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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음을 보이면 (단 3: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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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을 보이면 (단 3:17-18)   

신자의 직장생활은 기본적으로 교회생활이나 가정생활과 같습니다. 교회에는 거의 다 신자만 있지만 세상적 갈등이 그대로 있습니다. 가정은 그보다는 훨씬 덜할지라도 여전히 갈등이 있습니다. 갈등이 일어나면 불신 세계나 별 차이가 없어요. 직장이 그런 면에서 더하다 볼 수는 없어요. 미워할 때는 다 마귀의 도구이니까요. 

다니엘과 세 친구는 신자가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할지 보여줍니다. 하나님만 경배하니 삶의 질서와 권세를 받습니다. 어려운 일이나 억울한 일은 모두가 싫어하지만 만나야만 합니다. 역경이 없이 잘 되는 사람 없어요. 이들은 더 잘 됩니다. 역경이나 하기 싫은 일은 억울한 일은 모두 기회입니다. 믿음을 보이면 상이 옵니다. 

1. 품고 사랑하라 

신자가 자기 힘으로만 산다면 필패입니다. 경쟁자들은 수단 방법 가리지 않아요. 신자는 못 그러고요. 적어도 이론으로는 그래요. 경쟁이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교회를 떠나면 세상 사람들과 차이가 없이 행동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교회에서도 결국은 본색이 드러납니다. 아예 철판 깔고 막말하는 사람도 있는데 본인은 몰라요. 

다니엘과 세 친구는 처음부터 하나님의 힘으로 살기로 작정합니다. 교육 받을 때부터 우상에게 드렸던 제물을 거부하고 채식만 먹게 해 달라고 부탁했어요. 윗사람은 당연히 거절하지요. 왕에게 걸리면 목이 달아나는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지혜도 능력도 주셔서 허락을 받아냅니다. 열흘간 시험해 보니 더 좋아졌던 것이지요. 

그러면서 탁월한 실력을 갖게 됩니다. 물론 본인들도 힘 다해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의지해야 의욕도 노력도 나오고 능력도 탁월해집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해 자신을 최대한 성장시키기, 신자로서 반드시 해야 할 일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면 뛰어나게 됩니다. 당연히 왕에게 인정받고 최고의 관원으로 발탁됩니다. 

다윗을 보세요. 목동들이 들에 널렸지만 그만이 탁월한 실력을 갖추고 솟구칩니다. 에스더도 그렇습니다. 포로 소녀로 그 많은 귀족과 공주들을 제치고 왕비로 뽑힙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도 그랬어요. 탁월하신 하나님을 모셨기에 이미 나는 특별하지만 이 사실을 믿고 적용해야 특별한 삶이 나옵니다. 그렇게 자신을 만들어 보세요. 

술 담배를 반드시 교회와 결부시키지 마세요. 개인적 입장입니다. 문화적으로 신자는 안 하니까 안 합니다. 율법적 자세로 벌 받고 복 받는 식으로 나가지 마세요. 술 담배만 안하면 다 된 게 아니라 그 이상이어야 해요. 다니엘과 세 친구들처럼 하나님을 잘 섬기기 위해 절제합니다. 그렇게 신앙을 보이면 하나님이 보답하십니다. 

2. 당하면 감사하라 

신자도 잘못해서 미움 받는 경우가 더 많아요. 그러면 인정하고 감사하며 고쳐야 합니다. 그러나 괜히 미움 받는다면 더욱 감사해야 해요. 잘해서 튄다는 겁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이길 힘도 지혜도 주세요. 다니엘과 친구들은 모함에 빠집니다. 그렇다고  분노하여 오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니까요. 그래야 큰 사람이지요. 

그러니까 신자는 항상 이기는 마음과 자세를 보여야 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계시니 하나님 의지하면 가능합니다. 세상에서 신자들은 사랑도 받고 미움도 받습니다. 모두 감사할 내용입니다. 불신자들처럼 생각하지 마세요. 그들은 감사할 힘이 없어요. 자기 혼자뿐이니까요. 신자는 하나님이 있습니다. 항상 자신에게 상기시키세요. 

비열한 인간에게 당하는 경우 많지요. 더욱 실력 발휘할 때입니다. 다윗은 악한 사울에게 얼마나 당했나요! 요셉은 멀쩡한 사람이 노예가 됩니다. 모두 막 대합니다. 사람보다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대하는지 늘 생각하세요. 낙심하고 슬퍼하기에는 내가 너무 훌륭합니다. 웃으며 심호흡하고 내 뱉으며 “예수” 열 번만 하면 됩니다. 

전도하다 욕먹거나 신자라고 괜히 당하나요? 너무 감사하세요. 나 같은 인간이 하나님 위해 억울함 당하니 춤 춰야 합니다. 바울처럼 하세요. 죽도록 맞고 굶은 채로 묶여서 감옥에 들어갑니다. 신음하며 죽는 소리 내는 게 아니에요. 주를 위해 당하는 고난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감사해서 찬송하니까 아프지도 않아요.  

목회도 그렇고 교회 봉사도 그래요. 아무도 돕지 않고 욕만 해요? 속 상해하면 나만 망가집니다. 억울하다고 다니면서, 전화하면서 하소연하다가는 다 망해요. 교회에서 주의 일이 안 하고 마귀 일 하는 겁니다. 힘들고 억울하면 기회입니다. 점수 따요. “항상 기뻐하라. 모든 일에 감사하라. 하나님 의지하라.” 믿음을 보이세요. 

3. 신앙을 지켜라 

소설 <침묵>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신자들을 처형합니다. 살아나는 길은 예수의 초상을 밟으면 됩니다. 사실 예수 초상은 예수도 아닙니다. 예수 얼굴이 아니지요. 그러나 밟으면 그들이 예수를 배신한 걸로 여겨줍니다. 그러기에 밟지 않는 겁니다. 세 청년도 그래요. 그냥 절하는 시늉만 하면 넘어갑니다. 그런가요? 아닙니다. 

“하나님이 불에서 우리를 건져주실 것입니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우리는 우상에게 절 안 합니다.” 결정적인 신자의 자세입니다. 신자는 하나님처럼 사랑하고 품으며 양보합니다. 그래도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하나님을 선택하고 불이익을 당합니다. 죽어야 합니다. 이들이 그랬습니다. 하나님께 자신을 바치는 겁니다. 

일제 말 주남선 목사의 간증입니다. 신사참배 거부한다고 잡혀갑니다. 손톱 밑을 꼬챙이로 찌르고 모든 고문을 합니다. “참 신은 하나님 한 분입니다. 다른 신에게 절할 수 없어요.” 기절했다가 눈을 뜹니다. 한겨울 물에 젖은 시멘트 바닥이 온돌방처럼 따듯하고 몸은 포근한 이불에 쌓인 것처럼 편안합니다. “주께서 거기 계셨다.” 

그렇게 맞고 고문당했어도 몸이 망가지지 않습니다. 이런 경험이 없더라도 주를 위한 죽음을 선택했다면 최고의 경지를 경험합니다. 주를 위해 몸이 불구가 되었더라면 영원한 영광의 훈장입니다. 무리해서 일부러 자원하라는 건 절대로 아닙니다. 어쩔 수 없다면 그렇게 하라는 겁니다. 상황이 나쁠수록 오히려 신앙의 기회입니다. 

구원 받고 복 받았다면 예수의 몸인 교회 위해 믿음을 보이세요. 한 번도 건축헌금 안 했다면 해야 합니다. 하기 싫으면 그냥 안 하지 왜 불평합니까? 일본 순사나 북한 간수들만 악마 노릇하는 게 아닙니다. 나는 아닌지 생각해 보세요. 조심하지 않으면 스스로 예수와 교회를 대적하는 자가 됩니다. 믿음은 매순간 보이는 겁니다. (김기홍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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