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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주일] 부활절을 맞이하여 (고전 1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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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절을 맞이하여 (고전 15:3-8)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고린도전서 15장 3∼8절

우리가 역사를 통해서 보면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 어떤 성현 군자도 죽은 지 사흘 만에 무덤 문을 헤치고 부활하신 인물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다른 종교의 창설자와는 전혀 다른 것은 그는 진리를 가르친 것만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이 진리셨습니다. 또한 주님은 죽음에서의 부활을 통해 자신이 육신의 몸으로 이 땅에 사셨던 공생애가 진정으로 역사적 진실이며 진리였다는 것을 우리에게 확증해 보여주십니다.

1. 왜 구주가 필요한가?

사람들은 “우리에게 왜 구주가 필요합니까? 그냥 이 한 세상 잘먹고 잘 살다가 죽으면 그뿐이지 왜 구주가 필요합니까?”라는 질문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구주가 필요한 것은 우리의 속에서 속사람이 부르짖는 음성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기록된 것처럼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죽지 아니하십니다. 영생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시간도 공간도 전혀 한계도 제한도 없습니다. 그분에게는 모든 것이 영원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러한 하나님처럼 영원한 존재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꼭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육체는 죽어도 우리의 영은 죽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죽지 않고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하나님을 믿음으로 기뻐하고 구원을 받은 사람은 천국의 영생복락을 얻고 하나님을 거부하고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지옥에 떨어져 영원히 고통받게 됩니다. 우리의 조상인 첫사람 아담이 범죄하므로 아담의 자손인 우리는 모두 죄의 종이 되어 그 누구도 구원자가 될 수가 없습니다. 죄에 포로된 우리는 스스로 절대로 그 누구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우리들 자신이 죄인인데 어떻게 다른 사람을 죄와 그 열매인 사망에서 건져낼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와 같은 종류의 사람이 아닌 다른 어떤 특별한 사람이 태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은 아담의 혈통을 이어 받지 않았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 되었는데 마리아를 통해서 아버지 없이 태어났습니다.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서 성령으로 잉태되어 태어났기 때문에 아담의 유전을 받지 않았습니다. 유전 죄가 예수님께는 없습니다. 사람 형상으로 태어났지만 예수님은 타락한 아담의 유전이 전혀 없이 태어났기 때문에 그는 죄도 없고 죄로 말미암아 다가오는 병도 없고 저주도 없고 죽음도 없고 그는 완전한 새로운 종류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를 통해서 아담의 모든 유전저주를 청산하고 새로운 인류를 세상에 태어나게 하기 위해서 주님이 오신 것입니다. 히브리서 5장 8절로 9절은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셨은즉 자기에게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라고 이 새로운 인류의 조상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우리를 어떻게 구원하는지 기록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예수 안에서는 아담의 유전이 다 청산되어 버리고 새사람으로 영원히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복음주의를 대표하는 작가인 필립 얀시는 “은혜는 기독교가 세상에 줄 수 있는 최상의 선물이요, 복수보다 강하고 인종 차별보다 강하고 증오보다 강한 힘을 발휘한다”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에 주신 가장 큰 선물은 바로 은혜입니다. 그 아들 예수님을 보내셔서 우리의 죄를 짊어지심으로 우리를 구원해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만이 우리의 구주가 되십니다. 죄없는 자가 죄있는 자의 죄를 담당하시고 저주받지 않은 자가 저주 받은 자의 저주의 짐을 짊어지시고 죽지 않는 자가 죽는 사람의 버림받은 상태를 받아서 대신 갚아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베풀어 주신 은혜는 말로는 형용할 수 없이 많습니다.

2. 예수님의 부활을 부정하는 자들

예수님의 부활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어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었다는 것은 인간들이 지은 과장이요, 거짓말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이 아니라 단지 기절했는데 무덤 서늘한 곳에 눕혀놓으니 기절했다가 깨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이미 죽은 것을 확인하기 위해 로마의 병사가 창으로 옆구리를 찔렀습니다. 그런데 그 옆구리에서 물이 나오고 피가 나왔습니다. 

일반적인 사망 후 심장이 뚫어지면 물이 없습니다. 피가 그대로 흘러나옵니다. 그런데 성경에 분명히 “물과 피를 쏟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만일 피를 뽑아서 병에 담아놓으면 혈액은 가라앉고 물은 위에 뜹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내가 다 이루었다고 하실 때 그 심장이 갈라졌습니다. 우리도 몹시 괴로우면 심장이 터진다고 말하지 않습니까? 예수님은 실제로 심장이 터졌던 겁니다. 

그래서 심장을 둘러싸고 있는 심방의 물주머니에 물이 고여 피는 가라앉아 있으니 창으로 찌르자 물과 피가 쏟아져 나온 것입니다. 이처럼 과학적으로 따져 봐도 죽으신 것이 확실한데 그 예수님께서 기절했다 깨어났다니 정말 기절할 일입니다. 이것은 아마 예수님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마귀의 꾐에 빠져 그런 거짓말을 퍼뜨려 예수님께서 우리의 속죄를 이루셨다는 것을 믿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일 것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체를 훔쳐가고 부활했다고 거짓말을 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묘지를 막아놓은 돌앞에는 로마의 군사들이 지키고 있었습니다. 거기에서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체를 훔치려 했다면 그 군사들과 싸워야 할 것이요 적어도 몇 사람의 제자가 죽었던지 체포당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살아있는 예수님도 부인했던 베드로를 비롯해 모두 예수님의 체포와 함께 도망갔던 오합지졸들이었습니다. 그들이 과연 그런 용기와 능력이 있었을까요? 

그러므로 마태복음 28장 12절에서 15절에 “그들이 장로들과 함께 모여 의논하고 군인들에게 돈을 많이 주며 이르되 너희는 말하기를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잘 때에 그를 도둑질하여 갔다 하라 만일 이 말이 총독에게 들리면 우리가 권하여 너희로 근심하지 않게 하리라 하니 군인들이 돈을 받고 가르친 대로 하였으니 이 말이 오늘날까지 유대인 가운데 두루 퍼지니라”고 기록된 것처럼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게 하기 위한 그 당시 지도자들의 술수였습니다.

이제 다른 것들은 다 의미가 없는 논쟁입니다. 어떤 명확한 증거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우리 영혼속에 말씀하기 때문에 믿는 것입니다. 눈에는 아무 증거 안보이고 귀에는 아무 소리 안들리고 손에는 잡히는 것 없어도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신 것을 말씀을 들었을 때 성령으로 마음에 감동을 주어서 머리가 무엇이라고 의심하든지 그 의심보다 더 강한 믿음이 마음속에 점령하고 있으니 그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믿는 것은 우리가 잘나서 믿는 것이 아니라 주께서 먼저 우리를 택해서 불러 주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것은 무슨 눈으로 본 증거가 있어서 믿는 것보다도 우리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구원을 받고 믿게 된 것입니다. 

3. 예수님의 부활의 증거

예수님이 부활하신 증거는 굉장히 많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애 기간 동안 자신이 죽었다가 3일만에 살아날 것을 여러 번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4장 6절로 7절에도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기억하라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한대”라고 기록된 것처럼 천사가 새벽에 무덤을 찾아간 여자들에게 증언하여 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무덤에 장사지냈다가 사흘 만에 돌을 옮기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때 그 여제자들이 예수님의 시체에 향기름을 뿌리러 갔다가 천사가 나타나서 예수님이 부활하셨다고 누우신 자리를 보라고 해서 보고 예수님이 부활한 것을 제자들에게 알리려고 뛰어가다가 예수님이 그들 앞에 나타나셨습니다. 또한 엠마오로 내려가던 두 제자가 어떤 사람이 같이 걸어가자고 따라오면서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주막에 들어가서 요기를 하려고 함께 떡을 두고 기도를 하는데 눈을 떠 보니까 예수님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엠마오로 나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났던 것입니다.

그 후에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예수님의 열 제자들이 모였는데 예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그런데 제자 도마는 없었습니다. 도마가 돌아와서 제자들이 전부 흥분해서 예수님이 부활하셨다고 하자 그는 “내 손가락으로 그 옆구리에 창 자국에 넣어보기 전에는 믿을 수 없다”며 절대로 믿지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여드레 후 예수님은 그 도마에게도 나타나셔서 옆구리에 손을 넣어보라고 하시자 그때서야 의심많던 도마도 믿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니가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않고도 믿는 자는 복이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 500명의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만일 예수님의 부활이 거짓이라면 그 500명이 전부 미쳤다는 말입니까? 이처럼 예수님의 부활은 역사적 사실이요 진실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확실히 부활하셔서 40일 동안 세상에 계시면서 여기에 번쩍 저기에 번쩍 하시면서 부활하신 당신을 나타내셨고 나중에 제자들을 잡아 죽이려고 하던 바울에게도 다메섹 도상에서 나타나셔서 구원해주셨고, 제자 중에 가장 위대한 사도가 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4. 왜 부활하셔야만 했나?

그렇다면 우리는 왜 예수님께서 부활했음을 믿고 세상을 향해 강력하게 주장해야 할까요? 예수님께서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믿은 것은 다 거짓이 되고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큰 바보가 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음과 함께 음부에 들어가셨을 때 우리의 죄, 우리 허물, 우리 병, 우리 저주, 우리 죽음을 대신 짊어지고 음부에 들어갔기 때문에 그것을 갚지 못하면 나오지 못합니다. 마귀가 지키고 있는 그 지옥에 주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들어갔는데 갚아야 나오지 갚지 않고는 절대로 못나옵니다. 

그런데 사흘만에 예수님께서 무덤 문을 헤치고 마귀를 무장해제시키고 나온 것은 우리의 죄와 불의, 추악, 저주, 절망과 죽음을 다 청산해 버렸다는 증거입니다. 주님이 살아나왔다는 것은 우리의 죄와 불의가 용서받았고 우리의 질병과 저주와 절망도 청산하고 사망의 권세조차도 다 멸해버렸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활한 예수님을 확실히 믿고 깨달으면 우리는 굉장히 용감하게 변화됩니다. 

갈라디아서 5장 1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에 기록된 것처럼, 우리는 이제 죄의 멍에, 허물의 멍에, 질병의 멍에, 저주와 가난의 멍에, 낭패와 실망의 멍에, 지옥과 죽음의 멍에를 메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이미 다 갚아버리고 청산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제 자유인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고 살아났기 때문에 다시 죽음이 예수님을 붙잡아 놓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마귀의 무장은 완전히 해제되었습니다. 우리가 진리를 알고 담대히 서서 마귀를 대적하면 마귀는 한길로 왔다가 일곱길로 도망치고 마는 것입니다. 마귀는 우리에게 와서 생활을 어지럽게 만들고 억압하고 우울하게 만들고 탄식하게 만들고 포기하게 만들려고 애를 쓰는데 예수님 보혈로 무장한 우리에게는 감당을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이제 우리는 “예수 죽음 내 죽음, 예수 무덤 내 무덤, 예수 부활 내 부활, 예수 승천 내 승천”이 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사람을 입었고, 이제 죄를 용서받고 질병을 고침받고 저주에서 해방을 얻고 음부를 멸하고 영생복락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린도전서 15장 20절로 22절에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 기록합니다. 이제 사망은 우리와 관계가 없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생명이 우리의 소유가 된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예수님이 부활하셨으므로 이 부활을 통해서 우리는 놀라운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게 된 것입니다. 이제는 용서와 의, 거룩함과 성령충만, 건강과 치료, 그리고 아브라함의 축복과 형통, 부활, 영생 천국이 당당히 우리의 것이 된 것입니다. 

이제 주님이 우리 안에 계시고 우리가 주님께 붙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포도나무요 우리는 거기에 붙은 가지나무입니다. 예수님은 천상 포도나무에 우리는 지상 포도나무에 가지로써 접붙임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통해서 하늘나라의 진액을 받아들입니다.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를 그 진액을 받아서 이 땅에서 열매를 맺습니다. 그리고 이 땅에 살면서 우리는 용서받은 의인을 진액으로 받고 거룩한 성령을 진액으로 받고 건강을 진액으로 받고 치료와 축복을 진액으로 받고 영생축복을 진액으로 받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천상의 은총을 받아서 지상에서 천당생활을 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신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한다고 진리를 알고 깨달아서 믿고 꿈꾸고 입으로 시인하고 기도하면 다 우리 생활에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에게 복구해 주신 은혜는 상상할 수 없이 큽니다. 지금 사는 우리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도록 하나님이 섭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왕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 되었습니다. 주님이 우리와 같이 계시고 우리 하나님이 되시고 우리를 붙들어 주시고 우리를 참으로 도와주시고 우리를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말 그리스도가 죽었다가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세계를 우리에게 주시고 새로운 하늘나라 백성이 되게 해주셔서 신바람나게 살 수 있게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성령충만한 생활이 바로 신바람나는 생활인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의 말씀도 듣고 기도도 하고 찬양도 부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지 아니하셨다면 우리는 여전히 죄의 노예요, 사탄의 종이요, 죽음의 종이요, 절대절망 가운데 허덕이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우리는 우리 자신이 누구이며 어디로 가는가를 확실히 알고 죄의 삯인 죽음, 저주, 병, 허물 등에서 해방을 취할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주님이 살아나셔서 주님이 우리에게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경계선이 된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우리는 새사람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속에 와서 계시고 이 질그릇 속에 보배를 모시고 있으므로 예수님이 우리 안에 계시면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않는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만유보다 크고 강하시며 예수님이 우리 속에 계시므로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않습니다. 언제나 주님께 의지하면 주님의 생명이 나타나서 이기는 것입니다

걱정거리가 생겨도 그 때문에 낙심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핍박해도 버림받지 않습니다.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망하지 않습니다. 예수의 십자가에 죽은 사실을 우리가 깨달아 알고 생각하고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다가 부활했다는 것을 바라보고 믿고 입으로 시인하는 우리에게는 예수님의 생명이 우리의 생명이 되어서 예수처럼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학문이 아닙니다. 철학이 아닙니다. 논리가 아닙니다. 상상으로 지어서 하는 거짓말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죽었다가 부활하셔서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사는 새로운 삶인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에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우리는 유한한 사람이지만 예수님은 영원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그의 품에 처음부터 끝까지 다 끌어안을 수가 있고 한사람부터 억조 탄생을 다 마음에 끌어안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 삽니다. 예수님의 부활의 생명을 의지하고 삽니다. 예수님이 베풀어주시는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을 갖고 삽니다. 진리를 깨닫게 된 것을 감사합니다. 이제 높고 희망찬 승리의 꿈을 가지십시오. 기적이 일어날 것을 믿으십시오. 강하고 담대하게 말하십시오. 좋은 일이 우리에게 이제부터 일어납니다. 

-기도-

사랑하시는 주님, 좋은 일이 일어나게 우리를 지으신 것을 감사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은 예수님이 맡으시고 우리를 위해서 예비하신 아름다운 것을 허락하여 주심을 감사합니다.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영혼이 잘되고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게 된 것을 감사합니다. 주여! 주님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맡아 주시므로 우리는 기쁘고 가볍게 인생을 살아갈 수 있게 주님이 도와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조용기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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