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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미래를 읽는 힘 (행 27: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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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읽는 힘 (행 27:21-26)
  

"여러 사람이 오래 먹지 못하였으매 바울이 가운데 서서 말하되 여러분이여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면 좋을 뻔하였느니라.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생명에는 아무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 뿐이리라.
나의 속한바 곧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행 27;21-26)

5분후를 볼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역사를 변화시킬 위대한 사람이 될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1500년 후를 내다 보고 말했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급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주심을 바라 봄이라”(히 11;26)

바울은 수 천년 후를 바라 보았습니다.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롬 8;18)

내일을 바라보는 눈을 가진 사람은 내일을 알기에 미리 미리 대처하면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동물들도 그리고 미물들도 내일을 보는 예지의 눈을 가졌습니다.
중국 스챤성 지진이 일어나기 전에 수 십만마리 두꺼비들이 그 지역을 벗어나 이사가는 장면이 목격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자연현상이라고 방관하였습니다.

다른 지역에서 지진이 일어나기 전에 쥐들이 모두 사라진 것을 나중에 알았습니다.
다람쥐가 새끼를 많이 낳으면 그 해에는 분명히 풍년이라는 것입니다. 동물들도 내일을 보는 눈이 있습니다.
아침에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사람은 몰라도 까치는 손님이 올 것을 압니다.
제비가 낮게 날면 비올 줄 알아야 합니다. 
미래를 읽을 줄 알고 내일을 바라보는 눈을 가진 사람은 내일 대비할 수 있습니다.
미래를 읽는 힘의 별명이 있습니다.

초윤장산(礎潤張傘)이란 고사가 있습니다. 
주춧돌 초(礎)자에 젖을 윤(潤), ‘초윤’ 즉 주춧이 젖어 있으면, 펼 장(張)자에 우산 산(傘), ‘장산’ 즉 우산을 펼치라는 뜻입니다. 주춧돌이 젖어 있다면 결국은 비가 올 징조입니다. 그러므로 미리 우산을 준비하라는 뜻입니다. 외출하려고 하는 데 주춧돌이 젖어 있으면 습기가 많다는 것이고 그렇다면 비가 올 징조이니까 우산을 준비하여 나가라는 것입니다.

조그만 징조를 가지고 내일을 바라보는 눈을 날카롭게 가지라고 하는 의미입니다.
조그만 정보를 가지고 뛰어난 분석력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때가 아니라고 생각되면 한 발짝 물러날 줄도 알아야 합니다. 상황이 자신에게 불리하다고 생각되면 미리미리 대비책을 강구하여야 합니다. 살아가다 보면 언제나 맑은 날만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일을 바라보는 힘, 미래를 읽는 힘은 살아가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요소입니다. 이런 힘을 우리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1. 이를 우리는 통찰력이라고 부릅니다.

오늘 본문은 바울이 로마로 갈 때 배에서 14일 동안 풍랑으로 고통을 당할 때 이야기입니다.
바울은 망망 대해로 풍랑이 많은 겨울에 여행하는 것은 위험하다는 통찰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이여.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면 좋을 뻔하였느니라.“

바울은 통찰력이 있었습니다. 미래를 읽는 힘이 있었습니다. 
통찰력이 없으면 역사에서 퇴출당하게 됩니다. 시대에 뒤서게 됩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에는 스위스 시계가 제일 좋은 것을 알았습니다. 1960년대 말까지 스위스는 세계 시계 산업을 지배하고 있었습니다. 정밀 기계로 스위스는 최고였습니다. 스위스가 시계업계를 석권한 것은 백년 가까운 긴 기간동이었습니다. 스위스 시계를 따라 갈 나라가 없었습니다. 시계의 분침과 시침을 만든 것도 스위스였습니다. 방수시계를 세계에서 제일 먼저 만들었습니다. 자동태엽을 감는 시계도 세계 최초였습니다. 스위스는 더 좋은 시계를 만들기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하고 투자하였습니다. 

1970년 스위스는 세계 시계시장의 65%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이익의 점유율은 8,90%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그 후 10년 동안에 스위스 시계 산업은 허무하게 무너졌습니다. 80년 대 불과 10년 만에 스위스 시계 산업은 65% 점유율에서 10%로 떨어졌습니다. 이익률도 20%이하로 낮아졌습니다. 이유가 무엇인가요?
이유는 꼭 하나 미래를 보는 눈이 없었습니다. 통찰력이 없었습니다.
스위스 시계업자들은 시계 산업이 기어, 베어링 같은 기계적 메커니즘에서 전자시계로 바뀌어 갈 것이라는 통찰력이 없었습니다. 세계는 점점 전자화되어 간다는 미래 지향적인 방향을 몰랐습니다.

반대로 시계에 대한 새로운 통찰력을 가진 나라가 일본이었습니다. 일본의 세이코사는 스위스 NEWCHATEL연구소에서 창안한 전자시계 아이디어를 헐값에 사들였습니다. 스위스 시계제조업자들이 쓸모없는 아이디어라고 거절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로부터 10년 후인 1980년에 스위스 시계기능공 6만 2천명에서 5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습니다. 스위스 같이 작은 나라에서는 끔찍한 재난이었습니다. 대신에 1968년 세계 시계 제조업 점유율 1%도 안 되던 일본이 세계시장의 33%를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통찰력은 내일을 바라보는 눈입니다. 바울의 통찰력은 바로 내일을 보는 정확한 눈이었고 적중하였습니다. 바울의 통찰력을 사람들이 무시하였기에 14일 동안 고통을 당하였습니다. 바울은 내일을 읽는 통찰력의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통찰력이 힘입니다. 우리는 미래를 보는 눈을 통찰력이라 부릅니다.

2. 이를 우리는 믿음이라 부릅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믿음으로 내일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내일은 믿음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276명이 배를 타고 있었습니다. 14일 동안 심한 폭풍속에서 몹시 시달렸습니다. 생명의 위협속에 모두 초죽음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 때 바울은 믿음으로 외쳤습니다.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생명에는 아무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 뿐이리라. 나의 속한바 곧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믿음이 있는 사람은 내일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담대하고 믿음으로 외칠 수 있습니다.

노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홍수로 온 세상을 멸하시려고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노아에서 산꼭대기에 방주를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지금까지 지구 역사상 높은 산위에 배를 만든 사람은 노아 하나 뿐일 것입니다. 온 세상이 홍수로 덮일 것을 믿었습니다. 하나님깨서 그렇게 말씀하셨기에 그 말씀을 믿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믿음은 내일을 말할 수 있습니다.

나는 미국 캘리포니이 북쪽에 있는 미국의 신문왕 허스트 성 관광을 하여 본 적이 있습니다. 그는 미국에서 신문사를 34개나 운영하였던 초인간이었습니다. 글자 그대로 신문왕이었습니다. 지금부터 10년 전에 15억 평을 샀습니다. 여름 피서지를 건설하기 시작하였습니다. 28년 동안 건설하였습니다. 여름 3-4 달 피서를 위하여 그렇게 많은 돈을 썼습니다. 그러나 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서 불황이 닥쳐 오자 완성을 하지 못 하였습니다. 

관광하는 데 아침 8시부터 저녁 5시까지 부지런히 보아야 합니다. 수영장이 1천평입니다. 대리석과 금으로 된 타일이 즐비합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조각품, 미술품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는 그 집을 다 완성하지 못 하고 죽었습니다.

만일 그가 그 많은 돈을 사회 사업에 기부하였더라면 얼마나 위대한 사람이 되었을 가요? 고아원, 양노원같은 복지 시설을 지었다면 수 천개를 설립하였습니다. 자기가 들어가 보지도 못 하는 큰 별장은 오늘날 시에서 운영하는 관광지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애석한 사건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들을 이같이 수고하여도 헛 것입니다. 미래를 읽는 믿음의 힘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알고 믿는 것이 미래는 보는 힘이 됩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언젠가는 예수님이 재림하실 것을 믿습니다. 
죽으면 천국과 지옥으로 갈라지는 것도 믿음으로 압니다.
그리고 죽음 후에는 심판이 있는 것도 압니다.

하나님의 그의 크고 비밀한 일을 그의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않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믿음은 내일을 보는 힘입니다.

3. 이를 우리는 꿈이라 부릅니다.

바울은 꿈이 있었습니다. 바울 당시 세계적은 도시는 로마였습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하였습니다.
바울을 로마에 복음을 심고 싶어하는 것이 당시 가장 큰 꿈이었습니다. 그러면 로마가 닦아 놓은 길로 온 세상에 복음이 퍼질 것을 알았습니다. 바울의 복음을 향한 꿈은 웅대한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꿈의 길, 로마로 향하고 있었기에 그의 발걸음은 항상 활기차고 에너지가 넘치고 있었습니다.
꿈이 있는 사람은 내일을 말할 수 있습니다. 꿈은 예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 사람들 모두를 구원시키려고 오셨습니다. 그러나 이 땅에 오직 12 제자만 훈련시켜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씀하시고 하늘로 승천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18-20)
꿈이 있는 사람은 내일을 말할 수 있습니다. 꿈을 말하는 것이 바로 내일을 말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꿈을 주셨습니다. 가나안으로 부르시고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 하나를 통하여 민족을 이루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아브라함 가문을 통하여 온 인류를 구원하실 메시야를 보내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세 가지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1. 땅의 꿈.
2. 민족의 꿈.
3. 메시야의 꿈.
그래서 아브라함은 늘 하나님이 주신 꿈을 말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이 설교를 준비하게 된 동기는 피터 드래커가 쓴 <미래를 읽는 힘>이라는 책을 읽고 감동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 책에서 드래커는 니체가 한 말을 빌려서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탈피하지 않는 뱀은 죽는다.”

드래커는 늘 책을 저술하는 분입니다. 사람들이 그에게 물어 봅니다.
"선생님이 쓰신 책 중에서 가장 좋은 책은 어느 책인지 소개하여 주십시오.“ 이런 질문을 받고 나면 드래커는 거칩없이 대답합니다.
“다음에 나올 책이 가장 좋은 책입니다. 나는 늘 나를 극복하기 위하여 책을 씁니다.”
항상 꿈을 잃지 않는 것이 미래를 읽는 힘이라고 그는 말하고 있습니다.
드래커는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시간을 소비하는 존재다.”
그런데 어느 곳에 시간을 소비하느냐가 바로 그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꿈을 가지고 꿈을 향하여 시간을 소모하는 이에게는 미래를 읽는 힘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꿈은 미래를 읽는 힘입니다.

4. 이를 우리는 영감이라 부릅니다.

바울에게 내일을 읽을 수 있는 힘을 준 것은 무엇보다 주님의 음성이었습니다. 
미래를 읽을 수 있는 힘을 주는 가장 큰 근원은 하나님의 영감입니다. 바울이 풍랑으로 초죽음이 되어 있는 276명 배 승객들에게 담대하게 외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주신 영감의 말씀때문이었습니다.

“나의 속한바 곧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제비가 낮게 날면 비가 옵니다.
무화과가 열매를 맺으면 여름입니다.
진달래가 피면 겨울이 지나간 것입니다.
감기가 짙으면 폐렴이 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미래를 읽을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하여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미래를 보는 힘을 우리는 이렇게 부르고 있습니다.
1. 이를 우리는 통찰력이라고 부릅니다.
2. 이를 우리는 믿음이라 부릅니다.
3. 이를 우리는 꿈이라 부릅니다.
4. 이를 우리는 영감이라 부릅니다. 

결론적인 이야기입니다.
미래를 보는 힘이 있어야 큰 사람이 됩니다. 내일을 바라보며 전진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에게 희망이 있습니다. 

요즈음 우리는 어느 곳에서든지 핸드폰이 걸려 오면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시끄러운 곳에 있을 때 전화가 오면 전화기를 들고 조용한 곳으로 재빨리 피하게 됩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뙜어. 소음이 들리지 않는 곳으로 왔어. 이제는 잘 들려.”
그리고 대화를 시작합니다. 영적인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의 음성이 잘 들리는 곳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새벽 미명이면 한적한 곳을 찾으셨습니다. 그 곳에 바로 겟세마네입니다.

바울도 그렇습니다. 유럽에 복음이 들어가지 않았을 때 바울이 제일 먼저 복음을 가지고 유럽의 첫 성 빌립보로 갔습니다. 그가 제일 먼저 한 일이 있습니다. 기도하기 위하여 조용한 곳을 찾았습니다. 그래서 강가로 나갔습니다. 그 곳에서 모여있던 여인들에게 복음을 증거하였습니다. 그 때 루디아를 만났습니다. 그래서 유럽 최초의 교회 빌립보 교회가 생겼습니다.
미래를 보는 힘은 역시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곳에서 생깁니다.

어느 여인이 갑자기 경직성 분열증 병에 걸렸습니다. 이 병은 몸이 굳어져서 조금도 움직이지 못 하고 꼼짝 못 하는 병입니다. 머리를 돌릴 수도 없습니다. 손 발을 움직일 수도 없습니다. 가만히 한 시간 두 시간 움직이지 않아도 조금도 불편함이 없을 정도로 몸이 굳어졌습니다.
절망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그는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하나님! 이런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옵소서! 이런 상태에서 인생의 보람을 느낄 수 있게 하여 주옵소서. 내일은 절망이 아니라 소망이 되게 하옵소서.”

그에게 주님이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기도중에 조각하는 이나 그림을 그리는 이들에게 모델이 되어 주는 것이었습니다. 조각가나 미술가가 원하는 모습으로 몇 시간이고 움직이지 않고 있을 수 있었습니다.
최고로 인기있는 모델이 되었습니다. 여기 저기 불려 다니기에 분주하였습니다. 자기를 모델로 수많은 작품들이 나왔습니다. 보람이었습니다. 약점을 강점으로 만들며 미래를 열어 갔습니다.
미래를 읽는 힘은 역시 주님이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주님과 더불어 멋진 미래를 열어 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어떤 남자가 점쟁이를 찾아 갔습니다. 그리고 손금을 보아 달라고 하였습니다. 손금을 보던 점쟁이가 말했습니다.
“당신은 아픔을 당하고 비참해 질 것입니다. 30세가 될 때까지는 가난할 것입니다.”
실망한 남자가 물었습니다.
“그러면 30세 후는 어떻게 될 것입니까?”
점쟁이가 대답하였습니다.
“그 때는 가난과 아픔에 아주 익숙하여져 있을 것입니다.”
점쟁이의 미래를 보는 눈은 절망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항상 우리에게 내일을 통하여 축복하여 주시는 분이십니다.

다시 본문으로 들어갑니다.
바울은 절망한 사람들에게 미래를 읽는 힘을 준 사도였습니다.
바울의 통찰력이 그런 힘이 되었습니다.
바울의 믿음은 미래를 믿게 하였습니다.
바울의 꿈이 미래를 열어 주었습니다.
바울이 받은 영감이 내일을 열어 주며 276명에게 힘을 실어 주었습니다.

"여러분이여. 내 말을 듣고 그레데에서 떠나지 아니하여 이 타격과 손상을 면하였더면 좋을 뻔하였느니라.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이제는 안심하라 너희 중 생명에는 아무 손상이 없겠고 오직 배 뿐이리라.
나의 속한바 곧 나의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행선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행 27;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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