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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새언약 안에 살아가려면 (렘 31:3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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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언약 안에 살아가려면 (렘 31:31-34)

1. 어떤 한 목사님께서 자신의 핸드폰 회사에 전화를 해서 무엇을 물어 보았는데, 전화를 받은 직원이 '좋은 플랜이 새로 나왔으니까, 한번 바꾸어보지 않겠냐'고 제안을 하더랍니다. 장사하려고 꼬시는가 싶어서 그럴 생각이 없다고 거절했는데, 그 직원이 하는 말이, 지금 선생님은 1995년에 가입한 후에 그동안 한번도 바꾸지 않았는데, 지금 새로 나온 플랜은, 사용 시간도 배가 넘지만, 가격은 절반도 되지 않고, 또 이런저런 부가혜택이 있는 플랜입니다... 해서, 새 플랜에 가입했는데, 정말 요금도 절반밖에 안되고, 너무 좋았다고 했습니다.


2. 이렇게 하나님은 자기백성과 언약을 맺으셨는데, 나중에 그 옛언약을 해지하고, 새 언약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1) 31절에,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이 새언약은 옛언약보다 훨씬 더 좋은 약속이 들어 있는 언약입니다. 가격은 공짜이고, 무제한 사용할 수 있고, 부가적으로 주어지는 혜택들이 수도 없이 많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이 새언약가운데 있다는 것을 알고, 그 새언약을 마음껏 활용해야 합니다. 

2) 오늘 세례예식이 있는 성례주일입니다. 오늘 성례주일을 통해서 새 언약의 표징으로 행하는 세례의 의미를 다시한번 돌아보기를 원합니다. 본문의 말씀을 중심으로, 새언약이 옛언약보다 나은 점이 무엇인지를 알아보고, 그래서 새언약안에 있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 새 언약 안에 살아가려면 >

I. 새언약이 옛언약보다 나은 것은, 첫째로, 새언약은 깨어질 수 없는 완전한 언약이라는 점입니다.

1. 이것은 왜 새언약이 필요했는가에 대한 것인데요, 왜 새언약이 필요했는가 하면, 옛언약이 불완전했기 때문입니다. 

1) 히브리서 8장 말씀에 (8:7), "저 첫 언약이 무흠하였더라면 둘째 것을 요구할 일이 없었으려니와", 히브리서 7장 18절에도, "전에 있던 계명은 연약하고 무익하므로 폐하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 내시고,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이 언약으로 인해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서, 이스라엘을 돌보고 다스리시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에게 절대 순종하며 살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와도 이 언약을 다시 맺으시고 (출24:6-8),다윗과도 이 언약을 재확인하셨습니다 (삼하7:12-16)

2) 그런데 이 옛언약은 흠이 있고 불완전한 언약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언약을 지킬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3장에서,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로마서 3:20)했듯이, 옛언약은 행함/율법에 달려 있었기 때문에 사람이 그 언약을 지킬 수가 없었고, 그래서 그 언약은 깨어질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3) 그러나 언약은 일반 계약과 달리, 언약을 어기는 자는 죽음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을 때에 동물의 배를 갈라서 양쪽으로 쪼개놓고, 그 사이로 불이 지나가게 했습니다. 이것은 그 언약을 어기는 자는 동물의 배를 가르듯이 죽임을 당한다는 그런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이렇게 언약은 어길 수 없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성경은 자주 결혼의 비유를 사용합니다. 언약을 맺었다는 것은 결혼한 부부와 같아서, 한번 맺어지면 결코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32절에도 보면, "이 언약은 (....)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2. 그러나 새 언약은 그렇지 않습니다. 새언약은 율법 위에 세워진 것이 아니라, 은혜 위에 세워졌습니다.

1) 은혜 위에 세워졌다는 것이 무슨 말인가 하면, 인간이 계속해서 이 언약을 어기니까, 하나님이 드디어 결단하시기를, 그 언약을 어긴 대가를 사람이 지불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그 언약위반의 대가를 지불하기로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언약의 당사자이신 하나님이 사람 대신에 그 죽음의 자리에 누우셔서 친히 제물이 되셨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언약을 위반한 대가를,, 하나님께서 영원히 그리고 완전하게 갚아버리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요,

그래서 새 언약은 이 은혜 위에 세워진 것입니다. 그래서 새 언약 안에 있는 사람은 이 은혜 안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 주신 그 희생의 대가로 주어지는 풍성한 은혜를 누리며 사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이 붙잡혔을 때에, 예수님 대신에 석방된 사람이 바라바라는 강도입니다. 예수님 대신 석방된 바라바는,, 그 자유의 공기를 마음껏 호흡하면서, 예루살렘 거리를 거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어디론가 가고 있어서, 바라바도 그 사람들을 따라가 보았더니, 거기는 바로 골고다 언덕이었습니다. 거기서 바라바는 십자가에 달려 죽어가는 예수님을 본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려 고통하시면서 죽어가고 있는 예수님을 볼 때에 바라바는, '만일 예수가 저기에 달리지 않았다면 내가 저기에 달렸어야 했는데'. 이 바라바는 평생 살면서, 이 십자가의 사건을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예수님이 거기 달리지 않았으면, 내가 거기에 달려서 죽었어야 했는데...

3) 이것이 바로 은혜로 살아가는 자의 마음입니다. 예수님이 거기 달리지 않았다면, 당연히 우리가 거기 달려서 죽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나 사는 것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자기 몸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가운데서 사는 것이라. 

4) 여러분,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습니까? 속상한 일이 있습니까?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우리가 받은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심령이 메마르고 곤고하십니까? 십자가를 바라볼 때에 우리의 굳어진 마음이 풀어지고, 갇혀 있는 마음이 열리게 되고,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감동하시면,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 뼈가 살아나 하나님의 군대가 되는 것과 같은 역사가 있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풍성한 은혜가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II. 두번째로, 새언약이 옛언약보다 나은 것은, 새언약은 돌에 기록된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에 기록된 언약이라는 점입니다.

33절에,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 새언약이 마음에 새겨졌다는 것은, 그 언약이 얼마나 영원불변한가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1) 옛언약이 돌판에 새겨졌다는 것도, 사실 굉장한 것이지만, 그러나 돌판에 새겨졌던 언약은 곧바로 (모세가 시내산에서 내려오자 말자) 깨어졌습니다. 그러나 마음에 새겨진 약속은 결코 깨어지지도 않고, 닳아 없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돌에 기록된 언약은 형식만 지키는 약점이 있었는데, 마음에 새겨진 언약은 이제 마음으로 믿고 순종해야 한다는 점에서도 옛언약과는 다른 것입니다. 예를 들면, 옛언약에서는 살인하지 말라고 하면, 속으로는 아무리 미워하더라도 죽이지만 않으면 됩니다. 그러나 새언약에서는 형제를 마음으로 미워하는 것도 살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자를 보고 마음에 음욕을 품으면 그것도 간음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언약의 백성된 우리는 형식적으로, 표면적인 행위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2. 그러므로 새 언약 안에 있는 우리는, 항상 마음으로 하나님의 법에 순종해야 하며, 하나님이 주신 선한 양심을 따라서 살아야 합니다.

1) 우리가 법을 따라서 사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많은 문제가 법을 지키지 않는데서 오는 문제들입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들은 법을 지키는 정도는 부족합니다. 우리는 양심의 법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지금 한국교회 문제의 핵심은,, 양심의 법을 지키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저 사회법과 도덕을 지키는 정도에 머무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못 지켜서 욕을 먹기도 합니다만, 우리가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심장폐부를 다 꿰뚫어 보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양심의 법을 따라 산다는 말입니다.

2) 양심씨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아주 착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새벽에 일어나서 교회 종을 쳐서 온 동네를 잠에서 깨우고, 온 동네 거리를 깨끗이 청소를 했습니다. 그런데 동네 사람들은 그를 싫어했습니다. 양심씨가 보기 싫어서 창문을 닫고 커튼을 쳤습니다. 양심씨가 치는 종소리가 듣기 싫어서 귀를 막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눈을 감아도 그의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리고 아무리 귀를 막아도 양심씨가 치는 종소리는 귀에 너무 쟁쟁하게 들려왔습니다. 그러자 동네 사람들은 참지 못하여 교회로 몰려가서 종을 부숴 버리고 양심씨를 두들겨 패고는 깊은 지하에 가두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날 이후로 그 동네에는 아침이 오지 않았습니다. 항상 캄캄한 밤이 되었고, 거리는 온통 쓰레기 썩는 냄새로 코를 찔렀다고 합니다.

3) 새언약 아래 살아가는 성도는 무엇보다 신앙양심을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에스겔서에 보면, "하나님이 새 영을 우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겔 36:26). 따라서 굳어있는 우리의 마음을 제거하고, 묵은 마음밭은 갈아 엎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 양심을 따라 살지 않으면, 인간의 욕망이 썩는 냄새가 진동할 것입니다. 거기서는 아무 꽃도 피지 않고, 열매가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 성도는 아무리 많아도 세상의 빛이나 소금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새언약의 백성은 돌판에 기록된 문자적인 법을 지키는 정도가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 새겨진 신앙양심의 법을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이렇게 새언약의 백성답게,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고 순종하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III. 세번째로, 새언약이 옛언약보다 나은 것은, 새언약 안에 사는 자들은, 온전한 죄사함의 은총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1. 이것은 새언약의 효력에 관한 것입니다. 

34절 후반부에 보면, ( ... )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 물론, 이전에도 죄를 용서받는 길이 있었습니다. 인간이 죄를 지어서 언약을 어긴 대가를, 사람이 직접 당하지 않고, 염소나 소와 같은 짐승에게 그 형벌을 대신 지웁니다. 그래서 염소나 소와 같은 짐승이 제물이 되어서, 사람을 대신해서 죽고, 피를 흘림으로 속죄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서에 있듯이, 동물이 대신 죽어서 피를 흘리는 제사는 불완전한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제사는 매년 반복해야 하는 것이었고, 또 히브리서 10장에 있듯이, "그러나 이 제사들에는 해마다 죄를 기억하게 하는 것이 있나니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히 10:3-4)

2)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대속제물이 되셔서 피를 흘리시며 드려진 제사는 염소의 피흘림과 같지 않습니다. 히브리서 10:12절에 있듯이,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고",, 그래서, "그들의 죄와 그들의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이것들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 (히 10:17-18). 영단번의 영원한 제사였습니다.


2. 그러므로 새언약 아래 살아가는 자들은, 온전한 죄사함의 은총을 누리며 살아갑니다. 

1) 우리가 죄사함의 은총을 누린다는 것은, 우리가 죄를 자백하면 용서받을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구원받은 성도도 하루에도 수십번 죄를 범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죄들에 대해서 별로 회개하지 않습니다. 이미 십자가에 우리의 모든 죄가 다 용서받았기 때문에, 그런 개별적인 죄에 대해서 회개하지 않아도, 괜찮나요?

2) 예수님 이전에는 회개해도 회개하는 것으로는 용서받을 수 없었습니다. 아무나 은행에 가서,, 현금을 인출한다고 은행에서 돈을 내 줍니까? 은행구좌가 개설되어 있어야 하고, 은행에 잔고가 있어야 거기서 돈을 내어줍니다. 마찬가지로 잘못을 뉘우친다고 다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용서 받을 수 있는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서,, 모든 죄의 대가를 다 치르셨기 때문에, 그 근거에 의해서 우리가 용서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죄사함의 은총을 누리는 것입니다. 요한일서에서, "우리가 만일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실 것이요,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실 것이라" (요일1:9)

3) 이제 우리 죄가 다 용서받았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무슨 죄를 저지르든지 간에 다 괜찮은 것이 아니라, 이제 우리가 회개하면 항상 반드시 용서받을 수 있는 확실할 근거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새언약의 계약내용입니다. 

4)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잘못을 회개하고 참회해야 합니다. 용서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심령을 씻기 위해서, 죄사함의 그 감격과 은총을 누리고, 깨끗한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기 위해서입니다. “이미 목욕한 자는 발만 씻으면 되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주의 보혈의 샘에 날마다 나아가서,, 우리 죄를 씻어야 합니다. 

5) 그래서 우리가 주님 앞에 설 때마다 죄를 씻어야 합니다. 손을 씻고, 발을 씻고, 집에 들어가듯이, 주님 앞으로 나아갈 때마다 죄를 씻고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죄를 자백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우리 심령에 쓰레기를 안고 살아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쓰레기는 썩으면 냄새가 나고, 그것이 우리의 얼굴을 만들고, 우리의 성품을 만들고, 우리의 삶의 모습을 만듭니다. 우리는 죄의 냄새가 아니라 예수의 향기가 나야 합니다.

6) 오늘 세례식이 있는 날입니다. 오늘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이렇게 우리의 죄를 씻는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이미 목욕을 해서 깨끗하게 된 존재라는 것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세례예식을 거행할 때마다, 우리가 죄용서 받은 자라는 것을 다시한번 기억하면서 그 죄사함의 은총을 감사하고, 그리고 항상 주님 앞에 설 때마다 우리의 발을 깨끗하게 씻기로 다짐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준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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