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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루살렘 성벽이 완성된 후에 (느 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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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성벽이 완성된 후에 (느 7:1-7)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총으로 하나님을 믿고 자녀된 우리는 엄청난 축복의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잘 깨닫지 못하고 누리지 못하며 살 때가 많습니다. 축복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받은 축복을 잘 관리하고 유지하며 누리는 것은 훨씬 중요합니다. 받은 축복을 잘 관리하지 못하면 오히려 저주가 되는 상황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사울은 평범한 청년으로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 되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그러나 사울왕은 축복을 잘 관리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누리지 못했습니다. 일평생 시기와 질투의 마음으로 다윗을 쫓아다녔습니다. 늘 불안한 마음에 살다가 악신이 들었습니다. 결국 블레셋에 나라는 망하고 자신과 아들이 전쟁터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기를 열망했지만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그 아들인 솔로몬에게 성전 건축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는 축복은 받았지만, 성전을 지어 놓고 이방신과 우상을 섬기며 세상 쾌락에 빠져,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며, 여호와를 통하여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축복은 맛보지 못하였습니다. 오히려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갈라져 하나님의 백성들이 서로 싸우는 아픔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초대 교회 일곱 집사들은 초대교회 일꾼으로 쓰임 받는 축복을 누렸습니다. 그러나 스데반과 빌립집사는 크게 쓰임을 받는 축복을 누렸지만, 브로고로, 니가노르, 디몬과 바메나는 임직식 때 이름만 나오고 그 후에는 아무런 기록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중에서 니골라는 나중에 초대 교회의 이단인 니골라 당을 만들었습니다. 차라리 직분을 받지 않은 것보다 못한 사람이 되어 버렸습니다. 

느헤미야와 이스라엘 백성이 서원했던 예루살렘 성벽은 수없는 시련과 방해에도 불구하고 52일 만에 완공됩니다. 사실 성 쌓는 일은 대단히 고달픈 일입니다. 생명을 걸고 수많은 위협과 음모 속에서 성을 쌓았고, 백성들도 최선을 다해 동참했습니다. 힘들었던 만큼 완성한 보람과 기쁨이 무엇보다 컸을 것입니다. 

예루살렘 성벽을 다 완성하게 되었을 때 모든 사람들은 무엇을 하고 싶었겠습니까? 아마도 제일 먼저 성벽 낙성식을 하면서 하나님께 감사 예배를 드리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힘든 과정을 겪으며 성벽을 완공했으니 벅찬 감격 속에서 잔치하며 자축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느헤미야의 1차 목표는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는 일이었으나, 궁극적인 목표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 백성으로서 정체성과 공동체성을 회복하고, 열방을 향한 축복의 통로로 쓰임 받는 것이었습니다. 

느헤미야서를 읽어보면 1장부터 6장에서는 느헤미야가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기 위하여 온 마음을 다해 애쓰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7장부터 마지막 13장까지는 느헤미야가 영적으로 무너져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성을 다시 세우기 위해 온 힘을 쏟는 것을 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느헤미야는 단지 무너진 성벽만 세우고 자기 일이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느헤미야의 궁극적인 관심사는 무너진 백성들의 영성을 회복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성벽재건 공사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무너진 정체성을 회복하는 일이요,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회복하는 기초가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성벽을 견고하게 세웠다 할지라도 그 성 안에 살고 있는 백성들이 견고한 믿음 가운데 서 있지 않는다면 성벽재건의 의미는 상실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백성들의 영성을 회복하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것이 하나님이 주신 선민의 축복을 누리는 것이 되며, 지키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바로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고 유지하기 위한 느헤미야가 취한 행동들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느헤미야가 성벽재건 공사를 마무리한 후에 그 축복을 유지하고 누리기 위해 취한 행동들이 무엇입니까? 


1. 느헤미야는 공사를 마무리한 후에 그 축복을 유지하기 위해 예배를 회복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성벽 재건은 건축 작품을 만들기 위한 것이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또, 만리장성처럼 관광자원을 만들기 위해서 성벽을 쌓은 것이 아닙니다. 그 목적은 예루살렘 백성들이 평안히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안전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벽이 무너져 있는 동안에 하나님께 예배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멀어졌습니다. 기도 생활도 게을러졌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느헤미야는 성벽재건을 한 후에 제일 먼저 문지기와 노래하는 자들과 레위 사람들을 세웠습니다. 

본문 1절에 “성벽이 건축되매 문짝을 달고 문지기와 노래하는 자들과 레위 사람들을 세운 후에”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문지기는 안내위원이고, 노래하는 자들은 성가대원이며, 레위사람들은 예배를 인도하는 제사장입니다. 

이러한 모든 내용을 종합하여 볼 때 느헤미야가 성벽재건 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우선순위는 바로 예배를 회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느헤미야 8장을 보게 되면 그들이 수문 앞 광장에 모여 성경을 읽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 대해 레위인들이 가르쳐 줍니다. 제사장들이 강단에 서서 아침부터 정오까지 계속 설교를 합니다. 백성들은 성경을 듣고 기도를 합니다. 자신의 죄를 발견하고 회개를 합니다. 스스로 성결케 합니다. 

아마도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가장 큰 부흥이 바로 성벽을 재건하고 난 후일 것입니다. 이처럼 느헤미야는 다른 것보다 가장 먼저 예배가 회복될 때, 그 예배를 통해 이스라엘이 부흥하게 되며, 하나님의 축복이 흘러넘치게 됨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성도들도 개인적으로나 교회적으로 영적인 부흥을 경험하시기를 바랍니다. 부흥은 다른 곳에서 오지 않습니다. 우리가 153기도를 하는 것처럼 예배의 회복, 말씀과 기도의 회복, 영혼사랑의 회복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예배를 회복하고, 기도와 말씀을 회복하면 성령이 우리 영혼에 충만하게 될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 영혼을 가득 채우게 되면 우리 영혼에 기쁨이 넘치게 되고, 성령의 역사를 보게 되고,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의 운행하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결국 영적인 부흥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느헤미야는 공사를 마무리한 후에 그 축복을 유지하기 위해 예루살렘 성읍을 다스릴 지도자를 세웠습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고 계속적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유지하기 위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충성하고, 민족을 사랑하는 지도자를 세웠습니다. 두 사람의 이름이 나오는데 하나니와 하나냐입니다. 

느헤미야가 하나니와 하나냐를 성읍의 책임자로 세운 이유가 있습니다. 본문 2절에 “내 아우 하나니와 영문의 관원 하나냐가 함께 예루살렘을 다스리게 하였는데 하나냐는 충성스러운 사람이요 하나님을 경외함이 무리 중에서 뛰어난 자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처럼 두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성실해서 백성들을 사랑하며 잘 보살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실제로 느 1:2-3절에서 알 수 있듯이 동생인 하나니는 느헤미야에게 허물어진 예루살렘 성의 참담한 상황을 알리기 위하여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페르시아 수산 궁에 있는 느헤미야에게 찾아와서 그 사실을 알려 주었습니다. 

하나니는 진심으로 민족을 사랑한 사람입니다. 허물어진 예루살렘 성벽을 다시 재건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헌신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느헤미야가자신의 동생이지만 하나니를 지도자로 세운 것입니다. 

그리고 영문 관원인 하나냐는 “충성스러운 사람이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무리 중에 뛰어났다”고 했습니다. 하나냐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그의 영성을 인정받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냐에게 다른 것은 부족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일은 누가 하는지 아십니까? 하나냐는 다른 어떤 것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충성하는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아무리 학벌이나 능력, 재산이 많고, 재능이 많다 하더라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이 결여되어 있다면 이런 사람은 영적 지도자의 자격에서 미달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기 원하는 사람은 다른 것은 다 부족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만큼은 부족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가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을 누리고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영적지도자들 잘 선택해야 합니다. 본문에 나오는 하나니와 하냐나처럼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며 성도를 사랑하는 신실 되고, 충성된 일꾼들이 지도자로 세움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힘있게 부흥할 수 있기 위하여 하나니와 같이 주의 일에 관심을 가지고 헌신하는 일꾼, 하나냐와 같이 충성되어 하나님을 경외함이 뛰어난 일꾼을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바로 나 자신이 그러한 일꾼이 되기를 원한다고 기도하셔서 우리 교회의 축복의 통로가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3. 느헤미야는 공사를 마무리한 후에 그 축복을 유지하기 위해 예루살렘 성읍의 평화와 안전을 위한 대책을 세웁니다.

3절을 보면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읍을 보호하는 수칙을 정합니다. 해가 뜨고 난 후에 성문을 열고, 해가 있을 때 성문을 닫는 것입니다. 보통 해가 뜰 때 성문을 열고 해가 질 때 닫는데, 이렇게 하는 것은 아직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직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하고 힘이 없기 때문에, 철저히 적의 침공으로부터 방어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느헤미야가 문지기를 세운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예루살렘 성이 성벽이 허물어져 있었고, 문이 없었기 때문에 외부 사람들이 마음대로 출입하고 노략질했습니다. 그런데 성벽을 쌓고 문을 달고 문지기를 세웠다는 사실은 들어가고 나오는 것을 통제하겠다는 의도가 담겨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 믿고 축복을 누리고 새로운 삶을 사는 사람은 세속적인 풍조나 생각이 마음대로 드나들지 못하게 영적인 문지기를 세워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죄를 지으며 마음대로 사는 모습을 따라하면 안 됩니다. 받은 축복을 파괴하고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을 살지 못하게 만드는 습관과 문화, 도덕과 윤리가 들어오려고 하면 문지기를 세워 막아야 합니다. 

가정에서도 아내와 남편이, 그리고 자녀가 지켜야 할 윤리 규범을 무시하면 깨집니다. 울타리를 세워 들어가고 나가는 것을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쉽게 잃어버리고 빼앗기지 않도록 간직하고 관리하는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악한 이단이 들어오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세상 풍조가 밀려오는 것을 막지 않고 그대로 두면 교회는 금방 세속화 되어 하나님의 축복을 상실하고 말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교회의 축복을 유지하는 영적인 문지기가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4. 느헤미야는 공사를 마무리한 후에 그 축복을 유지하기 위해 예루살렘을 번성하도록 계획을 세웁니다. 

본문 4절에 보면 “그 성읍은 광대하고 그 주민은 적으며 가옥은 미처 건축하지 못하였음이니라”고 했습니다. 느헤미야가 성벽을 재건할 당시에 예루살렘 성읍에 사는 백성은 매우 적었고, 그와 대비해서 예루살렘 성은 광대했습니다. 사람들은 “아니, 살 사람도 별로 없는데 성벽만 재건하면 무슨 소용이 있나?”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비전을 가지고 있었던 지도자였습니다. 사실 성벽 건축이라는 1차적인 비전보다 더 중요한 비전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루살렘 성을 잘 지켜 치안도 확보하고, 사람 살만한 안전한 도시로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성읍에 하나님의 백성들로 가득 채워지는 것입니다. 

본문 5절에 보시면 느헤미야는 하나님 주신 축복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 마음을 감동케 했다고 되어 있는데, 원어로는 하나님께서 생각을 넣어 주셨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 방법이 무엇입니까? 바로 포로에서 귀환한 자들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본문 5-7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느헤미야는 귀인과 민장과 백성들을 모아 족보에 등록시켰습니다. 그리고 8절부터 73절까지 족보의 인명수를 상세하게 기록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인구조사를 한 것인데, 그렇게 인구조사를 실시한 것은 이전에 예루살렘에 살았다가 타 지역으로 이주했던 조상의 후손들에 대한 객관적 자료를 만들어 그 후손들이 다시 예루살렘 성으로 돌아오도록 독려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3차에 걸쳐 귀환했습니다. 학자들 말을 빌면 1차로 귀환한 사람들은 애국심이 있는 사람이거나, 경건한 생활을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 또는 변화의 욕구가 있었던 사람 등 세 부류의 사람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제사장들이었습니다. 애국심이 있는 사람, 경건하게 살려는 사람, 변화를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신 새로운 땅에 대한 감격, 즉 70년 포로 생활에서 돌아와 자유를 얻고 조국을 찾았다는 감격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후손 대부분이 예루살렘에 살지 않고 다 흩어져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 주신 땅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돌아왔지만, 훼파된 예루살렘 성과 잦은 침략으로 현실은 몹시 피폐했습니다. 제사장들ㅇㄴ 백성들이 생활을 돌봐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아무도 변호해주거나 지켜주는 사람 없이 살길을 찾아 이리 저리 사방으로 흩어져 살고 있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이렇게 흩어져 있는 사람들을 다시 불러 모았습니다. 11장을 보면 느헤미야는 그들을 예루살렘 성안으로 이주시킵니다. 그들은 사명을 다시 찾고 황폐한 땅이지만 다시 옮겨왔습니다. 백성들이 예루살렘 성읍으로 돌아오니 예루살렘 성읍이 부흥되기 시작합니다. 예루살렘의 회복은 곧 이스라엘의 회복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 자신의 영적인 자리를 박차고 나가신 분들은 없습니까? 세상 일로 바빠서 예배의 자리를 지키지 못하는 분들은 없습니까? 세상의 즐거움과 편안함으로 기도의 자리를 박차고 나가지는 않았습니까? 삶이 고달프다고 주님을 찬양하는 자리, 영광 돌리는 자리를 박차고 나갔습니까? 좀 더 편하게 살고, 좀 더 나은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하나님이 힘들어도 충성하라고 했던 자리를 떠나있다면 이제 다시 돌아오셔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축복을 계속 누리고 유지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공적예배를 강조하고, 구역예배를 강조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리고 새벽기도를 강조하고, 153기도운동을 강조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육신의 힘으로 가지 못하는 축복의 자리에 강제로라도 안내하기 위함입니다. 

여러분, 이제 이사할 준비를 하시기 바랍니다. 주님께서 헌신의 자리에 있기를 원하시면 헌신의 자리로 가십시오. 내가 있는 곳이 비록 험난하고 어렵고 불편한 곳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그 자리를 지키라고 하면 꼭 지키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많이 받았습니다. 우리 흥해중앙교회도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과 은혜를 많이 받은 교회입니다. 중요한 것은 받은 은혜와 축복을 잘 지키며 누리는 것입니다. 

모든 축복은 그 축복 받은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기도 응답도 응답 받은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축복 받은 것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교회 부흥의 터와 기둥이 되고, 영적으로 부흥하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축복 받는 것보다 받은 축복을 잘 관리하고 활용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교회를 부흥시키며, 개인적인 영적부흥을 경험하는 삶이 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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