라면 이렇게 무모하게 하지는 않았을 텐데... 이런 생각을 하게 되지는 않으시는지요? 
   
물론 이것이 예수님 당시에 농사를 짓는 독특한 방법이기도 하지만...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방법이로구나... 하는 것을 문득 깨닫게 되었습니다. 오늘 이야기 속에서 중심은 다름 아닌 씨를 뿌리는 사람에게 맞추어져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v.4) 

이렇게 이야기는 시작합니다. 말씀드렸던 것처럼 이 사람은 참 무모하고 계산을 할 줄 모르는 사람 같습니다. 도대체 씨앗이 뿌리를 내리지도 못할 것 같은 길가 같은 곳까지 씨를 뿌리는 이유는 무엇인지... 겉으로만 보아서는 알 수가 없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물론 첫 인상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슬슬 탐색을 해 보아서 맘속에 나쁜 것은 감추고 있지는 않은지... 많이 의심하고 검토를 해보고 나서 결정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가하면... 이미 가시덤불이 무성하게 자란 곳이라면... 그곳에 씨를 뿌리는 일도 참 어리석은 것처럼 보입니다. 
   
오늘 이야기 속에 나오는 씨 뿌리는 사람에게서 보게 되는 장점은 오로지 한 가지뿐입니다. 그것은 결코 포기할 줄 모르는 놀라운 의지라고나 할까요? 웬만한 사람들 같으면 눈에 보이는 신통치 못한 결과 때문에 실망한다든지... 하던 일을 포기할 것 같지 않을까요? 도대체 어떤 곳에서도 좋은 결과를 보지는 못하고 헛 수고만 하고 있으니까요... 이 정도 했으면 이제는 그만 둘 것도 같은데요... 놀랍게도 그는 결코 포기하는 법이 없습니다. 그래도 그만 둘 수는 없어... 어딘가엔 좋은 땅이 있을 거야... 그는 자기가 뿌린 씨앗이 열매를 맺게 되는 좋은 땅을 만나게 될 때까지는 결코 씨앗을 뿌리는 일을 중단할 수는 없습니다. 
   
이렇게 그가 맥이 빠지고 좋은 결과가 보이지 않아도 결코 포기 할 수 없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열매에 대한 기대와 희망입니다. ‘그런데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져서 자라나, 백 배의 열매를 맺었다...’(v.8) 그에게는 이러한 희망이 있었습니다. 지금 자기가 하는 노력들이 아무런 열매도 없고 헛수고만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백 배의 열매란 얼마나 당차고 놀라운 기대인가요? 

당시에 사람들의 농업 기술로는 단지 열 배 정도의 열매만 거두더라도 농사를 잘 지은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비하면 백 배의 열매라는 것은 어떻게 보면 좀 비현실적이고, 막연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이것이 움직일 수 없는 희망이 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백 배의 열매란 우리의 힘으로 얻을 수 없는 것...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도우실 때에만 가능한 것이라는 의미가 여기에는 담겨져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오늘 예수가 소개하시는 ‘씨 뿌리는 사람....’ 그는 결국 예수님 자신이 아닐까요? 오늘 저는 이 이야기 속에서 예수님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가 사람을 대하시는 것을 보면 참 어리석고 무모하기 짝이 없습니다. 옆에 두어야 결코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은 사람들... 좋은 일을 보기기 힘든 사람들... 오히려 예수를 곤란하게 만들 것 같은 사람들... 그런 사람들에게 예수는 가까이 다가가십니다. 마치 씨를 뿌리는 사람이 땅이 어떤지 따져 보지도 않고 씨를 뿌리듯 말입니다. 도대체 예수님은 사람을 구별하시는 법이 없습니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사람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불으러 왔다.’(v.18) 이 말씀 속에 예수가 사람들에 대해서 가진 생각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게다가 예수님은 사람들을 부르실 때에도 도대체 면밀하게 살피시는 법이 없습니다. 단지 예수를 오늘 이 자리에서 따르려 하는 마음만 있으면 됩니다. 그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혹시 좋지 못한 마음이 있는 것은 아닌지... 이제껏 무얼 하며 살았는지... 그런 것은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설혹 세관에 앉아서 세금을 거두어들이며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당하던 사람이라고 하여도 예수에게는 문제가 될 것이 없습니다. ‘나를 따라 오너라.’ 이렇게 부르시는 음성에 일어나서 응답하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앉아서 예배를 드리는 것... 그것은 오로지 이런 예수님의 무모해 보이는 사람 사랑 덕택인 것을 깨닫게 됩니다. 어느 누구도 가리지 않으시고, 어느 누구도 의심하지 않으시고 불러 주시고, 품어 주려 하는 예수님의 넓은 마음... 그것이 오늘 우리들을 이 자리까지 오게 하였습니다. 만일 주님이 까다롭기가 이를 데 없어서 사람을 심하게 의심하거나 따지는 분이셨다면... 우리들 중에 누가 맘 편하게 이 자리에 올 수가 있고, 누가 과연 주님의 일을 맡아서 할 수가 있겠습니까? 
   
물론 예수님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말씀드렸던 것처럼 그것은 우리의 능력으로는 이룰 수 없는 놀라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때에만 가능한 것이지요. 백 배의 열매에 대한 희망 말입니다. 그런 희망을 우리를 향하여 품고 계십니다. 길가와 같은 마음... 그래서 누구도 품을 수 없고 사랑할 수 없는 마음이었는데... 그런 마음들이 참 좋은 땅처럼... 바르고 착한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 그렇게 바뀌어 갑니다. 돌짝밭과 같아서 조금만 어려움이 찾아와도 견디지 못하는 마음이 달라집니다. 좋은 땅이 되는 것이지요. 어렵고 힘든 일들이 있어도 참고 견디어 냅니다. 가시덤불이 무성한... 보기에도 흉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소중한 삶을 헛된 것에만 허비하며 살고 있으니... 그런 마음들이 마침내 참 좋은 땅으로 바뀌어 갑니다. 아름답고 멋진 열매들이 맺히는 마음들이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할 때... 우리는 누구나 이렇게 좋은 땅이 될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 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 것이 되었습니다.’(고후5:17) 이런 희망을 주님은 우리들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하여 가지고 계십니다. 비록 지금은 그렇지 못하지만... 누구나 다 좋은 땅이 될 수 있으며... 비로소 백 배의 열매를 맺게 되리라는 희망... 이것이 예수로 하여금 결코 포기 하지 않고 씨를 뿌리게 한다는 말씀입니다. 

‘씨 뿌리는 사람...’ 이제 우리가 맞이하는 새 봄에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우리들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살게 된 것이 예수가 부단히 씨를 뿌리고 그 열매로 이루어지게 된 것이라면... 이제는 우리가 예수님처럼 씨를 뿌리는 사람으로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마음에 새기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른 봄이 되었을 때에... 누구보다도 먼저 일어나서 한 해의 농사를 준비하는 사람들... 밭을 일구고 거름을 만들며 씨를 뿌릴 준비를 하는 농부들의 모습은 참 건강하고 경건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바로 이것이 이제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우리가 맞이하는 새 봄은 하나님께서 우리이게 주신 소중한 축복이요 은혜입니다. 우리는 정말 이 봄을 멋지게 시작해야 하겠습니다. 

씨를 뿌린다는 것... 그것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베풀어 주신 소중한 사랑을 이제는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하나님 나라의 신비함을 다른 이들과 함께 나누며 산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물론 이제까지 우리가 사랑하지 않은 것도 아니고 나누려 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지나치게 따지거나 계산하지 말고... 사람 구별하지 말고... 내가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한 번 그렇게 해보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내게 하셨던 것처럼 말이지요. 
   
우리들에게는 실패에 대한 지나친 두려움이 있습니다. 내가 손을 내밀었는데... 혹시 그 손길을 저 사람이 뿌리치면 어떻게 하나... 애를 쓰고 수고하며 씨를 뿌렸는데... 혹시 그 결과가 신통치 않으면 어떻게 하나... 그런 두려움과 염려가 있습니다. 예수님이라고 씁쓸하지 않고, 섭섭하지 않으셨을까요? 맥이 빠지고 주저앉고 싶었던 시간이 없었을까요? 그렇게 하면서 맥 빠지게 보내기에는 우리의 삶은 얼마나 빨리 지나가는 것입니까? 이제는 정말 그런 것을 따질만한 시간은 없는 것 같습니다.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꾸준히 힘쓰십시오.’(딤후4:2) 사도 바울은 우리들에게 이렇게 부탁합니다. 
   
결국은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라는 믿음만이 이런 일을 끝까지 할 수 있게 만듭니다. 그런 소망을 모두가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만일... 농부들에게 풍성한 열매에 대한 희망과 꿈이 없다면... 어찌 그들이 아직 얼어붙고 텅 빈 땅을 일구려 할 수가 있을까요? 가을에 거두어들일 풍성한 열매에 대한 희망이 있기에 봄부터 설레는 마음으로 일을 시작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씨를 뿌리는 수고와 모험을 아끼지 않는 사람들에게만 풍성하게 거두는 기쁨과 감동이 있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사람은 기쁨으로 거둔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사람은 기쁨으로 단을 가지고 돌아온다.’(시12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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