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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다 내게로 오라 (마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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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내게로 오라 (마 11:28)


할렐루야! 
주안에서 평안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연일 강도가 쎄지는 북한의 위협으로 
한반도의 긴장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저는 가족들 대부분이 외국에 나가 있는데
한국이 걱정이 되는지 연락이 옵니다.
그래서 제가 ‘내가 있는데 걱정말아’라고 했습니다.
외국에서는 곧 전쟁날 것 같은 
한반도의 분위기를 주요 기사로 다루고 있고, 
전쟁을 전문으로 다루는 외신기자들이 
한국에 입국했다는 소리도 들립니다.
축구의 기성용 선수가 소속되어 있는 
영국 프로축구팀 스완지 시티는 
올 여름 한국에서 친선경기를 계획하고 있는데
군사적 위기 때문에 계획을 취소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태평합니다. 
외국 사람들의 걱정에도 평소와 다름없이 생활합니다. 
라면이나 생수와 같은 물품 사재기현상이 일어나지 않고, 
이렇게 어수선한 때 집을 사려는 사람들도 많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북한 관련 뉴스보다 
류현진/추신수 선수가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는 것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주말에는 벚꽃놀이에 사람들이 몰린다고 합니다. 
<2013. 4. 8, 조선일보, 참조>

북한과 나뉘게 된 지 반세기가 넘어서인지 …
우리 국민들은 북한의 협박에 면역이 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은 이럴 때 기도를 늦추지 말아야 합니다. 
‘전쟁 안 일어나’하는 안일한 마음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함이 한반도에 가득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나라를 위해 … 정치를 위해 …
외교를 위해 … 북한을 위해 …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높이 들고 우리의 믿음을 표현합니다.

저는 예수 믿어 구원받았습니다(요3:16).
저는 예수 믿어 하나님 자녀 되었습니다(요1:12).
저는 예수 믿어 천국 백성 되었습니다(빌3:20).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오늘(시118:24),
하나님 말씀으로 가르침을 받습니다(딤후3:14~17).
눈을 열어 주의 법 안에 있는 
놀라운 진리를 보고 깨닫게 하소서(시119:18).
"아멘"으로 순종하여(고후1:20)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 되게 하소서(마5:16).
아멘.

그런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수고하고 짐 진 자들아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체로 바쁘게 살아갑니다. 
그만큼 부지런하게 산다는 뜻일 것입니다.
새벽 이른 시간에 출근하면서도 
뭐가 그리 바쁜지 뛰어다니기까지 합니다.
걸으면서 아침을 먹는 사람도 있습니다. 
운전을 하면서 … 지하철에서 … 화장을 하는 여성들도 많습니다. 

이처럼 바쁘게 부지런하게 살아갑니다. 그래서 피곤합니다. 
현대인들이 많이 하는 말 중에 대표적인 것은 
‘피곤하다’일 것입니다. 피곤하게 삽니다.
여러분은 지난 한 주간을 보내면서 
피곤하다는 말을 얼마나 많이 하셨습니까?

우리나라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의 연평균 노동시간보다 
무려 400시간이나 더 많이 일한다고 합니다. 
전반적인 삶의 질은 예전보다 많이 나아졌지만
선진국들에 비하면 여전히 일을 더 많이 하는 것입니다. 
어느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은 일주일에 무려 나흘을 
피곤한 상태로 지낸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직장인은 월요일을 제일 피곤해 하고, 
고3학생은 목요일을, 주부는 주일을 가장 피곤한 날로 꼽았습니다. 
<2012.10.13. SBS뉴스, 참조>

피곤할 정도로 일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그만큼 일해야 살 수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하며 버티는 것입니다. 

한 인터넷 게시판에는 
‘한국인이 피곤한 이유’를 다음 사진으로 설명하였습니다. 
사진에는 5권의 책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 10대, 꿈을 위해 공부에 미쳐라
- 20대 공부에 미쳐라
- 30대 다시 공부에 미쳐라
- 40대 공부 다시 시작하라
- 공부하다 죽어라 
전부 ‘공부’에 관한 제목들입니다. 

10대, 20대에는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합니다. 
30대가 되면 회사에 적응하기 위해 공부를 합니다. 
40대가 되면 승진하기 위해 공부합니다. 
50대가 되면 밑에서 치고 올라오는 사람들에게 
뒤쳐지지 않기 위해 공부합니다. 
그렇다고 60대가 되면 공부에서 손을 놓는 것도 아닙니다. 

60대도 빠르게 변하는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많은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다 삶의 무게를 나타냅니다. 
인생은 참으로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흔히 나이 드신 분들이 예전에는 더 어렵게 살았다고 …
지금은 참 편해졌다고 … 말씀합니다. 

물론 경제적으로나 환경적으로 
옛날 분들이 고생을 많이 하며 살았습니다. 
하지만 예나 지금이나 인생사는 것은 모두 어렵습니다. 
쉽지 않습니다. 
옛날은 옛날대로 어려웠지만, 지금은 지금대로 쉽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의 행복지수만 봐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세계 10위 경제규모에 
1인당 소득 2만 3000달러로 성장했지만, 
유엔이 발표한 삶의 질은 12위이지만 
행복지수는 97위라고 합니다. 
이런 걸 보면 예나 지금이나 삶이 고단한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경제적으로 안정이 되었다고 평안한 인생도 보장되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에 수고하고 짐 진 인생에 대해 여러 곳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 창세기 3장 19절에서 
하나님은 범죄한 아담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창 3:19)

‣ 욥기 7장 1절에서도 
“이 땅에 사는 인생에게 
힘든 노동이 있지 아니하겠느냐 …”(욥 7:1) 하였습니다. 

‣ 전도서 1장 13절에서도 
“…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주사 
수고하게 하신 것이라”(전 1:13) 하였습니다. 

이렇게 우리의 인생은 
수고해야 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이라고 수고가 없고 삶의 짐이 가벼운 것만은 아닙니다. 
누구나 다 짐을 지고 살아갑니다. 

사람들이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었다고 알려진
『천로역정』에도 그런 내용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 책의 첫 부분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세상의 광야를 헤매다가 동굴이 있는 곳에 이르렀다 …
손에는 책 한 권을 들고 등에는 무거운 짐을 짊어졌다”
<존 버니언, <천로역정> , 서울:포이에마, 2011. p. 25.>

이 소설의 주인공 이름은 ‘크리스천(Christian)’입니다.
그리스도인인 우리들을 비유하는 인물입니다. 
그의 손에는 한 권의 책이 들려있는데 바로 성경책입니다.
그런데 그의 등 뒤에는 커다란 짐이 짊어져 있습니다. 
그것이 인생이라는 것입니다. 
천국을 향하여 가는 순례자인 우리들도
무거운 짐을 등에 지고 걷는다는 것입니다.

‘수고 한다’는 것은 많은 일들을 하여 피곤한 상태,
육체적으로 곤하고 지친 상태를 말합니다. 
‘무거운 짐을 진 자’는 
‘누군가에 의해 무거운 짐이 지워진 사람들’을 말합니다.
‘염려의 짐, 의심의 짐, 탐욕의 짐, 야망의 짐, 성취욕의 짐,
경쟁의 짐, 종교의 짐, 죄의 짐’등에 눌려 있는 상태입니다. 
[ 목회와 신학 편집부, 
<마태복음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두란노 p. 244. 참조 ] 

그런데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누구든지 내게로 오라고 말씀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목사로서 힘든 것 중에 하나는 부탁을 받고 들어줄 수 없을 때입니다. 
저는 거의 매일 도와달라는 내용의 연락을 받습니다. 
특히 연말이 되면 더 받습니다. 
「감독」이 되고 난 후에는 더 많이 연락이 옵니다.
어떤 때는 ‘감독이 무슨 은행 창고 열쇠를 가진 사람인가?’하는 
생각이 들만큼 여기저기서 도와달라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만나서 도와 달라는 분들도 많습니다. 
그분들이 하는 이야기는 모두 ‘자신의 짐’ 좀 덜어달라는 것입니다. 
사정을 들어보면 딱합니다. 
그러나 다 도와드리고 싶지만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도 괴롭습니다.
부탁을 들어주지 못할 때 … 짐을 덜어드리지 못할 때 …
저 자신이 마음 상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을 초청하셨습니다. 
예수님만이 인생의 짐을 가볍게 하실 수 있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초청하실 수 있는 것은, 
우리를 대신해 가장 무거운 죄의 짐을 지셨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장 29절에
“…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 1:29)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인류의 죄의 짐을 
십자가로 짊어지시고, 죽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신 것’(요3:16)입니다. 
이 세상에 죄의 짐보다 무거운 것은 없습니다. 

죄 때문에 인간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되었고 땀 흘리며 살게 되었습니다. 
세상이 욕심, 두려움, 미움, 다툼, 불안, 방탕 … 등으로
가득한 것은 모두 죄의 결과물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죄의 문제를 해결해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참된 자유와 안식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찬양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함께 찬양합니다.
♪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 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 받고 
주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찬438장)

그러므로 예수님의 초청에 응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예배의 자리에 앉아 있는 것도 
예수님의 초청에 응했기 때문입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였던 소크라테스는 40년을, 
플라톤은 50년을, 아리스토텔레스는 40년을 가르쳤습니다. 
고대에 가장 위대한 인물 세 사람은 
모두 130년 동안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단지 3년 간 가르쳤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영향을 미쳤습니다. 

- 예수님은 그림을 그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라파엘,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빈치 …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화가였던 그들은 
예수님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그림을 그렸습니다. 
- 예수님은 시를 쓰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단테와 밀톤을 비롯한 
세계적으로 유명한 수많은 시인들은 
예수님으로부터 영감을 받아 시를 썼습니다. 
- 예수님은 노래를 만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이든, 헨델, 베토벤, 바하, 멘델스존 … 등
예수님을 찬양하기 위해 작곡한 수많은 노래가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인간의 모든 영역이 예수님에 의해서 풍요롭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것을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저와 여러분,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이 땅에 오셨습니다.
<목회와 신학 편집부, <마태복음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두란노, p. 245. 참조.> 
로마서 5장 12절에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롬 5:12)하였습니다. 

이에 모든 사람에게는 구원이 필요합니다. 
인간의 도덕적인 노력이나 
육체적인 고통을 견디는 것 또는 어떤 선행으로 … 
혹은 철학적인 사색으로 … 그 어떤 것으로도 
죄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그 어떤 것도 죄의 문제들을 다루지 못합니다. 
그러나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그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구원은 전적으로 예수님께 있습니다.
그래서 ‘구원을 은혜’라고 하는 것입니다. 
내가 받을 만한 자격이 있고 
노력해서 쟁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은혜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초청에 응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다’내게로 오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디모데전서 2장 4절에서도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하였습니다. 

누가복음 15장에 ‘탕자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떤 사람에게 아들 둘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둘째 아들이 아버지 그늘에서 벗어나 
자기 마음대로 살고 싶어 했습니다. 
아버지가 살아계셨음에도, 유산을 미리 받은 둘째 아들은 
먼 나라에 가서 허랑방탕하며 가진 돈을 낭비했습니다. 
그런데 살고 있는 그 나라에 흉년이 들어 궁핍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고자 하였지만
그것조차 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자신의 잘못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용기를 내어서 아버지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는 죄송한 마음에 
‘내가 아버지께 죄를 지었사오니 
아들이 아니라 품꾼으로 여겨 달라’고 말할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동안 아버지는 아들이 오기만을 기다렸습니다. 
멀리서 아들이 오는 것을 알아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그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그리고 성대하게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바로 우리들의 이야기입니다. 
아버지 하나님을 떠나는 것은 결국 영혼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은총의 날개 아래 있어야 참된 삶을 사는 것입니다.
혹 지금 말씀을 듣는 여러분 가운데
신앙생활 하지 않고 하나님을 믿지 않고 
우연히 말씀을 듣게 되었다면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살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누구라도 예외는 없습니다. 
누구나 아버지 그늘 아래 있고, 
아버지께로 돌아오면 아버지의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구원은 값을 정할 수 없을 만큼 귀한 것이지만 
결코 인간의 무엇으로도 구원을 돈 주고 살 수 없습니다. 
이미 예수님이 모든 대가를 치루셨습니다. 
우리는 그냥 우리 모습 그대로 믿기만 하면 됩니다.

‘엘리자베스 앤드류’라는 사람이 쓴 시를 소개합니다.
When I come to heaven Lord, what shall I bring,
주님, 제가 천국에 갈 때 무엇을 가지고 가야 하나요?
My golden necklace and my diamond ring?
저의 금목걸이와 다이아몬드 반지를 가져가야 하나요?
You've got it all wrong, My child, My dear,
나의 사랑하는 아들아, 너는 잘못 알고 있구나.
So if you're coming to heaven, unpack your bags,
네가 천국에 올 때에는, 네 모든 짐들을 내려놓고
Just come as you are, 
네 모습 그대로 오면 되는 것이다.
The price has been paid, 
네가 천국에 오는 데 필요한 값은 이미 다 지불되었단다. 
예수님은 모든 값을 지불하시고
우리들에게 ‘다’ 오라고 하셨습니다. 
이 은혜의 초청을 기쁨으로 받아들인 자는
구원의 복을 받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우리를 청하셨습니다.
어떤 것도 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혹시 이 자리에도 TV 모니터 앞, 휴대전화 들고 … 
인생살이가 괴로워 절망 속에 계신 분이 있으십니까?
하나님은 그런 상한 마음도 어루만지시는 …
‘터치(touch)’해 주시면, 하나님이 손대시면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가 자주 부르는 찬양에 
‘주님과 같이 내 마음 만지는 분은 없네’가 있습니다. 
(There is none like You 
No one else can touch my heart like you do)

하나님이 나를 만져 주시면, 손만 대주시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만지시는 분은 / touch 하는 분은 …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던 여인이 
예수님 곁으로 가서 옷을 만졌다고 했습니다. 
‘그 겉옷만 만져도 구원을 받겠다’ 는 
(If I only touch his cloak, I will be healed)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영어성경에 보면 여기서도 ‘touch’라는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믿음으로 대기만 했습니다.
오늘 우리들의 문제는 내가 주님을 터치하지 않은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은총의 손길에 터치를 받지 못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도 여인과 같은 마음으로 주님께 나아가기만 하면
예수님이 나를 터치해주시면 된다는 마음으로 예수님께 간다면 
예수님은 분명 상하고 깨진 마음을 어루만지시고 
싸매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시편 55편 22절에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 (시 55:22)하였습니다. 

하나님께 맡겨야 요동하지 않습니다. 넘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맡기지 않고 내가 지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세상에는 길이 없습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 되신 … 선한 목자 되셔서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예수님께 나와 쉼을 얻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은 요청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명령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오고 싶으면 오고 오기 싫으면 오지 말라는 뜻이 압니다. 
오라는 것입니다.
걱정 근심 무거운 짐을 피난처가 주님이심을 믿고
주님께 아뢰는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참된 위로와 안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함께 찬양합니다. <죄짐 맡은 우리 구주>

<기도>
하나님 아버지!
주님은 우리를 부르셨는데 십자가의 짐을 지시고
모든 것을 지불해 주시고 오라고만 하시는데
우리들이 온전히 주님을 따르지 못함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힘이 들고 어려운 이들,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이들
시험 걱정 모든 괴로움까지도 
주께 고함으로 복을 받는 저희들 되게 하여 주옵소서.
세상 친구들이 멸시하고 조롱해도
예수 품에 안겨서 참된 위로를 받는 삶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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