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기독교인의 다섯 가지 확신 (딤후 3:14-15)

첨부 1


기독교인의 다섯 가지 확신 (딤후 3:14-15)

14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15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지난주에 교회 어르신들과 여의도로 벚꽃 구경 다녀왔습니다. 
돌아오다가 시간의 여유가 있고 과천의 서울 대공원 벚꽃이 좋다하여 둘러보다가 현대미술관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잠시 작품을 관람했습니다. 

최근 한참 뜨는 유명한 작가들의 작품이 전시 되었는데 어떤 작품은 도대체가 뭔 그림인지 이해가 안 되는 작품이었습니다. 그래서 옆에 설명해 놓은 글을 보았는데 그 설명은 더 어려운 표현으로 설명을 해 놓았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미친 사람이 그려도 이 정도는 그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 미술을 관리하는 분에게 물어보니 이해가 안 되는 그런 그림의 가치가 수천만 원이나 된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희귀성과 작품성, 그리고 시대성에 따라 가치가 변합니다. 

단원 김홍도의 그림도 옛날에는 술 한 잔 값이었는데 지금은 몇 10억이 넘는 것이 있습니다. 이 세상 것은 세월이 흐르면서 가치가 변화됩니다. 

그러나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변화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뭘까요? 하나님의 진리입니다. 

성경 말씀, 즉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진리, 이것은 수천수만 년이 흘러도 변치 않습니다. 
물론 그 복음을 전달하는 수단이나 복음을 담는 문화는 변화될 수 있습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성경을 책으로 가져다니지 않습니다. 스마트폰으로 보는 분들이 많습니다. 옛날에는 성경을 구하려고 얼마나 많이 애를 썼습니까? 

그런데 요즘은 5M정도의 용량으로 성경한권을 스마트폰에 다운받아 저장해놓고 볼 수 있습니다. 제 스마트폰에만 한국어 성경, 중국어 성경, 영어성경, 헬라어 성경, 히브리어 성경, 등 10권이 넘는 성경이 저장되어 있습니다. 심지어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게 저장된 것도 있습니다. 참으로 세상이 많이 변했습니다. 

이처럼 복음을 담는 그릇은 변합니다. 사람도 변하고 문화도 변합니다. 전달 방법도 변했습니다. 그런데 복음 자체는 변화되지 않습니다. 
만약 진리가 변한다면 성경은 폐기되어야 하고 새로운 성경이 나와야 한다는 말이 됩니다. 

그러나 걱정하지 마세요. 성경의 진리는 완전하고도 명확한 절대 불변의 진리입니다. 그러기에 변할 필요도 없고 변할 수도 없습니다. 왜요? 하나님이 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즘 같이 모든 것이 흔들리는 시대에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 것에 흔들리지 않는 마음,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신앙이 필요합니다. 

어떤 핍박이 와도 흔들린 없는 신앙, 어떤 유혹이 와도 흔들이지 않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찌해야 할까요? 오늘 봉독한 14절의 말씀처럼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하신 말씀대로 우리가 분명하게 확신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성경에서 배우고 확신해야 할 것이 5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1. 구원 받았다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구원확신 

우리 기독교는 구원의 종교입니다. 사람을 죄와 사망에서 해방시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종교입니다. 그 방법은 오직 예수를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를 구주로 믿으면 죄 사함을 받고 그러면 구원을 받게 됩니다. 

요3:16절은 다 아시지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 성경 말씀을 믿으시나요? 이것을 분명하게 믿지 못하면 그 사람은 구원의 확신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믿는 사람, 즉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는 사람은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됩니다. 

그러기에 저와 여러분이 분명하고 명확하게 알아야 할 것은 우리는 이미 구원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에 대해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이 구원의 확신이 없는 사람은 신앙생활이 정말 힘들고 어렵습니다. 

구원의 확신이 없는데 어떻게 십일조를 합니까? 구원의 확신이 없는데 어떻게 주일성수에 목숨을 걸겠습니까? 이 확신이 없는 사람은 기독교 신앙생활을 취미생활로 여기거나 도덕적 윤리적 강의로 여깁니다. 

그러나 이렇게 확신이 없는 사람은 조금만 핍박을 받거나 욕을 먹으면 금방 신앙생활을 포기합니다.   

또, 요일5:11~12절을 보세요. 

11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12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고, 그 생명이 아들이신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 속에 있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아들이 있는 자는 생명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들이 없는 사람은 생명이 없는 것입니다.   

어떤 할머니가 목사님에게 찾아와 나는 생명이 없으니 어쩌면 좋으냐고 하더랍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 했더니 나는 딸만 둘인데 어쩌면 좋으냐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니 “아들이 있는 자는 생명이 있고...” 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여기 아들은 여러분이 낳은 아들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또 요5:24절을 보세요.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을 것이 아니고 얻었습니다. 생명으로 옮길 것이 아니고 이미 옮겼습니다. 왜죠? 믿는다는 것은 영접했다는 것이고 영접한 자는 죄 사함의 은총이 주어지고 그런 사람은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머니 모태에서 한번 태어나고, 예수님을 믿어 거듭나면 그 사람은 한번만 죽습니다. 그러나 어머니 모태에서 한번만 태어난 사람은 두 번 죽습니다. 육신으로 죽고 영으로 또 한 번 죽어 두 번 죽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믿어 거듭난 백성입니까? 그러면 한번만 죽게 되어 있습니다. 바라기는 오늘 돌아가셔도 구원받은 백성이기에 구원 받은 것을 확신하며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2. 성령께서 함께 하신다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성령임재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사람은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입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누구든지 예수님을 주라고 고백할 수 없습니다. 

고전12:3절을 보세요.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나의 구주인 것을 믿는 다는 것은 성령이 우리 속에 임재한 것입니다. 그러면 그 성령은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시고 날마다 우리를 주 예수님을 닮도록 인도하시는 분임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성령이 내 속에 거하면 나는 이제 성령의 그릇입니다. 성령이 거하는 거룩한 殿(전)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부터는 나는 더 이상 내 것이 아닙니다. 

고전6:19절을 보세요.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그러니 성령은 내 몸의 주인이고 나는 성령이 거하시는 거룩한 존재이기에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이 내속에 거하시면 죄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죄를 깨닫게 하고 죄를 싫어하게 합니다.   

뿐만 아니라 요14:26절에 보세요.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하셨습니다. 

성령이 내속에 거하면 성령께서 예수님의 말씀을 가르쳐 주시고 하나님의 말씀이 생각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고 성경을 기록하는데 역사하신 영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읽을 때 성령이 깨닫게 해주시고 순간순간 생각나게 해주시는 일을 하십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성령께서 내 속에 함께 하신다는 확신보다 더 큰 은혜는 없습니다. 

이 시간 성령은 여러분과 함께 하시고 계십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입니다. 그러기에 여러분은 성령님에 함께 하고 있는 것을 확신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우리의 기도가 반드시 응답된다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응답확신

우리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우리와 대화하길 원하십니다. 그래서 성경에 수많은 곳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리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응답하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응답을 확신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자녀가 아버지 하나님과 영적인 교제를 나누는 것은 성도의 당연한 자세입니다. 

제가 부모님을 모시고 있습니다. 그런데 모신다는 것은 밤을 해드리고 잠자리 드리는 것만이 모시는 것이 아닙니다. 대화를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과 대화하는 것, 그것이 기도입니다. 그런데 기도를 하는 것이 당연한데 기도를 안 하니 문제입니다.   

성경을 몇 군데 보세요. 여러분이 다 아는 구절만 보겠습니다. 
마7:7절에 보세요. 

“7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8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같은 말을 세 번 반복한 것이 아닙니다. 기도에 종류가 입으로 구하는 것만 있지 않고 눈으로 찾고 손으로 두드려야 응답이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기도의 응답의 약속과 축복은 수없이 많은 곳에서 열거되고 있습니다. 요14:13~14절에 보세요. 

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14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누가 시행한다고요? 주님께서 우리가 구하기만 하면 시행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보증입니다. 약속입니다. 

이외에도 성경에 기도 응답에 대한 확신을 갖게 하는 성구가 수두룩합니다. 

렘33:3절에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하셨고 

약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 약속을 믿습니까? 
하나님이 응답함을 확신합니까? 그러면 기도하게 됩니다. 

그런데 왜 기도가 잘 안되나요? 왜 새벽기도가 그렇게 힘들고 어려우냐 하면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으신다는 확신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 기도가 재미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기도는 반드시 응답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신음하며 기도하는 소리도 들으시고, 우리가 통성으로 기도하는 것도 들으시고, 심지어는 묵상하며 기도하는 것도 듣고 계십니다. 

바라기는 하나님은 내 기도를 다 듣고 계시고 반드시 응답해 주심을 확신하시기를 축원합니다. 
  

4. 하나님의 인도하심의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인도 확신 

우리는 미래를 내다 볼 능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한치 앞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고 사는 것이 우리 인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전능하십니다. 그분은 영이십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앞날을 아십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의 삶을 선한 길로 인도하신다는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그분께 우리 인생을 맡겨야 합니다. 잠3:5~6절을 보세요. 

5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6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 인생길을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십니다. 그러기에 우리 속에 계신 하나님께 우리 인생 항해의 키를 맡겨야 합니다. 그럴 때 그분은 우리의 주인이 되셔서 안전한 포구로 우리를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잠16:9절에는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하셨습니다. 

저는 목회를 하면서 순간순간 이것을 느끼며 살아갑니다. 
하나님이 제 발걸음을 인도하십니다.
우연처럼 보이는데 그것이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내가 이렇게 하리라 계획하고 가지만 결국 제 발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시편기자 다윗은 고백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했습니다. 그리고 고백한 것이 이것입니다. 

시편23:2~3절을 보세요. 

2.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 도다 
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 도다 

“인도하시는 도다” 이것을 믿는 사람은 두려움이 없습니다. 이것을 믿는 사람은 걱정 근심이 없습니다.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확신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5. 천국과 지옥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내세 확신

미국 대형교회를 목회하는 롭 벨 목사는 최근 펴낸 그의 저서 ‘사랑은 이긴다’에서 ‘지옥은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그 책에서 “지옥은 없고 인간은 죽어서 모두 천국으로 간다”고 주장을 했습니다. 그의 주장은 “하나님은 사랑의 창조주로 예수를 믿지 않는다는 이유로 손수 만든 피조물인 인간들을 지옥으로 보낼 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 사람 생각입니다. 그가 아무리 떠들어도 지옥은 실존합니다. 
왜죠? 하나님이 성경에서 지옥을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인 동시에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만약 롭 벨 목사 주장처럼 세상 모든 인간이 천국 간다면 이 세상은 아주 불공평한 세상이 됩니다.   

그래서 모든 설교가 다 중요하지만 정말 중요한 설교는 종말론 설교입니다. 

즉, 천국과 지옥에 대한 설교가 중요한 설교입니다. 그런데도 유감스럽게도 많은 성도들이 이 지옥과 천국을 알기는 해도 믿지를 않습니다. 믿는다면 주변에 믿지 않는 사람들을 향해 전해야 합니다. 믿지 않는 가족이나 친척에게 지옥이 있다고 전해야 합니다. 그런데 왜 안전하나요? 안 믿으니까 못전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머잖아 여러분도 죽고 저도 죽습니다. 
여기 계신 모든 분들 70년 안에 다 죽습니다. 아멘? 

시편90:10절에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세월이 날아갑니다. 그러니 천년만년 살 것처럼 이 세상에 집착하지 말아야 합니다. 세월이 좀 길고 짧을 뿐이지 결국은 다 죽습니다. 이 세상 그 누구도 찾아오는 죽음을 거부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준비해야 하나요?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히브리서9:27절에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라고 하셨습니다. 사람의 육신이 죽으면 심판이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 심판은 영벌과 영생으로 나누어집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많은 사람들이 죽은 뒤에 어떤 일이 있는지 모르거나 대책이 없이 산다는 것입니다. 참 안타깝지 않습니까?  

지옥은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최악의 고통이 있는 곳입니다. 
불꽃 가운데서 사정없이 고통 받는 곳입니다. 그곳의 고통을 성경은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눅16:24절을 보세요. 

24 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얼마나 고통스러우면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혀를 서늘하게 해 달라할까요?   

여러분! 
사우나나 찜질방가면 한증막에 들어가시나요? 저는 잘 안 들어갑니다.
특히 불가마 같은 곳은 들어가지 마세요. 거기 들어가면 우리 폐로 뜨거운 공기가 들어가 폐가 쪼그라들고 상한답니다. 계란이 후라이 판에서 희게 되는 온도가 40도에서 50정도라 합니다. 그런데 우리 폐에 앏은 막은 그뜨거운 공기에 온전하겠습니까?   

세상 찜질방은 좀 뜨거워도 견딜 수 있어요. 왜죠? 힘들면 나가면 됩니다. 그러나 지옥은 못나갑니다. 한번 들어가면 나갈 수가 없습니다. 

지옥 간 부자의 호소를 들어보세요. 나사로를 살려서 내 아버지 집에 보내달랍니다. 눅16:27~28절을 보세요. 

27 이르되 그러면 아버지여 구하노니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28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지옥에 간 부자의 간절한 소원이 뭔가요? 그는 지옥의 그 고통 속에서 지기 형제 다섯을 생각했습니다. 자기 형제들은 아직 지옥과 천국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도 못합니다. 그러니 제발 나사로를 살려 보내어 이 사실을 전해 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거절당합니다. 왜냐고요?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세우신 전도자들이고 성경의 진리를 말합니다. 그들에게 듣고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직 이 세상에 살 때 복음을 들은 자들만이 천국갈 수 있게 되는 유일한 방법이란 말입니다. 무척 어렵습니다. 그래도 전해야 합니다. 
방법은 복음을 듣는 것입니다. 설교를 듣고 성경을 듣는 것입니다.   

제가 지난주 호스피스병원에 가서 이 설교를 했습니다. 

“부자의 마지막 소원”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했습니다. 지옥 간 부자, 예수를 믿지 못해 지옥 간 여러분의 조상이나 부모가 간절히 원하는 것이 뭔지 아세요? 

“나는 예수님을 믿지 못해 지옥 왔으나 제발 너희는 예수 믿고 천국가거라” 하는 것입니다.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그들을 살리는 방법은 오직 예수복음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우리는 확실한 신앙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들 크리스천들이 위의 다섯 가지 확신을 품고 살아갈 때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고 복된 신앙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합시다. 
/신앙은 /약속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주신 본문말씀을 다시 읽습니다. 

딤후 3:14~15절입니다. 

14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15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최일환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