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바라바냐,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냐? (마 27:11-26)

첨부 1


바라바냐,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냐? (마 27:11-26)

지금부터 약 1990년 전 유대땅 예루살렘성 깊은 감옥 속에 한 사형수가 성난 짐승처럼 충혈된 눈에 살기를 번뜩이며 미친 사람처럼 감방을 서성이고 있었습니다. "누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나? 누가 나를 죽인단 말인가?" 그는 이유 없는 분노 속에 치를 떨었습니다. 안으로부터 소리없이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 그 조여드는 얼굴 없는 불안을 잊어버리려고 벌떡 일어서서 걸으며 자기의 살아있음을 확인하고자 했습니다. "너희 인간들이 나를 죽여? 나는 죽을 수 없어!" 

그는 어둠 속에 아무도 없는 상대를 향하여 중얼거렸습니다. 그러나 이윽고 역시 자기는 죽어야 하며 자기 혼자서 슬프게도 죽어가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헝클어진 자기 머리칼을 쥐어뜯으며 어린아이처럼 울어댔습니다. "어머니여, 나를 낳아주신 어머니여, 당신의 정다운 얼굴을 보고 싶습니다. 당신의 따뜻한 품속에 안기고 싶습니다." 

그의 가슴은 절망과 죽음에 대한 공포 속으로 천길 만길 내려앉았습니다. 천갈래만갈래 갈라지는 아픔 속에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급기야 그는 울음과 함께 비명처럼 외칩니다. "하나님이여, 하나님이여,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엘리야의 하나님이여, 당신은 어디 계시나이까?" 

그는 깊은 종교심에서 다시금 이성적 불안상태로 되돌아 왔습니다. 그의 양심이 비수와 같이 그에게 말합니다. "너는 죽어야 돼! 이 몸이 죽으면 나는 어디로 갈까? 너는 지옥으로 간다!" 그는 싸늘한 창살을 붙잡고 혼신의 힘을 다해 부르짖었습니다. "나에게 기회를 다오! 소망을 다오! 빛을 다오!" 그러나 허공은 대답이 없고 불안한 가슴은 진정되지 않았습니다. 

"내 속에 있는 죄의 충동이 날 이렇게 만들었지. 나의 환경이 날 이렇게 만들었지" 그는 슬픔과 눈물과 원망 속에 눈을 부라리고 분노하다가, 미친듯이 울부짖으며 흐느껴 울다가, 퍼뜩 놀라서 다시금 일어나면서, 유대인의 명절 유월절 전야를 그렇게 피곤과 절망과 심연을 알 수 없는 공포 속에 몸부림치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 하늘과 인간에게 버림을 받은 사람, 그는 온 예루살렘이 다 아는 유명한 죄수, 살인자요 민란을 일으킨 자요 강도인 바라바였습니다. 불쌍한 바라바, 그가 비록 다른 사람을 죽였고 민란을 일으켜 질서를 파괴하고 다른 사람을 두려워 떨게 했지만 정작 그 자신이 죽음의 공포를 견디기에는 너무나 허약했습니다. 

사형수 바라바가 예루살렘 옥중에서 신음하고 있는 그 시간, 또 하나의 사형수 예수가 예루살렘 안토니아성이라 불리우는 총독의 숙소에서 총독 빌라도의 심문을 받고 있었습니다. 빌라도 총독이 예수에게 묻습니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가 대답합니다. "네 말이 옳다" 예수의 입에서 이 말이 떨어지자 기다렸다는 듯이 대제사장과 장로들이 고소를 하기 시작합니다. "총독이여, 우리 유대인의 법에 의하면 자칭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고, 하나님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지을 수 있다고 하고, 자기가 권능의 우편에 앉을 것과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우리가 보겠다고 말하는 사람은 사형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믿는 고유한 신앙을 희롱하며 백성을 미혹하는 가르침을 포교하는 자는 죽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 유대인의 왕이라고 참람한 말을 하는 이 사람은 죽여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로마황제 밖에 없고 한 분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다시 빌라도가 예수에게 말합니다. "저희가 너를 쳐서 얼마나 많은 것으로 증거하는지 듣지 못하느냐" 예수는 한 마디도 대답지 않았습니다. 빌라도는 홍포를 입고 머리에 가시관을 쓰고있는 종교적인 사형수를 내려다보았습니다. 그는 양심의 갈등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 사람은 무죄한 사람이구나. 이 사람은 순수무결한 사람이야" 그는 죄없는 유일한 사람을 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줄기차게 증거해 온 멧세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사람을 자랑하지 않고 오직 예수만 자랑하여 순수하고 능력이 있는 메시지여야 합니다. 예수는 죄없는 유일한 사람입니다. 그분만이 인류의 구주가 되시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빌라도는 그 성스러운 기품에 절로 머리가 숙여지고 자기의 죄가 빛 가운데 드러나는 것을 느꼈습니다. 

총독은 기이히 여기면서 한가닥 선한 양심에 이끌려 예수를 석방하려고 한 가지 계책을 생각해 내었습니다. 로마 사람들이 유대인의 환심을 사기위해 유대인의 큰 명절이면 죄수를 놓아주는 전례가 있었던 것입니다. "예루살렘 옥 중에서 가장 유명한 죄수 바라바와 이 예수를 택일하라고 하자. 아무리 백성들이 예수를 미워해도 바라바 보다야 더 하겠는가?" 

빌라도 총독이 그들에게 묻습니다. "우리는 당신들의 명절에 백성들의 소원대로 죄수 하나를 놓아주는 전례가 있도다. 너희는 내가 누구를 놓아주기를 원하느냐? 바라바냐?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냐?" 대제사장과 장로들의 사주를 받은 백성들이 소리쳐 답합니다. "바라바로소이다" "그러면 그리스도라 하는 이 예수를 내가 어떻게 하랴?" 저희가 다 외칩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총독이 재판석에 앉아 멍청해 있을 때 총독의 아내가 사람을 보내서 공개적으로 만류합니다. "저 옳은 사람에게 아무 상관도 마소서 오늘 꿈에 내가 그 사람을 인하여 애를 많이 썼나이다" 총독은 곤란을 느꼈습니다. "나뿐 아니라 내 아내까지도 이렇게 번민을 하다니 하나님이 이 사람의 무죄를 증거하심이구나" 빌라도가 답답하여 신경질적으로 묻습니다. "어찜이뇨? 무슨 악한 일을 이 사람이 행했다 말이요?" 

저희가 더욱 소리지릅니다. "이유는 묻지마시오. 이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이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으소서" 빌라도가 아무런 효험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말합니다. "좋다. 바라바를 놓아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아라" 

그 어둡던 밤이 지나고 새벽이 움틀 때였습니다. 예루살렘 감옥 사형수의 감방에 발자국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바라바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습니다. "왔구나! 사형 집행인이!" 밤새 슬픔과 통곡, 절망과 공포에 반 미쳐 있던 바라바는 거의 실성 상태에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간수가 문을 홱 열면서 큰 소리로 말합니다. "바라바, 나와라. 너는 석방이다" 바라바의 얼굴이 빨갛게 상기되며 노여움이 폭발합니다. "날 놀려? 죽을 사람이라고 그렇게 날 속이나?" 다시 간수가 말합니다. "바라바, 나오게. 넌 자유야. 넌 운이 좋은 놈이야" 

바라바는 간수의 말이 곧이들리지 않습니다. "부모 형제도 친구도 날 버리고, 하늘도 날 용납않는데 누가 나를 살려 준단 말인가? 이 간수놈아, 내가 발악할까봐 좋은 말로 나를 속여 사형장으로 끌고 가려는 수작이지. 내가 속을 줄 알아? 차라리 여기서 죽겠다" 그는 머리를 벽에 부딪히며 울부짖습니다. 간수가 말합니다. "바라바, 진정하게. 그래 믿을 수 없다는 말도 당연하지. 나도 너같은 놈이 풀려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으니까. 그러나 똑똑히 보게. 여기 유대 나라의 최고 재판장 로마 총독의 사면장이 있네" 간수가 로마 총독의 사면장을 쑥 내밀었습니다. "명절을 당해 살인강도 바라바는 놓아주고 유대인의 왕 예수는 십자가에 못 박을 것. 로마 총독 빌라도" 바라바는 그 사면장을 믿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붉게 찍힌 총독의 인감을 부인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감옥 문은 열리고 바라바는 꿈꾸듯이 걸어 나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들 바라바와 같이, 유명한 죄수들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우리 조상 아담이 범죄한 이후 우리는 가시와 엉겅퀴가 나는 저주와 죽음, 공포와 절망이 있는 감옥에 갇혀 살아 왔습니다. 그리고 언제 닥쳐올지 모를 영원한 진노와 형벌의 실상에 쫓기고 눌리며 살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바보나 정신병 환자를 제외하고서는, 모두가 죽음과 운명의 불안에 사로 잡혀 있습니다. 버림받은 느낌의 존재적 절망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정신적 허무와 파멸과 공허, 무의미의 불안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도덕적 가치성의 상대화 속에서도 오로지 정죄의식과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사람은 한겹 허세를 벗겨 버리고 보면 모두들 이렇게 답답하고 어리둥절하고 미친듯이 살다가 죽어갑니다. 허무의 세력에 시달리고, 흑암의 권세에 사로잡혀 마침내 지옥으로 이끌려 가고 맙니다. 이것이 인생이 가야만 하는 길입니다. 이것이 인생이 갈 수 밖에 없는 길입니다. 

그런데 이 세계, 육체의 감옥을 떠나 지옥으로 떨어져 가기 전에, 여기 놀랍고 큰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소식이 있습니다. 그것은 로마 총독의 사면장이 아닙니다. 그것은 공의로 그 보좌의 기초를 삼는 영원한 재판장이신 거룩하신 하나님의 사면장입니다.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딤전 1:15). "아니 그게 무슨 말이요? 그것은 우리를 속이는 말이 아니요? 아편처럼 우리를 속여서 마취하여 인간고를 잊고 살다가 지옥으로 가란 말이 아니요? 믿을 수 있는 증거를 보여 주시오" 

자, 그러면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사면장, 죄인에게 보내 주신 하나님의 사면장을 펴 보십시다. 구약 성경은 하나님이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신약 성경은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백성을 저희 죄 가운데서 구원하시려고 속죄의 제물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보증으로 하나님의 성령을 믿는 이의 가슴 속에 보내 주신다는 내용입니다(마 1:18-21).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나의 목숨을 많은 사람들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 20:28, 마 10:45). "이것은 죄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마 26:28). 성경에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십자가의 인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습니다. 

오순절날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사람들이 마음에 찔려 사도들에게 묻습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사도가 증거합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행 2:37-39).

빌립보 감옥의 간수가 묻습니다.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바울이 증거합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 16:37). 

하나님의 성령께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요 3:16).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 오직 믿음으로 이 복음을 믿을 때 우리는 바라바와 같이 죄와 죽음의 감옥에서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자유를 얻은 바라바는 석방되자 말자, 제일 먼저 예수님께 대하여 더 알기를 원했을 것입니다. 바라바는 사람들에게 물어 봅니다. "예수가 누굽니까? 예수는 어디에 있습니까?" 예수의 신실한 제자들이 말해 줍니다. "예수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입니다. 예수는 유대인의 참된 왕입니다. 예수는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고난받는 하나님의 종입니다"(사 53:4-9). 

아마도 바라바는 예수 그리스도를 목격했을 것입니다. 죄 없으신 순결하신 얼굴을 보았을 것이고, 진리와 은혜가 충만하신 모습을 보았을 것입니다. 홍포를 입고 가시 면류관을 쓰시고 온 몸에 채찍을 맞아 등이 갈라지고 피투성이가 된 모습을 보았을 것입니다. 갈대를 오른손에 들고 희롱을 당하는 사람을, 인간 취급을 받지 못하고 벌거벗김을 당한 채, 온 예루살렘성을 수치와 모욕과 침 뱉음과 뺨을 맞고 끌려 다니는 사람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십자가에 못 박히며 단말마의 고통에 몸부림치는 무력한 한 사람의 모습을 목격했을 것입니다. 

바라바는 자기도 몰래 예수께 이끌려서 십자가 위에서 말씀하신 음성을 들었거나 또는 전해 들었을 것입니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막 16:34). 그는 자기의 형벌과 절망을 대신한 분을 갈보리 십자가 밑에서 발견했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렀습니다.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 23:46).

 정오부터 세시까지 온 땅에 어둠이 임하고 땅이 진동하고 바위들이 터지며 무덤들이 열리고 자던 성도들의 몸이 일어나는 놀라운 광경을 보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십자가 아래서 한 백부장이 외치는 소리를 들었을 것입니다. "이 사람은 과연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마 27:54). 

바라바는 깨달았을 것입니다. "그렇다. 하나님의 아들이 나를 대신하여 죽으셨구나. 그가 내 죄를 대속하기 위해 죽었으므로 내가 살게 되었구나. 그리스도라고 하는 예수! 하나님이 임명하신 유일하신 구세주, 인류의 참되신 왕이요 제사장이요 선지자이신 메시야 예수, 그가 날 대신하여 고난 받으시고 형벌과 저주를 당하셨구나" 전설과 같이 그가 참으로 예수를 믿었다면 바라바의 눈에는 감사의 눈물이 아롱지고 중생의 기쁨이 넘쳤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바라바가 체험할 수 있었던 이 복음이 바로 우리들이 체험할 수 있는 복음입니다. 인생이 갈 수 있는 또 하나의 길이 여기 있습니다. 바라바는 오늘날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를 대표하고 있습니다. 예수는 유대 명절 유월절의 어린양이 되고 바라바는 풀려났습니다.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는 우리의 왕으로 대신 희생되시고 우리는 죄로 인하여 사면이 단절된 실존에서 구원을 받습니다. 하나님 아들의 피의 복음으로 인하여 인류는 하나님 아버지의 품에 돌아와 안기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불안은 변하여 평안이 되고 죽음은 변하여 영생이 됩니다. 허무는 변하여 충만한 가치가 되고 죄책감은 용서와 의와 기쁨으로 바뀝니다. 절망은 소망으로, 수치는 영광으로, 억압은 영광스런 자유로 충만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 사형판결에 자기는 상관없다고 손을 씻은 빌라도(24절)는 오늘날, 아니 앞으로도 사도신경을 통해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하고 고백될 것이고

"그 피를 위와 우리 후손에게 돌릴지어다"(25절)고 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AD70년 디토장군에 의해 나라를 잃은 뒤 1948년 독립이 될 때까지 무려 1878년간이나 나라없이 세계에 흩어져 유리방황하는 디아스포라가 되었습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