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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제자들이 나가 (눅 9:1-6)

첨부 1


제자들이 나가 (눅 9:1-6)
   
 
예수께서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사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위를 주시고 (1)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내보내시며 (2)
이르시되 여행을 위하여 아무 것도 가지지 말라 
지팡이나 배낭이나 양식이나 돈이나 두 벌 옷을 가지지 말며 (3)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거기서 머물다가 거기서 떠나라 (4)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 아니하거든 
그 성에서 떠날 때에 너희 발에서 먼지를 떨어 버려 
그들에게 증거를 삼으라 하시니 (5)
제자들이 나가 각 마을에 두루 다니며 
곳곳에 복음을 전하며 병을 고치더라 (6)
<누가복음 9장 1~6절>

할렐루야! 
주안에서 평안하십니까?

오늘 아침 식사를, 늦게 일어나서 못 먹었거나 …
다이어트를 위해 일부러 식사를 하지 않은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지금은 먹으려고 마음만 있으면 얼마든지 먹을 수 있는 세대에 살고 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만 하더라도 지금 이 때쯤이면 먹을 것이 별로 없어서 
산나물이나 칡뿌리를 캐기 위해 다녔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무엇을 먹어야 할까’보다
‘어떻게 하면 덜 먹을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한 세대 전만 해도 
하루 세 번 식사를 챙겨 먹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오죽하면 사람을 만났을 때 하는 인사가
“식사 하셨습니까?”였겠습니까?
우리도 오랜만에 옆에 계신 분과도 그렇게 인사해 보겠습니다.
“아침 잘 드셨습니까?”

지금, 아프리카 앙골라 나이지리아 … 등에서 
인터넷 중계를 통해 우리예배를 함께 드리고 있을 것입니다.
WHO에서 파송된 의사나 선교사들이 통역을 하고 있을 텐데
지금 이 말씀을 들으시는 분들 가운데 
먹지 못해 배고픔을 느끼며 예배드리는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바라기는 일용할 양식 때문에 눈물 흘리는 일이 없도록 기도하겠습니다.
여러분도 먹는 양식 때문에 눈물 흘리지 않는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국가의 원수(대통령, 왕, 총리 등)이 타는 차량에는
시판되는 일반 차량에 탑재되지 않은 
장치/기술이 많이 적용되어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식 때 이용했던 차량은
총, 폭탄, 화생방 공격으로부터 탑승자 보호 가능
타이어가 터져도 시속 80km로 주행 가능
다양한 장치가 많아 문 한 짝의 무게만 100kg 육박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달 20일부터 중동을 순방할 때
전용 차량을 미국에서 공수해 갔습니다.

‘비스트(Beast, 야수)’라고 불리는 이 차량은
- 차량 길이가 5.5m 
- 방탄 기능, 위성 통신 시설 장착
- 최루탄 발사 가능
- 차 안에서 응급 수술도 가능
그런데 이 엄청난 차가
정작 오바마 대통령이 이스라엘에 도착했을 때는 
고장이 나서 제 기능을 하지 못했습니다.
(백악관 측에서는 이유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았지만)
세계의 여러 언론들은 원래 이 차에 경유(디젤)가 연료로 들어가야 하는데
운전자가 실수로 휘발유(가솔린)를 넣은 것이 고장의 이유라고 전했습니다.
폭탄에도 끄떡없고, 무기까지 장착한 차량이
연료 한 번 잘못 넣어서 견인 트럭에 끌려가야 했습니다.
<2013년 3월 22일, 중앙일보, 23면 참조.>

사람도 무엇을 먹는가 … 
몸에 필요한 / 적절한 것으로 채워지는지 여부가
우리를 건강하게도 하고 … 고장 나게(병들게)도 합니다.
여러분은 오늘 무엇을 드셨고, 또 무엇을 드시려는지요?

아무리 건강해도 … 아무리 힘이 세도 … 아무리 똑똑해도
우리의 영과 육을 살찌우는 하나님의 말씀을 먹지 않으면
달리다가 멈출 수밖에 없습니다.
아니, 어쩌면 달리기를 시작조차 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영적인 꼴을 바르게/계속해서 잘 섭취하여 
필요할 때에 제대로 쓰임 받는 일꾼 되시기를 주님의 축원합니다.

성경을 높이 들고 우리의 믿음을 표현합니다.

저는 예수 믿어 구원받았습니다(요3:16).
저는 예수 믿어 하나님 자녀 되었습니다(요1:12).
저는 예수 믿어 천국 백성 되었습니다(빌3:20).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오늘(시118:24),
하나님 말씀으로 가르침을 받습니다(딤후3:14~17).
눈을 열어 주의 법 안에 있는 
놀라운 진리를 보고 깨닫게 하소서(시119:18).
"아멘"으로 순종하여(고후1:20)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 되게 하소서(마5:16).
아멘.

그런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제자

누가복음 9장에는
우리에게 익숙한 말씀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이 넘는 사람들을 먹게 하신 …
‘오병이어의 기적’이야기 (눅 9:10~17)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는 질문에
‘하나님의(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답했던
베드로의 이야기 (눅 9:18~27)
- 변화산에 오르신 예수님께서 옷에서 광채가 나며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화되신 이야기 (눅 9:28~36)
- 제자들에게 “나를 따르라”고 하신 이야기 등이
모두 누가복음 9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여러 이야기가 담긴 누가복음 9장을
하나로 묶는 단어를 찾는다면
‘제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글 성경(헬라어 원문이 아닌) 누가복음에서 
‘제자’라는 단어가 가장 많이 등장하는 곳이 9장입니다. (총11번)
오늘 읽은 누가복음 9장 시작 부분에서
열 두 제자를 파송하신 예수님은, 마지막 부분에서는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아서는 안 된다’는 …
제자의 삶에 관한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본문 1절에 보면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 모든 귀신을 제어하며
병을 고치는 능력과 권위를 …”(눅 9:1) 주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은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마 28:19~20)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어 제자의 삶을 사는 우리에게는 
세상 모든 민족을
‘예수님의 제자’로 삼아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제자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자신이 그렇지 못하면서 
남을 제자 되게 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예수 믿고 구원 받은 우리는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살아가는 제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예수님께서 주신
‘능력’과 ‘권세’가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악한 마귀를 제어하는 능력과
영과 육의 병을 고치는 예수 이름의 권세가 있음을 믿고
담대하게 … 예수 이름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제자의 삶입니다.

두루 다니며 …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능력과 권세를 주신 후에
세상으로 내보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곳곳으로 보내신 데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앓는 자를 고치게 하려고 …”(눅 9:2)

예수님은 제자들이
-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기 원하셨습니다.
- 병든 자를 고치고 영혼을 회복시키기 원하셨습니다.

그런 목적을 가지고 세상에 나갔던 제자들은 어떻게 했습니까?
오늘 본문 6절에 제자들의 행적이 잘 나와 있습니다.

“제자들이 나가 각 마을에 두루 다니며 
곳곳에 복음을 전하며 병을 고치더라”(눅 9:2)

제자들은 “각 마을에 두루 다녔다”고 했습니다.
제자들이 정확히 어디를 갔었는지 … 알 수 없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제자들이 ‘각 마을을 두루 다녔다’는 것 …
‘여러 마을을 빠짐없이 골고루 다녔다’는 점입니다.
‘두루’라는 말은 ‘빠짐없이 골고루’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 보냄 받은 제자들은 
여러 마음을 빠짐없이 두루 다니기 위해 부지런했습니다.

현대 교회에서 가장 부지런한 존재가 누구이겠습니까?
어느 교회든지 가장 부지런히 일하는 존재는 
‘내가 들어갈 자리 없나, 내가 할 일이 없을까? 
내가 끼어들어 방해 놓을 데가 없을까?’
틈새를 노리는 ‘사탄’일 것입니다.
지금도 이단자들이, 마귀들이 교회의 평안을 깨기 위해
교회를 무너뜨리기 위해 교회에 잠입해 있습니다.

얼마 전에도 신문에 보니 이단자들이 교회 안에 들어와서
엉뚱한 이야기를 퍼뜨리고 교회를 혼란스럽게 하고 
교회를 깨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고 합니다.
귀에 이상한 소리가 들리거든 이미 그 자신이 이상한 것입니다.
이상한 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영적으로 깨어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우리는 
악한 마귀의 꼬임에 넘어가지 않도록 
악한 마귀에게 틈을 주지 않도록 …
열심히 예배하는 일에 … 기도하는 일에 … 
더 부지런해야 하고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세상에서도 성실하고 근면하게 일해야 합니다.
우리가 흘리는 땀방울을 보며
‘예수 믿는 사람들은 성실해’라는 생각을 갖도록
여러 마을을 두루 다녔던 제자들처럼 부지런해야 합니다.
여러분도 부지런히 열심히 사시기 바랍니다.

벌은 450g(1 파운드)의 꿀을 얻기 위해
6만 2천 송이의 꽃을 찾아야 한다고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꽃과 꽃 사이를 평균적으로 270만 차례 이동해야 하는데
왕복 비행 거리가 약 8백만km 라고 합니다.
벌의 이런 열심, 부지런함은 사람에게 꿀을 제공해 주고 
꽃이 번식하는 데에도 도움을 줍니다.

그리스도인도 하나님이 주시는 부요함을 누리기 위해
벌처럼 부지런한 삶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다른 사람들을 유익하게 하는 것이
예수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열심을 내는 이유가 되어야 합니다.

요한 웨슬리 목사님은 88세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 1만 킬로미터 이상의 전도 여행을 했고
- 4만 번 이상의 설교를 했습니다.
- 일기와 편지를 썼고, 설교문 등을 작성했고
글을 쓰고 기록을 남기는 일에도 열심이었습니다.

그 중, 동생 찰스 웨슬리와 함께 배를 타고 미국으로 가던
1735년 10월 18일의 일기를 보면 이런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선중(船中)의 생활. 얼마쯤 규율이 잡혀 와서, 
일동은 다음과 같이 생활했다. 

아침 4시부터 5시까지 각자의 개인기도
5시부터 7시까지 주의 깊게 서적과 비교 대조하면서 함께 성경 연구를 했다. 
7시에 아침 식사, 8시에 함께 모여(共)기도, 9시부터 12시까지
언제나 나는 독일어를 공부하고, 델라모트씨는 그리스어를 공부했다. 
내 동생은 설교를 쓰고, 잉검씨는 아이들을 가르쳤다. 
12시에는 어제부터 한 일과 내일에 하려는 것을 서로 이야기 했다.
1시경에 점심 식사. 점심 식사 후부터 4시까지의 시간은 
각자 분담한 사람들과 함께 독서하기도 하고,
필요에 따라 그들 한 사람 한 사람과 이야기하며 지냈다. 

4시에는 낮기도, 5부터 6시까지 시간은 다시 개인 기도에 썼다.
6시부터 7시까지 두 사람이나 세 사람에게 
내 선실에서 성경을 읽어 들려주고,
다른 형제들도 제각기 2,3인과 함께 성서를 읽었다. 
7시에는 독일인의 예배에 나갔다. 
8시에 다시 모여, 서로 격려하고, 가르침을 주고받았다. 
9시에서 10시 사이에 취침했는데 배의 동요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단잠을 빼앗을 수는 없었다.”
(1735년 10월 18일 일기) 
<이성호, 『신앙실화 예화시리즈 7』 (서울: 성지사, 1982) p.17~18, 참조.>

여러분은 하나님과 가까워지기 위해 열심을 내십니까?
그리스도인답기 위해 애 쓰십니까?

사실, 바쁘게 움직인다고 … 서두르기만 한다고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잠언 21장 5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부지런한 자의 경영은 풍부함에 이를 것이나 
조급한 자는 궁핍함에 이를 따름이니라”(잠 21:5)

언뜻 보기에 ‘부지런함’과 ‘조급함’에는 별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 부지런한 자의 경영은 풍부함에 이르지만
- 조급한 자는 궁핍함에 도달할 것이라 했습니다. 
비슷해 보이지만 … 두 가지 삶의 태도는 
정 반대의 결과를 낳을 만큼 다른 것입니다.

- 부지런한 사람은 미리 준비하고 계획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조급할 필요가 없습니다. 
- 부지런한 사람은 일의 우선순위를 올바르게 정할 줄 압니다.
정말 중요한 일에 먼저 자신의 열정을 사용합니다.
- 그러므로 부지런한 사람은
시간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그러나 조급한 사람은 
- 일이 닥치면 바삐 움직이지만 미리 준비하거나 계획하지 않습니다. 
- 그의 생활방식은 충동적입니다. 
- 중요하지도 않은 이 일 저 일에 찔끔 찔끔 손을 대다가
결국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는 
정말 중요한 일 …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받게 하는 일에 집중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 ‘조급한’ 사람이 아니라 ‘부지런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곳곳에 복음을 전하며 …

예수님께 능력과 권위를 받고 세상으로 나간 제자들은
각 마을에 두루 다니며 “곳곳에 복음을” 전파했는데
예수님은 복음을 전하러 가는 제자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정확히 가르치셨습니다.

“… 여행을 위하여 아무 것도 가지지 말라 
지팡이나 배낭이나 양식이나 돈이나 
두 벌 옷을 가지지 말며 ”(눅 9:3)

예수님은 제자들이
-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지팡이 …
- 무엇인가를 담고 다닐 배낭 …
- 먹을 것과 돈 그리고 갈아입을 옷 …
어떤 것이라도 소유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복음 전파에 필요한 모든 것을 다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기고 가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할 때 무엇에 집중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할 때 정말 하나님께 집중하며 살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말씀에 순종하려 하십니까?

사람 … 물질 … 에 의지하지 않고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면
모든 것을 더하시는 하나님의 돌보심을 경험하는 것 …
그것이 세상에 보내진 제자들의 삶의 자세였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의 ‘최후의 만찬’의 모습을 그린 그림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작품입니다.
어느 화가가 레오나르도 다 빈치처럼 
자신을 구원하신 예수님의 마지막 식사 장면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어서 오랜 시간 고생하며 그림을 그렸습니다.
자신 만의 ‘최후의 만찬’ 작품이 완성되자
그림을 공개하기 위해 친구들을 초청했습니다.

친구들 앞에서 그림을 가려두었던 천을 벗겨내자
탄성과 칭찬이 터져 나왔습니다. 
한 친구가 상기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자네 정말 대단하군. 
예수님의 손에 들린 저 광채 나는 유리잔을 보게. 
정말 멋진 그림이야” 
그 말을 들은 화가가 붓을 들어 유리잔 부분을 뭉개버렸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작품은 실패했네.
나는 자네들의 시선이 예수님의 얼굴에 집중되기 원했지
유리잔에 시선이 모아지기를 바랐던 게 아니네.”
<2005년 5월 16일, 국민일보, 겨자씨, 참조.>

여러분은 어디에 눈을 두고 있습니까?
신앙생활하면서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삶에 대해 생각이 많습니까?
아니면 직분을 받는 일에(집사, 권사, 장로가 되는) … 
교회에서 어떤 장을 맡느냐, 교회에서 누가 나를 알아주는가? 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까?
그러나 하나님 보다 물질 … 편안함을 … 더 귀히 여긴다면
어떻게 복음을 전하며 살 수 있겠습니까.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아무 것도 필요로 하지 않았던
예수님의 제자들처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라 고백하며
가장 값진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병을 고치더라

각 마을에 두루 다니며, 곳곳에 복음을 전했던 제자들은
또한 ‘병을 고쳤다’고 했습니다.
제자들을 보내기 전 이미
- 열 두 해 동안 혈루병 앓던 여인을 낫게 하셨고 (눅 8:42~48)
- 병들어 죽어가던 백부장의 종을 고치셨으며 (눅 7:2~10)
- 오른 손이 마른 사람 (눅 6:6~11)
- 중풍병자 (눅 5:17~26)
- 한센병(나병) 환자(눅 5:12~16)를 깨끗하게 하셨던 예수님은
제자들에게도 ‘병을 고치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예수님이 주신 능력으로 일했습니다.

병 고침의 은사는 예수님과 그 제자들에게만 있던 것이 아닙니다.
고린도 교회에도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고전 12:30)
오늘날에도 병을 낫게 하는데 
특별한 성령의 은사를 받은 분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병 고침의 역사를 행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저는 병 고침의 은사를 믿지 않았습니다.
있을 수도 없다고 생각했고, 
절묘하게 타이밍이 맞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군대생활을 할 때 귀를 다쳤습니다. 
염증이 생겨 고름이 나오고 많이 힘들었습니다.
여러 병원을 다녔지만 쉽게 낫지 않았습니다.
세브란스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는데 
의사가 귀를 그리더니 구멍난 고막을 가리키며 
그 안에 염증이 있다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군대에서 제대한 젊은 사람이 귀에서 고름이 나니 얼마나 추했겠습니까?

그러던 어느 날 가정예배를 드렸습니다.
저는 가정예배를 드리든, 평상시에든 
가급적 아버지에게서 멀리 떨어져 앉습니다.
곁에 있어서 좋은 일이 별로 없었습니다.
동생들이 잘못했어도 꼭 혼나는 건 저였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어쩌다보니 아버지 옆에 앉게 되었습니다. 
가정예배 때는 찬송을 다 함께 부르고, 
식구들이 돌아가면서 성경 한 장 씩 읽고, 기도했습니다.
그날은 아버지가 기도하시는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제 아픈 귀에 아버지 손가락이 쑥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사전에 예고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얼마나 당황스러웠는지 …
‘아버지가 왜 이러시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마나 아프게 쑤시고 기도하시는지 … 
고쳐달라고, 치료해 달라고 열심히 기도해 주셨습니다.
그때 저는 신학교 1학년 다니다가 군대에 갔다 온 때라 
그렇게 믿음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마음에 간절함도 없었습니다.
그저 아버지가 제 귀에서 
손가락이나 빨리 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가정예배를 마치고 제 귀에서는 더 이상 고름이 나지 않았습니다. 
깨끗이 치유 받았습니다. 
저는 그때 처음으로 신유의 은사에 대해 마음문을 열었고 믿어졌습니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개척교회의 담임자로 나갔습니다.
갓 결혼한 전도사가 뭘 알겠습니까.
그러던 어느 날 새벽 2시 정도 되었는데 
교회 옆에 사는 공○○집사님이 “전도사님, 전도사님”하고 
부르는 소리에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 공집사님의 남편이 큰일 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얼떨결에 그 집에 갔습니다. 
가보니 그 남편이 마치 낚시질을 해서 막 잡아 올린 생선처럼 
펄떡 펄떡 뛰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보기에도 무서운 생각이 들만큼 
순간 ‘이거 큰일났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병원에 가야 할 것 같아서 병원에 가자고 하려고 했는데 
“전도사님, 기도해 주세요”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신학교를 갓 졸업한 때였고 그런 모습을 본 적도 없었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당황이 되었으나 그래도 붙잡고 기도해야겠다는 생각에 
어깨를 내리 누르면서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출애굽을 시키신 하나님, 
홍해를 가르신 하나님 … ”을 불러가며 훑어 나갔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뛰는 것이었습니다. 
나중에는 지쳐서 기도를 못할 정도였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병원에나 싣고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하고 났더니 
그 펄쩍 펄쩍 뛰던 사람이 스르륵 가라앉는 것이었습니다. 
그 집사님은 밖에 나가서 한참 구토를 하고 들어오더니 
“전도사님 고맙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기도해도 되대요.’ 

그런데도 마음 한구석에 
절묘하게 시간이 맞은 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목회하면서 어떤 때는 내 몸이 아픈데도 
기도해 달라고 하면서 찾아오는 이에게 손을 얹고 기도하면
저는 여전히 아픈데 그이는 나았다고 합니다.
어떤 때는 바쁘다는 핑계로 간단히 기도하는데도
고침 받는 역사를 보기도 합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방법으로
병 고치는 역사를 행하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느 때보다 이단이 활개 치는 요즘에는
기도하면 병이 낫는다는 이야기를 하면
‘이단이 아닌가’ 의심을 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지금도 신유의 역사는 계속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미국 시카고 선타임스(Chicago Sun-Times)는 
시카고 대학 병원의 의사 2,000명을 대상으로 
“신앙이 환자치료에 도움이 되는가?”라는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조사에 따르면, 의사들 가운데 75%가량은 
환자의 신앙심이 병마와 싸우고 고통을 견디는 데 도움을 주며
환자에게 희망적인 마음상태를 갖도록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33%의 의사들은 
종교적 신념과 의존 때문에 치료를 거부하거나 미루는 등
환자의 신앙이 치료를 방해하는 경우를 경험했다고 밝혔습니다.
<2007년 4월 10일, Chicago Sun-Times 기사 「Doctors and faith : 
Physicians believe God can help patients get healthy」 참조.>

신앙으로 병을 낫게 하는 것을 ‘신유’라고 합니다.
(신유(神癒) : 신의 힘으로 병이 낫는 것)
우리가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신유의 은사를 경홀히 여겨서는 안 되겠지만
그것이 병을 낫게 하는 유일한 방법인양 생각하는 것도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발달된 의료 지식과 기술 또한 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높은 수준의 ‘의학 기술’과 ‘신유의 은사’ 모두를 
귀히 여기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바른 신앙자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세상에 나가 사람들의 병을 고친 것은
그들에게 마땅한 열매를 맺은 것입니다.
예수님께 병 고치는 능력을 받은 제자들은
세상에 나가 사람들의 병을 고칠 수 있어야 마땅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심겨진 삶의 현장에서 열매를 맺고 살고 있습니까?
- 여러분의 가정에서 화목이 깨질 때 
여러분이 화목을 회복시키는 고치는 역할을 하십니까?(롬 12:18)
- 교회에서 마음과 … 뜻과 …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최선을 다해 봉사하겠다고 하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에 갈등이 있습니다. 
상처가 있고 미워합니다. 
그들 틈에서 여러분이 치료자가 되십니까? (신 6:5)
- 어떤 자리에 갔을 때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며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십니까?
(마 22:39/요 13:34)

능력 받은 제자는 … 권위를 부여받은 제자는 …
받은 능력대로, 권위대로 행해야 합니다.
이웃에게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기보다 
악취를 내는 그리스도인들이 있기는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모두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는
예수의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제자들이 나가 …

예수님은 이 땅에 33년을 사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사역하신 공생애는
단 3년에 불과합니다.
예수님은 3년을 위해 사셨던 분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공생애 3년을 기록하고 있는
마가복음 1장에서 16장까지를 보면
16장 중에 마지막 일주일의 기록이 7장을 차지합니다.
어찌 보면 예수님은 이 일주일을 위해 사셨던 분입니다.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를 지시는 것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지셔야 할 십자가와 
버려야 할 다른 많은 일들을 분명히 구별하셨습니다.
오늘도 제자인 우리들은 
예수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 되고, 천국 백성 되었습니다.
그런 우리들에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셨던 말씀을 그대로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앓는 자를 고치라’
여러분의 가정에서 … 일터에서 … 세상에서 
속한 어느 곳에서라도 …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육신이 약한 자, 영혼이 병든 자들을 돕고 치료해주라는 
예수님의 명령을 시행해야 합니다.
어떤 때는 우리가 기도해 줌으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빛을 전함으로 그 환경을 고칠 수 있지만
어떤 때는 치료 받을 수 있도록 의사에게 인도해 주고
도움을 주는 역할을 감당하기도 해야 합니다.

지난 수요일에 강화에 다녀왔습니다.
강화에 복음이 들어간 지 120년 되는 기념예배를 드리기 위해
강화문예회관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제가 강화출신이라고 설교를 해달라기에 갔습니다.
강화에 복음이 들어간 지 120년이 된 것을 기념하면서
120명에게 눈 수술을 해주기 위해 많은 분들이 헌금을 했습니다.
병원에 갈 수 없는 이들에게 
병원에 갈 수 있는 길을 열어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수고했다고 제게 봉투를 가져왔지만
눈 치료하는 일에 쓰라고 두고 왔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의 명령을 기억하고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의 가정에서, 일터에서, 교회에서, 세상에서 어디서든지 … 
여러분 자신이 치료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자신이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는 
복음을 전하는 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삶에 
승리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어느 곳에 가든지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게 하시고
복음을 증거하는 사람으로 살게 하여 주옵소서.
누구를 만나든지 예수 냄새를 풍기게 하실 뿐 아니라
누구에게든지 치료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마음이 상한 자에게 소망을 주게 하시고
낙망한 자에게 믿음을 주게 하시며 천국을 향한 꿈을 가지고 살도록 
우리가 역할을 감당하게 하여 주옵소서.
사랑받지 못하여 절망하고 낙심한 이들에게 
사랑을 줄 수 있는 성도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돈 없어서, 어려워서 치료 받지 못한 이들에게 
치료해 주는 기을 안내해주고 치료해 줄 수 있는 
넉넉한 성도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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