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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주일]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눅 24: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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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눅 24:1-12)

예수의 죽음을 더 이상 다르게 생각해 볼 여유가 없었던 여인들이 무덤을 방문했을 때 천사가 하는 말은 그녀들에게 가히 충격적이었습니다. 

예수의 죽음은 제자들과 추종자들에게 허탄함과 절망감을 안겨다 주었습니다. 이들은 실망한 나머지 예수의 생전의 모습과 교훈마저도 쉽게 망각해 버렸습니다. 

여인들은 천사의 말을 듣고 그제서야 예수의 몸이 더 이상 그곳에 있지 않음을 보고 놀랐습니다. 
예수의 죽음에 너무 큰 충격을 받은 무리들은 평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하신 말씀을 잊어버렸습니다. 여인들은 예수께서 영원히 죽음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죄 때문에 죽어 마땅하지만 그러나 예수님은 무죄하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신 분이시기 때문에 죽음이 예수를 영원히 결박시킬 수 없습니다.
그가 죽으신 것은 죄 때문이 아니라 우리를 대속하기 위해 죄인처럼 되어서 죽었습니다. 

예수는 원칙적으로 언제나 살아계신 분이십니다. 그래서 천사는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고 했던 것입니다. 
아무리 대단한 사람이라도 이 땅에서 한번 죽었다가 다시 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와는 달리 우리의 죄 값을 지불하시고 반드시 살아야 할 필연성에 의해서 살아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살아나셨다는 기사가 복음서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다고 해도 예수님은 살아계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영원히 죽는 분이 아니십니다. 죽었다가 살아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지구촌에 존재하는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인간들의 죽음을 감당할만한 존재론적 가치를 가지고 있는 분이십니다. 

이들은 예수님이 친히 말씀하신 다시 살아난다는 말씀을 잊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에게 십자가 사건이 너무 놀라운 일이라서 잠시 심리적 충격으로 공황상태에 빠졌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실 때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아직 보혜사 성령님이 오시지 않았기 때문에 진리를 기억케 하시는 역사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성령님의 감동을 받지 않고는 진주를 보배인 줄 모르고 내어 던지기도 하고 그것을 보배인 줄 알고도 별 수 없이 던지게 된다고 했습니다(박윤선 누가복음 24, p.838 주석).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는 말씀은 

Ⅰ. 예언 성취를 확증하는 사건입니다.

누가복음 24장 6절에 『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라 』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2장 19절에 『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성전된 자신의 몸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입니다.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하신다는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16장 21절에 『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 』라고 했습니다. 

마가복음 8장 31절에 『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만에 살아나야 할것을 비로소 저희에게 가르치시되 』라고 했습니다. 

창세기 22장 12절에 『 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리는 과정에서 그는 이삭을 죽이면 하나님이 이삭을 살려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장 17-19절에 『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저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독생자 이삭을 바치라고 명하셨을 때 그에게는 어려운 시험이었습니다. 그 이유는 이삭을 통해서 수많은 자손을 주신다는 약속의 성취가 이삭의 생명에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생각할 때 적지 않은 모순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은 반드시 성취시키신다는 확신이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의지하시고, 의지를 적용하시고, 적용시킨 의지를 성취하시는 과정 하나하나를 이해해야 하는 것은 인간들의 필요조건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는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다만 하나님이 하신 말씀은 반드시 성취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만족해야 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이삭이 제물로 바쳐진 사실을 그리스도의 희생에 대한 상징으로 간주했습니다. 

본문에 『 비유컨대 』라는 말은 예수의 부활에 대한 예표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이삭은 이미 죽은 것과 다름없습니다. 그러나 그 후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는 음성을 들었을 때 죽은 자 가운데서 이삭을 도로 받은 것은 예수 부활을 예표하고 있습니다.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는 말씀은


Ⅱ. 사망이 정복당한 것을 의미합니다.

누가복음 24장 7절에 『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기워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 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한대 』라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5절에 『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라고 했습니다. 

첫 사람 아담 이후로 무덤은 모든 인생들이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께 있어서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요한복음 12장 24절에 『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고 했습니다. 

예수의 죽음은 우리를 대신한 죽음입니다. 예수님의 빈 무덤은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다시 영원한 생명으로 돌아가셨음을 의미합니다.

이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영원한 사망에서 해방되었습니다. 그리스도는 사망을 영원히 멸하셨습니다(사 25:8; 28:8). 우리를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습니다(요 5:24).

예수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었다고 했습니다(딤후 1:10). 천국은 다시 사망이 없는 곳입니다(계 21:4)

로마서 6장 23절에 『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5장 24절에 『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고 했습니다. 

골로새서 1장 13절에 『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라고 했습니다.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는 말씀은


Ⅲ. 죄 문제가 해결된 것을 의미합니다.

누가복음 7장 48-49절에 『 이에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죄 사함을 얻었느니라 하시니 함께 앉은 자들이 속으로 말하되 이가 누구이기에 죄도 사하는가 하더라 』고 했습니다.

성경은 인간의 죽음의 원인을 죄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로마서 5장 12절에 『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고 했습니다.

로마서 6장 23절에 『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고 했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인간은 하나님과 단절되는 영적 죽음을 맞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영혼과 육신이 분리되는 육체의 죽음이 왔습니다. 인간이 회개하지 아니하면 영혼이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마태복음 25장 46절에 『 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고 했습니다.

무덤은 인간의 죄와 저주의 확정입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빈 무덤은 죄에 대한 사망의 형벌에서 용서받은 결과 승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는 말씀은


Ⅳ. 세상을 이긴 것을 의미합니다.

요한복음 16장 33절에 『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하시니라 』고 했습니다.

요한일서 5장 4-5절에 『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뇨 』라고 했습니다.

『 세상을 이기었다 』는 말은 사탄의 권세를 이기었다는 말입니다. 사탄은 이 세상을 계속 지배하기 위해 예수님의 복음 사역을 필사적으로 저지하려고 했습니다.

사탄은 예수를 무덤에 가두어 두려고 했지만 예수님은 무덤을 열고 살아나셨습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심으로 사탄의 권세를 몰아내고 자기 백성을 구원하는 구원의 주가 되셨습니다.

사도행전 26장 18절에 『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두움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케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고 했습니다.

갈라디아서 6장 14절에 『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7절에 『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느니라 』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의 빈 무덤은 우리의 소망입니다. 예수는 우리의 죄를 위하여 대신 죽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히 산 자입니다
그래서 사탄은 예수를 무덤에 가두어 둘 수 없었습니다. 이것이 사탄의 한계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마지막 날에 사탄을 영원히 멸하실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사탄은 자신이 승리한 것으로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의 부활로 사탄은 완전한 패배를 맛보아야 했습니다.

창세기 3장 15절에 『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라고 했습니다. 

예수의 부활로 인해 사탄의 머리가 박살나는 순간입니다. 

사도 바울은 사탄을 조롱하듯 고린도전서 15장 54-57절에 『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로 그가 하나님의 아들 되심이 확증되었습니다.

로마서 1장 4절에 『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성도의 부활과 영생을 보증하는 근거가 되었습니다.
베드로전서 1장 3절에 『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라고 했습니다.

예수의 부활은 우리의 칭의의 근거가 되었습니다.
로마서 4장 25절에 『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성도 부활의 보장이 되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20-22절에 『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기독교 복음의 진리의 진수가 되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14-15절에 『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거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시지 아니하셨으리라 』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성도 부활의 소망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의 모든 불쌍함을 보상받게 될 것에 대한 보장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19절에 『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 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고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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