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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베드로의 결심과 실패의 원인 (마 26:3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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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의 결심과 실패의 원인 (마 26:31-35)

오늘 본문은 베드로의 신앙고백으로 주님께 칭찬 듣는 사랑스런 모습과 아울러 인간의 완악함과 무가치함을 적나라하게 들어 내 주는 본문입니다. 마 26:26이하에 보면 만찬 석상에서 가롯 유다를 가리키면서 나를 팔자가 있다고 말씀하시고 이어서 "오늘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그때도 베드로는 예수님께 말씀드리기를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라고 용감하게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나 불과 몇 시간 후에 그렇게 호언장담했던 베드로는 참담하게 무너지고 맙니다. 예수님이 대 제사장과 빌라도와 헤롯에게 이리 저리 심문을 받으시려고 끌려 다니 실 때에 가까이도 아닌 멀찍이 따라 가면서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하고 저주까지 합니다.(마 26:69) 

사실 이것은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일이었습니다. 어쩌면 사람이 그럴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얼마 전에 주님께 맹세하고 약속했던 그 결심은 위선이고, 거짓이었을까? 우리는 그가 거짓말을 했다고는 믿어지지 않습니다. 그 고백은 베드로의 열정적인 충성의 진 모습이요, 의협심과 의리에 죽고 살만한 믿음이요, 적어도 하나님 앞에서 선언한 결심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베드로는 그 약속을 지킬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거짓말이 된 것입니다.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고 말았습니까? 이 사실을 규명하기 위해서 우리는 주님과 베드로 사이에 대화를 분석해 봐야 할 것입니다. 베드로는 계속해서 "나는 주를 따르겠습니다. 죽는데 까지 가겠습니다."라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베드로를 향하여 "네가 나를 부인하리라. 너희가 나를 다 버리리라"라고 말씀하실 뿐입니다. 과연 주님 말씀하신 대로 주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버리고 다 떠났으며, 심지어 죽는데 까지 가겠다던 베드로는 예수님을 저주까지 하고 말았습니다. 

이 말은 베드로의 신앙고백이 거짓이나 위선이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것은 진실이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 자신도 자기 자신을 바로 알지 못하였을 뿐입니다. 만일에 베드로가 자신을 똑바로만 알았더라도 그렇게 호언장담은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작은 계집 종 앞에서 자기의 구주를 모른다고 부인하고 저주까지 하는 비참한 베드로! 이것이 바로 인간의 현주소입니다. 이것이 나의 본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다만 주님과 한 약속을 지킬 능력이 그에게 없을 뿐입니다. 

주님은 진액을 쏟으시며 기도하셨습니다. 얼굴에 흐르는 땀은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과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 옆에는 정신없이 골아떨어진 베드로, 그리고 다른 제자들의 모습을 보십시오, 그런데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구나"라고 말입니다. 이 분이 주님이십니다. 마땅히 책망해야 할 부분에 이르러서는 책망보다 상대방의 연약함을 먼저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는 그 모습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베드로는 결심했지만 실패했습니다. 그 원인이 어디에 있습니까? 

1. 인생은 연약하고 부족한 존재라고 하는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때때로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가운데 생각 없이 장담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어느 날 야고보와 세베대의 두 아들의 어미가 예수님께 와서 청탁을 합니다. 마20:21입니다. "이 나의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해 달라는 청탁입니다. 그 때 주님은 그 간청에는 대답하시지 않으시고 말씀하시기를 "나의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마 20:22)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 잔은 고난의 잔이었습니다. 그 때도 야고보와 요한은 생각해 볼 겨룰 도 없이 "예 할 수 있나이다."라고 호언하며 장담하였습니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그는 알지 못했습니다. 이 고난의 잔을 마신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괴로운 것인가를 알고 대답한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 도다"라고 하신 것입니다.(마 20:22)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마 16:21에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때 베드로는 예수를 붙들고 간하여 가로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겠다고 담대하게 말씀드렸습니다. 

주님은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지를 다 알고 계셨습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섬김 받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기 위해서 오셨다고 성경은 말씀하셨습니다.(막 10:45) 어떻게 섬기셨습니까? 그 귀하신 몸으로 섬기셨습니다. 십자가에 주님의 몸을 찢으시고 상하셔서 죽음으로 우리를 섬기셨습니다. 그리고 주님 제자들에게도 같은 결심을 하자고 촉구하시기도 하셨습니다. 

마 16:24, 25에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고 하시면서 나와 함께 좁은 길을 가자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것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여전히 누가 높으냐 하는 문제에 신경을 곤두 세웠습니다. 인생이 얼마나 연약하고 부족한 존재인지를 모르다가 베드로는 실패하였습니다. 


2. 베드로는 주님의 말씀보다 자신을 더욱 과신했기 때문에 실패했습니다. 

주님께서는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33절에 베드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라고 말입니다. 이 말씀을 분석해 보면 베드로는 자신이 다른 제자들 보다 신앙적인 면이나, 열심적인 면에서도 월등한 존재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극단적인 용어를 써 가면서까지 "다 버릴지라도, 언제든지, 주님을 버리지 않겠다고 맹세를 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베드로는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오늘 새벽(2l-3시경)에 세 번씩이나 거듭해서 나를 부인 할 것이라고 주님께서 경고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베드로가 하는 말이 무엇입니까?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라고 이중적인 부정(결단코 무엇하지 않겠다는 뜻)을 사용하면서까지 자신의 강한 결심을 말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베드로는 사나이 중에 사나이같이 보였습니다. 그러나 "주님보다 자기가 자기를 더 잘 알고 있다"라는 보이지 않는 자만이요, 교만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이 순간 자기 과신의 늪에 푹 빠져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자신만만한 배드로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몇 시간이 못되어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함으로서 자기 과신이 얼마나 잘못되었는가를 분명하게 들어내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자기를 과신하게 되면 절대 실패하고 맙니다. 그래서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고 경고하십니다. 진실로 베드로는 여러 말로 경고하셨지만(31,34절) 고집스럽게 허세를 부리다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실 때에 그 말씀을 귀히 듣고 오히려 겸손하게 주 앞에 무릎을 꿇고 눈물로서 도와 달라고 간구했어야 옳았을 것입니다. 

하늘 아래 그 어떤 사람일지라도 주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지 않는다면 다 실패하고 연약하여 넘어질 수밖에 없음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자기 과신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바울은 신앙이 세월이 지나 갈수록 "자기는 죄인 중에 괴수라"(딤전 1:15)고 자신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주님께 진실하게 고백하고 은혜로 살았습니다.(빌 4:13) 


3. 베드로는 혈기를 앞세운 고로 실패하였습니다.(47-54절) 

예수님께서 잡히시기 전날 밤에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 가 기도하실 때에 반역자 가롯 유다를 앞세운 병정들이 검과 몽치를 들고 나타났습니다. 주님은 이미 이 사실을 예견하고 계셨습니다. 주님은 당황하지 않으시고 가롯 유다를 향하여 "친구여!"라고까지 하시며 끝까지 사랑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옆에 있던 베드로는 성급하고 분하게 생각한 나머지 검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귀를 베어 버리는 실수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베드로는 혈기가 충천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그것까지도 참으라, 검을 가진 자는 다 검으로 망하느니라"(52절)고 권면 해 주셨습니다. 

사실 베드로의 이같이 용기 있는 행동이 주님을 위한 일 인줄 알았는데 오히려 구속 역사를 방해하는 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베드로보고 하시는 말씀이 "사단아 물러가라!"고 꾸짖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이나 뜻은 생각지 않고 사람의 뜻이나 생각만 하는 자는 주님을 돕는 자가 아니라 주님의 일을 훼방하는 자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베드로는 인간적인 혈기, 감정, 분노심을 통제하지 못하고 혈기를 부림으로 십자가의 원수가 되고 말았습니다. 약 1:20절에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우리 성도는 마음을 잘 지키고 다스릴 줄 알아야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서 영광 받으십니다. 이것에 실패하면 하나님의 영광은 도리어 욕이 되고, 교회의 문은 닫쳐지게 될 것입니다. 


4. 끝으로 베드로는 주님을 멀찍이 쫓아 가다가 실패했습니다. 

58절에 "베드로가 멀찍이 예수를 쫓아 대 제사장의 뜰에까지 가서 그 결국을 보려고 그 안에 들어 가 하속들과 함께 앉았더라"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을 쫓아가기는 했지만 멀찍이 쫓아갔다고 했습니다. 마치 다른 사람들이 볼 때에 베드로는 주님과 상관없는 사람처럼 보이려고 애를 썼을 것입니다. 실로 베드로는 주님을 염려하는 마음은 있으나 전폭적으로 주와 함께 죽기도 하고 살기도 하겠다는 신앙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얼마 전에 뭐라고 했습니까? "주와 함께 죽는데도 가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우리 중에 말만 앞세우시는 분이 계십니까? 베드로의 실패를 거울삼으시기 바랍니다. 여기에 주님을 믿기는 하지만 손해 보지 않을 정도로 주님을 섬기고, 밑지지 않을 정도로 주님을 따르겠다고 하는 분이 계십니까? 주님을 멀찍이 쫓아 가다가 실패한 베드로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베드로는 주님을 사랑하되 온전히 사랑치 못하였기 때문에 두려워 떨게 된 것입니다.(요일 4:18) 

그러면 결론적으로 실패를 성공으로 바꾸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눅 22:60절 이하에 베드로가 세 번 예수님을 부인하자 닭이 울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재판 받고 나오시는 예수님과 베드로는 얼굴과 얼굴이 마주쳤습니다. 베드로의 눈과 예수님의 눈이 마주쳤습니다. 주님께서 베드로를 바라보시는 눈은 어떤 눈이셨을까요, 책망하시는 눈이셨을까요? 아니면 원망의 눈이셨을까요? 아니면 증오의 눈이셨을까요? 베드로는 예수님의 얼굴을 쳐다보았습니다. 피곤이 상접했지만! 채찍에 시달려 피로 얼룩진 얼굴이지만! 베드로를 쳐다보시는 주님의 눈은 불쌍히 여기시는 눈이셨습니다. 베드로의 영혼을 위하여 눈물을 흘리시는 눈이셨습니다. 베드로를 너무나 사랑하셔서 피 흘리신 눈이셨습니다. 호언장담하면서 한치 앞도 내다 볼 줄 모르는! 그래서 교만했던 베드로가 너무나 불쌍해서 안타까워하시는 눈이셨습니다. 

그 주님은 아무 말씀도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냥 바라만 보셨습니다. 잠잠히 바라만 보시며 사랑해 주실 뿐이셨습니다. 그런데 베드로의 억장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앞에서 자신이 초라해 지기 시작했습니다. 얼마나 비참한 존재인가를 알았습니다. 얼마나 나약하고 연약한 존재인가를 알았습니다. 그리곤 통곡하기 시작했고, 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 실패한! 무능한 인간이 살길이 무엇입니까?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꾸짖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측은히 여기시는 주님을 붙드는 것입니다. 여러분 탕자의 비유에서 죄를 짓고 회개하면서 돌아 온 아들에게 아버지가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기억이 나십니까? 아무 말씀도 하시지 않았습니다. 다만 목을 안고 입을 맞추고 그 넓은 가슴에 안아 주실 뿐이었습니다. 이 시간에 실패하고 피곤한 여러분을 우리 주님께서 잠잠히 사랑해 주시고 넓은 가슴으로 안아 주심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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