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부뢀주일] 부활의 산 증인들 (부활의 산 증인들

첨부 1


부활의 산 증인들

오늘은 부활절 두 번째 주일입니다. 우리 주부활의 산 증인들님이 부활하신지 제8일째 되는 날입니다. 부활하신지 여드레를 지나서 11명의 제자들에게, 의심 많은 도마까지 있을 때에 부활하신 예수님부활의 산 증인들이 나타나셨습니다. 제자 도마도 함께 있었고, 문들이 닫혀 있었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제자들에게 그 몸을 보이셨습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의심하는 도마에게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요20:27)고 하셨습니다. 그 때 도마는 부활하신 예수님 앞에서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요20:28)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이 때 주님이 신앙의 진수를 말씀하셨습니다. 

요20:29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12제자들 중에 도마와 같이 의심이 많은 제자가 있다는 것이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의심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이 다 믿었다고 하면 반발하여 믿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이런 의심하는 제자가 있어 감사한 일입니다.

다른 제자들이 도마에게 말합니다.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였습니다. 도마가 말합니다.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부활하신지 여드레가 되던 날에 도마에게 찾아오셨습니다. 의심하는 제자 도마를 위하여 예루살렘에 더 오래도록 머물고 계셨습니다. 

초대교회는 십자가와 빈무덤의 상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부활하셨습니다. 초대교회는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만들어진 공동체였습니다. 

유대교회 안에 사두개파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제사장과 성전에서 일하는 레위 사람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사두개파 사람들은 부활이 없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예수가 부활하였다고 선포하고 가르치니, 제자들을 죽어라고 미워하고 박해하였습니다. 자기들이 죽인 예수가 다시 살아났다고 하니, 이제 온 국민의 반발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몰라서 전전긍긍하게 되었습니다.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와 요한과 알랙산더, 그리고 대제사장의 문중이 다 모여 사도들을 가운데 세우고 물었습니다.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 나면서 걸어보지 못한 사람을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손을 잡아 일으켰는데, 그가 성전으로 뛰어들어가고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백성의 관리들과 장로들아 만일 병자에게 행한 착한 일에 대하여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받았느냐고 오늘 우리에게 질문한다면 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행4:8-10)라고 하였습니다. 

베드로는 계속하여 새로운 구원의 진리가 시작되었다고 외쳤습니다.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행4:11-12)고 했습니다. 

대제사장은 병에서 나은 사람이 있어 이적을 부인할 수도 없어서, 협박하고 풀어주었습니다.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위협하였습니다. 이 때 베드로와 요한이 담대하게 말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행4:19-20)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예수님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됨을 알고 외쳐야 합니다. 사람이 멸망당하지 않고 살아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을 알고, 그것을 소유하였다고 하면 지금 멸망으로 달려가는 자들에게 외쳐야 합니다. 

1941년에 미국 뉴저지 주에서 엄청난 산불이 일어났습니다. 불길을 잡기 위하여 소방대원들과 군대가 출동하고 수많은 진화 장비가 동원이 되었지만, 불길은 잡히지 않았고 수많은 집과 삼림을 초토화시켰습니다. 그런데 진화에 참가한 군인 80명이 불길에 갇혀 불에 타죽을 수밖에 없는 지경이었습니다. 때마침 상공을 지나가던 소형 비행기의 조종사가 불길에 갇혀 있는 군인들을 발견하고 저공으로 비행하면서 그들에게 쪽지를 떨어뜨렸습니다. 그 쪽지에는 불길을 뚫고 나갈 수 있는 탈출로가 있다는 것과 조종사의 유도를 받아 따라오면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다는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그들은 민첩하게 조종사의 지시대로 몸을 움직였습니다. 

그들은 모두 불길을 피하여 탈출하여 목숨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높은 하늘에서 보니 피할 수 있는 길이 보였습니다. 그런데 산 속에 고립된 군인들은 사방에서 좁혀오는 불길만 보이지 피할 수 있는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조종사의 지혜로 무사히 80명의 젊은이들이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시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러니 우리는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고 외쳐야 합니다. 요14:6에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외쳐야 합니다. 

초대교회에 이런 일이 있은 후에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들 사두개인의 당파가 다 마음에 시기가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초대교회가 하루에 3천명, 때로는 5천명이 한꺼번에 기독교회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들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공회 앞에 끌어내어 재판하고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자가 밤에 옥문을 열고 끌어내어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 (행5:20)라고 하였습니다. 사도들은 옥에서 나와 새벽부터 성전에 들어가서 백성들을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백성의 원로들을 모으고 공회를 소집하였습니다. 감옥에 사람을 보내어 사도들을 끌어오라고 하였습니다. 하속들이 감옥에 가보았으나 예수의 제자들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감옥을 철통같이 감시하고 있었는데, 어떻게 되어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랫사람들이 감옥에 가서 사도들을 보지 못하고 돌아와서 말합니다. “우리가 보니 옥은 든든하게 잠기고 지키는 사람들이 문에 서 있으되 문을 열고 본즉 그 안에는 한 사람도 없더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쯤 되면 성전 맡은 자들과 제사장들이 난리가 났습니다. 이 일이 이제 어찌 될 것인가 걱정입니다. 사람들이 와서 알려주는데, 예수의 제자들이 감옥에서 나와 성전에서 백성들을 가르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성전 맡은 자들이 부하들을 데리고 가서 사도들을 잡아왔으나, 강제로 하지 못한 것은 백성들이 돌로 칠까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사도들을 끌어다가 공회 앞에 세우고 대제사장이 물었습니다. 28절입니다. “이르되 우리가 이 이름으로 사람을 가르치지 말라고 엄금하였으되 너희가 너희 가르침을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니 이 사람의 피를 우리에게로 돌리고자 함이로다”라고 했습니다. “이 이름”, “이 사람”이라고 하는데, 예수를 말합니다. 예수라고 하지 않고 경멸하려고 일부러 이 이름, 이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은 사람이라, 저주받아 죽은 이름이다, 이단의 괴수라고 하면서 정확한 실명을 거론하지도 않고 있습니다. 참으로 못된 사람들입니다. 

베드로는 담대하게 말했습니다. 29-31입니다.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이스라엘에게 회개함과 죄 사함을 주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라고 했습니다. 우리 주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장사되었지만, 하나님이 살려주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하나님이 높여주셔서 만왕의 왕이 되셨고, 만민의 구주가 되셨습니다. 

초대교회의 사도들은 모두다 부활의 산증인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공회는 이들을 죽이려고 혈안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대로 내버려둔다면 머지않아 유대인들이 다 기독교인이 될 것으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도들을 없이 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때에 바리새인으로 모든 백성에게 존경받는 가말리엘이란 분이 나서서 “이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사람들을 상관하지 말고 버려 두라 이 사상과 이 소행이 사람으로부터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만일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면 너희가 그들을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행5:38-39)고 하였습니다. 사도들은 공회에서 채찍으로 얻어맞고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는 금령을 받았지만, 사도들은 예수님의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에서 나오게 되었습니다. 초대교회의 가장 큰 외침은 십자가와 부활에 있었습니다. 

우리는 케리그마(kerygma)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기독교회는 우리 주님으로 위탁받은 메시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마치 우리는 전령관처럼 하나님을 대신하는 대사로 보내심을 받아 공중 앞에 외치라는 메시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기독교가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구원의 소식을 케리그마라고 합니다. 신약성경이 가지고 있는 가장 기본적인 메시지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완성되었다는 이 사실이 케리그마요, 복음이었습니다. 

유진 피터슨박사의 많은 책이 나와 있습니다. 유진 피터슨박사는 리젠트 칼리지의 영성 신학 명예교수로 계시는 분으로 개신교회의 영성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가시는 목사님이십니다. 그를 말할 때에 영성을 오늘의 언어로 풀어내는 탁월한 능력을 가지신 학자라고 말합니다. 그 분을 말할 때에 ‘목회자들의 목회자’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는 20여권의 책을 저술하였는데, “현실, 하나님의 세계”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내용도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부: 창조 안에서 놀이하시는 그리스도, 2부: 역사 속에서 놀이하시는 그리스도 마지막 제3부: 공동체 안에서 놀이하시는 그리스도

이렇게 세 가지 큰 주제를 담고 있습니다. 제3부의 공동체 안에서 놀이하시는 그리스도에서 부활을 다루고 있습니다. 유진 피터슨 박사는 예수님의 부활은 역사적인 사실과 사건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우리들에게 거룩한 삶으로, 부활의 삶으로 부활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롬8:11의 말씀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고 하셨습니다. 
]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시면, 이 말씀은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시면 예수님을 살리신 이의 영이 우리 안에 있는 우리의 영과 더불어 죽을 몸도 살려주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살리시는 하나님이시요, 성령님도 살리십니다. 주님은 살아나신 영이요, 우리 안에서 살리시고 있습니다. 우리도 우리들 스스로 일으켜 세우는 것이 아니라, 우리도 일으킴을 받고 있습니다. 부활은 과거에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지금도 일어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살리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정말 힘들게 신앙생활 하였습니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을 가장 힘들게 만든 사람들은 같은 하나님을 믿는 유대교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기독교인들을 나사렛 사람들이라고 하여 핍박하였습니다. 나사렛당, 나자린스, 히브리 말로는 노쯔림이라고 했습니다. 나사렛 예수를 따르는 이단이라고 하여 죽어라고 미워하였고, 자기들 공동체에서 쫓아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들은 여러 나라로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그 흩어진 사람들이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져 살게 되었습니다.

로마의 황제들은 자기들이 현현신이라고 하면서 오로지 황제만을 숭배하라고 강요하였습니다. 기독교인들은 또 다른 주, 또 다른 왕을 신봉한다고 하여 말살하려고 달려들었습니다. 황제숭배는 주후 313년 밀라노 칙령에 의하여 기독교가 공인되면서 끝이 났습니다. 우리 기독교회는 약 250년간 말할 수 없는 핍박을 받아야 했습니다.

이집트에 가면 콥틱 교회들이 있습니다. 이집트라고 하면 이슬람교의 나라요, 태양신을 믿는 다신교의 나라라고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까지 콥틱교회가 있어 기독교인은 전인구의 약1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집트 교회는 본래 마가복음을 쓴 마가요한이 개척한 교회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초대교회의 교회사가인 유세비우스가 전해주는 것은 주후 60년 경 마가가 이집트와 와서 복음을 전하였는데, 그 교회가 오늘의 콥틱교회가 되었다고 합니다. 아프리카의 이집트 교회는 유명한 신학자들을 배출하였고, 교세가 대단히 큰 교회가 되었습니다. 삼위일체 신학을 수립한 알렉산드리아의 알렉산더 감독 아타나시우스 감독, 클레멘트감독과 같은 위대한 신학자가 나왔습니다. 그러나 이슬람교도들이 침입하면서 콥틱교회는 지하로 숨어들어야 했습니다. 이슬람교의 수없는 박해 속에서도 흔들지 않고, 목숨을 내어놓고 믿어 오늘까지 이르렀는데, 인구의 10%가 콥틱교회 성도들이 되어 있었습니다. 지난번 성지순례에서 이집트 카이로에서 콥틱교회를 방문한 일이 아주 큰 보람이었습니다. 콥틱교도들이 사는 지역을 지나가는데, 그들은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도시의 변두리에서 쓰레기를 치우며 겨우 연명하고 있었습니다. 국가의 공직자로 진출할 수 없고, 이슬람 신도들과 함께 살지 못하니 회사에 취직할 수도 없고, 그들이 겪어야 하는 고통이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콥틱교회의 성도들은 자기네 나라에서 가장 밑바닥에서 살고, 출세도 못하고, 억울하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세상의 그 어떤 명예와 부귀와 바꿀 수 없는 살아계신 예수님,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주님,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부활의 주님을 믿기에 그런 고통 속에서도 끝까지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콥틱교회는 어떠한 핍박에도 살아남은 교회입니다. 이집트의 모까담이란 곳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예전의 난지도와 같이 쓰레기 매립장이었습니다. 이집트의 콥틱교회는 마가복음의 저자 마가가 이집트에 세운 교회요, 마가는 알랙산드리아에서 순교하였습니다. 이슬람 세력이 이집트를 점령하기까지 이집트는 기독교 국가였습니다. 이슬람이 통치하면서 콥틱교회는 수없는 개종을 강요받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슬람의 최고지도자 술탄이 콥틱교회의 감독을 불렀습니다. “너희 기독교인들은 겨자씨만한 믿음만 있어도 산을 옮긴다고 하지 않았느냐, 내가 살고 있는 궁전의 뒷산을 멀리 옮겨보거라. 만일 그 산을 옮기지 못하면 너희들은 다 이슬람을 믿어라”고 했습니다. 이제 콥틱교회는 비상에 걸렸습니다. 온 교회는 한 성자를 찾아내 강력한 기도의 도움을 요청하였습니다. 이 성자는 구두수선공이었는데, 그가 어느 귀부인의 구두를 수선하는 도중 그 부인의 허벅지를 보고 음욕을 품었던 것을 회개하여 자신의 한 쪽 눈을 뽑아 버린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모든 콥틱교인들에게 금식을 명합니다. 그리고 기도에 들어갔습니다. 

며칠 후 이슬람의 술탄은 자다가 깜짝 놀랄 일을 경험합니다. 천지가 진동하는 쿵쿵거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그는 지진이 났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아침이 되어 궁궐밖에 나와 본 그는 깜짝 놀랐습니다. 자신이 가리킨 그 산이 옮겨져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결국 콥틱의 신앙을 버리게 하는 것에 실패하였고, 사람들은 산이 걸어서 움직였다고 '모까땀'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우리가 뚜벅 뚜벅이라는 의성어를 쓰는 것처럼 아랍어에서는 '까땀 까담' 이라는 의성어를 씁니다. 콥틱은 지금도 이집트에서 10퍼센트 미만의 소수종교입니다. 그들은 이 생계와 신앙을 지키기 위해 카이로의 쓰레기를 모아서 그것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쓰레기 마을을 지나면 높은 산위에 아름다운 성전이 있었습니다. 석회석으로 만들어진 산을 깎아서 교회를 만들었습니다. 그 석회석 돌들에 조각을 하고 성구를 써 놓았습니다. 콥틱 교인들은 이 마을의 생성과 교회의 탄생과 증축을 축복으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도 뒤따라 부활에 참여하는 축복을 허락해주셨습니다. 죽은 후에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는 것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절망을 딛고 희망으로, 낙심하는 사람이 담대하게 도전하는 사람으로, 불의와 짝하면서 세상을 살아가던 사람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시고 어둠의 일을 벗어버리고 거룩함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