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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수님처럼 기도합시다 (눅 22:3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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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처럼 기도합시다 (눅 22:39-46) 

이스라엘 기도여행 잘 다녀왔습니다. 이번 기도여행은 성공적인 기도여행이었습니다. 너무나 평안했을 뿐만 아니라 27명의 팀원들이 하나가 되어서 움직였습니다. 그동안 뿌린 기도의 응답을 우리의 눈으로 확인했습니다. 

2006년부터 우리가 기도해왔던 레온마진 목사님의 샤베이지온교회가 넓은 곳으로 이전을 했습니다. 예배에 참석했는데 기름부음이 충만했습니다. 너무나 감격스러운 순간이었습니다. 감사한 것은 교회를 사서 리모델링을 하고 첫 번째 예배에 우리가 참석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우연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동안 기도했던 우리들이 이스라엘을 방문할 때에 맞게 역사하신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번에도 변함없이 약속의 무지개는 떴습니다. 3번이나 떴는데 기가 막힌 것은 타이밍입니다. 제 아내가 버스 안에서 마이크를 잡고 무지개로 응답하신 하나님에 대해서 간증하는 중에 무지개가 뜬 것입니다. 우리는 가는 곳마다 기도의 씨를 뿌렸고, Rainbow 2 집회에서는 유대인들에게 말씀의 씨앗도 뿌렸습니다.
   
저는 이번 기도여행이 성공적일 수 있었던 것은 첫째는 하나님의 은혜이고 둘째는 기도라고 믿습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에 가기 전에 10번의 기도모임을 가졌습니다. 이스라엘에서는 쉬지 않고 기도했습니다. 아침 5시에 기상해서 식사 전에 기도하고, 이동하면서 버스 안에서 기도하고, 성지에서는 함께 기도할 수 없을 때는 개인적으로 기도했고, 모여서 기도할 수 있을 때는 모여서 부르짖으며 기도했습니다. 저녁에는 식사 후에 모여서 또 기도했습니다.
   
저는 이번 기도여행에서는 선교팀의 기도만 있었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한국에서 저희들의 사역을 위해서 많은 성도들이 기도해 주신 것을 압니다. 금식하며 기도해 주신 분도 있었습니다. 너무나 감사합니다.
   
저는 이 사역에 몇 번 사용된 것만도 너무 감사하고 감격하고 있습니다. 저처럼 부족한 사람을 써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런데 저는 몇 번으로 만족하고 싶지 않습니다.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이스라엘이 롬 11:26 말씀대로 회복될 때까지 계속해서 쓰임 받고 싶습니다.
   
예수님은 기도가 필요 없는 분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완전한 사람이셨지만 동시에 완전한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은 기도를 하지 않으셔도 모든 부분에 승리하실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스스로의 능력으로도 충분히 마귀를 이기고, 세상을 이기고, 육신을 이길 수 있는 분이셨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기도를 하신 이유는 자신이 약하기 때문에 기도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들에게 모범을 보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기도를 통해서 우리들에게 네 가지 면에서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교제의 모범을 보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단 한 순간도 하나님과 교제가 단절되신 일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항상 기도로 하나님과 교제하셨습니다. 우리가 기도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도 기도로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예수님은 기도를 통해서 변화의 모범을 보이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하러 변화산에 올라가셨습니다. 그리고 기도하실 때 변화되셨고 예수님에게서 광채가 났던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기도할 때 예수님이 변화되신 것처럼 우리도 변화되기 때문입니다.
   
셋째, 예수님은 기도를 통해서 능력의 모범을 보이신 것입니다. 막 9:29에 보면 주님께서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들에게 “너희가 능력 있는 삶을 살고 싶다면 너희도 나처럼 기도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능력 있는 삶을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예수님처럼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넷째, 예수님은 기도를 통해서 선택의 모범을 보이신 것입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의 순간에 서계셨던 것입니다. 십자가에 달리느냐 마느냐의 중요한 기로에 서계신 것입니다. 이 때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선택하셨기 때문에 인류의 구원이 있는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뜻을 선택하지 않으셨다면 우리 모두는 영원한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본받아서 무슨 일을 선택할 때 반드시 기도의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겟세마넷 동산에서 기도하셨습니다. 오늘 설교는 그 부분을 다룹니다. 저와 여러분은 예수님의 기도를 배우시고 예수님처럼 기도하는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1. 습관을 따라 하는 기도(39절) 
   
39절에 보면 주님께서 습관을 따라 감람산에 가셨습니다. 주님이 감람산에 가신 유는 무엇입니까? 등산이 몸에 좋기 때문에 등산을 하려고 가신 것입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이 가신 감람산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하셨던 마가의 다락방과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습니다. 현장을 본 제가 대충 짐작할 때 약 500m 정도 떨어져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기도하신 장소는 감람산의 꼭대기가 아니라 감란산의 가장 아랫부분입니다. 지금도 그곳에 가면 주님이 기도하셨던 바위가 있습니다. 그 바위는 기드론 골짜기 바로 위에 있습니다. 그러니 주님이 습관을 따라 감람산에 가신 것은 건강을 위하여 등산을 가신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은 왜 습관을 따라서 감람산에 가셨을까요? 다른 이유가 아닙니다. 주님은 기도하기 위해서 감람산에 가신 것입니다.
   
성공적인 인생을 사는 비결은 좋은 습관을 갖는 것입니다. 빌 게이츠가 말했습니다. “좋은 사람의 습관을 내 것으로 만들면 나도 성공하게 된다.” ‘아, 저 사람은 저 습관 때문에 성공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면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들라는 것입니다. 좋은 습관이 인생을 성공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좋은 습관 중에서도 가장 좋은 습관은 기도의 습관입니다. 기도하는 시간은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이고, 기도하는 시간은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이며, 기도하는 시간은 하나님의 능력을 받는 시간이기 때문에 기도의 습관은 아주 좋은 습관인 것입니다.
   
다니엘은 기도의 습관 때문에 성공한 사람입니다. 다니엘은 하루에 3번씩 기도하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그는 정해진 시간이 되면 예루살렘을 향해서 열린 창문 앞에서 기도했습니다. 한번은 다니엘의 정적들이 다니엘을 없애기 위해서 30일 동안 기도를 하지 못하게 하는 법을 만들었습니다. 그 기간 동안에 기도하는 사람은 굶주린 사자의 밥이 되게 하는 법입니다. 다니엘은 그런 법이 만들어진 것을 알면서도 기도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다니엘에게는 자기의 목숨보다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이 더 중요했습니다. 

다니엘은 적들이 파놓은 함정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다니엘의 적들은 다니엘이 기도하는 것을 왕에게 고발하였습니다. 마침내 다니엘은 사자굴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살아계신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셔서 다니엘을 지켜주셨습니다. 다음 날 다니엘이 살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왕은 다니엘이 믿는 하나님이 살아계신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왕은 다니엘의 적들을 사자굴에 던지도록 명령했습니다. 다니엘의 적들은 사자의 밥이 되었고 다니엘은 그 일로 더욱 높아질 수 있었습니다. 다니엘의 승리는 기도의 습관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다니엘을 도와주셨던 것입니다.
   
다윗도 하루에 세 번 기도하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다윗의 인생에는 많은 위기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기도로 그런 위기들을 극복하고 승리하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시 55:17에 보니 이렇게 말합니다. “저녁과 아침과 정오에 내가 근심하여 탄식하리니 여호와께서 내 소리를 들으시리로다” 다윗은 하루에 세 번씩 탄식하며 기도했습니다. 기도의 습관이 다윗을 하나님 앞에 세웠고 하나님은 기도하는 다윗을 도우셔서 성공적인 인생을 살게 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기도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우리팀은 터키 이스탄블을 경유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스탄블 공항에서 6시간 정도를 머물러야 했습니다. 우리들은 그 시간을 허비할 수 없어서 공항 땅 밟기를 하면서 터키에 초대교회 같은 기독교의 부흥과 축복이 임하도록 기도했습니다. 

저는 공항을 돌다가 놀라운 모습을 보았습니다. 몇 명의 무슬림들이 기도시간이 되니 줄을 서서 사우디아리비아의 메카를 향해서 절을 하면서 기도하는 모습을 본 것입니다. 저는 그 모습이 이슬람의 파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성경적으로 볼 때 그들의 기도에 대한 응답은 마귀가 주는 응답입니다. 하지만 그런 그들의 기도를 통해서 마귀의 세력은 더욱 강해지는 것입니다.
   
헛된 우상을 섬기는 자들이 그렇게 열심히 기도를 하는데 참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들은 그들보다 더욱 열심히 기도해야 하지 않을까요?
   
기도가 습관이 되는 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무엇이든지 습관이 되려면 반복적인 훈련이 필요합니다. 기도의 습관도 훈련이 있어야 합니다. 도전했다가 실패해도 다시 도전하고 또 도전해서 기도가 몸에 배도록 해야 합니다.
   
저는 하나님께서는 지금 이 설교를 듣는 여러분들이 기도의 시간을 정하기를 원하신다고 믿습니다. 주님처럼, 다니엘처럼 시간을 정하십시오. 그리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 시간을 주님 앞에 드리십시오. 여러분의 삶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2. 유혹을 이기는 기도(40, 46절) 
   
40절에 보면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46절에 보면 기도하지 못하고 잠을 자던 제자들에게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일어나 기도하지 못했습니다. 육신에 져서 영이 원하는 대로 기도하지 못하고 육신이 원하는 대로 잠을 자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마귀의 유혹에 넘어갔습니다. 그들은 시험에 들고 말았습니다. 주님께서 잡히시니 모두 다 주님을 버리고 도망을 쳤습니다. 주님의 수제자 베드로는 여자아이 앞에서도 주님을 부인하고 저주하는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들은 기도하지 못하고 졸고 자다가 시험에 들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 시대는 유혹이 많은 시대입니다. 우리는 수많은 시험에 둘러싸여서 살고 있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유혹에 넘어집니다. 목사님들도 유혹에 넘어지고 있습니다. 한국을 대표할만한 목사님들 중에도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시험에 드는 분들이 있습니다.
   
종교다원주의의 시험이 한국교회를 강타하고 있습니다. W.C.C는 종교다원주의입니다. 예수님 외에도 구원이 있다는 반성경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는 단체입니다. 겉모습은 화합을 말하지만 영적으로 보면 배교입니다. 많은 교회와 목사님들이 넘어가고 있습니다. 한국의 대표적인 교회 목사님이 앞장서서 그 일을 하고 있습니다. 교인들은 목회자가 가니 그 길이 사망의 길인데도 그 길이 옳은 길인 줄 알고 따라갑니다. 일제 강점기에 신사참배와 다를 바가 없는 일입니다. 그런 일을 하는 사람들은 대단한 일을 하는 것 같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아웃입니다.
   
물질의 시험이 많습니다. 교인도 목사도 교회도 물질만능주의에 빠져있습니다. 가진 자들은 가진 것 때문에 주님과 멀어지고 있고, 없는 자들은 없는 것 때문에 상처와 열등감으로 주님과의 관계에 문제가 생기고 있습니다. 욕심 때문에 시험에 들고 있는 것입니다. 요즘 한국교회에는 교회적으로 큰 시험에 들어서 시끄러운 교회들이 많습니다. 대부분 돈 때문입니다. 마귀의 시험에 흔들리고 있는 것입니다.
   
성적인 개념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요즘 차별금지법을 재정하는 문제로 한국교회는 큰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소수의 인권을 보호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잘못된 가치관을 가진 소수의 인권 때문에 반성경적인 법안이 만들어져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미 교회 안에 동성애와 같은 왜곡된 성에 관한 개념이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W.C.C에 속한 교단들 중에는 동성애를 인정하는 교단들이 있습니다. 심지어 동성애자를 목사 안수하는 교단도 있습니다.
   
앞으로는 더 많은 유혹이 있을 것입니다. 지금보다 더 강한 시험들이 파도처럼 몰려 올 것입니다. 강력한 쓰나미와 같은 시험들이 있을 것입니다. 지금도 많은 교인들과 교회와 목사들이 넘어가고 있는데 그 때는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유혹에, 시험에 넘어갈 것입니다. 나는 예외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영적인 능력을 소유하지 못한다면 저도 여러분도 얼마든지 유혹에 넘어갈 수 있습니다.
   
유관순열사에 관한 글을 읽었습니다. 유관순이 만세운동을 펼치고, 감옥에서도 시험을 이기고 절개를 지키며 죽을 수 있었던 것은 기도의 힘입니다.
   
유관순이 고향에서의 독립운동을 위해 독립 선언서를 숨겨 가지고 고향 아우네로 내려 왔을 때 고향 사람들은 미동하지 않았습니다. 고향 사람들에 대한 설득을 시작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그때 그는 어린 조카 유제하를 데리고 천안 매봉산에 올라 추운 날씨였지만 3일간 나라를 위한 기도를 시작합니다. 이 3일 동안의 기도를 그녀의 조카는 이렇게 회고합니다. 

“사흘 동안 기도만 했습니다. 사흘째 되던 날 뭔가 계시를 받은 듯 미친 듯이 기도를 마친 그의 얼굴은 온통 환하게 빛이 났고 말에 힘이 있었고 담대한 모습이었습니다.” 

산에서 내려온 유관순의 말에 고향 사람 모두는 이상하리만치 귀를 기울이고 경청을 시작합니다. 이렇게 해서 3월 1일 유명한 아우네 장터의 독립만세 운동이 시작됩니다. 사람이 한 일이었을까요? 아닙니다. 기도에 응답하신 하나님의 역사였습니다. 인간의 힘이 아니었습니다. 성령의 힘으로 된 일이었습니다.
   
체포된 유관순은 감옥 생활 중에도 하루도 기도를 거르지 않고 조국을 위해 자신의 믿음을 위해 그리고 함께 감옥에 갇힌 사람들이 변절하지 않도록 기도했다고 합니다. 1920년 10월 12일 18살의 나이로 생을 마친 그녀는 단순한 애국 열사가 아닌 순교자로서 생을 마감한 것입니다.
   
지금이 기도할 때입니다. 마귀가 최후의 발악을 할 때는 우리의 힘으로 이겨낼 수 없습니다. 지금부터 기도를 쌓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힘으로 마지막 큰 유혹의 때를 대비해야 합니다. 
 
3. 아버지의 뜻을 구하는 기도(42절) 
   
어떤 청년이 택시를 탔는데, 합승을 하다보니 두 아가씨와 함께 타게 되었습니다. 이 청년은 양쪽으로 아가씨 사이에 끼였습니다. 그런데 한 아가씨는 아주 안 생기고, 또 한 아가씨는 아주 예뻤습니다. 택시가 달려가면서 커브를 돌 때마다 가운데 낀 청년은 이쪽으로 쏠리기도 하고 저쪽으로 쏠리기도 하는데, 못생긴 아가씨 쪽으로 기울어질 때는 “주여,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 라고 기도했습니다. 예쁜 아가씨 쪽으로 기울어질 때는 “주여, 뜻대로 하옵소서” 라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웃으라고 만들어낸 유머이지만,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있습니다. 기도는 실제로 두 가지 면이 있다는 것입니다. 기도는 시험을 이길 수 있고, 또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사탄의 공격을 알아차릴 수 있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깨달을 수 있습니다.
   
42절은 주님이 하신 기도의 내용을 간략하게 기록해 놓았습니다.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주님도 육신을 입으셨기 때문에 십자가를 지시기를 원치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기도를 통해서 육신을 쳐서 복종시키고 아버지의 뜻을 선택하는 기도를 하셨던 것입니다.
   
기도는 내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하나님을 움직이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내 뜻을 내려놓고 아버지의 뜻을 선택하기 위해서 자신과 싸우는 영적인 전투입니다.
   
여러분은 성공적인 인생이란 어떤 인생이라고 생각합니까? 남들보다 더 많은 돈을 벌고, 남들보다 더 건강하고, 남들보다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것이 성공일까요? 아닙니다. 진정한 성공은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나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저는 성공적인 목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교인들이 모이고, 큰 예배당을 짓고, 많은 일을 하는 것이 성공적인 목회가 아니라 우리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목사와 성도들이 함께 이루어나가는 것이 성공적인 목회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언제나 자신의 뜻을 위하여 사람도, 교회도, 심지어 하나님까지도 이용하고자 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경건도 사욕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게 될 것입니다. 봉사도 좋고 금식도 좋고 구제도 좋은 것이지만 기도하지 않는다면 그런 경건한 것들을 이용해서 자신의 욕망을 이루려고 할 것입니다. 그것이 인간이 가진 속성입니다.
   
우리가 처음에 기도를 시작할 때는 내 뜻을 이루고자 기도하게 됩니다. 그 때는 하나님의 뜻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오직 나의 뜻을 이루는데 목적이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계속해서 기도하다보면 하나님의 빛을 받게 됩니다. 그러면서 기도의 무게 중심이 점점 내 뜻에서 하나님의 뜻으로 기울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오랜 세월 기도를 하다보면 내 뜻은 희미해지고 하나님의 뜻은 선명해지게 됩니다. 그 결과 결국은 나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도를 오랜 세월 동안 많이 했는데도 전혀 변화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내 뜻이 너무나 강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빛이 들어올 틈이 없습니다. 내가 깨어져야 그 깨어진 틈으로 하나님의 빛이 임하는데 자아가 너무 단단해서 전혀 깨지지 않는 것입니다.
   
다른 비유를 사용한다면 내 손에 있는 것을 내려놓아야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받을 수 있는데 기도하면서 내가 잡은 것을 더 단단히 잡기 때문에 도저히 하나님이 주시는 것을 잡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기도해 보십시오. 기도하면서 성경을 읽으시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찾으십시오. 또 기도하면서 내 영에 주시는 하나님의 빛을 보려고 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 보이면 내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그 일에 대해서 내가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 있다면 담대하게 순종하십시오. 이런 기도생활을 한다면 하나님은 여러분의 기도를 기뻐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기도를 돕는 천사를 보내주실 것입니다. 43절에 보니 “천사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더하더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천사가 돕는 기도를 하십시오. 천사는 하나님 편이기 때문에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 뜻에 반하는 기도라면 천사가 도울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에 맞는 기도를 하셨기 때문에 천사가 예수님의 기도를 도왔던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기도를 한다면 천사가 우리의 기도를 도울 것입니다. 
 
4. 힘쓰고 애쓰는 간절한 기도(44절) 
   
44절에서는 기도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우리는 가끔 이런 말을 듣습니다. “믿음이 충만하면 애쓰고 힘써 기도할 필요도 없다. 믿음으로 기도하면 살짝 기도해도 기도 응답을 풍성하게 받는다” 옳은 말 같습니다만 과연 그럴까요?
   
여러분의 생각에는 본문의 예수님은 믿음이 없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예수님은 언제나 믿음으로 사셨습니다. 주님은 언제나 믿음이 충만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주님은 애쓰고 힘써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얼마나 간절하게 기도하셨는지 땀방울이 핏방울처럼 되었습니다. 주님은 우리들에게 기도의 간절함을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이번 기도여행 중에 동참하신 분 가운데 태권도에서 기합 지르듯이 기도하는 분이 있었습니다. “웠, 웠, 웠” 차안에서건 미팅룸에서건 기도했다하면 기합을 질러서 어떤 집사님은 그 분의 앞자리에서 기도하는 것은 피했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그분의 기도의 방법을 나쁘다고 생각지는 않지만 특별히 권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또 한편으로 생각하면 그분의 간절함이 기합으로 표현된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귀가 먹었냐. 왜 그렇게 소리를 지르면서 기도하냐. 조용히 기도해도 하나님은 다 들으신다.”라고 말하는데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저는 그런 판단은 전혀 성경적이지 않다고 봅니다. 그런 말을 하는 것은 마치 믿음이 큰 것처럼 들릴지 몰라도 성경을 몰라서 하는 말입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는 것은 보통 2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하나는 성령으로 충만할 때 큰 소리가 나옵니다. 성령께서 강하게 역사하시니 우리의 육체가 컨트롤이 잘 안 돼서 일어나는 현상 중에 하나입니다. 행 2장에 보면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하던 120문도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그들에게 성령께서 불처럼 바람처럼 임하시니 그들의 소리가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절기에 예루살렘에 올라왔던 사람들이 마가의 다락방으로 모여들었습니다. 행 2:6에 보니 “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소동하여”라고 되어 있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간절함 때문입니다. 마음이 간절하면 기도가 간절해집니다.
우리의 기도는 간절해야 합니다. 엄마는 보채는 아이에게 젖을 더 물려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제목도 아시고 기도하는 우리의 마음도 아시지만 우리의 기도가 간절하기를 원하십니다.
   
야고보 장로는 야고보서 5장에서 엘리야의 기도를 소개했습니다. 엘리야의 기도의 특징 중에 하나는 간절함이었습니다.
   
밧데리 없는 시계는 시계이지만 시계가 아닙니다. 기름 없는 자동차는 자동차이지만 자동차가 아닙니다. 마르틴 루터는 “기도 없는 신앙은 신앙이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기도하십시오. 시간을 정하고 지속적으로 기도하셔서 기도의 습관을 만드십시오. 기도하는 사람이 유혹을 이깁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마지막 시대의 큰 시험을 이길 수 있습니다. 내 뜻을 내려놓고 아버지의 뜻을 구하는 기도를 하십시오. 그런 기도는 천사가 도울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힘쓰고 애써 간절히 기도하십시오. 여러분에게 기도응답이 풍성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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