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무엇을 주고 자기 목숨과 바꾸겠느냐? (막 8:35-38)

첨부 1


무엇을 주고 자기 목숨과 바꾸겠느냐? (막 8:35-38) 
 
 
8:35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8:3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8:37 사람이 무엇을 주고 자기 목숨과 바꾸겠느냐
8:38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사람에게 가장 가치 있고 소중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돈일까요? 명예일까요? 일일까요? 가족일까요? 
예수님께서는 "자기 목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 36~37절을 보시기를 바랍니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자기 목숨과 바꾸겠느냐"하셨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 시대의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생명은 별것 아닌 것으로 여겨지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돈을 위해서는 사람을 죽이는 것은 물론 무슨 일이든지 예사로 여기고, 사치 풍조가 만연할수록 자신의 쾌락을 위해서는 사람의 생명도 벌레 한 마리, 파리 한 마리쯤으로 간단히 생각하는 안타까운 시대에 우리는 지금 살고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조차도 좀 살기 힘들고 여러운 문제가 생기고 부끄러운 일이 생기면 죽음부터 생각하는  목숨을 경시하는 시대가 오늘의 시대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에서도 이 시대를 가르켜 "음란하고 죄많은 세대"라고 정의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시대의 풍조를 따라 믿는 사람들조차도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에 밀려가서는 안됩니다. 
이 세상에 목숨보다 귀한 것은 없습니다. 

옛날에 '15분'이라는 연극이 있었습니다. 
장래가 유망한 30세의 한 청년이 박사논문을 제출해 놓고, 그만 죽을병이 들어서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의사의 진찰결과 그는 15분후면 죽을 것이라고 진단을 했습니다. 시간은 흘러갑니다. 환자가 의사에게 "몇 분 남았습니까?"하고 묻습니다. "11분 남았다"고 했습니다. 
그때 우편배달부가 편지를 가지고 왔습니다. 억만장자인 삼촌이 아무런 유족 없이 죽었으므로 와서 전 재산을 상속하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계속 시간이 흘러갑니다. 환자는 또 묻습니다. 

"몇 분 남았습니까?" 
"예, 9분 남았습니다." 
두 번째 편지가 왔습니다. 
박사학위 논문이 통과되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연이어서 애인에게서 결혼을 승낙하는 편지도 도착을 했습니다. 
평생을 노력해도 얻기 어려운 것을 다 얻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이 그에게 조금도 위로가 될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그는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죽음 앞에서는 억만장자의 재산 상속권도, 박사 학위도, 결혼 승낙서도 모두 휴지 조각처럼 무의미한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생명이 있고 부귀 영화가 의미가 있는 것이지, 생명을 잃어버리면 부귀영화를 소유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사업하는 사람에게늠 물질이 중요하고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지식과 지혜가 중요하고 운동하는 사람에게는 건강이 중요하고 예술하는 사람에게는 감각이 중요하다고 해도 자신의 목숨보다 중요하지 않습니다. 목숨이 없어지고서야 그런 것들 무슨 소용이 있으며 의미가 있겠습니까?

목숨은 살아있을 때 목숨인 것입니다. 죽으면 목숨이 아닙니다. 죽으면 생명이 없습니다. 목숨은 지금까지 살아왔고 지금도 살고 있으며 앞으로도 살아갈 목숨입니다. 하나님은 흙으로 인간을 창조하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서 호흡하게 하셔서 생령이 되게해주셨습니다. 새명이 없었던 존재가 생명있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인간에게 복을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경작하고 정복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살아서 하나님의  명령을 준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한문으로 목숨을 생명이라 함은 살아서 하나님의 명령대로 살라는 뜻입니다. 삶의 환경이 어려워도 우리의 몫으로 성실하게 사는 것이 인간의 도리입니다.

어떤 과학자가 사람의 가치를 과학적으로 계산해 하기 위해서 육체를 분석해 보았더니 지방으로는 비누를 7개를 만들 수 있고, 인으로는 성냥개비 2200개, 마그네슘으로는 설사약 1봉지, 철분으로는 못 1개, 기타 모두 합해보니 5~10만원 정도 밖에 나가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목숨이 육신의 생명, 육신의 목숨만을 이야기했을까요? 
예수님께서 이처럼 당연한 것을 묻기 위해서 이 질문을 하셨다고 생각하십니까? 이 질문은 이 세상에서 생명과 맞바꿀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자명한 대답을 요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목숨과 맞바꿀만한 것이 있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대답해 보라는 질문으로 이해 할 수도 있습니다. 
  
그 대답은 35절에서 이미 언급된 것이기 때문에 자명해집니다. 즉 참으로 목숨과 맞 바꿀 수 있는 것은 '예수'와'복음'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의 가르침과 질문의 내용은 죽지 않고 사는 길에 대한 것이 아니라 참된 삶을 위한 참된 죽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와 복음을 위해 죽을 수 있는 용기를 촉구하는 것 입니다. 결국 예수를 따르는 제자가 되기 위해서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를 지고 목숨까지 내어 놓을 수 있는 결단을 촉구 하고 있는 것입니다(마1:38; 눅9:23).

목숨을 걸어도 아깝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목숨을 걸어도 아깝지 않는 삶은 곧 주와 복음을 위한 것입니다. 주와 복음을 위해서 우리가 무엇인가를 뺴앗기거나 손해를 보거나 포기한 것이 있으면 이 세상에서도 100배나 받고 내세에 영생 얻지 못할자가 없다고 했습니다. 
눅18:30 "현세에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하시니라" 
막10:30 "현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박해를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은 하나님의 독생자이셨습니다. 예수 생명은 아버지 하나님에게나 예수님 자신에게나 가장 귀한 생명이며 목숨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도 그리고 예수님께서도 이처럼 귀한 생명을 우리를 위해 아낌없이 내어 주셨습니다. 생명의 가치조차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지만 보배롭고 존귀한 생명으로 삼아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사랑으로 서로 섬기며 살아가게 해주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위해 살아가게 해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해같이 빛나는 자들로 살아가게 해주시기 위해서(마태복음13장43절)입니다.

그러나 가룟 유다는 은 삼십을 얻기 위해 예수님의 목숨을 팔았습니다. 그는 그 돈 써보지도 못하고 죽었습니다. 빌라도는 자리를 지키는 데 인생을 쏟아 부으며 살았습니다. 사도가 되기 전의 사울은 자기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핍박하는데 힘쓰며 살았습니다. 소중한 생명을 가지고 사람들은 이렇게 살아갑니다.   
  
마 19장에 나오는 부자 청년도, 예수님이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말씀하셨지만  그러나 그는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많은 재물 때문에, 근심하면서 예수님을 떠나가 버렸습니다. 그는 자신의 많은 재물을 자기의 목숨보다 더 귀하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목숨을 자신의 재물과 바꾸고 말았습니다.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시간이 아깝다고 출세하는데 장애가 된다고 재미있게 사는데 심적 부담이 된다고, 예수님을 떠나고 있습니다. 주와 복음을 소홀리여기며 하찮케 여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주와 복음을 위한 것은 낭비라고 생각하고 세상적인 것들은 생산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음난하고 죄악된 세상에 도취되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명문 휘튼 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짐 · 엘리엇」과 그의 동료 네이트를 포함한 다섯 명의 젊은이들이 남미 에코아도르 아우카 부족에게 복음을 전하러 갔다가 전원이 순교한 죽음을 한 언론에서 "이 무슨 낭비인가?"라는 제목으로 대서 특필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젊은 순교자 엘리엇의 일기장에는 이런 문구가 발견되었습니다. "영원한 것을 위해 영원하지 못한 것을 버리는 사람을 어리석다고 하지 말라. 나는 오래 살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오직 주님만을 위해 풍성한 삶을 살게 하여 주옵소서" 
이들의 희생은 낭비가 아니었습니다. 
하무로 주의 일을 낭비라고 생각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온 천하"라고 하면 사람이 가질 수 있는 모든 부와 명예, 최고의 출세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을 얻었을 지라도 자기의 목숨을 지키지 못한다면, 즉 하나님 안에서의 영생을 얻지 못한다면 그 모든 것이 무슨 도움이 되겠읍니까? 현재의 삶의 환경이 어떠하든지 사람은 지금보다 더욱 유익하며 더욱 행복한 삶을 추구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무엇이 유익하리요'라는 말씀에서 인간이 보편적으로 추구하는 세속적인 삶의 모든 내용이 궁극적으로는 우리에게 아무런 소용이 없고 무익한 것이라고 선언하고 있읍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목숨, 아 목숨을 걸고서라도 주님을 위해서 충성을 다하는 성도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