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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주일] 부활이 없다면 (고전 15: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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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이 없다면 (고전 15:12-22)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아니하셨으리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었을 터이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고전 15:12-22)


실제 사실 앞에서의 가정법

고린도전서 15장은 흔히 부활 장(章)이라고 합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부활에 대해서 매우 상세히 설명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부활 사건의 역사적 증언, 그리스도 부활이 가져다주는 결과, 그리고 주 안에 있는 성도들이 어떤 몸으로 부활할 것인지, 많은 궁금증을 풀어줍니다.  
  
부활이란 생각 자체가 인류사에 없던 개념입니다.  영혼 불멸은 믿었어도, 죽은 몸이 다시 살아나는 것은 믿지 않았습니다.  혹, 지하 세계나 다음 세상에서 환생한다는 개념은 있습니다.  그러나 죽었던 몸이 다시 산다는 생각은 해 본적이 없습니다.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것은 자연 법칙에 없고, 경험상 없고, 상식에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은 부활은 없다고 단정합니다.  
  
사도 바울은 상식이나 논리에서 시작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가 부활하신 역사적 사실에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무덤의 시신에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고전 15:3-8)  

사도 요한은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처음부터 지켜본 것에 대해서 이렇게 증언합니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요일 1:1)  

모든 사도들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을 증언하다가 다 순교했습니다.  베드로는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었습니다.  바울 사도와 야고보 사도는 목베임을 당했습니다.  스데반 집사님은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자신들이 보고 들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너무나 명백한 사실이기에, 그 사실을 증언하려고 생애를 바치고 목숨을 버렸습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가정법으로 설명합니다.  만일 부활이 없다면?  만일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시지 않았다면?  주님의 부활이 명백한 사실이기에, 그 반대의 가정을 했습니다.  주님이 실제로 부활하시지 않았다면 반대로 가정할 겁니다.  주님이 부활하셨다면?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면?  바울의 부활 이야기는 실제 사실에서 시작합니다.  자연법칙에 어긋나고, 상식에 어긋나고, 경험에 어긋날지라도, 분명한 사실 분명한 역사적 fact를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가정법으로 설명합니다.  부활이 없다면?  주님이 다시 살아나시지 않았다면?  이제 그 가정의 이야기를 봅시다.  


부활이 없다면

본문에서 바울은 “만일”이란 말을 써 가면서 여섯 번의 가정을 합니다.  바울의 가정은 크게 세 주제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는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는 가정입니다.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13)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아니하셨으리라.”(15)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었을 터이요,”(16)  

둘째는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지 않았다는 가정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였음이라.”(14-15)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17-18)  

셋째는 우리가 바라는 것이 현세의 삶뿐이라는 가정입니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19) 
  
첫째로,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는 가정에 대해서입니다.  

만일 죽은 사람의 부활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  세 가지 결과를 얘기합니다.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13)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아니하셨으리라.”(15)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었을 터이요,”(16)

말씀의 초점은 그리스도의 부활에 있습니다.  만일 죽은 사람의 부활이 없다면 그리스도가 살아나지 못했을 것이고, 그리스도를 하나님이 살리지도 않았을 것이고, 그리스도 자신도 살아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자의로나 타의로나 필요성에서나 주님이 부활하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13절에, 주님이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을 것이란 말은 부활할 능력이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부활하실 필요성이 없다는 뜻입니다.  죽은 자들의 부활이 없는데 굳이 주님 홀로 부활하실 이유가 없습니다.  
  
부활은 영혼 얘기가 아닙니다. 육체에 관한 얘깁니다. 영혼은 불멸적 존재입니다. 굳이 부활이라는 표현이 필요 없습니다.  부활은 오직 육체에 해당합니다. 바울은 왜 육체 부활을 길게 설명했을까? 바울 당시 헬라인들의 육체에 대한 인식을 알 필요가 있습니다. 헬라인들은 물질세계는 저급하고 악하며, 정신세계는 고귀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육체도 물질이기 때문에 당연히 저급한 것에 속합니다. 헬라인들은 죽으면 영혼이 육체에서 해방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육체는 무의미하고 소멸될 대상에 불과합니다.  육체 부활의 필요성이 없습니다.  
  
성경은 육체에 대해서 뭐라고 말씀하나요?  성경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를 다 아름답고 가치 있게 여깁니다.  인간 육체도 마찬가지입니다.  영혼을 담는 그릇입니다.  아주 소중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육체 부활을 소중히 여깁니다.  육체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만이 보여주신 중요한 역사입니다. 
  
둘째로,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지 않았다는 가정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지 않았다면 어떤 결과가 올까?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였음이라.”(14-15)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17-18)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지 않았다면 모든 것이 허사가 됩니다.  전도가 헛것입니다.  믿음도 헛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영혼을 구원하고 육체를 살리기 위해 자신의 육체를 제물 삼아 속죄하셨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다시 살아나시지 않았다면, 주님의 속죄 효과는 온전하지 못하고, 우리 육체도 다시 살지 못하고, 이미 죽은 사람은 영원히 멸절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기독교 신앙은 말짱 헛것이 될 겁니다.  
  
셋째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이 금생을 위한 것뿐이라는 가정입니다.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19)  기독교 신앙이 현세만을 위한 것이라면?  우리 기독교 신자들은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들이 될 겁니다.  왜냐하면 현세에서 하고 싶은 것 억제하고, 경건하게 산 것이 다 소용 없기 때문입니다.  부활이 없다면 모든 신앙은 헛것입니다.  


그리스도는 부활의 첫 열매

그러나!  천만감사하게도,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로 말미암아!  부활이 없다는 가정은 하지 않아도 됩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부활은 우리에 중요한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20)  주님은 잠자는 사람들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중요한 두 가지 표현이 있습니다.  
  
첫째는 잠잔다는 표현입니다.  세상적으로는 죽는 것을 말합니다.  왜 죽는 것을 잠잔다고 했을까요?  잠잔다고 한 것은 잠에서 깨어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죽음을 바라보는 성경의 시각이 담겨 있습니다.  죽음은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멸절이 아닙니다.  다시 일어나기 위한 휴식입니다.  저녁에 잠자리에 들면서 걱정하거나 슬퍼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이고! 큰일 났네!  오늘 밤에 침대에서 잠을 잔다네!” 하면서 슬퍼합니까?  그런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나 안심하고 편안하게 잠을 청합니다.  아침이 되면 다시 일어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죽음도 그렇습니다.  죽음은 일종의 잠입니다.  잠자는 시간이 좀 길기는 합니다.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까지, 세상 종말까지 자야하니까!  그러나 영원한 시간 속에서 보면 그것도 잠깐입니다.  밤에 자는 것이나, 세상 떠날 때 자는 것이나 똑 같은 잠입니다.  죽는 것 두려워 말고 편안히 주무시기 바랍니다.  
  
둘째는, 첫 열매라는 표현입니다.  주님은 부활의 첫 열매입니다.  첫 열매가 나타내는 의미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먼저 첫 열매란 이어지는 수확의 보증이란 뜻입니다.  가을에 첫 수확을 하면 이어지는 수확은 확실합니다.  주님이 부활하셨으니 우리의 부활도 확실합니다.  다음으로 대량 수확으로 이어진다는 뜻입니다.  주님의 부활은 이어지는 부활의 신호탄입니다.  주 안에서 모든 성도들이 다 부활합니다.  부활의 예외가 없습니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다 부활합니다.  이와 같이 주님의 부활은 성도 부활의 보증이요, 전원 부활의 신호탄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부활의 참여자들입니다.  이 사실을 알고 늘 마음 든든히 사시기 바랍니다.  
  

아담 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영생 부활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에게 주어집니다.  신자나 불신자를 막론하고 육체적으로 부활하는 것은 같습니다.  다른 점은 불신자는 영벌을 위해 부활하고, 신자는 영생을 위해 부활하는 것입니다.  영생이란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입니다.  영벌이란 하나님과의 교제가 없고, 하나님의 돌보심이 없는 삶입니다.  일찍이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 5:28-29)  
  
아담 안에 있는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가?  그것이 영벌 부활과 영생 부활의 열쇠입니다.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21-22)  죽은 나무에 붙어 있으면 죽습니다.  생명이 없고, 영양 공급도 없고, 활기도 없습니다.  산 나무에 붙어 있으면 생명 공급을 받고 풍성한 삶을 얻습니다.  
  
아담은 죽은 나무입니다.  아담 때문에 모든 인류가 죽게 되었습니다.  즉, 죄를 짓고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습니다.  아담이 죄를 짓는 바람에 모든 후손들이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 아래 놓이게 되었습니다.  모든 인류는 가만히 있으면 저절로 다 아담 안에서 죽습니다.  지옥으로 가지 말라고 해도 저절로 다 갑니다.  지옥이 다 예약되어 있습니다.  불행하지 말라고 해도 다 불행해집니다.  다투고, 싸우고, 미워하고, 병들고, 고통 받고, 재앙 속에 살고, 결국은 죽어서 지옥에 떨어집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 나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삶의 길이 열렸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사죄의 길이 열렸습니다.  하나님과 다시 화해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 큰 복중에 하나가 바로 육체 부활입니다.  생명 부활, 영생 부활, 축복의 부활!  이 부활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어야만 주어집니다.  예수 그리스도 밖에는 이런 부활이 어디에도 없습니다.  오늘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한다면 나는 이미 부활의 참여자입니다.  내 속에 부활의 씨, 생명의 씨가 있습니다.  
  
몸에도 등급이 있습니다.  

“육체는 다 같은 육체가 아니니 하나는 사람의 육체요 하나는 짐승의 육체요 하나는 새의 육체요 하나는 물고기의 육체라.  하늘에 속한 형체도 있고 땅에 속한 형체도 있으나 하늘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고 땅에 속한 것의 영광이 따로 있으니, 해의 영광이 다르고 달의 영광이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고전15:39-41)  

사람의 몸과 동물의 몸이 같을 수 없습니다.  땅의 형체,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몸과, 하늘의 형체, 즉 우리가 부활 때에 받을 몸은 등급이 다릅니다.  장차 우리가 부활할 몸은 하늘의 형체입니다.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고전 15:42-44)  

우리는 장차 썩지 않는 몸, 영광스러운 몸, 강한 몸,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납니다.  이 최상 등급의 몸을 내게 주시기 위해 주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할렐루야!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세상에서 육체적으로 죽는 것 너무 두려워하지 마세요.  오히려 새로 받을 몸을 바라보며 기쁘게 반납하시기 바랍니다.  혹시 지상에서의 육체 문제, 의식주 문제, 혹은 병들고 고생하는 문제 때문에 낙심하지 마세요.  새로 받을 몸을 바라보고 담대히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의 부활에 영광 돌립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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