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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강림] 광야로 이끄시는 성령 (막 1: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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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로 이끄시는 성령 (막 1:12-13)


오늘은 오순절 성령 강림절입니다. 교회의 역사는 성령의 역사와 같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값 주고 사신 교회는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강력한 추진력을 얻게 되었습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은 예수님의 제자들은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했고 그 때마다 성령의 놀라운 역사가 나타났으며 그 결과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많은 시간이 흘러 1907년 평양 대부흥 운동을 통해 우리 나라에도 성령의 폭발적인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1907년 성령 부흥의 영향력은 한국 교회에 뿌리 깊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저도 어릴 적 동네에 있는 작은 교회에서 주최하는 집회에 구경을 간 적이 있었습니다. 마을 빈 공터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고 사람들은 많은 병자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동네에 제가 아는 소아마비 걸린 형도 부모님을 따라 거기에 와 있었습니다. 나중에 알았는데 그 집회는 현신애 권사 치유 집회였습니다. 2007년도에는 ‘어게인 평양 대부흥 운동’이라는 운동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즉 다시 한국 교회가 1907년의 평양 대부흥과 같은 운동을 일으키자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성령이라고 하면 부흥, 치유, 능력, 힘 등과 같은 단어를 떠올립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놀라운 변화와 능력이 나타납니다. 사람들은 신비한 체험을 하고 방언 기도를 하게 됩니다. 입신하고 환상을 보고 삶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건강하지 못하던 사람이 건강하게 됩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이 기도를 하고 교회에 열심이 없던 사람들이 열심을 내고 전도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교회가 부흥하고 놀라운 일들도 하게 됩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우리들의 삶의 문제들이 해결됩니다. 이처럼 우리가 성령을 통해 떠올리는 이미지와 느낌은 대체로 긍정적인 것들입니다. 

마가복음은 마가가 자신의 교회에 주는 복음서입니다. 마가는 자신이 쓴 복음서 1장에서부터 성령을 밝히 드러냅니다. 1장 8절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베풀었거니와 그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니...” 성령을 드러내는 세례 요한의 메시지입니다. 또한 1장 10절에서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강에서 올라오시자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오셨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인 13절에서는 성령이 예수님을 광야로 이끌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마가는 성령의 사역이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 처음 시작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사역이 시작될 때부터였다는 것을 그의 교회에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오늘 본문에서 마가는 성령이 예수님을 광야로 이끌었다고 하면서 ‘이끌었다’는 단어로 헬라어 ‘에크발로’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에크발로’의 뜻은 ‘쫓아낸다’ ‘내민다’ ‘잡아 끌어낸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강제적인 이끄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도 ‘에크발로’를 ‘몰아내다’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억지로 끌고 갔다는 것과 같습니다. 

10절과 11절에서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고 올라오실 때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오면서 하늘에서 음성이 들리는데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라는 하나님의 음성이었다고 말합니다. 만일 여기에 성령에 대한 우리의 기대를 투영시키면 성령의 충만을 받고 하나님의 말씀도 받은 예수님에게 이제 놀라운 변화와 능력이 나타나야 합니다. 성령 충만과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즉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며 예수님의 주변에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모여들어 복음을 듣고 병 고침과 귀신이 떠나가는 등의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하지만 성령 충만으로 예수님에게 일어난 변화는 우리의 기대와 예상과는 전혀 다른 광야로 쫓겨 가는 것이었습니다. 마가는 성령이 예수님을 수많은 사람들이 모인 집회의 장소가 아니라 사람이 아무도 없는 광야로 강제적으로 이끌었다고 증언합니다. 그리고 그 광야에서 40일 동안 마귀에게 시험을 당하게 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도 마가는 “사십 일을 계시면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시며”이란 문장에서 계속적인 용법을 사용합니다. 다른 복음서는 40일 금식 후 마귀가 나타나 예수님을 시험한 것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한 번 시험한 것입니다. 

그러나 마가는 이 문장을 통해 40일 동안 동일한 시험을 반복적으로 받은 것처럼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하루라도 굶으면 배가 고픕니다. 마귀는 굶는 순간부터 계속해서 예수님에게 나타나 돌이 떡이 되게 하라고 시험을 했다는 뜻입니다. 보통의 사람은 시험을 한 번 당하는 것도 힘들어 합니다. 만일 시험을 연속해서 계속 당한다면, 그것도 같은 시험을 반복적으로 당한다면 견딜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아마도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 정신적인 문제가 발생하거나 목숨까지 끊는 참담한 일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마가는 반복적으로 오는 시험에서 오는 극심한 고통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계속적인 시험으로 고통당하고 있는 예수님의 주변에는 도와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뜻입니다. 사람은 고사하고 들짐승만 있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과 짐승의 차이점이 무엇인가요? 사람에게는 짐승이 가지고 있는 본능 이상의 이성이 있습니다. 만일 사람이 이성을 상실한다면 짐승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성을 잃고 본능만이 남았다면 그는 더 이상 사람이 아닙니다. 40일 동안 굶으면서 반복된 시험으로 인해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린다면 이성을 잃지 않고 온전한 사람으로 끝까지 버틸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마가는 이렇게 증언합니다. “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시면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 예수님은 달랐습니다. 40일을 금식하시면서 마귀에게 반복적인 시험에 시달렸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이성을 잃은 짐승이 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천사들이 내려와 수종든 것 같이 예수님은 더욱 더 영적인 상태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이성은 더욱 하나님께로 향해 있었습니다. 마가는 예수님의 광야 시험의 승리를 “천사들이 수종들더라”라고 나타내고 있습니다.

마가는 예수님의 시험에 관해 성령의 강제적인 이끄심에서 시작해서 천사가 내려와 수종드는 것으로 마무리합니다. 예수님의 광야 시험 승리의 시작은 성령의 이끄심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이 본문 말씀에서 마가는 자신의 교회 교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성령 충만의 역사는 때로는 우리의 기대와 어긋날 수 있습니다. 성령이 우리를 영광으로 이끌기도 하지만 반대로 고난으로 이끌기도 합니다. 교회가 지금 당하고 있는 어려움은 성령의 이끄심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예수님처럼 이 고난을 이겨야 합니다. 반복적인 고난이 찾아온다고 해서 우리의 믿음이 마비되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이 당한 어려운 고난 앞에서 중요한 것은 어디로 갈까? 또는 어떻게 하면 이 장소를 벗어날까? 가 아니라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가? 입니다. 

예수님은 성령께서 광야로 이끄셨기에 광야에서 벗어나는 것도 성령에게 맡겼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굶으시고 묵묵히 시험을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았기에 예수님은 광야에 함몰당하지 않고 마귀의 시험에 넘어가지도 않고 이성을 상실한 짐승이 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 예수님을 하나님은 천사를 통해 도와 주셨습니다. 즉 육체적인 도움이 아니라 영적인 도움을 주셨습니다. 이 영적인 도움이 예수님을 광야에서 살아남게 하셨습니다. 비록 우리의 배를 채우는 도움은 아닐지라도 우리의 영을 채우는 도움을 받았을 때 우리도 예수님처럼 광야에서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순절 성령 강림을 기념하는 오늘, 우리도 마가 교회의 교인들처럼 광야로 예수님을 내몰아가신 성령님을 생각해 보길 바랍니다. 지금 한국 교회의 현실은 성령께서 한국 교회를 광야로 몰아가고 계신 것일 수 있습니다. ‘어게인 평양 대부흥’이 아니라 ‘어게인 광야’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떻게 하면 이 쇠퇴기를 벗어나 다시 부흥할까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하나님을 제대로 바라보고 있는가? 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의 개인의 삶에서도 성령의 이끄심이 문제 해결과 더 나은 변화의 장소, 성공의 장소만이 아니라 광야의 장소,·실패한 것 같은 장소로도 이끄시는 분이심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곳이 어디든지 끝까지 하나님을 바라보고 성령의 인도하심과 도우심으로 우리 또한 예수님처럼 이 곳 광야에서 살아남아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가길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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