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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의 종을 아시오니 (삼하 7: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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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종을 아시오니 (삼하 7:18-29)

2010년에 발표된 <고은규> 작가의『트렁커』라는 장편소설이 있습니다. 작가는 이 작품으로 제2회 중앙장편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소설의 주인공은 낮에는 백화점에서 베테랑 유모차 판매원으로 일하지만, 밤이 되면 공터에 누군가가 버린 차의 트렁크에서 잠을 잡니다. 

그녀는 소위 <슬트모, 슬리핑 트렁커들의 모임>의  정회원입니다. 그녀는 어려서 경험한 부모의 동반자살의 충격 때문에 심각한 공황 장애를 겪고 있습니다. 자동차 트렁크가 아니면 잠을 들 수 없습니다. 친구도 없고, 이웃도 없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공터 주인을 자처하며 나타난 남자와의 대화를 통하여 서서히 마음이 열리기 시작합니다. 세상과 단절되어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반영하는 작품이라고 생각됩니다. 

사람은 누구나 관계 속에서 살아갑니다. 완전히 단절된 채로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가 맺는 관계는 그 지속되는 시간을 기준으로 <일시적 관계>와 <평생의 관계>로 나눌 수 있습니다. 또 그 관계의 성격과 질에 따라서 <갈수록 악화되는 관계>가 있는가 하면, <갈수록 무르익어 아름답게 되는 관계>가 있습니다. 부부관계도 그렇습니다. 오랫동안 뜨겁게 사랑해서 결혼했지만 점점 악화되는 부부가 있는가 하면, 결혼 전엔 얼굴도 몇 번 보지 못했지만 살면 살수록 금슬이 좋아지는 부부도 있습니다. 

관계들이 점점 무르익고 풍성할수록 인생도 풍성해집니다. 살다보면 아무리 갚아도 다 갚을 수 없는 은혜를 베푸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제 모 교회에 한 권사님이 계셨습니다. 권사님은 저희와 같은 구역에 사셨습니다. 일찍 남편을 보내고 아들 하나를 키우셨는데, 그 아들은 국내 굴지 언론사에서 사장까지 역임했습니다. 권사님께서는 제 부모님의 생신을 잊는 법이 없으셨습니다. 제 어머니께서는 그 은혜를 갚는데 힘들어 하셨습니다. 이유는 하나를 갚으면 그 권사님은 다시 둘을 베푸셨기 때문입니다. 

권사님께서 하늘나라에 가신 지가 이십 여 년이 되어 가는데, 그 후엔 그 아드님과 며느님께서 지극 정성으로 제 부모님을 살펴 주셨습니다. 부모님이 부산에 오신 후에도 서울에서 늘 안부를 물으시고, 선물을 보내시고, 어머니 장례 때도 두 분이 다녀가셨습니다. 저 역시 그 분들이 베푸신 은혜를 갚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하나를 갚으면 그 댁에서는 둘, 셋을 베푸시기 때문입니다. 그 분들도 어머니를 꼭 닮았습니다. 이런 소중한 분들을 많이 만나시길 기원합니다. 

아름다운 관계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필요한 게 아닙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이렇게 되어야 합니다. 다윗은 평생을 하나님과 이런 아름다운 관계에서 살았습니다. 

다윗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 주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지난 주일에 생각한 것과 같이 사울 왕이 교만하고 부패하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사무엘 선지자를 보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차기 왕이 될 사명을 주셨습니다. 사무엘은 다윗에게 기름을 부었고, 그 순간 하나님의 영이 다윗과 함께 하셨습니다. 

사무엘상 16장 13절은 이 사실에 대해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사무엘이 기름 뿔병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 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이렇게 하나님께서 손을 내밀어주신 이후 다윗과 하나님의 관계는 평생 지속되었습니다. 

이렇게 다가오시는 하나님께 다윗도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높이고, 기쁘게 하는 비결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 비결이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골리앗에게 나아갈 때, 하나님의 이름을 선포하면서 나아갔습니다. 

사무엘상 17장 45절을 보면 이렇습니다.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아멘!  

<하나님, 저처럼 부족한 사람에게 다가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하나님이 좋습니다. 이제 저도 모든 상황에서 하나님을 높이고 선포하겠습니다. 지금 이 곳에는 블레셋 군대와 이스라엘 군대 모두가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많은 사람이 한 자리에 있는 기회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지금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얼마나 위대한 분인지 온 세상에 보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제가 하나님을 선포하겠습니다. 저를 도와 골리앗을 쓰러뜨리시고, 영광을 받으시옵소서!> 이게 다윗의 자신에게 손을 내밀어 주시고, 다가오셔서 함께 하시는 하나님께 대한 그의 응답이었습니다. 

이런 다윗에 대해 하나님께서도 가만히 계시지 않았습니다. 다윗이 손을 떠난 물매돌이 골리앗의 이마를 정확히 맞추어 쓰러뜨리게 된 것은 하나님의 도우신 결과였습니다. 그 후로도 하나님께서는 그가 어디를 가든지 도우셨고, 다윗은 이런 하나님을 의지하고 적군을 향해 내달렸습니다. 사무엘하 22장 30절에서 그는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진으로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성벽을 뛰어 넘나이다>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는 가는 곳마다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다윗을 시기한 사울 왕이 그를 죽이려 했던 여러 해 동안 하나님께서 그를 보호하셨습니다. 사람들은 다윗을 배신하여 여러 고을의 사람들이 다윗의 소재를 사울 왕에게 일러바쳤습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물리친 덕에 살고 있으면서도 그들은 그 은혜를 잊고, 눈앞의 권력인 사울만 향하고 있었습니다. 비정한 세상이었습니다. 다윗은 발 뻗고 잘 곳이 없을 정도로 피곤한 도망자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와중에서도 그를 생명싸개로 싸셔서 보호하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세상이 다윗에게 등을 돌려도 하나님께서는 등을 돌리지 않으셨습니다. 늘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편이셨습니다. 다윗은 이런 하나님께 대한 확신을 가졌습니다. 그 분은 절대로 자신을 버릴 분이 아님을 믿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마음이 더 깊어졌습니다. 이때의 하나님과 다윗은 마치 깊이 연모하는 남녀가 서로를 뚫어지게 바라보듯 마주보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다윗의 확신은 시편 18편 1절 이하에 잘 나타납니다.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내가 찬송 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리니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얻으리로다> 할렐루야!  쫓기는 와중에서도 다윗의 마음에는 여호와 하나님으로 인한 평화가 있었습니다. 

다윗을 향한 하나님의 돌보심은 그 후에도 지속되었습니다. 사울 왕이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전사한 후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헤브론으로 보내 유다의 왕이 되게 하시고, 칠년 육 개월 후에는 이스라엘 열 두 지파 전체의 왕이 되게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여부스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던 산성을 점령하여 다윗성이라 부르고 그 곳을 수도로 정하게 되었습니다. 이곳이 바로 예루살렘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점점 강성하게 하셨고, 높여 주셨습니다. 이게 하나님의 사랑이었습니다. 얼마 후에는 두로의 왕 <히람>이 자재와 기술자들을 보내 다윗의 궁궐을 지어 주기도 했습니다. 이런 모든 일을 보면서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베푸시는 엄청난 은혜와 사랑에 감격했습니다. 이 내용을 사무엘하 5장 10절 이하가 잘 보여줍니다.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  두로 왕 히람이 다윗에게 사절들과 백향목과 목수와 석수를 보내매 그들이 다윗을 위하여 집을 지으니  다윗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세우사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신 것과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그 나라를 높이신 것을 알았더라> 다윗은 분명히 알았습니다. 여호와께서 자신을 세우신 것, 높이신 것을 알았습니다. 실로 감당할 수 없는 은혜였습니다.  

하나님의 형언할 수 없는 은혜에 감격한 다윗도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누가 제안한 적도 없고, 하나님께서 시키지도 않으셨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머무는 다윗성 안에 정성을 다해 성막을 준비하여 언약궤를 메어 올렸습니다. 

그 내용이 사무엘하 6장에 나옵니다. 이 일을 위해 다윗은 무려 3만 명의 인원을 동원하여 국가적 축제를 준비했습니다. 언약궤를 모시던 날 그는 왕복을 벗고 덩실덩실 춤을 추면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사람들의 시선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자신을 끔찍이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위해서라면 못할 게 없었습니다.

다윗의 아내 <미갈>은 다윗이 왕의 체통에 어울리지 않게 춤까지 추는 것을 보고 경멸했습니다. 이것은 마치 죽고 못 살 정도로 사랑에 빠진 남녀가 길거리에서도 꼭 껴안고 있는 것을 보고 다른 사람들이 눈살을 찌푸리는 것과 흡사합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이들은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개의치 않는 것처럼 다윗은 미갈이 경멸하는 것에 상관없이 하나님을 사랑했습니다

다윗의 마음은 온통 하나님으로 가득했습니다. 다윗에게 있는 모든 소중한 사람들과 물건들 중,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것은 없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최고의 가치로 여겼습니다. <예배>를 영어로 <워십, worship>이라고 합니다. 

이 단어에는 <가치>를 의미하는 <worth>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배란 최고로 가치 있는 분께 드리는 최고로 가치 있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최고의 존재이셨습니다. 그는 하나님 한 분만으로 만족했습니다. 시편 17편 15절에서 다윗은 이런 마음을 담아 <나는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뵈오리니 깰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 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어떻게 갚을 것인가를 늘 생각하던 다윗은 하나님을 위해 성전을 지을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번도 성전을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순전히 다윗의 생각이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만 있다면 성전 보다 더한 것이라도 해 드리겠습니다. 이를 위해 제 전 재산과 제 모든 시간을 다 드리겠습니다!> 이게 다윗의 마음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어떤 응답을 주셨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전쟁을 많이 치른 사람이기에 거룩한 성전을 짓기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그러한 마음에 대해서는 크게 기뻐하셨습니다. <네가 이렇게 나를 경외하고 사랑하니, 나도 네게 은혜와 복을 더하리라>는 뜻으로 놀라운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 말씀이 사무엘하 7장 11절 중간부터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여호와가 또 네게 이르노니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짓고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그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내가 네 앞에서 물러나게 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처럼 그에게서 빼앗지는 아니하리라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아멘!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마음에 크게 기뻐하셔서 다윗 한 사람의 생애뿐만 아니라, 그의 후손 대대에 미칠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존되고.....>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이런 축복을 얻으시길 기원합니다. 

오늘 읽은 본문 말씀은 이 은혜로운 하나님의 말씀을 <나단> 선지자를 통해 전달받은 다윗이 하나님께 드린 기도입니다. 그는 자신이 구하기도 전에 먼저 말씀하시는 하나님, 자신의 당대뿐만 아니라, 후손 대대에 복을 주시겠다고 하시는 하나님께 감격했습니다. 자신이 드려야 할 기도였으나, 기도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먼저 말씀하신 데 감격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모든 것을 이미 다 알고 계시다는 데 감격했습니다. 

본문 20절을 다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주 여호와는 주의 종을 아시오니 다윗이 다시 주께 무슨 말씀을 하오리이까> <이미 저의 모든 사정과 형편과 제가 구하고자 하는 것을 속속들이 다 아시니, 제가 무슨 말씀을 드리겠습니까? 구하기도 전에 주시는 하나님 앞에 감격할 따름입니다!>란 고백인 것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씀하신 하나님께 대한 감격으로, 기쁨으로, 그 약속을 이루어 주시도록 기도하였습니다. 25-29절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여 이제 주의 종과 종의 집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을 영원히 세우셨사오며 말씀하신 대로 행하사  사람이 영원히 주의 이름을 크게 높여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 하게 하옵시며 주의 종 다윗의 집이 주 앞에 견고하게 하옵소서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주의 종의 귀를 여시고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위하여 집을 세우리라 하셨으므로 주의 종이 이 기도로 주께 간구할 마음이 생겼나이다  주 여호와여 오직 주는 하나님이시며 주의 말씀들이 참되시니이다 주께서 이 좋은 것을 주의 종에게 말씀하셨사오니  이제 청하건대 종의 집에 복을 주사 주 앞에 영원히 있게 하옵소서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사오니 주의 종의 집이 영원히 복을 받게 하옵소서 하니라>  

성도 여러분, 이상에서 살펴본 대로 하나님과 다윗은 <누가 더 상대방을 기쁘게 하고, 더 큰 선물을 드릴까> 내기를 하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도 다윗에게 더 큰 복을 주고자 하시고, 다윗도 하나님께 더 큰 영광을 돌리고자 했습니다. 가면 갈수록 더 깊어지는 사랑의 관계였습니다. 

우리도 이래야 합니다. 처음 하나님을 믿을 때는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가는 실과 같았다 해도, 세월이 지나면서 굵은 동아줄 같이 되어 그 무엇도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끊을 수 없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하게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제대로 경외하지 않습니다. 다윗처럼 하나님께 모든 것을 기울이는 사람은 극소수입니다. 이런 사람은 광신주의자로 몰립니다. 그러다 보니 크리스천인 것 같은데, 사실은 아닙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경외하지도 않고, 그 분의 말씀도 따르지 않습니다. 

이런 세태에 대해 유명한 <키엘케고르>는 다음과 같이 지적했습니다. <문제는 단순하다. 성경은 이해하기 쉽다. 그러나 우리 크리스천들은 교활한 협잡꾼 패거리이다. 우리는 말씀을 깨닫는 순간 즉시 그에 따라 행동할 의무를 갖게 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이해하지 못하는 척 한다. 성경에서 아무 말씀이나 꺼내라. 그리고 그 말씀에 따라 행동하겠다고 서약하는 것을 빼고 모든 것을 잊어라!> 

여러분, 다윗처럼 하나님을 평생 경외하십시오. 중간에 중단되면 안 됩니다. 그리고 세월이 갈수록 하나님을 더 사랑하십시오. 모든 것을 하나님 중심으로 하십시오. 하나님을 위해 최선을 다하십시오. 

바로 이것을 자녀에게 가르쳐야 합니다. 철저하게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 하나님을 위해서라면 그 무엇도 나중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 철저하게 예배를 가르치십시오. 하나님 섬기는 도를 가르치십시오. 우리 아이들에게 평생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가르치셔야 합니다. 이것이 자녀를 복되게 하는 길입니다. 

다윗의 철저한 하나님 사랑은 그의 후손 대대에 이르는 복을 가져왔습니다. 하나님께서 <네 집을 세워 주겠다>고 하실 때의 <집>은 건물을 말하는 게 아니라, 가정이요. 다윗 왕조, 즉 그의 후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평생 하나님을 진실 되게 경외했더니, 가정과 후손 대대로 복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어린이주일입니다. 이 복을 여러분 모두가 받으시길 바랍니다. 이것이 부모들이 가져야 할 결심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온 맘으로 경외할 때, 하나님께서도 우리 가정과 후손에게 은혜와 복을 주실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졌습니까? 소원해지셨습니까? 형식만 남으셨습니까? 끊어진 관계를 이어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 우리를 이어주시는 중보자이십니다. 그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평생, 그리고 대대손손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의 가정이 되길 축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와 후손 모두가 <하나님께 기쁨이 되는 사람>이 되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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