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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침체한 엘리야의 회복 (왕상 19: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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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체한 엘리야의 회복 (왕상 19:1-18)

사람은 언제나 겸손해야 합니다. 내가 위대한 일을 하고 대단한 자리에 올라가도 언제나 겸손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언제 넘어질지 모르는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엘리야는 대단한 일을 했지만 굉장히 허망하게 영적인 침체에 빠져서 하나님께 죽기를 구하는 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엘리야가 그렇게 쉽게 영적인 침체에 빠졌다면 우리들은 어떻겠습니까? 언제나 겸손해야 합니다.
   
엘리야는 대단한 사람입니다.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기도하니 3년 6개월 동안 하늘의 문이 닫혀서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엘리야는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 850명과 갈멜산 꼭대기에서 영적인 싸움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하늘에서 불을 내려주셔서 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셨고 도랑의 물을 핥아버리게 하셨습니다. 이 싸움에 승리한 엘리야는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 850명을 잡아서 죽였습니다. 대승이었습니다. 또 엘리야는 갈멜산 꼭대기에서 비가 오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기도에도 응답하셔서 하늘의 문을 여시고 비를 내려주셨습니다.
   
엘리야는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본문에 보면 그 대단한 엘리야가 아주 허망하게 쓰러집니다. 악한 왕비 이세벨이 엘리야에게 사람을 보내서 내일 이맘때에 죽이겠다고 협박했습니다. 이세벨의 협박을 받은 엘리야는 갑자기 영적인 침체에 빠져버렸습니다. 그리고 광야로 들어가서 한 로뎀나무 아래에 앉아서 하나님께 죽기를 구하고는 로뎀나무 아래서 잠을 잤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엘리야에게 보내셔서 엘리야를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천사는 잠을 자는 엘리야를 깨우고 숯불에 구운 떡과 물을 마시게 하였습니다. 엘리야는 떡을 먹고 물을 마신 후에 다시 잠을 잤습니다. 그 후에 천사가 다시 엘리야에게 와서 엘리야를 깨우고 다시 먹고 마시게 했습니다. 엘리야는 그 음식물의 힘을 의지해서 사십 주야를 걸어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엘리야는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침체에서 빠져나왔습니다.
   
오늘 설교는 이 내용을 중심으로 영적인 침체에서 벗어나 영적으로 회복되는 비결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충분한 휴식을 통해서 육체적인 탈진에서 벗어날 때 영적으로 회복 될 수 있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엄청난 기적을 일으켰던 위대한 선지자이었지만 그도 육체를 입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왕상 18장에서 위대한 역사를 일으켰지만 육체적으로는 상당히 피곤해졌습니다. 그리고 육체적인 탈진이 그에게 영적인 침체를 가져오게 하였습니다.
   
사람은 영과 혼과 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영, 혼, 몸은 서로 밀착되어 있기 때문에 혼과 몸의 상태가 영에 영향을 미치고, 영의 상태가 혼과 몸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건강한 영적 상태, 건강한 정신적인 상태, 건강한 육체적인 상태를 유지하려면 영과 혼과 몸의 조화가 필요합니다.
   
아마 우리 중에 많은 분들이 심리적으로 불안해지면 몸에 이상이 발생하는 것을 경험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늘 불안하게 사는 사람은 심장에 이상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전쟁과 테러의 위협 속에서 살아가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심장과 관련된 병들이 많다고 합니다. 몸에 이상이 생겼을 때 마음도 약해지고 영적으로도 활력이 떨어지는 것을 쉽게 경험할 수 있는 일입니다.
   
조용기 목사님의 설교를 읽어보니 자신은 일벌레랍니다. 젊었을 때는 이른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쉬지 않고 일을 했답니다. 그래서 많은 일을 하게 되었는데 너무 과로했습니다. 밤낮없이 뛰다가 강단에서 설교 하다가 쓰러졌습니다. 그러던 중에 어떤 분에게 충고를 받았답니다. 그분이 목사님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조 목사님은 하나님보다 더 위대합니까?” 조목사님은 그 말이 굉장히 기분이 나쁘더랍니다. 
“내가 언제 하나님보다 더 위대하다고 말했습니까?”, 
“아니 조 목사님 지금 사는 모습이 하나님 보다 더 위대하다고 교만하게 하고 있지 않습니까?”, 
“내가 언제 교만했습니까?”, 
“하나님도 엿새 동안 일하시고 이레째는 쉬었는데, 목사님은 이레째 내내 하루도 안 쉬고 뛰는 것을 자랑으로 생각하십니까? 하나님보다 더 위대한 것 아닙니까?” 

그 말에 조목사님이 거꾸러졌습니다. “맞았어. 하나님도 엿새 동안 일하고 이레째 쉬었는데, 내가 이레째 계속해서 일하면 하나님보다 더 위대한 사람이 되는구나.” 

그 분의 말씀이 목사님의 마음을 찔렀습니다. 그때 조목사님은 엄청난 고생을 했답니다. 정신적, 육체적 고난을 많이 겪었고 영적으로도 힘들었습니다. 엄청나게 고생스러워서 ‘이젠 죽는가 보다’라고 생각도 했다고 합니다. 강단에 설교하는 것이 죽음보다 더 고통스러웠답니다. 육체의 과로가 정신적, 영적인 면에 까지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입니다.
   
이번에 이스라엘에서 열린 Rainbow 2 사역에 참석하신 나사렛 교회 사모님은 암환자이십니다. 그분은 의자에 30분 이상 앉아 있을 수 없는 분입니다. 그런데 집회에 참석하셔서 은혜를 받으시고 2박 3일 동안 의자에 앉아서 모든 집회를 다 참석하셨다고 합니다. 기적입니다. 제가 말씀을 전할 때도 참석자들 중에서 가장 밝은 얼굴로 가장 활기차게 아멘을 하는 것을 저는 보았습니다. 이런 현상들은 영과 혼과 몸이 서로 연결되어서 서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육체의 탈진이 영적인 침체를 가져온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에 그의 육체를 쉬게 해주셨습니다. 5절에 보니 누워 자는 엘리야에게 천사를 보내서 어루만져줍니다. 그리고 그에게 떡을 먹고 물을 마시게 하고 다시 잠을 재우십니다. 하나님은 또 천사를 보내셔서 엘리야를 어루만져주시고 먹게 하십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엘리야는 육체적으로 힘을 얻게 되었고, 육체적으로 힘을 얻게 되니 영적인 면에서도 쉽게 회복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들의 육체는 적당한 휴식이 필요합니다.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이 전도를 다녀온 후에 그들을 한적한 곳에서 쉬게 하셨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과로하지 마시고 적당한 휴식을 취하십시오. 그래야 육체도 건강하고 영적으로도 건강해질 수 있습니다. 
 

2.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하여 영적인 면에서 충전 될 때 영적으로 회복 될 수 있습니다. 
   
엘리야가 영적인 면에서 위대한 일들을 했지만 그런 과정 속에서 엘리야는 영적인 면에서 탈진이 되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영적으로 입력하는 것보다 출력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자동차를 운행하다보면 몇 년에 한번 씩 밧데리를 교환해야 합니다. 밧데리 안에 있는 전기가 다 방전이 되면 시동을 걸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 운전자들은 흔히 두 가지 방법을 사용합니다. 하나는 점프선을 이용해서 다른 자동차의 밧데리와 자신의 자동차 밧데리를 연결하여 충전 시키는 방법입니다. 또 하나의 방법은 밧데리를 교환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영적인 점프선을 이용하여 하나님과 자신을 연결시키고 하나님으로부터 영적인 에너지를 공급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영적인 에너지를 공급 받는 일은 등한히 하면서 열심히 영적인 에너지를 사용합니다. 그러다 보니 영적인 고갈이 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영적인 면에서 고갈 될 때 침체에 빠지는 것입니다.
   
8절에 보면 엘리야는 힘을 내어 하나님의 산 호렙에 갑니다. 여기 호렙산은 시내산의 다른 이름입니다. 모세가 양을 치면서 하나님을 만났던 산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광야를 횡단할 때 하나님을 만났던 산입니다. 하나님은 그곳에 임재 하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무소부재하신 분입니다. 그분은 어디든지 계십니다. 안 계신 곳이 없습니다. 그런데 무소부재 하신 하나님에 대해서 오해하여 어디든지 계시니 꼭 특별한 장소에서 하나님을 만나려고 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구약시대에도 하나님은 어디든지 계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성막과 성전이라는 특별한 장소에서 자기 백성들과 만나주셨습니다. 엘리야도 꼭 호렙에서만 하나님을 만났던 것이 아닙니다. 그는 다른 곳에서도 하나님을 만났고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영적인 침체에 빠졌을 때 그는 하나님의 산 호렙을 찾아갔습니다. 8절에 보니 호렙산에 이런 수식어가 붙어있습니다. ‘하나님의 산’ 엘리야는 하나님의 산 호렙에서 영적인 충전을 받았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습니다. 하나님은 어디든지 계시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루살렘에서 하나님과 특별한 만남을 가졌던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에도 하나님은 어디든지 계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만남을 원하는 사람들은 엘리야가 하나님의 산 호렙을 찾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도성인 예루살렘을 찾았듯이 하나님의 교회로 나아와야 합니다. 호렙산이 특별히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였던 것처럼, 성전이 특별히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장소였던 것처럼, 예루살렘이 특별히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였던 것처럼 교회는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입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생활입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은 영적인 유익만 주는 것이 아닙니다. 육체적으로도 유익이 되고 정신적으로도 유익이 되는 것입니다.
   
하버드 의과대학과 벤슨 교수는 연구를 통해 신앙인이 비 신앙인 보다 훨씬 더 건강하게 오래 산다는 것을 밝혔습니다. 질병은 60-90%는 마음의 문제로서 곧 스트레스에서 오는 현상입니다. 심장수술을 받은 232명 가운데 살아남은 환자를 조사해 보니 대부분 신앙인이요, 비신앙인 보다 세 배나 많았습니다. 심장 혈관 병으로 죽는 경우는 신앙인은 비신앙인의 절반밖에 안 되었습니다. 신앙인과 비신앙인 간에는 자살률도 4배나 차이가 납니다. 정기적으로 예배를 드리면 불면증의 75퍼센트가 정상화 되고 습관적으로 통증을 제거하기 위해 먹던 진통제도 34%나 감소하게 되는 것입니다. 5년에 걸친 연구 결과 벤슨 교수는 신앙인은 비신앙인 보다 더 좋은 건강을 누리며, 병이 생겼어도 비신앙인에 비해 더 빠른 속도로 회복된다는 사실을 증명했습니다. 특히 기도는 스트레스 호르몬에 좋은 영향을 주어 혈압을 낮추고 마음을 편안하게 하며 심장 박동 수와 호흡 조절과 그 외에도 건강에 많은 유익을 준다는 것입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교회를 찾으십시오. 그리고 날마다 하나님을 만나십시오. 영적인 침체에서 벗어나게 될 것입니다. 
 

3. 형편 보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봐야 영적으로 회복 될 수 있습니다. 
   
사람이 무엇을 바라보느냐는 중요합니다. 흔들리는 것을 바라보면 자신도 흔들리게 되어 있습니다. 변하는 것을 바라보면 자신도 변하게 되어 있습니다. 농부가 소의 엉덩이를 바라보고 밭을 갈면 밭고랑이 삐뚤삐뚤하게 된답니다. 멀리 고정되어 있는 나무를 바라보면 똑바르게 밭을 갈 수 있다고 합니다.
   
3절에 보면 엘리야는 이세벨의 협박을 받고는 형편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봐야 할 엘리야가 형편을 바라보니 마음에 두려움이 찾아왔고 그 두려움이 그를 영적인 침체에 빠지게 만든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적인 침체에 빠졌던 엘리야에게 천사를 보내시고는 엘리야로 하여금 하나님을 바라보게 만드십니다. 힘을 주시고 하나님의 산 호렙을 찾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직접 찾아오셨습니다. 하나님은 세미한 음성으로 엘리야를 만나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야와 깊은 대화를 나누셨습니다.
   
우리가 형편을 보느냐 하나님을 보느냐는 영적인 면에서 굉장히 중요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과 모세의 차이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저는 누구를 바라보느냐 무엇을 바라보느냐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문제가 발생하면 늘 형편을 바라봤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계속해서 광야 생활 중에 원망하고 불평하다가 광야에서 망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모세는 문제가 발생하면 하나님 앞에 엎드려서 하나님만 바라봤습니다.
   
모세는 가데스바네아에서 12명의 정탐꾼들을 가나안 땅에 보냈습니다. 그들이 다녀와서 보고한 내용 때문에 10명은 광야에서 멸망을 당했고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에 들어가는 복을 받았습니다. 그 사건에서 10명의 정탐꾼들과 여호수아와 갈렙의 차이점이 무엇입니까? 무엇을 바라보느냐의차이입니다. 10명의 정탐꾼들은 형편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적들은 강하고 자기들은 약하다는 것만 바라봤습니다. 반면에 여호수아와 갈렙은 형편을 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가나안에 들어갔던 것입니다.
   
복음서에 보면 주님께서 기도하는 동안 제자들은 갈릴리 바다를 건너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목적지를 향해서 가는 중간에 돌풍을 만나서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 때 주님께서는 제자들의 어려움을 아시고 물위를 걸어서 제자들 옆을 지나가셨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주님에게 정말 주님이시라면 자신을 바다 위로 걷게 해달라고 부탁합니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오라고 부르셨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을 보고 바다에 뛰어들었습니다. 대단한 믿음이고 대단한 용기입니다. 그런데 주님을 바라보고 바다 위를 걷던 베드로가 파도를 보자 두려움이 생겼고 결국 물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여기서 베드로가 바다 위를 걸을 때와 바다에 빠질 때 무슨 다른 점이 있었습니까? 베드로가 바다 위를 걸을 때는 주님을 바라봤습니다. 반면에 물에 빠질 대는 파도를 바라봤던 것입니다.
   
우리는 육신적인 눈으로 현실만 보면 안 됩니다. 영적인 눈으로 현실을 넘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그럴 때 영적인 침체에서 벗어나서 영적으로 회복 될 수 있는 것입니다. 

 
4. 사명을 발견하고 사명에 헌신해야 영적으로 회복될 수 있습니다. 
   
엘리야는 지금까지 큰일을 해왔습니다. 큰일을 끝내고나니 이제 할 일이 없습니다. 그러면서 엘리야는 영적인 침체에 빠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만나주셨습니다. 그리고 엘리야에게 새로운 사명을 주셨습니다. 15절에 보니 아람의 왕을 세우는 사명입니다. 16절에 보면 이스라엘에 새로운 왕을 세우는 사명과 엘리사를 이스라엘의 선지자로 세우는 사명입니다.
   
하나님은 사명을 알고 사명에 헌신하는 사람을 귀하게 대우해 주십니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첼리스트 장한나씨를 아실 것입니다. 세계의 곳곳에서 한나씨를 초청하는데, 1년에 20회만 그 초청에 응한답니다. 1년에 20회 이상 연주회를 하면 천재성이 무너지기 때문이랍니다. 

장한나씨가 연주회를 열기 위해 열방을 다니는데 에이전트 회사에서는 일등석 비행기표 석 장을 준비한답니다. 일등석 비행기표가 얼마나 비싼지 아십니까? 그 비싼 비행기표를 석 장씩이나 준비하는데, 하나는 한나를 위해, 또 하나는 한나 어머니를 위해, 또 하나는 한나의 첼로를 위해서랍니다. 한나가 연주하는 악기가 귀하니 보통사람은 앉아 보지 못하는 일등석에 악기를 앉히는 것입니다. 혹 첼로가 다칠까 봐 그 비싼 일등석에 앉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장한나씨의 첼로처럼 하나님의 손에 잡혀서 사명을 위하여 사는 사람을 귀하게 대우하시는 것입니다.
   
사명을 아는 것은 인생에 동력을 공급하는 것과 같습니다. 기계가 움직이려면 반드시 기계를 움직이는 동력이 필요하듯이 우리의 인생을 힘 있게 움직이려면 반드시 동력이 필요합니다. 인생의 다양한 동력 중에 사명을 아는 것은 강력한 동력을 제공해 줍니다.
   
청소년들이 방황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자신이 무엇을 위하여 살아야 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목적과 목표가 분명한 청소년들은 절대 방황하지 않습니다. 어른이 되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생의 목표가 분명하지 않은 어른도 방황하는 인생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저는 목사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목회를 해야 하는지 하나님 앞에 부르심이 확실하지 못하면 목사가 되었어도 방황하게 되어 있습니다.
   
열심히 주의 일을 하다가 방황하거나 영적인 침체에 빠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원인은 여러 가지입니다. 그 중에 결정적인 원인은 사명을 잃어버려서 그렇습니다. 비전이 흔들릴 때 침체에 빠집니다. 비전을 붙잡으십시오. 자신의 사명에 집중하십시오. 영적으로 회복 될 것입니다. 

 
5. 나 혼자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영적으로 회복될 수 있습니다. 
   
엘리야는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믿음에서 떠났고 자기 혼자만 남았다고 생각했습니다. 10, 14절을 보면 엘리야가 하나님과 대화를 하면서 “오직 나만 남았거늘”이라는 말을 2번이나 합니다. 그는 오직 자기만 하나님을 붙들고 떠나지 않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을 만드시고 독처하는 것이 좋지 않아서 하와를 만들어주셨습니다. 사람은 누군가와 어울릴 때 행복한 것입니다.
   
어느 거리에서 갑자기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들렸습니다. 70세쯤 되어 보이는 할머니가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자살을 하였습니다. 구급차가 와서 할머니를 곧 병원으로 실려 갔고, 달려온 경찰들이 자살 원인을 알아보기 위해 할머니가 살던 아파트를 샅샅이 뒤졌습니다. 가보니까 실내는 비싼 가구와 고급스러운 도구로 할머니 생활은 풍족해 보였지만 어딘지 썰렁한 기운이 느껴졌습니다. 경찰은 할머니의 자살 원인이 경제적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할머니 주치의에게 전화해서 지병이 있는지 물어봤습니다. 의사는 할머니가 나이게 걸맞지 않게 건강하다고 말했습니다. 고민하던 경찰들은 작은 수첩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그 수첩을 보던 경찰은 “바로 이것이구나!”하며 무릎을 쳤습니다. 고개를 끄덕끄덕 했습니다. 할머니의 수첩에는 365일 동안 똑같은 글이 적혀 있었습니다. “오늘도 아무도 나에게 오지 않았다.” 건강한 할머니, 꽤 먹고 살만한 재산도 있었는데 자살한 이유는 365일 일기장에 똑같은 말 “오늘도 아무도 나에게 오지 않았다.” 이 할머니가 자살한 것은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할머니의 외로움이 자살의 원인이었습니다.
   
엘리야는 자기 혼자만 남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영적인 침체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본문을 보면 절대로 엘리야가 혼자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먼저 하나님이 엘리야와 함께 계셨지요. 그리고 천사도 함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18절에 보니 이스라엘에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남은 사람이 7천명이나 있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중요한 의식이 하나님의 임재의식입니다. 하나님은 나와 함께 하신다. 하나님은 여기 계신다. 하나님은 내 눈에 보이지 않지만 언제나 그리고 어디서나 나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신앙생활에 승리하고 성공적인 인생을 살았던 사람들은 임재의식이 충만했던 사람들입니다. 다윗은 임재의식이 충만했습니다. 그는 시 139:5-10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께서 나의 앞뒤를 둘러싸시고 내게 안수하셨나이다(임재의식입니다) 6 이 지식(하나님께서 언제나 어디서나 자신과 함께하신다는 지식입니다.)이 내게 너무 기이하니 높아서 내가 능히 미치지 못하나이다 7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8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9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10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다윗은 하나님은 언제나 어디서나 자신과 함께 하신다고 확신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에게는 하나님만 함께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천사들이 함께 하며 우리를 도와주고 우리의 형편을 날마다 하나님께 아뢰는 일을 합니다. 히 1:14입니다. “모든 천사들은 섬기는 영으로서 구원 받을 상속자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냐” 마 18:10입니다. “삼가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도 업신여기지 말라 너희에게 말하노니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항상 뵈옵느니라”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들에게는 하나님과 천사가 함께 할 뿐만 아니라 믿음의 동역자들이 함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18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이스라엘 가운데 남은 자가 7천명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십니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고 바알에게 입 맞추지 않은 사람이 7천명이나 있었습니다.
   
저는 성도 여러분이 마 28:20 말씀을 기억하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나는 혼자가 아닙니다. 주님이 함께 하십니다. 천사들이 도와줍니다. 믿음의 동역자들이 있습니다. 
 
오늘 설교는 엘리야를 통해서 영적인 침체에서 벗어나 영적으로 회복되는 비결이 무엇인지를 살펴봤습니다.
   1. 충분한 휴식을 통해서 육체적인 탈진에서 벗어날 때 영적으로 회복 될 수 있습니다.
   2.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하여 영적인 면에서 충전 될 때 영적으로 회복 될 수 있습니다.
   3. 형편 보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봐야 영적으로 회복 될 수 있습니다. 
   4. 사명을 발견하고 사명에 헌신해야 영적으로 회복될 수 있습니다.
   5. 나 혼자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야 영적으로 회복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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