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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버이주일] 하나님을 경외하고 부모를 공경하라 (신 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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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경외하고 부모를 공경하라 (신 5:16)
    
오늘은 우리 한국교회가 지키는 어버이주일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부모를 공경하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간단한 동영상 하나를 보고 계속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프로페차이 동영상 494, 엄마라면 당연히) 

오늘은 우리 한국교회가 지키는 어버이주일입니다. 목사는 어버이주일이 되면 설교의 대상과 설교의 주제를 누구에게 맞추느냐 하는 것 때문에 고민합니다. 우리 교회 안에는 연로하신 어르신들과 장년층의 많은 교우들, 그리고 아직은 젊은 부부들, 그리고 청년들도 많이 있습니다. 젊은 부부들이나 청장년층의 교우들에게는 부모님을 잘 모시라, 부모님을 공경해야 한다는 주제를 가지고 설교하면 좋을 줄 압니다. 그러나 중장년층의 교우님들에게는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믿음의 유산을 남겨주어야 한다고 설교하면 좋습니다. 

“엄마라면 당연히”라는 EBS 교육방송이 만든 엄마 교육 자료를 보았습니다. 어머니교실에서 강의하시는 교수님이 과제를 줍니다. “엄마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것”, 떠오르는 것 5가지를 써보라고 했습니다. 엄마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것, 어떤 것이 있을 것입니까? 아이가 커가면서 엄마 경력이 쌓여갈수록 해야 할 의무도 점점 더 늘어갑니다. 엄마들이 말합니다. “아이를 위해 내 삶을 포기하고 희생해야 한다.” “아이를 위해 무엇이든지 다해야 한다.” “엄마는 화를 내도 안 되고”, “아이를 행복하게해주고”, “아이의 미래까지 책임져야 한다”고 합니다. 

우리 사회는 완벽한 엄마가 되라고 강요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육아서적들은 자녀의 성공은 엄마 손에 달려 있다고 결론짓고 있습니다. 엄마 홀로 그 많은 짐을 감당하라고 합니다. 또 다시 해를 넘겨 어버이 주일이 되었습니다. 부모 된 그 책임이 무겁기만 합니다. 교수님은 “완벽한 엄마가 되려고 애쓰지 말라”고 합니다. “내 아이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것, 이것이 엄마의 진짜 역할이라”고 합니다. 

‘저희 엄마는 딱 좋아요’라는 글을 보았습니다. 어느 책이냐 하면 ‘내 인생을 바꾼 100가지 이야기2’라는 책입니다. 한 소년이 어머니날 하루 전에 백화점 속옷 코너를 찾았습니다. 그 아이는 수줍은 듯 쭈뼛거리며 점원에게 다가갔습니다. “저 엄마 드릴 선물을 사려고 하는데요...” 여기까지 말하고서는 부끄러워 어쩔 줄 몰라 하시다가 아주 작은 소리로 덧붙였습니다. “... 슬립이요” ‘슬립’이란 옷은 속치마인데, 양장용 속옷이고요, 소매 없는 원피스 모양으로 어깨에 가는 끈으로 걸어 입는 속옷입니다. “그러니? 엄마 사이즈가 어떻게 되시니?” 소년은 머뭇거렸습니다. “그건 잘 모르겠는데요.” “그러니 엄마가 키가 크시니, 작으시니? 덩치는 좀 큰 편이니, 아니면 아담하시니?” 그러자 아이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하였습니다. “저희 엄마는 딱 좋아요. 완전 표준이에요” 

매우 자신 있는 대답을 듣고 점원은 36사이즈를 포장해주었습니다. 다음 주 월요일, 소년의 엄마가 슬립을 가지고 백화점에 들러서는 52사이즈로 바꾸어 갔습니다. 그 엄마를 직접 본 점원은 그렇게 뚱뚱한 엄마를 아이가 딱 좋다고 생각한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답니다. 결국 그 아이에게 엄마의 외모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 아이에게는 그저 자기 엄마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하였던 것입니다. 

그런 내용의 글이었습니다. 마지막 말, “그 아이에게는 그저 자기 엄마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충분하였던 것이다”라는 말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저희 어머니도 키가 아담하시고, 외모도 예쁘시고 항상 웃으시고, 세상에 없는 어머니셨습니다. 아들 눈의 안경으로 본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말할 것입니다. 그 분은 키가 작으시고, 예쁘지도 않고, 그저 평범한 여자였다고 말하여도 아닙니다. 

제가 기억하기로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우시고, 현명하시고 예쁘신 어머니셨습니다. 저희 가슴에 영원한 연인처럼 남아계시는 분이십니다. 저를 끝까지 응원해주신 분이십니다. 저에게는 그렇게 자상하시고 헌신적인 어머니가 계셨다는 것으로 하나님께 감사하고 또 감사할 뿐입니다. 그런데 어머니, 아버지가 다 돌아가시니 어버이날이 와도 찾아 뵐 어르신들이 계시지 않으니, 이제는 손자들을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살아계실 때 잘 하세요. 부모님은 효도를 기다려주시지 않습니다. 

십계명의 말씀의 가장 중심의 자리에 제5계명으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10계명이라고 하는데, 1-4계명은 하나님께 대한 계명이요, 5계명으로부터 10계명은 사람에게 대한 계명입니다. 그런데 성경주경학자들 중에는 제5계명은 하나님께 대한 계명의 마지막이요, 사람에게 대한 계명의 시작이라고 말합니다. 또 어떤 학자는 하나님께 대한 계명과 사람에게 대한 계명을 이어주는 계명이라고 합니다. 

출애굽기20:12의 말씀입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고 하셨습니다. 모세는 신명기를 기록하면서, 십계명의 말씀을 다시 한 번 더 강조하면서 고별설교에서 말씀하시고 또 기록하셨습니다. 

신명기5:16입니다.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고 하셨습니다. 출애굽기에서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셨는데, 

신명기에서는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명하시고 있습니다. 이 계명은 나의 하나님이신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계명이라는 것을 알고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셨습니다. 

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선생님이 목사님을 만나서 개탄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목사님, 병원에서 일하다보니 자식이 필요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니, 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그러자 의사선생님이 허공을 바라보면서 말을 합니다. “자식이 아파서 병원에 오면 부모들은 의사를 붙잡고 돈이 얼마 들어도 좋으니 자식을 꼭 고쳐달라고 사정을 합니다. 

그런데 노부모를 모시고 온 자식들은 의사에게 묻는 것이 ‘얼마나 더 사실 수 있습니까’ 죽는 날만 묻습니다.” 자식이 아프면 부모는 살려 달라고 애걸복걸하지만, 부모가 아프면 살려 달라는 자식이 하나도 없다고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세태를 보여주는 참 씁쓸한 이야기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는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고 하셨습니다. 


1. 부모 공경은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입니다. 

어느 집 딸아이가 십계명을 노트에 쓰다가 제5계명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을 “네 부모를 공격하라”라고 적었습니다. 아버지가 그 글을 보다가 “설마 그것이 우리 딸의 진심이 아닐까 하여 순간 섬뜩하였다” 합니다. 

십계명에 얽힌 이야기입니다. 교회 유치부에 다니는 어린 아들이 어느 날 집에 돌아와서 무엇인가를 열심히 외우고 있었습니다. 가만 들어보니 십계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제5계명을 외우는데 “네 부모를 공격하라. 네 부모를 공격하라”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빠가 “이놈아, 공격이 아니고 공경이야 공경!” 그러자 아들이 묻습니다. “아빠, 공경과 공격이 어떻게 달라요?” 아빠가 대답합니다. “공경은 아빠 말씀을 잘 듣고 사랑하는 거고, 공격은 아빠한테 덤비고 말씀을 안 듣는 것이지.” 그러자 대뜸 아이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아빠는 왜 할아버지를 공경하지 않고 공격해!”라고 따집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던지 그대로 거둔다.” 왕대밭에 왕대가 자란다고 합니다. 효자 집에서 효자가 태어납니다. 믿음의 가문에 믿음의 사람이 나옵니다. 믿음의 유산을 물려주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은 사람의 부탁이 아니라,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지으실 때에 인간의 모든 실정, 모든 형편, 모든 문제를 다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주신 계명은 만고의 진리입니다. 

어떤 사람이 이런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심으로 율법의 시대는 지나가고 은혜의 시대가 도래 하였으니, 십계명 같은 것은 고리타분한 교훈이요, 은혜의 시대에는 맞지 않는 계명이라고 폄하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마5:17-18의 말씀입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고 하셨습니다. 

계속해서 19절에서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인간의 형편과 제원을 알고 계십니다. 인간은 늙고 병들고 혼자 제 몸을 가눌 수가 없는 때가 오게 됩니다. 그 때를 아시기에 자녀들에게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이 사람이 잘 되는 비결이요, 거기에 숨은 약속의 축복이 들어 있습니다. 


2. 우리는 부모님을 공경해야 합니다. 

공경하라는 말은 ‘카베드’라는 말인데, 이 말은 원래 무겁다는 말입니다. 원래 히브리어에서 카베드는 가볍게 하다, 멸시하다는 말인 칼랄의 정반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칼랄이란 말은 임신한 몸종 하갈이 임신하지 못한 여주인 사라를 멸시한 것처럼 어떤 사람을 하찮은 존재로 간주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카베드는 칼랄의 정반대되는 말이라고 하였습니다.

한 사람이 어떤 사람을 무겁게 여깁니다. 아주 소중하신 분으로, 존귀하신 분으로 받들어 모십니다. 그를 가볍게 여기거나 하찮은 존재가 보지 않고, 무겁고, 소중한 사람으로 받들어 모시는 것을 공경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부모님을 소중하신 분으로 여기고, 아버지와 어머니를 영화롭게 하고 존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무겁다는 말에서 파생한 의미로, 애정을 보여주다. 사랑하다는 의미를 더하게 되었습니다. 


3. 이 계명은 복이 따라오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제5계명을 봅니다.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무엇이라고 약속하셨습니까?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고 하셨습니다. 

첫째로 땅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물질적인 복을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두 번째는 생명을 길게 하신다, 장수의 복을 주십니다. 세 번째는 앞에서 주신 복을 누린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세상에 이런 축복의 말씀이 어디에 있습니까? 일석삼조의 축복입니다. 나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내 부모님 잘 모신다고 하였는데, 땅을 차지한다, 물질적인 복입니다. 그 땅에서 오래 오래 잘 산다, 복을 누린다, 부유함을 누리고, 건강을 누리고, 하나님의 은총 속에 살아가게 하십니다. 

우리 교회는 부모님 모시는 자녀들이 많은 교회입니다. 서울 장안에 이런 교회가 없습니다. 부모님 모시고 살아가는 성도들이 70가정이 넘습니다. 교인은 많지 않지만, 500명 모이는 교회에서 70가정이 부모님을 모신다고 하는 것은 대단한 것입니다. 그래서 부모님 모시느라고 수고했다고 해마다 상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의 시무장로님들 가운데 15명의 시무장로님들 중에 11명이 부모님을 모시고 살았습니다. 나머지 4분도 장남이 아니고 차남이요, 삼남이다 보니 모실 수 있는 기회가 없었을 뿐입니다. 저는 결혼하는 젊은 부부에게 부모님 모시고 살라고 권면합니다. 그러면서 우리 교회의 원로장로님들 가운데 부모님 모신 가정들이 잘 되는 것을 소개해주고 간증합니다. 다 땅을 차지하고 건강하시고 복을 누리고 사람 잘 되는 복이 그 집에 가득한 것을 봅니다. 

조선시대 퇴계 이황은 효자로 유명하였습니다. 노년에 벼슬자리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내려가기 원했습니다. 임금이 그 이유를 묻자 고향에 내려가 얼마 남지 않은 어머니의 여생을 보살펴 드리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임금은 이황을 조금이라도 더 옆에 두고 싶은 생각에 “어머니를 한양으로 모셔 오세요. 그러면 나라에서 잘 돌봐 드리겠습니다.” 그러자 이황이 정중히 거절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제 어머니는 시골에서 태어나 평생을 흙과 더불어 살아오신 분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머니의 마음을 기쁘시게 해드리려면 제가 고향으로 내려가서 어머니와 함께 흙을 밟고 흙과 더불어 살아야만 합니다.”라고 하였다고 합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이 미국과 호주 아시아의 여러 나라에 이민 가서 성공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오랫동안 미국에서 이민 목회하신 분의 말씀을 들었는데, 특히 미국의 이민자들이 세운 한인교회가 수없이 싸우고 분열하고 지금도 잘 싸우고 있습니다. 미국 내 한인교회들이 평안한 교회가 별로 없고, 갈등과 분열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한인교회의 갈등의 70%는 목사와 목사간의 싸움, 그 외에 목사와 당회의 싸움, 성도들끼리의 싸움이 그치지 않습니다. 모교단의 경우, 제2대 목회자를 청빙했던 13개 교회 중에 12개 교회가 분열을 겪었다고 합니다. 왜 그렇게 분열하고 갈등이 계속되는 것입니까? 교역자 간의 생존 싸움, 신자들 간의 주도권 다툼, 창립세대와 계승 세대 간의 문화적인 차이, 교회 성장의 과욕, 가족 군으로 구성된 교회, 민주훈련의 부족 등 여러 가지 요인이 없지 않습니다. 

그런데, 한인교회가 왜 그렇게 잘 싸우고 분열하는지 사회심리학자들이 모여 심층 연구 분석하였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들 이민자들이 그의 부모를 버리고 왔다는 자괴감이 그들을 짓누르기 때문에 조금만 감정이 상해도 잘 싸우는 것이라고 진단하였습니다. 

부모님을 모시고 효도하고, 사랑하고 공경하는 사람은 어느 곳에 가서도 여유가 있고, 대인관계가 원만하고 사람답게 살면서 성공적인 인생을 살게 됩니다. 그런데 부모님에게 불효하고 버리고 도망가는 사람은 그가 죽을 때까지 쫓기는 인생을 살고, 대인관계가 원만하지 못하고, 내가 사람 노릇하지 못했다는 자괴감으로 인생을 망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고 했습니다. 

우리 교회는 연로하신 성도들이 많은 교회입니다. 70세 이상이신 분들이 200명 가까이 됩니다. 2016년에 가면 100세의 권사님이 나오실 것입니다. 현재 90세 이상이신 어르신들이 10분이 계십니다. 오래 오래 사시라고 경로상을 드립니다. 경로상을 70세부터 드리는데, 한 30년씩 그 상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자녀 여러분, 여러분의 부모님을 지금 어떻게 모시고 있습니까? 잘 모시고 있습니까? 억지로 모시고 있습니까? 모실 생각도 없습니까? 

잠언30: 17에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아비를 조롱하는 사람, 어머니 알기를 우습게 알고, 무시하고 순종하기를 싫어합니다. 그런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힌다는 말씀 잘 기억해야 합니다. 사실 이런 말씀은 협박하는 말씀으로 들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축복의 말씀도 되지만, 때로는 심판의 기준으로 삼으시기도 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부모에게 효도해야 할까요? 작가 조연경씨가 “효도별곡”이라는 글을 남겼습니다. 서울에서 만두집을 경영하며 사는 젊은 부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이 가게에 할아버지와 할머니 한 분이 찾아왔습니다. 이상한 것은 이들은 매주 수요일이면 어김없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할머니가 먼저 와서 구석자리에 앉아 출입문을 바라보며 할아버지를 기다립니다. 

그러면 할아버지가 나타나 만두를 시킵니다. 그런데 두 분은 만두를 시키고도 먹지 않고 안타까운 눈빛으로 서로 바라봅니다. 만두집 부부는 그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아마도 부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옛날 첫사랑의 사람들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수요일, 그날따라 할머니의 안색이 좋지 않았습니다. 자세히 보니 병색이 완연했습니다. 할아버지가 만두 하나를 집어 할머니에게 권했지만 할머니는 힘없이 고개를 저을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날따라 할머니는 울고 할아버지는 할머니 눈물을 닦아 주고, 그날 이후로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발길이 뚝 끊겼습니다. 다음 수요일도, 그 다음 수요일에도 두 노인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두 달이 지난 어느 수요일 정각 오후 3시에 할아버지가 문을 열고 만두집 안으로 들어섰습니다. 너무나 반가웠습니다. 그런데 할머니는 오지 않고 할아버지 혼자였습니다. 주인이 물었습니다. “할머니도 곧 오시겠지요?” 그때 할아버지는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죽었어” 만두집 부부는 놀랐지만 더 놀란 것은 할아버지의 사연이었습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첫사랑의 관계가 아니었습니다. 부부였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수원에 있는 큰 아들의 집에 살고 할머니는 서울에 있는 둘째 아들의 집에 살았습니다. 나이가 많아 자식들이 모셔야 하는 데 큰 며느리가 말하기를 “왜 다 같은 며느리인데 나만 혼자 둘을 모시느냐? 그럴 수 없다” 해서 두 며느리가 공평하게 한 분씩 모셨습니다. 그래서 서울과 수원으로 생이별을 하게 된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매주 수요일 세시만 되면 견우직녀처럼 만두집에서 만나러 온 것입니다. 

이야기를 마치면서 할아버지는 이렇게 끝을 맺었습니다. “이제 나만 죽으면 돼. 천국에서는 같이 살 수 있을 거야” 저는 이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마음이 아파 울었습니다. 우리 부모님을 내가 그렇게 모시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의 부모는 그런 분이 없어야 합니다.

오늘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경외하고, 이어서 부모님을 공경하라고 하십니다. 먼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나님의 명령인 제5계명을 잘 준행할 수 있습니다. 오늘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신성한 부모로서의 그 책임과 사명을 감당하시고, 또한 부모님에게 효성을 다하시는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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