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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불의한 재판관과 억울한 과부 (눅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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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한 재판관과 억울한 과부 (눅 18:1-8)

◈ 전쟁이 한창입니다. 
우리는 TV를 통해 중계를 보고 있지만 그 지역 사람들은 피가 마를 것입니다. 예전에는 파병을 하면 아무 것도 몰랐지만 지금은 바로 우리 눈으로 그 상황을 봅니다. 이 전쟁이 온 세계를 불안하게 하고 있습니다. 전쟁의 여파가 온 세계를 긴장시키고 있습니다. 
전쟁이 아니더라도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모두 마음 속에 다른 사람들이 모르는 
불안함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심리학자들은 현대를 일컬어 '불안의 시대'라고 합니다. 
시대가 불안하니 사람들도 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가정생활에서도 불안함을 느낍니다. 직장 생활에서도 불안함을 느낍니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공부를 하면서도 장래에 대한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누가 불안 없이 산다고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 어느 날 사단이 물건을 세일하고 있었습니다. 상품은 걱정, 두려움, 욕망, 슬픔 그리고 
자만심과 같은 물건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상품 진열대 한쪽 편에 <이것은 세일하지 않음>이라는 꼬리표를 단 물건이 있었습니다. 왜 그 물건을 세일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다른 물건은 아직도 여분이 충분히 있는데 이 물건은 여분이 없습니다. 이 물건만은 내가 가지고 있는 것 중에 유용하면서도 아주 쓸모 있는 물건입니다. 이 물건이 없이는 나는 일할 수 없습니다. 이 물건이 사람들의 마음 속에 들어가야 내가 일하게 됩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바로 낙심이라는 물건입니다. 라고 했습니다. 

낙심이 들어오면 그 때부터 마귀가 일하기 시작한다는 말입니다. 
낙심이 들어오면 우리에게 있는 아름다운 꿈과 비젼이 사라져 버립니다. 의욕이 상실됩니다.

이 낙심이라는 게 능력의 종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에게도 찾아왔습니다. 
엘리야는 선지자 중에 선지자입니다. 
암흑의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며 바알 숭배와 아세라 목상에 대항해 싸운 사람입니다. 

갈멜산에서 바알의 선지자 450명과 아세라 선지자 400명과 850대 1로 싸워서 이긴 사람입니다. 기도하여 불이 떨어지게 했습니다. 기도하여 비가 내리게 한 사람입니다. 
이런 능력의 사람, 하나님의 사람에게도 낙심이 찾아오니까 아주 약한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주여 나를 죽여주옵소서. 기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 현대인들의 병 중의 하나는 조급병입니다. 세상이 참 빨라졌습니다. 예전에는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 시간이 지금은 5년, 3년, 1년, 6개월정도 밖에 걸리지 않습니다. 몇 개월만 지나고 산이 없어지고 강이 생기기도 합니다. 
처음에 인터넷이 시작될 때는 전화선을 이용해서 했습니다. 너무 신기하고 좋았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는 ADSL 전용선이 깔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VDSL 전용선입니다. ADSL보다 훨씬더 빠른 속도를 자랑합니다. 

사람들은 엔터를 치고 화면이 바뀌는 그 잠시의 시간을 기다리지 못할 정도로 조급하게 되었습니다. 
3분, 5분도 기다리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인스턴드화되었습니다. 
신앙생활도 그렇게 속성으로 하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모든 것을 속성으로 빨리 하려고 합니다. 
특히 우리 나라는 고속 성장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고속 성장의 이면에는 부실과 부패가 
함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시기를 원하시는 사람을 오랜 시간을 들여서 철저하게 훈련 시키셨습니다. 
요셉을 사용하시기 위해서 애굽에 보내시고 13년 동안 종살이와 감옥살이를 하게 하셨습니다. 
모세를 훈련시키기 위해 광야에서 40년을 보내게 하셨습니다. 

여호수아를 사용하시기 위해 모세의 시종으로 40년을 기다리게 하셨습니다. 
우리의 급함이 문제입니다. 
리차드 포스트는 “조급함은 마귀적인 것이 아니라 마귀다" 라고 말했습니다. 

불안, 낙심, 조급함 이런 것들은 우리에게 아무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들입니다. 
우리를 낙망하게 하는 것들입니다. 

오늘 본문의 비유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교훈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말세가 될수록 항상 기도하며 낙망하지 않는 믿음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항상 기도하며 낙망하지 말라. 낙망 - 낙심, 포기로도 번역됩니다. 

◈ 불의한 재판관

재판관이란 법을 통해 판단하는 직책을 가진 사람이다. 
재판관의 가장 중요한 일은 억울한 것을 풀어 주는 것입니다. 
성경은 약한 사람에 대한 관심이 있습니다. 

출 22:22 『너는 과부나 고아를 해롭게 하지 말라』

시 68:5 『그 거룩한 처소에 계신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시라』

신 27:19 『객이나 고아나 과부의 송사를 억울케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

특별히 과부와 고아, 나그네에 관한 보호, 그리고 선대할 것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나타난 재판관은 다른 모습입니다. 

① 2절, 4절에 보면 이 재판관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심판도, 지옥도 저주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② 사람을 무시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자기에게 이익만 되는 것을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돈, 명예, 권력만 쫓아 행하는 사람임. 
이들은 뇌물을 받고 판결을 굽게 하는 재판관이었습니다. 

◈ 억울한 과부

당시의 과부는 약자의 대표입니다. 가난하고 자기를 방어할 힘이 없는 사람입니다. 
재혼도 불가능했고, 친정으로 돌아갈 수도 없었습니다. 사회적인 보장도 전혀 없었습니다.
과부라는 사실만으로도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런데 본문의 과부는 억울한 일까지 당하고 있습니다. 
남편도 없고, 돈도 없고, 빽도 없고, 권력도 없는데 억울한 일을 당했습니다. 
억울함을 풀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재판관을 찾아가는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비유는 억울한 과부와 불의한 재판관의 싸움에 관한 것입니다. 
힘없는 여인, 하소연할 곳도 없고, 뇌물을 쓸만한 힘도 없는 연약한 여인과, 부와 권력과 아울러 하나님과 사람을 무시하는 교만까지 갖춘 불의한 재판관의 대결이었습니다.

◈ 이 한 과부는 그 재판관을 찾아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였습니다. 

그러나 불의한 재판관이 이 과부의 청을 들어줄 리가 없습니다. 관심조차 없습니다. 
아마도 올라온 서류를 쳐다 보지도 않고 치워버렸을 것입니다. 과부는 낙심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후 다시 용기를 내어 찾아갔습니다.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이 재판관은 화를 내면서 비서들을 불러 내쫓았을 것입니다. 과부는 다시 재판관을 찾아가서 애원을 했습니다. 그래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하루종일 울면서 사무실 주위를 떠나지 않고 맴돌면서 원수를 갚아 달라고 간청을 했습니다. 그래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재판관의 집을 찾아가서 이른 아침 출근 전에, 또, 퇴근 후 날마다 찾아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며 매달렸습니다. 
이 불의한 재판관은 낮에는 이 과부 때문에 사무를 볼 수 없고, 밤에는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아마 꿈에도 나타나서 원수를 갚아 달라고 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재판관은 견디다 못해 들어주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4-5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나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여기서 라는 말은 라는 뜻입니다.
이 재판관이 과부의 청을 들어준 것은 과부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를 위해서입니다. 

이 비유는 억울한 과부의 끈질긴 간청과 낙망치 않는 믿음이 승리하였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1. 예수님의 교훈은 낙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때때로 기도하면서 낙망하는 이유는 내가 원하는 때에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비유를 통해서 항상 기도하고 낙망하지 말 것을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낙망하지 않는 방법은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 창세기 15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두 가지를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① 자식을 주겠다.

다메섹 엘리에셀이 상속자라고 말하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그 사람은 너의 후사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주시겠다면 주실 줄 믿고 5년이고 10년이고 20년이고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10년을 기다린 아브라함이 급해졌습니다. 낙망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갈을 취해서 아들을 낳았습니다. 이것이 오늘날까지 중동 지역 분쟁의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약속대로 이삭을 아들로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의 때가 아니라 하나님의 때에 주셨습니다. 약속을 받은 지 25년 뒤의 일입니다. 

② 아브라함에게 땅을 준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창 15:7 나는 이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려고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낸 여호와로라”
그러면 아브라함은 주실 줄 믿고 기다려야 했는데 기근이 들었을 때 그만 약속의 땅을 버리고 두 번씩이나 애굽에 내려갔습니다. 그 일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은 애굽에 400년간 종살이를 할 것이 예언됩니다.

(창15:13) 사실 그대로 역사적으로 되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내 때에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낙망하거나 포기하지 말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때는 언제나 정확합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때가 있습니다. 

전도서 3장에 보면 천하범사에 때가 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합니다. 

(전 3:11)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기도하면서 낙망하지 마십시오. 
낙망은 기도의 불꽃에 찬물을 끼얹는 것과도 같습니다.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응답을 주셔야만 기도 응답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십니다.(롬8:28) 
믿음이 있는 성도에게는 하나님의 때가 가장 적절한 때입니다. 하나님의 방법이 가장 적절한 방법입니다.
기도할 때 응답이 없는 것 때문에 내 때에 일어나지 않는 것 때문에 낙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내 때보다 더 좋은 하나님의 때를 바라보시고 그 때까지 인내하며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을 예수님이 비유로 우리에게 알려 주셨습니다. 

◈ 기도한다는 것은 아직 낙망하지 않았다고 하는 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왜 기도하십니까? 아직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포기했다면 기도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본문에 비추어 볼 때 기도를 새롭게 정의할 수 있습니다. 

피조물인 인간이 하나님을 향해서 하나님, 나는 포기할 수 없습니다. 라는 선언을 하는 것입니다. 이런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면서 나는 포기할 수 없다는 선언을 하며 버티고 일어서시기 바랍니다. 기도는 믿음입니다. 

2.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반드시 응답하신다. 

예수님은 억울한 과부의 청을 들어준 불의한 재판관과 택하신 자녀들의 기도를 들어주실 
하나님을 비교하여 말씀했습니다.
본문의 재판관은 불의합니다. 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자연히 사람을 무시합니다. 그러나 괴롭게 하는 과부의 청을 억지로 들어주었습니다. 

예수님의 비유에서 한 가지 분명히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불의한 재판관이 아니고, 우리는 억울한 과부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사실을 말씀하십니다.

7-8절.“...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시지 않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 하나님은 재판관처럼 불의하지 않고 의로우시기 때문에 항상 의를 행하십니다. 
하나님은 재판관처럼 냉정하지 않으십니다. 뇌물을 받고 재판을 굽히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십니다.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사랑하십니다. 
그러므로 밤낮 부르짖는 그 택하신 자들의 기도를 속히 들어주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억울한 과부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예수님의 비유 속에 이 과부는 잊혀진 상태였습니다. 연줄도 돈도 없었습니다. 
재판관에게 나아갈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재판관과 과부는 아무 관계도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호적에 입적된 자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너무 소중한 존재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이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이 없고 불의하며 아무 자격도 없는 재판관도 과부의 소원을 들어주었습니다. 
그런데 사랑하시어 자녀 삼으신 아버지 하나님은 틀림없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부르짖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렘 33: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아무런 관계가 없는 재판관 앞에 가서 간청을 하는데도 과부에게는 절망하지 않는 끈질긴 
인내가 있었습니다. 
우리의 아버지 되신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일에는 더욱 더 인내하고 실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아버지이기 때문입니다. 

3. 믿음을 보겠느냐? 하고 물으십니다.
 
예수님은 불의한 재판관이야기를 하시면서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자녀의 기도를 반드시 들어 주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욱 더 끈기있게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몇 번 기도해 보고 그만둡니다. 하지 않으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기도하지 않고 내 맘대로/ 내 방법대로 하면 자꾸 꼬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비장한 말씀을 하십니다. 

8절 후반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7장 후반부를 보면 인자가 올 때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인자가 올 때는 노아의 때와 같은 때입니다.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을 가는 
일에만 열중합니다. 
인자가 올 때는 롯의 때와 같은 때입니다.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는 일에 열중합니다. 
인자가 올 때는 하나님께는 관심이 없는 때입니다. 패역한 시대입니다. 죄가 넘치는 시대입니다. 당연히 믿음을 보기 힘듭니다. 

믿음이 없는 시대입니다. 이 때 성도들은 지쳐 기도하지 않게 되고 낙망하게 됩니다. 
이런 때에 믿음을 보겠느냐고 물으십니다. 역설적으로 이 말씀은 인자가 올 때에 믿음을 보기 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패역하고 죄가 넘치는 그런 시대에도 환경과 상관없이 항상 기도하고 
낙망하지 않는 믿음을 보시기를 원하십니다. 
바로 우리에게서 그런 믿음을 보기를 원하십니다. 

◈ 참된 믿음을 가지고 살기가 갈수록 어려워지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우리를 지치게 하고 낙망하게 하는 일들이 많이 일어납니다. 

다윗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시 42:5,11『[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11]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성도 여러분 다윗처럼 낙망될 때 다시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하나님을 향한 갈증을 느끼시기 바랍니다. 
억울한 과부처럼 부르짖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불의한 재판관이 아니십니다. 
우리는 억울한 과부가 아니라 자녀입니다. 

예수 믿는데 어려움이 계속되면 낙심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버렸나봐" 이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평안하게 해주는 것도 사랑이지만 고난 속에도 하나님의 사랑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느 날 챨스 스펄전 목사님이 농촌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농장 건물 꼭대기에 세워 놓은 바람개비가 있어서 보았더니 뱅뱅 돌아가는 바람개비 꼬리에다가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라는 글을 써 붙여놓았습니다. 

이것을 보면서 "아니~ 하나님의 사랑이 바람개비같이 변덕스럽다는 말입니까? 
어찌 저기에다가 그런 글을 붙여 놓았습니까?" 물었더니 농부는 기겁을 하면서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바람이 어느 방향에서 불던지 하나님의 사랑이 있다는 말입니다"
 
성도 여러분 나에게 어떤 바람이 불어오더라도 그 속에도 사랑이 있다는 것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십니다. 그 어떤 것도, 어떤 세력도, 권세도 이 하나님의 사랑을 끊을 수 없습니다. 
사람은 나를 버릴 수 있습니다. 자식이 부모를, 부모가 자식을 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습니다.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낙심하지 말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반드시 응답해주십니다. 
아직 응답되지 않는 우리의 기도는 지금 응답되는 중입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 말씀하신 예수님의 비유 속에 나오는 과부의 모습이 우리에게 용기가 되기 바랍니다. 
패역하고 악한 이 시대에 주님이 보기 원하시는 믿음을 보여주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항상 기도하고 낙망하지 않는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심인보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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