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성령강림]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사람들 (행 2:1-4, 14-21)

첨부 1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사람들 (행 2:1-4, 14-21)
   
오늘은 교회의 중요한 절기인 성령강림절입니다. 그리고 오늘은 우리 교단이 제정한 청년주일입니다. He can do, she can do, why not me라는 영상을 보신 후에 계속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은 교회의 생일이라고 할 수 있는 성령강림주일입니다. 예수님은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보혜사를 보내어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을 떠나가셔 했습니다.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님은 이 세상에 육신을 입으신 사람으로는 영원히 계실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세상을 떠나가는 것이 우리 성도들에게 유익이라고 하시면서 당신이 계속해서 세상에 계시면 보혜사 성령이 오시지 아니할 것이지만, 이 세상을 떠나가시면 당신을 대신하실 수 있는 성령을 보내어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요16:7입니다.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당신의 공생애를 마치실 때에 보혜사 성령을 보내어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요14:16-17에서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와 영원히 함께 있으실 성령, 진리를 깨닫게 하시는 영, 우리와 함께 있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 속에 계실 성령이라고 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성령이라는 말조차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성령님을 보지도 못합니다. 알지도 못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성령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지만, 우리는 알고,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 속에 영원히 사실 성령님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성령님은 인격을 가지신 하나님이십니다. 성령은 그 능력에 있어, 그의 창조성, 거룩함과 편재성에 있어 성부 하나님과 동일한 하나님입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대단히 논리적으로 접근하고, 합리적으로, 과학적으로, 이성적으로 하나님을 이해하려고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알고, 성령님을 아는 것은 논리를 뛰어넘는 체험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 기독교는 지성을 무시하거나 포기하지 않지만, 지성으로는 부족하고, 이해력에만 의존할 수 없는 그 이상의 신비하고 거룩하고 영적인 세계와 영적인 존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체험이 있어야 합니다. 

믿음이라는 말을 하는데, 믿음이라는 말 자체가 이해력을 벗어난 말입니다. 그냥 합리적으로 과학적으로 안다고 하면 되는데 믿는다는 말 그 자체가 벌써 과학이 아니요, 합리적이지 않다는 말입니다.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어도, 세상의 사물처럼 보여야 하는데, 눈에 보이지 않아도 믿고 순종하고 받아들여야 하고, 체험해야 하는 경지가 신앙입니다. 이미 교회에 나오셨다고 하면 신령한 세계, 영적인 세계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이요, 성령의 실체, 성령님이 인격을 인정하고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습니다. 나를 위하여, 나를 대신하여, 나를 구원하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대속의 죽음을 맞이하시는 예수님을 믿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 나의 구세주, 나의 생명, 나의 빛이요 진리입니다. 그 주님이 공생애를 마치시면서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주신다고 약속하시면서 그 성령님을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눅24:49에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행1:4-5 “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떠나가시고 12제자들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 우리 주님이 보내주신다고 약속하신 보혜사 성령을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였습니다. 

제자들이 예루살렘의 한 집의 2층 다락방에 모였습니다. 마가요한의 다락방이었습니다. 거기 11명의 제자들이 있었고,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썼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마음을 같이하여 함께 모여 기도하고, 찬양하고 예배하고, 성령님을 사모하여야 합니다. 

행1:13-14에는 “들어가 그들이 유하는 다락방으로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고 하셨습니다. 전 교우들이 120명 쯤 되었는데, 더불어, 함께 마음을 같이 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썼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날이 유월절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하시고, 이 세상에 40일을 계시면서 부활하신 모습으로 나타나셨지만, 12사도들이 보는 중에 승천하시고, 한 주일이 지나갔습니다. 그들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예수님의 명령과 약속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는 것과 예수님으로부터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고 하신 것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오순절에 성령님이 강림하셨고,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성령을 충만하게 받았습니다. 오순절이 되었을 때에, 성령이 강림하심으로 교회가 세어지게 되었습니다. 구약의 오순절에 모세가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아 구약의 교회가 성립된 것처럼 신약의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하심으로 초대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구약의 오순절에 율법을 받아서 그 말씀대로 살아간 것처럼 이제는 성령을 받아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본문을 좀 더 자세히 연구해야 합니다. 행2:1-4을 한 번 더 읽어드립니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고 하셨습니다. 

성령이 임하실 때에,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었습니다. 그 소리가 성도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였습니다. 또한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였고, 각 사람의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었습니다. 성도들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였습니다. 

성령님은 영이십니다. 육신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성령님이 성도들에게 임하실 때에, 바람 같은 소리가 있었고, 그 소리가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였습니다. 바람 같은 소리라고 하였지, 바람이 불었다는 말은 아닙니다. 바람 소리와 같은 소리가 온 집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이것은 신비입니다. 

인간의 언어에 있어 표현의 한계가 있기에 유사하게 가장 가까운 말이 바람 같은 소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생기가 불어온 것이었습니다. 죽은 영혼을 살리고, 생명을 회복시키는 생기였습니다. 

그리고 불길이 솟아오를 때 혓바닥처럼 갈라지는 것 같은 혀들이 각 사람들에게 나타났으며, 각 사람 위에 그 불의 혀들이 내려앉았습니다. 바람이 강하게 불 때에 나타나는 소리는 청각적으로 들을 수 있는 소리로 보여진 것이라면, 불의 혀 같은 것은 시각적으로 볼 수 있게 나타난 현상이었습니다. 불이란 사악하고 더러운 것을 태워 없애는 정결의 도구입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고 있었습니다. 불덩이 같은 것이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성령이 잠시 동안 필요한 역사를 위하여 어떤 사람에게 임하였다가 떠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임하신 성령님은 항상 우리 안에 계시고 우리를 떠나지 아니하시고 우리와 함께 동행하시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 위에 성령이 임하였습니다. 성령의 오심을 사모하고 성령의 충만함과 성령의 세례를 받으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모든 사람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습니다. 그들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성령 충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 즉 방언을 말하게 되었습니다.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방언을 말하게 되었다. 초대교회는 성령이 충만한 교회였습니다. 성령충만한 역사가 나타날 때에, 현상적으로 눈에 보이게 나타난 역사는 방언이었습니다. 

행2:4에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행10:44-46에는 고넬료의 집안에서 베드로가 설교하실 때에 일어난 일입니다. “베드로가 이 말을 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베드로와 함께 온 할례 받은 신자들이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놀라니 이는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 높임을 들음이러라” 고넬료와 함께 모인 사람들이 거의 다 이방인들인데, 그들이 방언을 말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었습니다. 

행19장에 보면 바울이 에배소에 와서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라고 물었는데, 그들은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들 에배소 사람들은 요한의 세례만 받은 사람들이었는데, 바울이 세례요한으로부터 시작하여 예수를 증거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그들에게 안수해주었는데, 그들에게 성령이 임하시고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였습니다. 

행19:6-7에 “바울이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므로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니 모두 열두 사람쯤 되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들 12 사람이 다 성령을 받았고, 방언도 하고 예언도 하는 성령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고전14:18에 보면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 하셨습니다. 사실 바울도 아나니아가 와서 눈을 뜨기 위해 기도해주고 복음을 전할 때에 방언의 은사를 받은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면 성령이 임하실 때마다 다 방언의 역사가 일어나느냐고 하면 그것은 성령님의 기뻐하시는 뜻과 의지에 맡겨야 합니다. 

“성령님을 찾아서”라는 책을 쓴 존 쉐릴이란 분은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기 위하여 성령충만한 사람들, 성령이 역사한 현장, 많은 서적으로 탐구하면서 방언의 역사를 연구하고 자신이 방언을 받아 체험한 것을 기록한 책입니다. 

그 가운데, 흑인 목사이신 윌리엄 시무어(Wolliam, J. Seymour 1870-1922)이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아주사라는 거리의 312번지에 있는 2층 건물을 임대하여 집회하고 있었습니다. 이 아주사거리 선교회에서 성령충만을 받고, 방언의 은사를 받는다고 소문이 나고 수많은 병자들이 나음을 받는다고 하여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아래층에서 예배를 드리고, 2층에서 쉬면서 연일 집회를 열고 있었습니다. 

예배 시간이 되어 가는데, 한 남자가 선교회의 건물로 들어섰습니다. 아직 예배가 시작되지 않은 것을 알고, 2층으로 올라오고 있었습니다. 그 때 2층에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11살의 캐틀린이라는 소녀가 예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 신사분이 올라올 때에 캐틀린이 일어나서 영어가 아닌 방언으로 크게 몇 분동안 그 신사를 향하여 말을 하였습니다. 그 소리에 종을 치는 일이 조금 지체되었고, 모든 성도들이 아래층으로 내려와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그 신사는 캐틀린의 손을 잡고 예배에 참석하면서 나와서 말하였습니다. “여러분, 저는 유대인입니다. 저는 방언에 대하여 조사하려고 이곳에 왔습니다. 이 도시에서 제 성이나 이름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제가 가명을 사용하였기 때문입니다. 제 직업이나 제가 여기 온 목적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저는 이곳 설교자들의 설교를 낱낱이 분석하고 해부하여 기독교 신앙에 반대하는 강의에 사용하려고 이곳에 온 사람입니다.   

그런데 제가 이 건물에 들어오는 순간 이 소녀가 히브리어로 말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소녀는 제 성과 이름을 알고 있었을 뿐 아니라, 제가 이곳에 온 목적과 제 직업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소녀는 저에게 회개를 촉구하였습니다. 이 소녀가 여기 사람이라면 도저히 알 수 없는 제 사생활까지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비 맥알리스터라는 그 유대인등 무릎을 끓고 울부짖으면 마치 심장이 터질 듯한 음성으로 회개하였고 합니다. 

오순절에는 경건한 유대인들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유대인의 3대 절기이기에 많은 유대인들이 귀국하여 예루살렘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그 때에 120명의 성도들이 모여 뜨겁게 기도하고 방언을 말하니, 예루살렘에는 큰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소동하였습니다. 다 놀라 신기하게 여겼습니다. “보라 이 말하는 사람들이 다 갈릴리 사람들이 아니냐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찌 됨이냐”고 했습니다. 

그들은 바대인, 메대인 엘람인,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갑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이 말합니다.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였습니다. 다 놀라서 당황하였습니다. 이 어찌 된 일이냐 하면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그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 때에 베드로는 소리높여 외쳤습니다. 지금이 때가 아침 9시이니,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고 하면서 구약의 예언을 인용하였습니다. 

17절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 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 ”라고 했습니다. 

구약성경 요엘서 2장 28절에는 “성령을 부어 주리라”고 예언되어 있습니다. 요엘 선지자가 기원전 800년경에 예언하였는데, 이 예언이 신약시대에 와서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예수님이 없는 성령님을 있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대신하시고 예수님을 생각나게 하고, 예수님으로 충만하게 하시고, 감사하게 하시고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게 하시려고 성령님이 오셨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들은 예수님으로 충만해집니다. 성령은 예수님이 이루신 구원을 전하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존 쉐릴이란 분이 ‘성령님을 찾아서’라는 책에서 이런 말을 합니다. 스테이크를 분석하는 사람들과 먹는 사람의 차이라는 글이었습니다. 우리도 자칫 냉랭한 신앙으로 식탁에 앉아 스테이크를 분석하는 사람들이 될 수 있습니다. 소의 혈통과 나이에 대하여, 어느 부위의 고기이며, 무게를 달아보고 영양가를 측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나에게 도움이 하나도 되지 않습니다. 스테이크를 불에 올려놓아 잘 굽고, 잘게 썰어서 맛있게 먹는 사람이 살아 있는 신앙, 능력 있는 신앙을 가질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신앙은 성경 말씀이나 하나님을 연구 분석의 대상으로 삼지 말고, 믿음의 대상으로, 믿어 순종하고 함께 살아 역사하시는 성령님을 나의 마음의 성전에 모시고 살아가야 합니다. 일생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수박 겉핥기식의 신앙생활은 의미가 없습니다. 그동안 그런 주변만 맴도는 생활로 족합니다. 이제는 성령님이 나의 삶의 주인이 되시고, 나의 성전에 임재하시고, 나와 동행하시고 나를 통하여 역사하시는 것을 체험해야 합니다. 

성령 충만이란 말은 성령을 많이 받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성령은 많이 받고 적게 받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영이시고 그리스도의 영이십니다. 인격적인 존재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순간에 성령님은 우리 안에 들어오십니다.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고백할 수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지금 내가 성령님을 조금 한 1/5 정도 가지고 있는데 기도하면 1/2이 되고 3/4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에게 성령님이 계시거나 안 계시느냐 둘 중의 하나입니다. 성령님은 한 분이시기에 성령님을 또 모시고 또 모시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할 때에 이미 성령님은 우리의 마음 성전에 들어오셨습니다. 성령충만을 받으라는 말은 성령님으로 나를 더 많이 소유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교회에 나와 예배드릴 때만 성령님이 나를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길을 갈 때에도 공부할 때에도, 친구들과 교제할 때에도, 심지어 잠잘 때에도 성령님이 나의 인생을 주관하게 하고, 성령님의 지배와 통치를 받으며 그것으로 기뻐하여야 합니다. 성령님이 나의 인생의 주인이시고, 성령님과 동행하는 것, 곧 예수님으로 충만하고 예수님으로 인하여 감사하고, 기뻐하는 것이 성령충만입니다. 성령충만한 사람은 성령님의 온전하신 인도하심에 감사하고 기뻐 따르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성령의 은사로 채워주시고, 성령님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방언을 말하기도 합니다. 성령충만한 이들 중에 방언하는 사람도 있고, 방언기도를 사모하지만 받지 못하시는 성도들도 있습니다. 성령이 기뻐하시는 뜻대로 역사하시고 있습니다. 

우리 시대는 성령의 시대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나의 마음자리에서 주인으로 살아가는 것을 포기하고 내려와 성령님에게 합당한 자리를 내어드려야 합니다.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숨결을 느끼면서 능력 있는 신앙을 생활해야 합니다. 성령님은 하나님의 영이시고, 우리 주님을 대신하여 오신 보혜사요 그리스도의 영이십니다. 성령충만하여, 예수님으로 구원받은 감격을 가지고 예수님으로 충만하고, 예수님의 죽음을 전파하며, 능력 있는 성령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