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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지혜가 부르는 소리 (잠 8: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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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가 부르는 소리 (잠 8:22-31)


오늘은 오순절 성령 강림 후 첫 번째 주일로서 교회는 삼위일체 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우리가 믿는 기독교를 기독교로 만드는 근본 토대가 바로 이 삼위일체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삼위일체론이 빠진 기독교 신앙은 참 기독교 신앙이라고 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삼위일체론이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때문에 아예 삼위일체론을 이해하기를 포기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무리하게 삼위일체론을 이해하려고 하다가 잘못 이해해서 삼신론이나 단일신론에 빠지는 경우도 꽤나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삼신론이나 단일신론은 교회 초기부터 이단이었고 바른 기독교 신앙이 아니었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 성삼위가 한 하나님으로 계신다는 삼위일체론은 성경과 관계없는 신학적 사변에 불과하다는 주장이 일찍부터 강하게 제기되었습니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물론 삼위일체라는 표현 그 자체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삼위일체론은 성서적인 근거에서 출발한 교리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봅니다. 

요한복음 1장 1절 말씀에 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까?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진술입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리고 부활하신 주님을 본 도마가 뭐라고 고백했습니까?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요 20:28) 요한복음 기자도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 20:31) 

삼위일체론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시고 성자 안에 성부 하나님이 온전히 거하신다는 사실에서 출발했습니다. 사도 바울도 분명히 고백했습니다.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고후 5:19)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 계시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은 하나님의 사역이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를 보여 달라고 요구하는 빌립에게 주님도 친히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요 14:10)

다만 여기서 주의해야 할 것은 예수님과 하나님이 하나라는 사실을 잘못 이해해서 성자가 성부이시고 성부가 성자이시라고 이해하면 아니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이해는 일찍이 교회가 양태론적 단일신론이라는 이단으로 규정된 잘못된 이해라는 말입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한 하나님이신 것은 성부가 성자가 되고 성자가 성령이 되고 성령이 성부가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성부가 성자 안에 거하시고 성자가 성부 안에 거하시며 성부와 성자가 성령 안에 거하시기 때문에 한 하나님이라고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으로 봉독한 잠언 8장의 주제라고 할 수 있는 지혜가 하나님의 삼위일체성에 관한 직접적인 증거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신약 성서 기자들은 이 지혜를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관련해서 새롭게 발전적으로 해석했습니다. 때문에 마태복음 기자는 하나님의 지혜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계시되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마 11:19 하반절) 이 지혜가 구체적으로 역사하는 모습을 통해서 삼위일체 하나님을 좀 더 바르게 이해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비록 우리 인간의 극히 제한적인 사고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없지만... 

먼저 잠언 기자는 지혜가 사람들을 생명으로 부르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잠언 8잘 1절 말씀입니다. “지혜가 부르지 아니하느냐 명철이 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느냐?” 또한 잠언 8장 35절 말씀입니다. “대저 나를 믿는 자는 생명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얻을 것임이니라.” 그렇습니다! 지혜는 사람들을 하나님에게 이끌기 위해서 부르고 있습니다. 왜 지혜가 부르고 있습니까? 그 까닭은 궁극적인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지혜가 교훈이나 가르침 같은 그 어떤 것이 아니라 나라고 하는 인격적인 존재로 소개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공생애 초기부터 그토록 간절히 부르셨던 그 부르심이 생각나지 않습니까? “...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 4:17 하반절)

그리고 지혜는 그 부르는 소리를 듣고 믿는 사람들 안에 거합니다. 다시 말해서 바르게 응답하는 사람들은 지혜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지혜와 하나가 된 삶을 살게 된다는 말입니다. 일찍이 사도 바울도 분명히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롬 5:1) 그 화평을 어떻게 누릴 수 있게 됩니까? 우리의 수단과 방법으로 가능합니까?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 화평을 누릴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오늘도 우리 안에 거하시며 우리의 삶을 친히 다스리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참 평화를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잠언 기자는 지혜가 하나님의 기쁨이 된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실 때에 지혜는 어디에 있었습니까? 그 때에 이미 하나님과 함께 있었습니다. “그가 하늘을 지으시며 궁창을 해면에 두르실 때에 내가 거기 있었고 그가 위로 구름 하늘을 견고하게 하시며 바다의 샘들을 힘 있게 하시며 바다의 한계를 정하여 물이 명령을 거스르지 못하게 하시며 또 땅의 기초를 정하실 때에 내가 그 곁에 있어서 창조자가 되어 날마다 그의 기뻐하신 바가 되었으며 항상 그 앞에서 즐거워하였으며.”(잠 8:27~30) 지혜는 하나님의 창조 사역에 동참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렸습니다. 또한 하나님 앞에서 항상 즐거워했습니다. 

일찍이 주님은 자신을 영접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서 비유로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까 비유하건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하매 그들이 말하기를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마 11:16~19) 그 당시 종교 지도자들이 왜 주님을 영접하지 않았습니까? 주님이 죄인들과 먹고 마시고 함께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주님의 그 사귐이 하늘 나라 잔치를 미리 맛보게 하는 참으로 기쁘고 또 복된 사건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항상 기쁨을 안겨 줄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끊임없이 새로운 지식을 축적해야만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는 압박감에 시달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렇게 애써 쌓은 많은 지식도 참 지혜로 승화될 수는 없다는 사실입니다. 많은 지식이 생존의 기술을 가르쳐 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결코 궁극적인 생명을 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일찍이 시인은 말했습니다.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열심히 새로운 지식을 구하는 대신 주야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사람이 참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시 1:1~2) 하나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고 그 말씀에 대하여 바르게 응답하는 삶을 사는 사람이 진정으로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복된 길을 걷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지혜는 소리 높여 부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귀한 선물인 생명을 주기 위해서 지금도 지혜가 우리를 부르고 있습니다. 지혜는 그 부름을 듣고 믿고 따르는 사람 안에 거합니다.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은 하나님의 지혜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듣고 그를 따르는 사람들을 가리켜 어리석다고 비웃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참 지혜를 따르는 사람이야말로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참으로 복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요 지혜이신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온전히 순종함으로 말미암아 이 땅에서도 복을 받고 장차 그 주님의 보좌 앞에서 의의 면류관, 생명의 면류관, 영광의 면류관을 상급으로 받게 되는 참으로 충성스러운 주님의 제자들이 다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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