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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버이주일] 약속 있는 첫 계명 (엡 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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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 있는 첫 계명 (엡 6:1-3)

최근 조사에 의하면 학대받는 노인들이 적지않다고 합니다. 그 중에도 특히 아들에게 학대받는 노인들이 제일 많다고 합니다. 

제 서재에 있는 냉장고에는 저의 어머니께서 생전에 시골집 감나무에서 손수 따서 보내온 감이 있습니다. 4년이 지난 지금은 말라서 미라처럼 되어 있습니다. 그 감을 보노라면 노계 박인로의 조홍시가가 생각납니다. 

소반 위 조홍감이 곱게도 보이는 구나
유자 아니라도 품엄직 하다마는
품어 가 반길 이 없으니 그를 서러워 하노라

왕상의 잉어 잡고 맹종의 죽순 꺾어
검던 머리 희도록 노래자의 옷을 입고
일생에 정성껏 효도함을 증자같이 하리라

만 균을 늘여내어 길게 길게 끈을 꼬아
구만 리 장천에 가는 해를 잡아 매어
북당의 늙으신 부모님을 더디 늙게 하리라

여러 봉황이 모인 곳에 외 까마귀 들어오니
백옥이 쌓인 곳에 돌 하나 같다마는
두어라 봉황도 나는 새와 같은 무리이니 모시고 논들
어떠리

조홍시가는 여헌 장현광이 성리학을 배우러 온 박인로에게 조홍시를 소반에 받쳐 내어 대접을 했을 때 조홍시를 본 박인로가 회귤고사 橘故事("육적이 귤을 가슴에 품다"라는 뜻으로 지극한 효성을 비유하는 말로 삼국 시대의 오나라 사람 "육적"에 관련된 고사)가 생각나서 돌아가신 어머님을 떠올리며 지은 시입니다.

"약속 있는 첫 계명"은

Ⅰ.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는 것입니다.

본문 6장 1절에 『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고 했습니다. 
『 주 안에서 순종 』이라는 말은 주님의 뜻에 반하지 아니하는 범위 내에서의 순종을 말함입니다. 
『 주 안 』이라는 말은 부모보다는 하나님이 크시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주의 말씀 안에서" 혹은 "주의 말씀을 따라서"라는 의미입니다. 부모들이여 서운해 하지 마십시오.

이렇게 신약 성경에서는 주 안에서라는 말씀이 부각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구약에 미흡한 것을 신약에 와서 완성하신 것입니다.
유대교에서는 그들의 경전 탈무드에서 부모에 대한 효도가 지극히 부모 중심적입니다. 

예컨대 아버지의 자리에 아들이 앉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라든지 아버지가 다른 사람과 논쟁 할 때 다른 사람의 편을 들어서는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는 것 등입니다.
우리 사회의 효행에 대한 가치관에 대하여 부동의 자리를 잡고 있는 것은 아직도 유교의 사고방식입니다. 유교에서도 탈무드에 나오는 효행과 크게 다르지 아니합니다. 

예컨대 자식 된 자가 부모 앞에서 몸이 가려워도 긁지 말라고 했습니다. 자식 된 자가 부모 살았을 때 높은 곳에 올라가지 말고 자식 된 자가 매우 좋은 아내를 얻었다고 해도 부모가 그 여자를 기뻐하지 아니하면 내어 보내고 비록 자기에게 좋지 못한 아내라도 부모가 좋게 여기면 죽을 때까지 변하지 않아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또 머리에 머리털이며 살을 상하지 않게 함이 효도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절대 부모 중심적인 효에 대한 가치관은 부모에게도 무익한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자식이 부모의 바르지 못한 가치관이나 이데올로기까지 만족시켜 줄 의무는 없습니다. 유교에서는 자식이 부모의 잘못에 대하여 직언하여 충고하도록 가르치지 않고 있습니다. 예컨대 

"부모유과하기이색유성이간"父母有過下氣怡色柔聲以諫 "간약불입기경기효열즉부간"諫若不入起敬起孝悅則復諫 "삼간이불청호읍이수지"三諫而不聽號泣而隨之 "원본소학집기권지이"原本小學集記券之二(부모가 잘못을 했을 경우에는 자식은 기운을 낮추고 얼굴을 즐겁게 하고 음성을 부드럽게 하여 간할 것이고 간해도 듣지 아니하면 더욱 공경하여 그의 마음을 얻도록 하여 다시 간할 것이요 세 번 간하여도 듣지 아니하면 울면서 따라 다니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성경에서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에 반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부모 공경에 대하여 마음에 와 닿는 말입니다. 

여기에 대하여 박윤선 박사는 말하기를 무엇이 부모의 허물인지 그것을 밝힐 만한 완전한 진리가 유교에는 없다고 했습니다. "약속 있는 첫 계명"은,


Ⅱ.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했습니다.

본문 6장 2절에 『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라고 했습니다. 
제네바의 개혁자 칼빈은 말하기를 "부모를 공경한다는 말은 그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나타내기 위한 모든 책임 있는 이행을 총칭한다."라고 했습니다. 

원래 『 공경 』이란 히브리말 "카베트"는 "무겁다"는 뜻입니다. 이 말은 우리 인체 중에 있는 장기 중에 가장 무거운 것이 "간"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과학에 의해 이것은 사실로 판명되었습니다. 공경이란 단어가 "카베트"로 된 이유는 부모를 간처럼 소중하고 무겁게 여기라는 말입니다. 우리 인체 중에 간이 가장 무겁다고 해서 무겁기 때문에 불편하다든지 간수하기에 부담이 될 수가 없습니다. 

다른 장기도 마찬가지지만 특별히 제일 무겁다는 간의 기능은 우리의 생명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몸의 내장 중에 간이 소중한 것을 알거든 부모도 간처럼 소중하게 생각해야 마땅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에게 모든 존경과 사랑을 다해야 합니다. 

잠언 23장 25절에 『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 』고 했습니다. 어머니 주일을 주창한 "안나자비스"는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부모를 공경하시오. 바로 당신의 부모 말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상에서 육신의 모친에게 효도하셨고 요한에게 어머니 마리아를 부탁했습니다(요 19:25-27).

부모는 자식들을 위하여 희생적인 삶을 산다는 이유만으로도 존경받을 수 있습니다. 
출애굽의 지도자 모세에게는 신앙의 어머니 요게벳이 있었습니다. 바울의 믿음의 아들이요 사랑의 동역자 디모데에게는 신앙의 어머니 유니게가 있었습니다. 

힙포의 감독 성 오렐리어스 어거스틴(Aurelius Augustine)에게는 아들이 잘되기만을 위하여 한평생 동안 기도의 삶을 살았던 어머니 모니카가 있었습니다. 

동양의 가장 위대한 교부로서 추앙받는 당대의 교부 크리소스톰에게는 신앙의 어머니 안더사(Anthusa)가 있었습니다. 

영국을 불 지른 죤 웨슬러에게는 어머니 수잔나의 기도가 있었습니다. 위대한 설교가 디엘 무디에게는 어머니 벳시의 기도가 있었습니다.
위대한 신앙의 아버지들도 많이 있습니다. 꼭 들추어 내지 않더라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측량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이유만으로도 우리는 얼마든지 존경하고 사랑할 수 있는데 더욱이 하나님이 명하신 계명 중에 인간에 대한 첫째 되는 계명이니 더 말할 것이 없습니다. 부모에 대한 공경의 원리는 신적 명령입니다. "약속 있는 첫 계명"은,


Ⅲ. 효행에 대한 약속 있는 축복입니다.

1) 잘되는 축복입니다.

본문 6장 3절에 『 이는 네가 잘되고… 』라는 말 "히나 유소이 게네타이"( )의 3인칭 단수로서 "소산", "열매"라는 뜻입니다. 결산 있는 일, 풍성한 소산으로 즐거운 일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may be well with you" 틀림없이 결과가 좋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이 세상에 살 동안에 좋은 일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잘된다는 말은 "make succeeds like of" 잘되어 간다는 것입니다. "All"s well" 만사가 형통하다는 의미입니다.
어떤 축복입니까 ?

2) 복을 누리는 축복입니다. 

신명기 5장 16절에 『 너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명한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가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고 했습니다. 

참된 복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인데 이것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서 비롯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자신이 복의 근원이라는 충분한 근거가 됩니다. 
오늘날 물질적인 축복이 전부인양 기복신앙에 깊이 빠져 있는 잘못된 생각을 바로 잡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복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복과는 사뭇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시 1:1-3).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영적 유익을 위하여 물질적 궁핍이나 역경까지도 허락하실 수 있는 분이시라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히 12:5-15).
어떤 축복입니까?

3) 장수의 축복입니다.

본문 6장 3절에 『 …땅에서 장수하리라 』고 했습니다.

출애굽기 20장 12절에 『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고 했습니다. 

신명기 5장 16절에 『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가 생명이 길고… 』라고 했습니다.

성도의 장수는 축복입니다. 짧은 생이면서도 순교의 값진 삶이 있습니다. 그러나 장수하면서 이 땅에서 주님의 남은 고난에 더 깊게 동참할 수 있다면 더 큰 축복이라고 아니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시편 91편 16절에 『 내가 장수함으로 저를 만족케 하며 나의 구원으로 보이리라 하시도다 』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강원도 정선지방에 내려오는 어느 효구총孝狗塚에 얽힌 전설 하나를 소개 합니다. 정선 골 두메에 아주 가난하게 살던 박 서방이 도저히 끼니를 잇지 못하게 되자, 하는 수 없이 자기 집에서 기르던 개를 잡아먹었습니다. 그리고는 그 뼈를 근처 개천가에다 갖다 버렸습니다. 바로 그때 그 죽은 어미개의 새끼가 멀리서 마침 이 광경을 보고 있었습니다.

박서방이 저녁을 먹은 후 강아지에게 밥을 주려고 불렀지만, 끝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이상한 예감이 들어 뼈를 버린 개천가로 가 보았더니 수북하게 쌓였던 뼈는 온데간데 없고 강아지 발자국만 무수히 나 있었습니다. 

그래 그 발자국을 따라 가 봤더니 동산 양지바른 곳에 강아지가 누워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가까이 가보니 강아지는 이미 싸늘하게 죽어 있었는데 강아지가 감싸고 있는 자리를 파보니 어미개의 뼈들이 그 속에 고스란히 묻혀 있었습니다.
사람의 일만 배나 되는 개의 후각은 자기 어미개의 뼈 냄새도 맡아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을 본 박 서방은 강아지의 효심에 감탄하여 거기에 "효구총" 비석을 세워준 것이라고 합니다.

개만도 못한 사람들이 우리사회에 너무 많습니다. 부모와 무슨 이해관계인지는 모르나 부모 초상에 나타나지 아니하는 자식이 있는가 하면 죽은 부모가 냄새난다고 멀찍이 서있는 딸도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얼마나 외동 아들이 불효했는지 어머니가 죽으면서 1억 5천 6백만 달러를 애완용 개에게 상속하고 아들에게 1달러만 상속하라고 유언했다고 합니다. 

이 유언에 따라 나이가 많은 로버트 프랭클린 가정법원 판사는 개의 관리인은 개가 살아 있는 동안 연봉 5만 달러만 지급받고 개가 죽으면 남은 돈은 고아원과 동물애호협회에 기증하라고 판결했습니다.
효에 대해 고대 로마에서는 "다리에서 떠민다"는 뜻인 데폰타니(Depontaini)라 불렀습니다. 부양에 힘이 드는 부모를 다리 위에서 떠밀어 익사시켰던 데서 비롯된 말입니다. 

남태평양의 일부 섬에서는 부양에 힘든 부모가 생기면 야자나무에 올려놓고 자식들이 흔들어 추락사시키는 관습도 보고되고 있습니다.
흉노족은 노부모를 자루 속에 담아 나무에 걸어 놓고 자식들이 활을 쏘는데 단발로 사살하는 것이 최상의 효도로 쳤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늙으면 흙구덩이 속에 가두어 죽게 하거나 병들면 병막病 에 버려 죽어가게 하는 관습도 북방 이동민족의 노인 학대문화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고려장高麗葬은 고구려 때 늙고 병든 이를 산 속 깊이 구덩이에 얼마간의 양식과 함께 두었다가 죽으면 그 자리에 장사지내는 장례 방법입니다. 
그래서 첩첩산중에 사기그릇이나 토기그릇 그리고 숟가락 정도가 발굴되고 있습니다. 

아들이 늙은 어머니를 등에 메고 산 속으로 들어가면서 아들도 울고 등에 업혀있는 어머니도 자꾸만 꽃이며 나뭇가지를 꺾어서 지나가는 자리에 던지며 표시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어머니는 아들을 향해 "얘야 그만 되었으니 집으로 돌아가라"고 했습니다. 아들은 어머니를 산 속 깊은 굴속에 두고 집으로 내려오다가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한참 헤매다 보니 등에 업힌 어머니가 꺾어놓은 나뭇가지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아들은 그때서야 그만 집으로 돌아가라는 어머니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사지로 가면서도 아들의 무사귀가를 위해 힘을 다해 바닥에 꽃이며 나뭇가지를 꺾어 길표를 했던 어머니의 사랑을 깨닫고 그 아들은 그 길로 어머니에게 달려가서 다시 어머니를 모시고 집으로 돌아왔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같은 학대에 미래의 노인들이 가만히 당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 반응이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 하나가 기득권을 죽을 때까지 보유하는 상속 거부형 문화로써 이것은 게르만 문화권에서 발달했습니다. 70-80대인 아버지가 40-50대의 자식에게 가산을 상속하지 않고 예속시킴으로써 일어나는 갈등이 독일 문학의 한 유형을 이루고 있을 정도입니다.

문호 괴테는 80세가 넘어 병석에 누워 있을 때까지 창고 열쇠를 자리 밑에 깔고 가족이 필요로 한 빵을 손수 저울로 달아 주곤 했을 정도입니다.

다른 하나가 일본 같은 점진적 상속형입니다. 장자가 일가를 이루면 일부 가산을 물리고 남은 가족들은 작은 아들집에 가서 사는 것을 은거隱居라 하고, 작은 아들이 일가를 이루면 셋째 아들과 동거하는 것을 산거散居라고 합니다.

한국에서처럼 부모 부양을 우선된 덕목으로 치고 장자 상속을 관습화시킨 것이 절대상속형입니다. 이렇게 해서라도 노인 학대를 순화시켜 보려했지만 핵가족의 진행과 자기 중심주의의 팽배로 다시 부양 거부의 노인 소외시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천륜을 거부하는 것은 죄악입니다. 성경은 여타 상황에 관계없이 네 부모를 주 안에서 공경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아전인수我田引水격으로 공교한 해석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 이외의 공교한 논리는 견강부회牽强附會(가당하지도 않은 말을 억지로 끌어다 붙여 조건이나 이치에 맞도록 함)일 뿐입니다.
약속 있는 첫 계명은 네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다고 했습니다. 그 다음은 네 부모를 공경하는 것입니다.
부모공경에 대한 구약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이 신약 성경에서 온전하게 된 것입니다.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부모공경에 대한 전설 같은 이야기들이 우리들의 삶 속에 아름다운 미담으로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글로벌 시대에 세계인들 앞에 우리나라의 확고한 경쟁력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부모에게 효를 다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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