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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성령 강림절 (행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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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 강림절 (행 2:1-4)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행 2:1-4) 

오순절 성령 강림

오순절은 유월절과 초막절과 함께 구약의 3대 절기 입니다.  유월절은 출애굽을 기념하는 절기이고, 초막절은 광야 생활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오순절은 가나안 정착 후에 생겨난 절기로, 추수와 관련된 절기입니다. 

구약성경에는 오순절이란 명칭보다는 칠칠절, 맥추절, 처음 익은 열매 드리는 날이란 명칭으로 나타납니다.  오순절에 관한 성경 말씀은 다음과 같습니다.  

“안식일 이튿날 곧 너희가 요제로 단을 가져온 날부터 세어서 칠 안식일의 수효를 채우고, 제 칠 안식일 이튿날까지 합 오십 일을 계수하여 새 소제를 여호와께 드리되, 너희 처소에서 에바 십분 이로 만든 떡 두 개를 가져다가 흔들지니 이는 고운 가루에 누룩을 넣어서 구운 것이요 이는 첫 요제로 여호와께 드리는 것이며, 너희는 또 이 떡과 함께 일 년 되고 흠 없는 어린 양 일곱과 젊은 수소 하나와 숫양 둘을 드리되 이들을 그 소제와 그 전제와 함께 여호와께 드려서 번제를 삼을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며, 또 숫염소 하나로 속죄제를 드리며 일 년 된 어린 숫양 둘을 화목제 희생으로 드릴 것이요, 제사장은 그 첫 이삭의 떡과 함께 그 두 어린 양을 여호와 앞에 흔들어 요제를 삼을 것이요 이것들은 여호와께 드리는 성물인즉 제사장에게 돌릴 것이며, 이 날에 너희는 너희 중에 성회를 공포하고 아무 노동도 하지 말지니 이는 너희가 그 거하는 각처에서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레23:15-21) 

“칠 주를 계속할지니 곡식에 낫을 대는 첫날부터 칠 주를 계수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및 너희 중에 있는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지니라.”(신16:9-11)  

“칠칠절 처음 익은 열매 드리는 날에 너희가 여호와께 새 소제를 드릴 때에도 성회로 모일 것이요 아무 노동도 하지 말 것이며”(민28:26)  

칠칠절이란 명칭은 곡식에 낫을 처음 댄 날로부터 일곱 안식일이 지난 다음날, 즉 오십 일째 되는 날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신약의 오순절은 성령강림절입니다.  구약의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하셨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오순절과 신약의 성령강림절은 의미상 묘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구약 오순절이 첫 열매를 드린 날부터 50일째 되는 날인 것처럼, 신약 오순절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날부터 50일 째 되는 날입니다.  첫 열매로부터 모든 수확이 이루어진 것처럼, 주님의 부활로부터 모든 성도의 부활이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그 성도의 부활 능력이 바로 성령이 오심으로써 주신바 되었습니다.  
  
성령 강림의 장소도 의미가 있습니다.  성령님은 돌로 지은 예루살렘 성전에 강림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성도들이 모인 교회에 강림하셨습니다.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다 성령님이 거하시는 성전입니다.  성령님은 세상 사람들 속에 강림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믿는 성도들 속에 오셨습니다.  성령님은 성도 각 사람 속에 함께 계시며, 성도들이 모인 교회 안에 함께 계십니다.  
  
성령님이 왜 오셨을까요?  성도들 안에 영원히 거주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강림이란 표현을 쓴 것은 성령께서 성도들 안에 거주하시기 위해 오셨기 때문입니다.  임시 방문이 아닙니다.  떠나지 않고 영원히 함께 하십니다.  오순절에 강림하신 성령님은 오늘 우리 모든 성도들 안에 거주하고 계십니다.  언제까지나, 영원토록!  


바람 소리와 불의 형상

성령 강림 시에 시청각적으로 나타난 특별한 현상이 있습니다.  첫째는 바람 소리이고, 둘째는 불의 형상입니다.  
  
첫째는 바람 같은 소리입니다.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2)  성령을 바람으로 표현한 것은 의미심장합니다.  

성령을 가리키는 구약의 용어는 “j'Wr”(루아흐)이고, 신약의 용어는 “pneu'ma”(프뉴마)인데, 다 같이 바람이란 뜻이 있습니다.  

바람의 특성이 뭔가요?  예수님께서는 바람의 특성을 이렇게 설명하셨습니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요 3:8)  

바람의 존재는 육안으로 볼 수 없습니다.  볼 수 없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태풍을 보세요.  엄청난 파도를 일으키고, 비를 내리고, 사물들을 날려 보냅니다.  

성령의 역사도 마찬가집니다.  성령이 임하면 사람의 마음에 폭풍을 일으킵니다.  죄를 깨닫게 합니다.  회개하게 만듭니다.  새로운 삶을 결단하게 만듭니다.  새로운 가치관, 새로운 사고방식, 새로운 언행을 하게 만듭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성령을 받아 복음을 전했습니다.  교회를 세웠습니다.  박해를 견디고, 순교를 달게 받았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집니다.  성령의 임재 여부는 그 사람에게 일어난 변화로 알 수 있습니다.  
  
둘째는 불의 혀 같은 형상입니다.  구약에서 불은 하나님 임재의 표시였습니다.  모세가 바라본 떨기나무에 불이 임했습니다.  율법을 주신 시내산에 불이 임했습니다.  광야 시절에 이스라엘을 낮에는 구름 기둥이 밤에는 불기둥이 인도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제단과, 기드온의 제물에 불이 임하였습니다.  엘리야는 불 수레를 타고 승천했습니다.  오순절에 임한 성령님은 불의 형상으로 나타났습니다.  
  
불은 죄를 심판하고 정화시키는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에 불과 유황의 심판이 있었습니다.  광야 시절에 하나님을 원망하던 사람들이 불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모세를 대적하던 고라당 사람들이 불로 심판을 받았습니다.  엘리야를 체포하러 온 군병들이 불에 타죽는 심판을 받았습니다.  종말 심판도 불의 심판이 주류입니다.  계시록에 보면 지옥은 불로 심판하는 곳입니다.  
  
오순절에 임하신 성령님의 역사도 같습니다.  첫째로, 죄와 불의를 심판하는 심판적 역할입니다.  둘째로, 성도들을 깨끗하게 하는 성화의 역할입니다.  셋째로 덧붙일 것은, 주의 자녀로서 살아갈 수 있는 각종의 능력과, 주의 일을 맡아 감당할 수 있는 권세들입니다.  성령 받은 성도들은 죄와 싸우고 죄를 몰아냅니다.  불의를 심판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도록 능력을 받습니다.  주님이 맡겨주신 일을 감당하도록 각종의 은사와 권세를 받습니다.  오늘 내게 그런 은혜가 임한 것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다른 언어로 말하기 시작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나타난 최대 결과는 성령 받은 모든 성도들이 다른 언어로 말하기 시작 한 것입니다.  다른 언어란 말은 “eJtevrai" glwvssai"”(헤테라이스 글로싸이스, other tongues)입니다. “e{tero"”(헤테로스)란 말은 다르다(different)는 뜻입니다.  사도들이나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이 사용하던 기존 언어와 다른 언어입니다.  그 다른 언어가 구체적으로 뭘까요?  본문에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다른 언어란 바로 외국어입니다.  

본문에 보면 적어도 15군데의 지명이 나옵니다.  “우리가 우리 각 사람이 난 곳 방언으로 듣게 되는 것이 어찌 됨이냐?  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람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갑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브루기아와 밤빌리아, 애굽과 및 구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여러 지방에 사는 사람들과 로마로부터 온 나그네 곧 유대인과 유대교에 들어온 사람들과, 그레데인과 아라비아인들이라 우리가 다 우리의 각 언어로 하나님의 큰 일을 말함을 듣는도다 하고,”(행 2:8-11)  

오순절 날 성령 받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가서 군중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세계 각처에서 온 사람들이 각자 자기나라 말로 듣게 되었습니다.  
  
이런 기적에 대해서 두 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이것이 말하는 사람의 기적인지?  아니면 듣는 사람의 기적인지?  즉, 성령 받은 사람들이 각기 다른 언어들로 말을 했는지?  아니면 말하는 사람은 한 가지 말을 했는데 듣는 사람들이 각종 언어로 알아들었는지?  두 가지가 다 가능하지만 대개는 전자의 경우로 봅니다.  오순절 성령 받은 사람들은 생전 써본 적이 없는 언어로 유창하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런 언어의 기적은 단순히 외국어를 했다거나 신령한 언어를 말했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성령 강림으로 성도들의 삶의 패러다임이 변한 것입니다.  언어 변화는 곧 모든 삶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삶의 표현이 바로 언어이기 때문입니다.  패러다임(paradigm)이란 어형변화를 의미하는 말입니다.  

예를 들면 하나의 동사나 명사에 어근(語根)이 있고, 그 어근에 각종 語尾변화가 일어납니다.  남성이냐 여성이냐 중성이냐, 단수냐 복수냐, 혹은 시제에 따라 과거, 현재, 미래, 혹은 강세형의 각종 어미가 붙어서 수십 가지의 어형 변화가 일어나고, 이것이 하나의 언어 체계가 되어 각종의 생각과 삶을 표현하는 수단이 됩니다.  이러한 패러다임은 사회적으로 어떤 삶의 형태를 나타내는 중요한 수단입니다.  이런 어형 변화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바로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일어난 언어 체계의 변화입니다.  
  
본래 인류의 언어는 하나였습니다.  이런 하나의 언어가 혼잡해진 것은 바벨탑 사건입니다.  창세기 11장에 보면 노아 홍수 후에 인류는 다시 불신앙으로 뭉쳤습니다.  바벨탑을 쌓은 목적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우리 이름을 내자는 것이고, 둘째는 흩어짐을 면하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 대신 인간의 이름을 내는 것이 목적입니다.  온 땅에 충만 하라는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모여 살자는 것이 목적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말고 인간의 힘으로 잘 살아보자!  결국은 그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신 것은 당연합니다.  하나님은 바벨탑을 쌓던 사람들에게 벌을 내리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언어의 혼잡입니다.  서로 의사소통이 안 됩니다.  오히려 언어로 인해 서로 오해하고, 미워하고, 증오하고, 원수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흩어졌습니다.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음이니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창 11:9)  이렇게 인간 사이를 혼잡하게 했던 언어가 이제 성령 강림으로 다시 새로운 언어가 되었습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언어의 목적입니다.  바벨탑을 쌓은 사람들의 목적은 불신앙입니다.  하나님 없이 살며, 인간끼리 뭉쳐보자!  결과는 반대가 되었습니다.  뭉치기는커녕 서로 의사소통이 안 되고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서로 원수가 되었습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언어의 목적이 다시 본래 목적으로 돌아왔습니다.  바로 하나님 영광을 위한 사용입니다.  인간의 언어가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일에 사용되었습니다.  복음 전파는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거듭났습니다.  하나님 자녀가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 속에는 성령님이 거주하고 계십니다.  이제 매일의 삶을 통하여 그 증표가 나타나야 합니다.  우리 안에 성령님이 거하시는 가장 큰 증표가 무엇입니까?  그것이 바로 새로운 언어 체계입니다.  언어의 패러다임 전환이 일어나야 됩니다.  나는 예수님을 믿고 나서 새로운 말을 하고 있습니까?  말이 달라졌습니까?  “eJtevrai" glwvssai"”(헤테라이스 글로싸이스, other tongues)가 되었습니까?  종전의 혀가 그대로 있습니까?  아니면 새로운 혀가 되었습니까?  정말 새로운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혀가 거듭나야 됩니다.  오늘 내 자신을 보세요.  내 혀가 거듭났는지?  종전의 혀가 그대로 있는지?
  
야고보 사도는 세상에서 가장 고치기 힘든 것이 인간의 혀라고 합니다.  

“여러 종류의 짐승과 새와 벌레와 바다의 생물은 다 사람이 길들일 수 있고 길들여 왔거니와,  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약 3:7-8)  

코끼리, 사자, 호랑이 같은 맹수도 길들일 수 있습니다.  악어 같은 파충류도 길들일 수 있습니다.  가마우지나, 독수리, 매 같은 새도 길들일 수 있습니다.  바다의 돌고래도 길들일 수 있습니다.  심지어는 미물의 벌레도 길들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혀는 길들일 수 없습니다.  아무리 훈련 시켜도 도로아미타불입니다.  쉬지 않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합니다.  이 혀를 고칠 수 있는 것은 바로 성령님의 역사 밖에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거듭난 가장 큰 증표는 바로 언어의 변화입니다.  나는 새로운 말을 하고 있습니까?  말하는 것이 과거와 달라졌습니까?  욕설이 품위 있는 말로 변했습니까?  부정적인 말이 긍정적인 말로 바뀌었습니까?  비난하고 비방하고 비판하는 말이 칭찬하는 말로 변했습니까?  남을 깎아내리고 폄훼하고 죽이는 말에서 남을 일으키고 살리는 말로 바뀌었습니까?  거짓말이 참 말로 변했습니까?  남을 낙심시키고 넘어지게 만드는 말에서 남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말로 변했습니까?  새 사람은 혀가 변합니다.  언어가 변합니다.  전과는 다른 “eJtevrai" glwvssai"”(헤테라이스 글로싸이스, other tongues)가 되시기 바랍니다.  
  
따지고 보면 인생의 모든 문제는 언어를 잘못 사용하는 데서 발생합니다.  오해가 어디서 옵니까?  미움과 증오심이 어디서 옵니까?  불쾌함, 낙심, 불만이 어디서 옵니까?  자녀들이 왜 집을 나가고 반항합니까?  부부 사이가 왜 틀어집니까?  거의 대부분이 언어를 잘못 사용하는 데서 옵니다.  

요즘 가정불화를 주제로 하는 방송 프로그램이 많습니다.  아이들이 달라졌어요!  부모가 달라졌어요!  그 내용들을 자세히 보면 다 언어에서 시작됩니다.  문제 해법도 역시 언어에서 시작됩니다.  부정적 언사, 반박, 비난, 탓하기가 주범입니다.  이런 언어를 긍정적 언사로 바꾸면 치료가 시작됩니다.  긍정적 언사, 수용, 동의, 칭찬, 격려.  언어 변화가 인간 문제 해결의 출발점입니다.  
  
언어는 인생의 방향타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큰 배가 키 하나로 조종되듯이, 인생도 혀로 방향을 결정한다고 합니다.  “또 배를 보라 그렇게 크고 광풍에 밀려가는 것들을 지극히 작은 키로써 사공의 뜻대로 운행하나니,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약 3:4-5)  

오늘 내 언어 체계를 바꾸세요.  성령님이 지시하시는 대로 모든 말을 바꾸세요.  새로운 삶이 시작 될 겁니다.  오순절 날 새로운 언어를 시작한 사람들처럼 오늘 새로운 언어를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내 인생 앞날의 모든 변화는 언어 변화에 따라 결정될 겁니다.  새로운 언어, 다른 언어(eJtevrai" glwvssai")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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