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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와 화해의 십자가 (고후 5:14-19, 사 53:4-6)

고린도후서 5:14-19, “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15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16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그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18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19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이사야 53:4-6, “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오늘이 종려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인류 구원의 길을 여시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날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날부터 예수님이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그 아침까지를 ‘고난주간’이라고 부릅니다. 십자가를 깊이 생각하게 되는 주간입니다.

십자가!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며, 인류구원의 표이며, 영원한 생명의 길을 여는 열쇠입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십자가 앞에서 생각하고 결단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용서와 화해’입니다. 용서와 화해는 사랑의 결실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과의 약속을 저버리고 타락한 인생들을 살려주시고 회복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이 십자가로 나타난 것입니다. 

요한일서 4:9-11절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셔서 우리의 죄와 허물을 씻기 위한 제물을 삼으셨습니다. 이로써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던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여 잃어버렸던 영의 생명을 다시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으로 모든 죄를 용서받아 하나님과 화해하게 되었으니, 우리도 용서와 화해를 실천하는 것이 마땅한 일입니다. 

그래서 신약 본문 18-19절에서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라고 하십니다. 이 고난 주간에 다른 어떤 것보다 용서와 화해를 이루어야 합니다.

※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십자가

기독교의 중심에는 예수님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지난번에 말씀드린 것처럼 기독교의 근본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을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모든 피조물을 조성하시고 다스리시는 주권자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다스림 안에 인간의 구원에 대한 계획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미 이 땅을 창조하시던 그 때부터 인간의 타락을 아신 하나님께서 구원계획도 세우셨습니다. 

창세기 3:15절을 봅시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이 말씀에서 “여자의 후손”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며, “너”로 표현된 존재는 ‘사탄’을 의미합니다. 즉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 사건을 직접적으로 예언한 말씀이 이사야 52:13절부터 본문인 53장 전체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은 인간구원을 이루신 하나님의 사랑의 결정체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으로 구원받은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경외와 감사함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없이는 구원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 당시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를 자기의 죄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사야 본문 4절입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이러한 사실은 현재에도 별로 변함이 없습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신과는 상관없는 듯이 바라봅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셨고, 사람으로 세상에 오신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대신한 제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십자가를 외면하고 세상의 부귀영화에만 눈독을 들이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는 이 세상의 부귀영화와 평안함을 추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죄로 말미암아 잃어버렸던 낙원인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의 생명을 회복하는 것이며 거듭남(重生, born again)입니다. 이처럼 영의 생명을 회복하는 것이 육신의 삶까지도 회복하게 합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6:33절에서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고 하시며, 

요한삼서 1:2절에서는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고 하십니다. 그리스도의 사람인 우리는 영이 강건하고 잘되어야 육신과 세상의 일도 잘 되게 됩니다. 그러므로 매일 삶의 순간마다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십자가에 우리의 삶의 길이 있습니다. 

※ 우리가 따라야 할 십자가

우리가 매일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하지만, 이 십자가는 보고 감동하거나 장식품으로 달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구원과 생명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따르는 제자들과 무리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마가복음 8:34절입니다.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십자가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계시면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모든 일들은 보고 듣고 깨달아 따라오게 하기 위함입니다. 

요한복음 13:14-15절에서는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고 하시며, 

베드로전서 2:21절에서는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죄악과 허물을 용서 받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자신의 삶에서 용서와 화해를 이루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진심으로 용서하지 않거나 화해하지 않으면 우리도 하나님께 용서 받지 못하고 하나님과 화해를 이룰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8:21-35절에서 용서에 대하여 가르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35절입니다.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뿐만 아니라 야고보서 2:13절에서는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고 하십니다. 내가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도 나를 용서하지 않으십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 용서를 받았다고 확신한다면 아무런 조건 없이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십시오.

아프리카의 한 부락 원주민들에게는 세계 어느 곳에도 없는 풍습이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용서 주간’입니다. 날씨가 좋은 날, 모든 사람들은 누구에게나 오해였든 사실이었든 간에 상관없이 어떤 잘못이라도 용서해 준다고 합니다.

‘찰스.H 크래프트’ 목사님은 그의 저서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쓰레기가 있는 곳에는 쥐가 꼬여들듯이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상처들, 즉 미움, 원망, 원한, 증오, 분노, 용서 못함 등의 쓰레기가 있으면 그 쓰레기 속에 마귀들이 자리 잡고 여러 가지 문제와 고통을 준다.”

주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신 것은 우리가 용서받을 만한 일을 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에베소서 2:8-9절입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만 보시고 우리를 용서하셨습니다. 만일 우리가 다른 사람을 용서 하는 일에 있어서 어떤 조건을 붙인다면 그것은 상대적인 용서입니다. 상대가 빌고 반성하고 사죄하기를 기다리는 것은 진정한 용서가 아닙니다. 뿐만 아니라 용서했다고 하면서 마음에 억울함이나 분함이 남아 있다면 이것도 진정한 용서가 아닙니다. 

히브리서 8:12절에서는 구약을 인용하여 “내가 그들의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그들의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고 하시며, 이사야 43:25절에서는 하나님께서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고 하십니다. 

용서는 화해를 동반합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죄 때문에 버렸던 인간들과 화해하기 위함입니다. 왜냐하면 죄를 해결하지 않고는 화해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성자 예수님을 화해를 위한 제물로 내 놓는 특단의 조치를 하셨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이 조성하신 화해의 자리입니다. 이 자리에 믿음으로 나아오는 사람들에게는 영의 생명을 회복시켜 주시는 놀라운 특권을 주셨습니다. 곧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신분의 특권입니다. 

신약 본문 17절에서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1:12절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하나님께서는 이 자녀의 권세를 받은 사람들에게 특별한 부탁을 하셨습니다. 

그것이 고린도후서 본문 18-19절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그래서 저와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특사인 ‘평화사절단(peacemaker)입니다.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화창한 봄날에 기분 좋게 언덕을 올라가던 소년은 길에 튀어나와 있던 돌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이런 돌덩이가 왜 사람들 다니는 길에 있지?”
소년은 삽으로 돌부리를 캐내기 시작했습니다. 파헤치자 점점 돌의 크기가 드러났습니다. 땅 위에 보이는 돌은 사실 큰 바위의 일부였던 것입니다. 소년은 놀랐지만 결심했습니다.
“다시는 다른 사람들이 돌부리에 걸리지 않도록 파내겠어!”
소년은 분한 마음 반, 정의감 반으로 거대한 돌에 달려들었습니다. 해가 뉘엿뉘엿 지기 시작했습니다. 소년은 삽을 놓았습니다. 
“안 되겠다. 포기하자.”
소년은 파놓았던 흙으로 돌이 있던 자리를 덮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소년이 걸려 넘어졌던 돌부리도 흙에 덮여 보이지 않게 되었습니다. 소년은 중얼거렸습니다.
“왜 처음부터 이 방법을 생각 못했지?”

주님은 우리의 잘못을 캐묻지 않습니다. 자기 재산을 받아가지고 먼 나라로 가서 허랑방탕했던 탕자가 거지꼴로 아버지께로 돌아왔을 때 아버지는 그 아들의 과거를 캐묻지 않았습니다. 돌아온 것만으로 기뻐하며 받아주셨습니다. 이것이 저와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배하겠다고 하나님 앞에 나아오는 사람들에게 용서하고 화해했는지를 물으십니다. 만일 그렇게 하지 못한 채 나아왔다면 돌아가서 화해를 하고 오라고 하십니다. 

마태복음 5:23-24절입니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즉 죄를 해결하지 않고는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사순절 마지막 주간인 고난주간에는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모든 막힌 담을 헐고 용서와 화해를 이룹시다. 그리하여 주님의 부활에 우리도 기쁨으로 동참하는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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