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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이런 장로가 되기를 사모하라 (딤전 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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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장로가 되기를 사모하라 (딤전 3:1-7)

우리가 자주 하는 말 중에 인사가 만사다 그런 말이 있습니다. 적재적소에 적당한 사람을 세우면 모든 일이 매끄럽게 진행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세우는 일이 모든 일의 전부다 하는 그런 뜻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가 좋은 장로님을 세우는 것은 참으로 축복된 일입니다. 또 특별히 개신교회 장로교회에서 장로님의 직분과 그 책임 권한은 매우 중차대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기도와 분별력으로 신중하게 좋은 장로님을 선출하도록 우린 기도하면서 노력해야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사람을 통해서 일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공생에 3년 동안 열 두명의 제자들을 선발하셨고 그들을 훈련시키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우리를 떠나셨습니다마는 바로 예수님은 그 복음 사역을 열 두 제자에게 맡기셨습니다. 물론 열 두명의 제자들이 다 온전한 것은 아닙니다. 그들 중에 몇 명은 좀 부실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그들에게 임할 때 그들이 정말 담대해져서 땅 끝까지 복음을 증거하는 것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사람들을 통해서 일하셨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교회는 정말 신중하고 절제하고 성령 충만한 그런 장로님들을 통해서 이 교회를 세워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정말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그런 장로님 그리고 담임목사에게 좋은 파트너가 되고 동역자가 되는 장로님 그리고 교회에 영원한 축복이 되는 장로님 후보는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우리가 이 시간 함께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몇 가지 기준을 여러분에게 제시하려고 합니다. 

첫째로 좋은 장로님은 어떤 분일까?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한 번 따라서 해보시겠습니까? “좋은 장로는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역시 사랑이 최고지요. 믿음 소망 사랑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사람 그것이 최고의 장로님 후보입니다. 

여러분 누구를 사랑해야 될까요? 하나님을 먼저 사랑해야 되요.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높이는 거예요. 내 인생의 최고의 주인으로 하나님을 모셔드리는 사람을 이야기하죠. 그는 누구보다도 예배를 사모하는 것입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고 그 분의 은혜를 경험할 수 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제일 좋은 장로님 후보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함과 동시에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이 좋은 장로님후보가 될 수 있습니다. 교회는 어떤 것입니까? 주님의 몸된 교회가 아닙니까? 또 예수님께서 그의 피를 흘리셔서 세우신 교회가 바로 아닙니까? 그 교회를 내 몸같이 사랑하는 장로님, 그 귀한 것입니다. 교회를 위해서 헌신하고, 교회를 위해서 나 자신을 희생하고 그리고 내 물질을 드려서 봉사하는 그런 분. 정말 그런 장로님이 이 시대에 필요한 분 아닌가 그런 생각을 우리가 해볼 수가 있습니다. 교회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어찌 우리가 인색하게 교회에 내 시간을 드리고, 물질을 드릴수가 있겠습니까? 

자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고 동시에 사람을, 성도를 사랑하는 분이 좋은 장로님 후보가 될 수 있습니다. 장로의 직분은 성도를 잘 보살피는 것입니다. 그래서 헌법에도 보면은 성도들의 영적 사항을 보살핀다. 교우들의 사정을 잘 알아야 됩니다. 저들의 필요가 뭔지 저들의 고통이 뭔지 잘 알고 그것을 해소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장로님의 직문입니다. 

특별히 장로님은 교우들을 섬기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섬기셨듯이 장로님은 바로 교인들을 섬기는 사람이다. 어떤 분들은 오해해요. 뭐 집사나 권사로 있다가 또 장로가 되면 무슨 뭐 막 명령하고 큰 소리 치고 무슨 큰 권력층이 되는 것처럼 착각하는 그런 분들이 있어요. 저는 그런 분들은 우리 교회에는 아무도 없다고 생각합니다만은 여러분 장로님의 직분은 성도를 섬기는 직분이다. 

지난 성금요일에 저와 장로님들은 성도님들의 발을 정성껏 씻겼습니다. 뭐 성금요일에 안나온 분들은 아마 그런 귀중한 경험들을 못 해보셨을 거예요. 우리 교우들 발을 장로님들이 잘 씻겨드리고 또 물기가 없도록 발가락까지 잘 닦아드리고 그리고 새 양말을 신겨드리고 그리고 축복기도를 해드렸습니다. 저는 그것이 바로 장로의 직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인들의 발을 씻기는 그 종의 모습,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모습이고 우리가 바로 지향해야 될 지도자의 모습이라고 생각해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고 성도를 사랑하는 것이 좋은 장로의 첫 번째 조건입니다. 

두 번째로 좋은 장로는 겸손한 사람이어야 한다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겸손은 파란불이라면 교만은 빨간불입니다. 빨간불이 켜지면 위험한 것입니다. 나도 모르게 내가 교만하여졌을 때 위험해지는 것이고 그 때 우리는 내 뜻대로 모든 것을 하려고 합니다. 내 주장을 관철시키려고 합니다. 그건 잘못된 것입니다. 나만 옳은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 생각도 일리가 있고 그것도 옳은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겸손한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사랑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시고 교만한 자를 배척하신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아니지만 디모데전서 3장 10절에 보니까 집사의 자격을 말하면서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이에 이 사람들을 먼저 시험하여 보고 그 후에 책망할 것이 없으면 집사의 직분을 맡게 할 것이요” 집사의 직분이 그렇다면 그 보다 더 중대한 장로의 직분은 말할 것도 없는 것입니다. 먼저 그가 겸손한 사람인지 책망 받을 것이 없는지 시험해보고 그를 그 자리에 세워라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겪어보지 않으면 잘 모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잘 살펴보고 기도해서 정말 그 분이 겸손한 분이라면 우리는 얼마든지 그 분을 선택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대개 사람들은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고 합니다. 처음부터 교만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건 구제 불능이죠. 그런데 두 번째로 처음에는 겸손한데 어떤 다른 직분을 얻던가 힘이 생기면 교만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변질되는 것입니다. 그것도 좋은 것이 아닙니다. 

제일 이상적인 것은 처음에도 겸손하고 마지막까지 겸손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교회에 필요한 장로님의 모습이다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본문에 2절에 보니까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어야 된다. 그들이 절제하고 신중하며 아담하고 단정한 사람이라야 된다. 이 단정이라는 말이 예전 성경에는 아담이라고 이렇게 소개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자신을 잘 컨트롤하고 잘 절제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장로의 자격이 있다. 겸손을 의미하는 거죠. 우리는 구약성경에서 사울과 다윗을 좋은 비교해볼 수 있습니다. 사울 왕은 이스라엘의 초대 왕인데 그가 처음 왕의 추천을 받을 때, 선택을 받았을 때 그는 매우 부끄러워서 공구사이에 들어가서 숨을 정도로 그는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스라엘에 왕이 되었을 때, 권력과 힘을 갖게 되었을 때 그의 마음속에 교만이 싹틉니다. 그는 그 다음부터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물어보거나 기도하지 않습니다. 자기 좋은 대로 행합니다. 결국 이 교만한 사울은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께 버림받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가장 비참한 종말을 맞이하게 됩니다. 거기에 비하면 다윗은 어떻습니까? 처음에도 겸손한 사람이었지만 마지막에도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이 기록한 시편은 절절히 눈물의 고백으로 그리고 회개의 고백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 다윗의 생애에 두 가지 중요한 흠이 있지요. 하나는 하나님께 물어보지 않고 인구 조사를 실시한 것입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께 물어보지 않고 밧세바를 취한 것입니다. 이 두 가지가 다윗의 생애에 큰 오점이 되는 것이죠. 그 외에 다윗은 혼자 행동한 적이 없어요. 늘 하나님께 먼저 여쭤 보고 하나님이 허락하실 때 마다 움직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겸손한 사람으로 가장 위대한 왕으로 남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이 시대에 겸손한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세 번째로 좋은 장로님은 영적 분별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교회 지도자는 옳고 그름에 대한 분별력이 있어야 합니다. 정말 우리가 헌법에 보면 장로의 자격을 이렇게 말하죠. 상당한 성경의 식견과 통솔 능력이 있고 디모데 전서 3장 1절부터 7절에 해당되고 무흠 입교인 5년 이상 된 자로 이렇게 장로의 자격이 소개가 됩니다. 

물론 세상적인 지식이나 성경의 상당한 식견도 필요합니다. 사람들을 잘 이끌 수 있는 통솔력도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장로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줄 알아야 된다 하는 것입니다. 

정말 오늘 이 시대에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교회를 향한 주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분별할 수 있어야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면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하나님을 등지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과 정 반대로 행할 수 있습니다. 교회를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교회를 세우겠다고 하면서도 주님의 뜻을 모르면 교회를 분열시키고 교회를 다툼으로 이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정말 교회 지도자는 분별력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오늘 자막에 이사야 55장 9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아멘 하나님의 길과 우리의 인간의 길이 다릅니다. 하나님의 뜻과 우리의 뜻이 다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마치 내 생각이 하나님의 생각이라고 강요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늘 겸손하게 하나님의 뜻이 어디 있는지 하나님의 생각이 어디 있는지 늘 물어봐야 돼요. 그리고 성령의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자 로마서 12장 2절을 함께 읽어보지요.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아멘 정말 이 시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무엇인지 우리가 그것을 바로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들 중에 누구도 내 뜻만을 강요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겸손히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됩니다. 성령의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성경을 깊이 묵상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바로 교회 지도자는 영적 분별력이 있는 사람이되어야 한다.

네 번째로 좋은 장로님은 인품이 훌륭하고 거기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자 오늘 우리 2절부터 4절 까지 같이 한 번 읽어봅니다. “그러므로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신중하며 단정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오직 관용하며 다투지 아니하며 돈을 사랑하지 아니하며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공손함으로 복종하게 하는 자라야 할지며” 아멘! 그렇습니다. 사람이 자기 집을 잘 다스릴 줄 모르면서 어떻게 교회를 돌볼 수 있겠느냐고 그런 얘기로 끝을 맺습니다. 

여러분 사람의 성품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그 사람의 인격, 됨됨이 그것이 중요하지요. 그 인격의 됨됨이 위에 믿음의 기초가 쌓일 때, 그는 좋은 하나님의 일꾼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사람의 성품은 잘 변합니까? 잘 변하지 않습니까? 잘 일반적으로 잘 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좋은 장로님의 첫 번째 조건은 좋은 인격 좋은 성품의 소유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 좋은 성품의 바탕 위에 하나님의 믿음이 주어질 때 그는 위대하게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성경은 정말 인품이 훌륭하고 덕이 있는 사람이 감독의 자격이 있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는 책망 받을 만한 그런 결함이 없어야 합니다. 가정적으로 안정 되어서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야 하고 가정을 잘 다스릴 수 있어야 합니다. 신중하고 단정하고 또 그는 나그네를 잘 대접하는 사람이고 가르침을 잘 할 수 있는 식견도 있어야 합니다. 

3절에 보니까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또 구타하지 아니하며 폭력을 행하지 않는 사람이죠. 오직 관용하며 누구에게나 너그럽게 대하는 넓은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다투지 아니하며 잘 싸우면 안되겠죠?! 장로님이 화를 잘 내면 교회 공동체가 행복할 수 없죠. 또 돈을 사랑하지 아니하며 돈에 대해 너무 지나치게 인색하면 다른 사람에게 수전노라는 비난을 받을 수 있겠죠. 

여러분 바로 인품과 덕이 훌륭한 분이 좋은 장로님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우리 모두가 다 부족하지만 그래도 그 중에서도 누가 더 인품이 훌륭한가 누가 덕이 있는가 잘 선별해서 우리가 잘 선별한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좋은 장로님은 외인에게도 선한 증거를 얻는 사람입니다. 자 우리 오늘 7절 말씀을 읽어볼까요?! “또한 외인에게서도 선한 증거를 얻은 자라야 할지니 비방과 마귀의 올무에 빠질까 염려하라.” 아멘. 외인이라는 것은 교회 바깥의 사람들을 이야기 합니다. 우리는 보통 교인들 성도들이 투표를 하지만 사실은 외인들에게도 인정과 칭찬을 받는 분이 장로님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전부터 그런 얘기 많이 하죠. 교회 안에서 장로님을 투표해서 뽑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마을 사람들에게 투표를 해서 뽑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시골에서는 그것이 가능하지만 서울은 그것이 어렵죠. 왜? 각 사는 사람의 집이 다 다르니까요. 

그러나 이것은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장로님은 가정에서도 가족들에게 존경과 사랑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직장에서도 칭찬 받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사회에서도 동네에서도 누구에게나 인정받는 그런 분이 되어야 합니다. 선한 증거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동번역에서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감독은 또한 교회 밖의 사람들에게도 좋은 평가를 받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래야 남의 비난을 받지 않고 악마의 올무에 걸려드는 일이 없을 것이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장로님은 외부 사람들에게도 선한 증거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교회 지도자는 사회의 지도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훌륭한 인물을 세우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여러분 요즘 영국의 마가렛 대처 수상이 서거해서 장례식을 진행하고 있습니다만 그는 11년 동안 수상으로 제직했고 그에게 붙여진 별명이 ‘철의 여인’이다 이렇게 부릅니다. 나름대로 영국인들은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11년 동안 제직하면서 그가 영국을 든든한 반석 위에 세워 두었기 때문입니다. 한 인물은 한 역사를 변화 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나라에도 세종대왕 같은 분은 역사의 훌륭한 분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어 놔서 우리가 편리하게 사용하는데 이 한글은 학자들이 그래요. 이건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언어라는 것입니다. 가장 과학적인 언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언어를 세종대왕이 만들려고 그럴 때 그걸 반대했던 양반들이 많아요. 그걸 왜 만드느냐? 우리는 저 중국의 한자나 쓰면 되는 거지. 왜 천민들한테 글을 알려주려고 그러느냐? 참 이상하죠? 이렇게 좋은 글을 왜 반대해서 못 만들게 했을까요? 이거 어리석은 거예요. 

그러나 세종대왕은 그 모든 반대를 다 무릅쓰고 한글을 만들고 그것을 반포해서 우리가 얼마나 편리하게 사용하고 있습니까? 아프리카의 어느 부족은 한글이 너무 좋아서 한글을 자신들 부족의 언어로 삼았다고 합니다. 우리 초등학교 교재를 그 아프리카에 가져가서 사용하고 있어요. 이런 우수한 글을 만들어 놓은 인물이 우리의 역사속에 있었기 때문에 우리 한민족이 우수한 거예요. 저는 이순신 장군을 생각할 때마다 참 훌륭한 장군이다 생각을 합니다. 

비교할 수 없는 열세 가운데서 일본 왜군을 물리친 것을 보면 정말 대단하지 않습니까? 영국 사람이 가장 자랑하는 제독이 넬슨 제독인데 사실 넬슨 제독은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큰 승리를 거두었는데 거기는 전력이 비슷비슷합니다. 그러나 우리 이순신 장군은 왜구와 배의 숫자로 보아 10분의 1도 안 되는 병력과 그런 배를 가지고 그들을 물리쳐 승리할 수 있었다는 것은 대단한 것입니다. 이런 인물들이 세워져 있기 때문에 오늘 한 민족이 이 역사속에 우뚝 설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해 봅니다. 

우리 역사속에서도 훌륭한 인물들이 많이 있지만 우리 교회사 속에서도 존경할 인물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우리 한국교회 자랑인 이자익 목사님과 조덕삼 장로님의 이야기를 저는 가끔 여러분들에게 소개시켜 드릴 때가 있습니다. 

1882년 경남 남해에 가난한 농가 출신으로 이자익이라는 어린이가 태어납니다. 어릴 때 양 부모를 다 잃어버립니다. 그는 친척집을 전전하다가 행상을 해서 연명을 하다가 전북 김제라는 곳까지 흘러갑니다. 거기에서 그 지방의 대지주인 조덕삼이라는 사람을 만나게 되고 그 집의 머슴이 됩니다. 그런데 이자익 이 젊은이는 늘 열심히 공부합니다. 머슴이지만 그는 남의 어깨 너머로 한자도 배우고 한글도 배우고 늘 열심히 합니다. 그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고 조덕삼씨는 참 저 사람 훌륭한 사람이구나. 머슴이지만 열심히 공부하면 훌륭한 인물이 되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조덕삼씨와 이자익씨가 어느 날 동네에 온 선교사의 전도를 받고 예수를 영접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조덕삼씨의 집에서 예배가 시작되게 됩니다. 교회가 세워진 거예요. 그 후에 조덕삼씨는 자기 많은 재물을 가지고 금산교회라는 교회를 세웁니다. 이것이 한국의 ㄱ자 교회인데 이쪽엔 남자 이쪽엔 여자 이렇게 서로 왕래하지 못하고 천을 쳐 놓은 한국의 교회의 모습이죠. 그 교회를 자기 물질을 드려서 세웁니다. 그리고 이자익 이 머슴이 집사가 되고 조덕삼씨도 집사가 되죠. 

교회가 발전해 가니까 우리가 장로를 뽑아야겠다. 그래서 장로 투표를 했어요. 당연히 주인이고 부자인 조덕삼씨가 되야 하는데 장로 투표 결과를 보니까 머슴이 장로가 됐어요. 그러니 사람들이 난리 치는 거예요. 어떻게 저 머슴놈이 장로가 될 수 있느냐? 안된다는 거예요. 그때 조덕삼시가 일어나 이야기 합니다. 

여러분, 장로는 사람이 뽑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뽑는 것입니다. 누가 장로가 됐든 하나님이 뽑으셨다면 우리는 순종해야 합니다. 저는 이자익 장로님을 잘 섬길 것입니다. 그러니까 교인들이 잔잔해졌어요. 그래서 장로님으로 잘 섬깁니다. 그리고 나서 이 조덕삼씨도 또 장로가 됐어요. 그런데 이 조덕삼 장로가 생각하기에 이자익 장로님은 너무 훌륭하니까 이런 분은 신학공부를 해가지고 목사가 되면 좋겠다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자기 사제를 털어서 평양신학교에 입학을 시켜 줬어요. 5년 동안 열심히 공부하고 안수를 받았는데 그 이자익 목사님을 자기 교회에 청빙을 했어요. 

그래서 머슴이 담임목사로 오고 주인이 장로가 돼서 그 목사님을 섬기는 거예요. 이 금산교회가 얼마나 아름다운 교회입니까? 그 역사가 있는 교회이고 그 지역에서 유명한 교회입니다, 그 교회 건물은 전북에서 문화제로 지정해 놓고 있습니다. 그리고 조덕삼 장로님은 자신의 물질로 목사님의 사역을 돕는데 그렇게 해서 그 지역에 20개의 교회를 세웁니다. 

그리고 이자익 목사님은 대전 신학교를 세워서 많은 후배들을 양성합니다. 이자익 목사님은 그 후에 총회장을 세 번이나 역임하는 아주 존경받는 어른이 되었어요. 그런데 이자익 목사님도 인덕이 훌륭하지만 저는 더 훌륭한 분은 조덕삼 장로님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자기 집 머슴을 장로로 세우고 또 목사를 세우고 그래서 그를 떠받드는 거예요. 그래서 그 교회가 역사 속에 유명한 교회가 된 거예요. 저는 이런 장로님이 이 시대에 꼭 필요하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바로 이런 섬김의 장로님이 우리 교회에도 필요하지 않나 저는 생각을 해봅니다. 저는 오늘 이 말씀을 들으면서 이런 장로님을 뽑아야겠다는 말씀도 있지만 우리 모두가 이런 장로감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오늘 이 말씀을 드립니다. 오늘 우리 1절 말씀을 다시 읽어볼까요? 

“미쁘다 이 말이여, 곧 사람이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함은 선한 일을 사모하는 것이라 함이로다.” 아멘.

감독의 직분을 얻으려 함은 선한일을 사모하는 것이다. 이 말을 바구어 이야기 하면 누구나 감독되기를 사모하라는 것입니다. 이 선한 직분을 얻어서 감독이 되시기를 여러분 사모하십시오. 

사실 이 글이 쓰여질 초대교회는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감독은 그 당시의 목사나 장로를 가리키는 말이지만 지금은 장로를 가리키는 말로 해석을 합니다. 그 당시 교회의 지도자가 되고 장로가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누구도 하려고 하지를 않았어요. 왜? 핍박 받는 시대니까 장로가 되면 가장 먼저 죽어요. 그리고 희생당해야 하고 쫓겨 다녀야 하고 하니까 아무도 하려고 하지 않아요. 그런데 정말 신실한 믿음의 사람들은 교회 공동체를 위해서 내가 장로로 헌신하겠습니다. 소명을 가지고 자원하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또 그 일을 사모하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바로 여러분들은 장로 되기를 사모하십시오. 이런 이야기입니다. 

저는 오늘 우리 교회 모든 성도들이 훌륭한 장로감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물론 여러분들이 다 장로님이 될 수는 없어요. 그러나 여러분이 장로의 재목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오늘 이 말씀은 장로님이나 집사님에 대한 말씀이 아니에요. 우리 모두가 좋은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 기도해야 될 제목이고 우리 모두늬 끊임없는 사모와 기도가 있어야 함을 우리에게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오늘 디모데 전서 3장에서 말씀하시는 이런 하나님이 원하시는 장로님이 선출되기를 바라고 여러분들이 또한 좋은 장로감이 되고 좋은 크리스천이 되고 지도자가 되고 일꾼이 되는 사모함을 가지고 기도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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