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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백보좌 최후 심판 (계 20: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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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보좌 최후 심판 (계 20:11-15)  

천 년 왕국이 시작되어 천 년이 찰 때까지는 죽은 자들은 살지 못한다. 천 년 왕국이 시작되기 전 살아나온 자들은 공중 혼인에 이끌림을 받은 자들과 천 년 왕국에서 왕 노릇하며 다스리는 자들이다. 이들은 모든 첫째 부활에 참여한 자들이다. 이들은 복이 있는 자들이다. 왜냐하면 주님의 신부가 되었고 주님과 더불어 왕 노릇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기 때문이다. 

둘째 사망과 전혀 무관한 사람들이 된 이유가 무엇인가? 상급과도 같은 첫째 부활에 참여한 자격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즉 예수를 믿고 이긴 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천 년 왕국이 끝나고 기다리고 있는 백보좌 심판은 무엇인가? 상급 부활이 아니라 심판을 받기 위해서 죽은 자들을 일으키는 일이다. 지금까지 모든 죽은 자들이 어떻게 살아왔든지 이 백보좌 앞에 서야 한다.

백(白)보좌, 즉 흰 보좌란 뜻은 보좌에 앉으신 이와 그 심판의 거룩성, 정결성, 흠 없는 심판, 오류 없는 심판대를 의미한다. 그리고 크고 흰 보좌는 심판자이신 하나님의 권위를 의미한다.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갈 데가 없다는 것은 그 만큼 이 백보좌 심판이 두렵고 무서운 심판임을 의인화 한 것이다. 감히 누가 설 수 있는가의 심판이다. 하늘과 땅이 자취를 감추어야 할 백보좌 심판은 이렇게 진행된다.

1. 어떤 사람이든지 보좌 앞에 서 있어야 한다. (계20:12上)

계20:12上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큰 자나 작은 자나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사는 날 동안 사람들은 계급이 주어진다. 사람의 사는 모습을 따라 큰 사람, 작은 사람, 높은 사람, 낮은 사람, 주인과 종으로 구별된다. 하지만 백보좌 심판 때에는 죽은 자들이 심판을 위해 다 일어나 보좌 앞에 서 있어야 한다.

죽으면 그만이 아니다. 누구도 예외 없이, 어떤 사람이든지 심판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여기 죽은 자들은 천 년 왕국에 들어가는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사람과 대조를 이룬다. 이들이 심판대 앞에 서게 되는 것에 대해 부활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이들은 죽은 자들로서 다시 일어났으나 둘째 사망에 던져지기 위해서 일어난 것이다. 일어났다기 보다 사망, 음부, 바다에서 있다가 죽은 자를 내어주며 보좌 앞에 서는 것이다. 

세상을 살면서 상류층으로 살았던, 하류층으로 살았던, 유명인으로 살았던, 무명인으로 살았던 오직 보좌 앞에 서야 한다. 땅과 하늘이 간데 없는 무서운 심판대 앞에 서는 것이다.
  

2. 어디서 죽어서 묻혀 있든지 보좌 앞에 서야 한다. (계20:13)

계20:13 “바다가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에서 죽은 자들을 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그 사람이 누구인가 하는 것도 심판대에선 아무 소용없다면 그 사람이 어디서 죽었느냐, 어디에 묻혔느냐도 심판대 앞에 서는 데는 아무 차별이 없다. 죽은 자가 명당에 묻혔다고 심판이 달라지고 죽은 자가 화장하여 바다에 던져졌다고 심판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어디에서 죽어 어디에서 묻히든지 심판이 가벼워지는 등 심판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비단으로 싸서 묻히든, 황금으로 싸서 묻히든 심판에 가감이 되지 않는다. 오직 모두 다 죽은 자를 내어놓는다.

바다도, 사망도, 음부도 그 가운데 있던 죽은 자들을 내어놓고 심판 보좌 앞에 서야 한다. 한 번 죽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몸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두 번째 사망을 결정짓는 보좌 심판 앞에 서야 한다. 

여기서 죽은 자의 심판은 이미 용과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과 함께 불못에 던짐을 받은 자 이외의 모든 죽은 자들이다. 누구도 예외는 없다. 그런데 인생이 태어나 살다가 죄를 지어도, 예수를 믿지 않아도 그냥 죽는 것으로, 첫째 사망으로 막을 내리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그렇지 않다. 그것은 오로지 내 생각일 뿐이다. 성경은 오늘 잘 믿는 사람은 첫째 부활로 일어나고 믿지 않고 죽은 자들은 둘째 사망으로 가기 위해 바다와 사망과 음부가 내어준다고 말한다. 이 두 그림의 대조는 잘 믿는 자는 확실하게 보상을 받고 잘 믿지 못하여 세상에 속한 자들이 심판을 받는 길로 가기 위해 서야 한다는 것을 확실히 구별시켜 준다.

요한계시록을 읽는 우리에게, 요한계시록의 마무리를 하는 우리에게 이 그림이 보여야 한다. 두 가지 분명한 내용이 보여야 한다. 예수님의 말씀에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요일3:14),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5:28~29)고 하였다. 이것이 보여야 한다.
  

3. 행위 책에 기록된대로 심판을 받기 위해 보좌 앞에 서야 한다. (계20:12中)

계20:12中 “그 보좌 앞에 서 있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딤후4:1에는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라고 하였다. 여기서 죽은 자가 아닌 산 자의 심판은 환난 시대에 살아남은 1/3의 사람들(슥13:8) 중 목자가 분별할 때 양으로 되어 천 년 시대에 살아남은 사람들이다. 그리고 천 년 왕국의 기한이 차서 시험을 당할 사람들, 또 마귀에게 공격을 받는 사람들, 그 때까지 살아있는 사람들을 심판하는 심판이다. 

이 산 자의 심판과 달리 죽은 자들의 심판이란 지금까지 살아있지 못하고 죽은 자들이다. 사람으로 태어나서 죽은 자들 모두다. 이들의 심판은 책들에 의한다. 즉, 자기 행위를 기록한 책대로 심판을 받는다. 그래서 심판을 받지 아니하려면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어야 한다. 

요한계시록에는 생명책이란 말이 6번이나 나온다. (계3:5, 13:8, 17:8, 20:12~15, 21:27) 여기 생명책에 기록된 자는 믿음의 사람들이다. 천 년 왕국이 찬 후 마지막 사탄의 미혹에서 믿음을 지켜내고 이겨낸 자들이다. 

사탄은 에덴 동산의 아담을 미혹하였듯이 지면에 퍼진 자들을 미혹하여 자기 편을 만든다. 허나 이긴 자들은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다. 그들은 둘째 사망의 불못에 던져지지 않는다. 그러나 행위를 따라 기록된 행위 책에 이름이 기록되면 어찌할 수 없다. 혹시 여러분들은 수많은 사람들, 바다의 모래 같은 사람들을 어찌 다 그 행위를 기록하겠는가 하고 의심하는가? 

계5:11을 보면 하나님의 사자들의 수는 천천 만만이다. 마18:10을 보면 어린 아이들도 다 저희 천사들이 있어 하나님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면담한다. 하나님의 네트워크는 컴퓨터나 소셜 네트워크 보다도 뛰어나다. 사실 컴퓨터는 대단하다. 근래에 미국 비자를 내어 미국을 가는데 대사관을 가지 않고도 내 신원이 다 확인되어 미국 출입국심사를 통과했다. 이처럼 나 한 사람은 다 기록되어 있다. 

이와 같이 행위 책에 기록된다는 것에 대해 의심할 것 없다. 다만 생명책에 이름이 없으면 그들이 들어가는 곳은 불못이다. 이것이 둘째 사망이다. 둘째 사망이란 영원한 죽음을 의미한다. 영원히 부활로부터 배제되는 종국적 멸망이다. 게다가 사망과 음부가 불못에 던져져 확실하게 하나님의 새로운 나라가 준비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백보좌 앞에 서는 날, 핑계도 댈 수 없다. 변명도 할 수 없다. 더 이상 피할 길도 없고 해명을 할 탈출구도 없다. 이미 예수님이 마16:27에서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리라.”고 하였다. 바울도 고후5:10에서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이 장래 심판의 둘째 사망을 알고 우리가 어떻게 백보좌의 마지막 심판을 대비해야 하는가가 남은 일이다. 그냥 죽은 자가 되면 안된다. 육체가 죽는 첫째 사망에서 첫째 부활에 이르는 자가 되어야 한다. 육체가 죽는 첫째 사망에서 천 년 왕국이 끝나도록 살아나지 못하고 백보좌 심판 시에 바다, 음부, 사망에서 나와 둘째 사망에 이르면 안된다. 

환난이 와도 예수를 믿고 이긴 자가 되자. 미혹이 와도 예수를 믿고 이긴 자가 되어 생명책에 기록되는 자가 되라. 모든 것이 다 망가져도 신앙인으로 파선당하는 자가 되지 말라. 믿음을 위해 살고 믿음을 지키며 살고 도전하는 모든 세력을 무조건 싸워 이겨야 한다. 생명책에 이름을 기록하는 것은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 주를 믿는 믿음이다.(요20:31) 그 믿음의 결국이 구원인데(벧전1:9) 믿음을 빼앗으려는 것을 이겨내야 한다. 불같은 시련도 이겨내야 한다. 그래서 금보다 귀한 믿음으로 서기 위해(벧전1:7) 이겨야 한다.
  

일곱 교회에 주신 약속을 보라.

계2:7 (에베소 교회) - 이기는 그에게는 생명 나무 열매를 주리라.

계2:11 (서머나 교회) -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계2:17 (버가모 교회) - 이기는 그에게는 감추었던 만나를 흰 돌을 줄 것이니라.

계2:25 (두아디라 교회) - 이기는 자는 민족을 다스리는 권세를 줄 것이니라.

계3:5 (사데 교회) - 이기는 자는 흰 옷을 입을 것이니라.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니라.

계3:12 (빌라델비아 교회) - 이기는 자는 내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나가지 아니하리라.

계3:21 (라오디게아 교회) -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리라.

얼마나 분명한 약속들인가? 짐승을 이기자. 그의 우상을 이기자.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자 

(김철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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