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어버이주일] 순종하고 공경하라 (엡 6:1-3)

첨부 1


순종하고 공경하라 (엡 6:1-3)

<나이 든 사람 지혜롭게 살기>라는 제목의 시가 있어서 읽어 드립니다. 

늙은이가 되면 설치지 말고 
미운 소리 우는 소리 헐뜯는 소리 
그리고 군소릴랑 하지도 말고 조심조심 일러주고 
알고도 모르는 척 어수룩하소. 
그렇게 사는 것이 평안 하다오. 

이기려 하지 마소. 
져 주시구려. 
돈, 돈 욕심은 버리시구려. 
아무리 많은 돈 가졌다 해도 죽으면 가져갈 수 없는 것 
많은 돈 남겨서 자식들 싸움하게 만들지 말고 
살아 있는 동안 많이 뿌려서 산더미 같은 덕을 쌓으시구려. 

우리의 시대는 다 지나갔으니 아무리 버티려고 애를 써 봐도 
이 몸이 마음대로 되지를 않소. 
그대는 뜨는 해 나는 지는 해. 
그런 마음으로 지내시구려. 
나의 자녀, 나의 손자, 그리고 이웃 누구에게든지 
좋게 뵈는 늙은이로 살으시구려. 

멍청하면 안 되오.
아프면 안 되오.
아무쪼록 오래오래 살으시구려. 
제자리로 돌아갈 때까지..... 

이 글을 읽으면 많은 지혜를 주는듯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어둡습니다. “어수룩하소.”, “져주시구려.” 하는 대목에서는 인생의 서글픔과 비애도 느껴지는 연약함이 묻어 있습니다. 

오늘 여기 모인 여러분, 특히 연세가 드신 우리 부모님들께 이렇게 힘없이 살지 않기를 바랍니다. 가끔씩 연세 드신 권사님들이 저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아이구, 목사님 이제 늙을 대로 늙은 몸이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마음은 원인데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요. 이젠 하나님 앞에 갈 날만 기다려야죠.” 합니다. 물론 하나님 앞에 누군들 가지 않겠습니까마는 하나님이 부르시는 그날까지는 언제나 청춘으로 사십시오. 청춘으로 살라는 말은 인생을 재미있게 사시라는 말입니다. 

흔히 <이팔청춘> 이라 하여 열여섯 무렵의 꽃다운 나이 혹은 혈기왕성한 젊은 시절을 청춘으로 이야기합니다만 [샤뮤엘 울먼] 이라는 사람이 한 말처럼 “청춘은 나이로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것은 마음의 상태” 라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정말 사람이 늙는 것은 나이를 먹어서가 아니라 이상과 꿈을 잃을 때 비로소 늙게 되는 것입니다. 

세월이 흐르면 피부에 주름살이 생기지만 정열을 잃으면 정신이 시듭니다. 정말 늙는 것은 정신입니다. 나이가 칠십이건 열여섯이건 누구나 가슴 속에 간직할 수 있는 인생에 대한 환희와 흥미는 있는 법입니다. 

이 말은 나이가 많은 사람은 인생을 즐겁게 살아서는 안 되고 나이가 열여섯인 사람만 인생을 즐기라는 법은 없다 그 말입니다. 사람은 신념을 가지면 젊고, 의혹을 가지면 늙습니다. 사람은 자신을 가지면 젊고, 공포를 가지면 늙습니다. 사람은 희망을 가지면 젊고, 실망이 있으면 늙습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어르신들은 청춘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자식 된 여러분, 부모님들을 청춘으로 사시게 도우시기 바랍니다. 부모님을 기쁘게 하십시오. 즐겁게 하시기 바랍니다. 젊어도 내 부모요, 나이 많아 늙어도 내 부모인 것은 변하지 않는 법칙입니다. 

이 세상에는 배우자가 없는 사람은 많습니다. 자식이 없는 사람도 많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부모가 없는 사람은 단 한사람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은 온통 부모 없는 세상과도 같다는 게 문제입니다. 

언제부턴가 공경이 없어졌습니다. 순종도 없습니다. 이 말은 부모가 없는 시대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성경은 분명히 “네 부모에게 순종하고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순종과 공경이 없다는 것은 그 대상인 부모가 없다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돌아가셔서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라 부모를 부모로 인정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요, 어른을 어른으로 대접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입니다. 

[C. S. 루이스] 교수는 아주 명쾌하게 우리의 사람 된 모습을 설명합니다. “우리는 에로스에 의해서 태어나고 스토르게에 의해서 양육되고 필로스에 의하여 성숙하고 아가페의 사랑으로 완성된다.” 라고 했습니다. 

사랑에는 그 차원이 있고 질이 있습니다. 이것을 헬라 사람들은 아주 다른 단어로 표현합니다. 남자가 여자를 좋아하고 여자가 남자를 좋아하는 이런 사랑을 에로스라고 합니다. 그런가하면 스토르게라고 하는 사랑이 있습니다. 이것은 혈연적인 사랑입니다. 혈연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겁니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이 부모에 대한 사랑을 하는 피로 연결된 그런 사랑입니다. 

그리고 친구 간의 사랑, 수평적인 사랑이라고 할 수 있는 필로스의 사랑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한 사랑, 그리스도께서 계시해주신 사랑, 절대적인 사랑, 희생적인 사랑 그것을 아가페라고 말합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에로스에서 태어나고 스토르게에서 자라고 필로스에서 성숙되고 아가페에서 완성된다.”는 말이 맞습니다. 

인간은 이렇게 한평생 사랑 속에 살면서 사랑을 배웁니다. 마지막까지 우리는 사랑을 배워야할 텐데 문제는 어디까지 배웠느냐, 얼마까지 배웠느냐 그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인간 됨이란 사랑 이해의 수준에 있다고 합니다. 아직도 에로스 사랑에만 매여 있는지, 아니면 끈질기게 스토르게 만을 주장하고 있는지, 아니면 필로스의 사랑에만 만족하는 정도인지 모릅니다. 그런데 사람은 사랑 이해가 높아져서 아가페를 이해해야 합니다. 희생적인 사랑, 하나님의 사랑,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아가페적인 십자가의 사랑을 이해하게 될 때 그 사랑에 응답하게 됩니다. 

자, 한 남자의 사랑에 여자가 응답하고 결혼을 합니다. 부모님의 사랑에 응답해서 효자가 됩니다. 그리고 친구의 사랑에 진실하게 응답해서 신의를 지키는 인간관계가 됩니다. 그 인격만으로 인간이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제 하나님의 사랑, 아가페적인 사랑에 응답해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합니다. 그러면 응답하여 그리스도인이 되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베푸는 것입니다. 이 사랑을 알기에 이 사랑을 실천합니다. 부모의 사랑을 받아서 자식을 사랑합니다. 남편의 사랑을 받아서 남편을 사랑합니다. 친구의 사랑 속에서 친구를 사랑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응답하여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이것이 순리입니다. 

여러분, 인간의 죄 중에서 가장 무서운 죄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사랑에 대한 배신입니다. 어떻게 보면 미움을 받고 미워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사랑을 받고 미워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특별히 어버이 주일을 맞이하여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부모에 대한 사랑입니다. 부모의 사랑을 받아서 오늘까지 온 자식들이 그 부모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은 사랑의 배신이라는 아주 큰 죄를 짓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두 가지를 말합니다. 순종과 공경, 이것이 곧 사랑이요, 효도라는 것입니다. 

먼저, 순종하라고 합니다. 굴종이나 복종이 아니라 순종하라 합니다. 순종이란 기쁜 마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굴종이나 복종하고는 다른 의미임을 알아야합니다. 

그리고 공경이라는 말은 사람에게만 유일하게 쓰여 지는 특별한 말입니다. 일반적인 사랑이 아닙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정도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요즈음 사람들 중에 나이 들고 병든 자신의 부모를 보고 마음이 아파서 한다는 말이 “불쌍하다.” 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표현이 잘못됐습니다. 감히 자식이 부모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올바른 태도가 아니거든요. 부모님은 불쌍함의 대상이 아닙니다. 공경의 대상일 뿐입니다. 

오늘 성경의 공경이라는 말은 높이 섬기라는 말입니다. 낮춰 보고 사랑하는 것도 아니요, 수평으로 사랑하는 것도 아닌 높이 사랑하는 겁니다. 다른 말로 존경이라는 말인데 그의 옳음을 인정하라는 의미입니다. 이 말은 나보다 낮춰서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한 공경하라는 말은 대가성 없는 사랑을 하라는 말합니다. 부모님을 공경해서 무얼 받아내자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여 효도하는 것이지 무슨 거래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예로부터 효는 가정교육의 기초입니다. “효자가 효자를 낳는다.” 는 말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요 웃지 못 할  재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요즈음 아이들이 효도를 하려해도 효도하는 방법을 모른다고 합니다. 이게 무슨 말이겠습니까? 효도하는 것을 못 보았다는 겁니다. 엄마 아빠가 할아버지 할머니께 효도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못 본 효도를 어떻게 하라는 겁니까? 못 배운 효도를 어떻게 하라는 거냐 이 말입니다. 

그래서 지금 내 자녀가 말을 안 듣거든 내가 부모님에게 어떻게 했나를 생각해 보라고합니다. 부모에게 불효하면서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처럼 바보 같은 생각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효자가 효자를 낳는다.” 는 말 잊지 말 것입니다. 

[박은수] 라는 사람이 쓴 <어머니> 라는 시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어머니는 좋은 옷이 필요치 않으신 줄 알았습니다. 
예쁜 그릇도 갖고 싶지 않으시고
맛있는 음식에도 마음이 없으신 줄 알았습니다. 
빛깔 고운 립스틱이나 
꽃무늬 화려한 양산품 
눈 여겨 보시지도 않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시집와서 마흔 고개에 다다르며 
이제사 깨달아 집니다. 
어머니도 여자이셨음을 
어머니의 가슴에도 무지개가 있고 파랑새가 있고 
사파이어 같은 꿈이 있음을 
이제사 알아봅니다. 

어머니
언제나 귀한 이름입니다. 
언제나 우리맘속에 별처럼 살아있는 
아름다운 이름입니다. 
이날에 어머니를 그리워합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부모에게 순종하고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효도입니다. 부모님이 안 계신 분은 이 땅의 모든 어른들을 순종하고 공경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사랑을 받은 사람의 마땅한 자세이며 곧 효도입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