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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라를 위한 기도 (에 4: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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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위한 기도 (에 4:4-17)

며칠 전 신문에 이런 황당한 기사가 난 것을 보았습니다. 지난달 28일 영국의 선덜랜드에서 5천여 명 이상이 참석한 대규모 마라톤대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마라톤 대회에서 1등을 제외한 나머지 5천여 명의 모든 참석자들이 코스 이탈로 실격처리 되고 말았습니다. 왜 그랬을까? 사건의 경위는 이렇습니다. 경기가 시작되고 시간이 지나면서 1등은 저만치 앞서 가고 1위와 2위 그룹간의 간격이 벌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2위 그룹으로 가던 선두가 코스를 이탈하여 다른 길고 간 것입니다. 마라톤 코스의 경로표시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선수들이 다른 길로 가면 대회 진행요원들이 코스를 바로잡아 주어야 하는데, 대회 진행요원마저 잘못된 지점에 서 있었기에 그 진행요원이 서 있는 코스를 따라가다 보니 나머지 사람 모두가 잘못된 길로 가고 만 것입니다. 결국 1등을 제외한 나머지는 전부 그 뒤를 따라 갔다가 마지막에 골인지점까지 완주를 하긴 했지만, 42.195km중에서 264m를 덜 뛴 것이 되어 전원 실격처리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이 기사를 읽으면서 서산대사가 썼다는 시가 생각났습니다. ‘눈길을 걸을 때 발걸음을 함부로 하지 말라. 지금 그대 발자국이 뒤에 오는 사람의 길이 되느니.’ 그리고 동시에 지금 우리나라의 모습이 꼭 그와 같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마치 가야할 코스를 잃어버리고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가고 있는, 열심히 뛰고는 있지만 결국에는 실격처리 될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이 우리가 사는 오늘 우리의 모습은 아닌가 하고 말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인 에스더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주 극단적인 위기에 봉착해 있었습니다. 주전 586년 남 유다는 바벨론 군대에 의해서 멸망을 당하고 맙니다. 나라가 멸망당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고 약 50년 후엔 주전 537년 페르시아 왕 고레스의 칙령에 의해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때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페르시아의 첫 번째 왕인 고레스가 바벨론 시대에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왔던 포로들을 고국 땅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허락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스룹바벨과 예수아를 중심으로 약 5만여 명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국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물론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던 모든 사람이 돌아온 것은 아닙니다. 페르시아에 남아 있기를 원하는 사람은 여전히 그 땅에 남아 있을 수 있었고, 그렇게 남아 있는 사람이 고향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사람보다 훨씬 많았습니다. 
 
에스더서의 말씀은 그렇게 1차 포로귀환이 일어난 후 여전히 페르시아에 남아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습니다. 1차 포로귀환이 있은 후 약 60여년의 시간이 지난 후 아하수에로가 페르시아의 왕으로 있던 때였습니다. 아하수에로 왕은 하만이라는 사람을 자신 다음으로 높은 지위에 올려놓았습니다. 

에스더 3:1절에서 이 하만을 아각 사람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만을 소개하면서 ‘아각 사람’이라는 것을 강조한 이유는 그가 유대인들에 대해 얼마나 강한 적개심을 갖고 있는 사람인지를 보여주는 표현입니다. 성경학자들은 하만의 조상인 ‘아각’을 사무엘상 15장에 나오는 아말렉 왕일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하나님께서 사울 왕에게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명령을 내리셨고, 그 명령을 받은 사울 왕은 군대를 이끌고 가서 아말렉과 싸워 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그런데 사울 왕은 ‘모든 것을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고 아말렉의 왕인 아각을 죽이지 않고 사로잡아 오고, 양과 소 등 많은 노략물도 산 채로 가져옵니다. 그 일로 사울은 하나님께 버림을 받게 되었지만, 사무엘은 사울 왕이 사로잡아온 아각 왕을 길갈로 끌고 가서 죽이고 맙니다. 그 아각의 후손이 페르시아 지역에 살고 있었고, 하만은 페르시아 왕들의 이방인 포용정책으로 인해 페르시아의 고위관리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이 아각 사람 하만이 높은 지위에 오르게 되면서 그의 눈에 거스리는 사람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가 바로 유대인인 모르드개입니다. 높은 지위에 오른 하만이 대궐 문을 출입할 때마다 모든 신하들이 하만에게 무릎을 꿇고 절을 했는데, 유독 유대인인 모르드개만은 하만에게 절을 하지 않았습니다. 모르드개가 하만에게 절을 하지 않는 이유는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것 때문입니다.

‘유대인이기 때문에 절을 하지 않는다’는 말은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첫 번째는 자신은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에게 무릎을 꿇고 절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고, 다른 하나는 율법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아말렉 사람은 반드시 없애야 한다고 말씀하셨기에 아말렉 사람에 대한 증오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어떤 이유이든 대궐 문지기였던 모르드개는 어마어마한 권력을 가진 하만에게 절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 일로 인해서 하만은 모르드개에게 분노했습니다. 그리고는 그가 유대인임을 알고는 모르드개만 죽이는 것으로 마음이 풀릴 것 같지 않아 페르시아 제국 안에 있는 유대인들을 모두 죽여야겠다는 마음을 품게 됩니다. 성경학자들은 당시 페르시아 제국에 있던 유대인들이 약 70만 명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율법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말렉 사람을 다 죽여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지금 에스더 시대에는 아말렉의 후손인 하만에 의해서 페르시아에 있는 유대인 70만 명 전체가 죽게 될 위기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하만은 페르시아 제국에서 유대인을 모두 없애는 일이 자신의 권력을 가지고는 불가능함을 잘 알고 있습니다. 반드시 아하수에로 왕의 허락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아하수에로 왕에게 유대인을 없애기 위해 두 가지 편법을 씁니다. 첫 번째는 거짓된 정보를 왕에게 말해줍니다. ‘이 페르시아 제국 여러 지방에 독특한 법을 가지고 사는 한 민족이 있는데, 그들을 그냥 놔두는 것은 페르시아 제국에 아무런 유익이 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두 번째는 왕이 그 민족을 없애도록 허락만 해 주신다면 왕에게 은 일만 달란트를 주겠다고 제안합니다. 

에스더 당시인 주전 5세기에 살았던 그리스의 역사학자 헤로도투스(Herodotus)에 의하면 당시 페르시아 제국의 1년 세금 수입이 1만 5천 달란트였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유대인을 제거하는 것을 허락해 준 대가로 하만이 아하수에로 왕에게 주겠다고 한 금액은 페르시아 제국의 1년 예산의 2/3에 해당하는 어머어마한 액수입니다. 페르시아 시대에 대단한 재력가가 있긴 했지만, 그만큼 많은 재산을 가진 사람은 불가능합니다. 

그렇다면 하만이 아하수에로 왕에게 주기로 한 그 어마어마한 돈은 분명 자신의 돈이 아닐 것입니다. 설령 하만이 그 많은 돈을 가졌다 하더라도 자신의 분노를 해결하는데 그 많은 돈을 쓰진 않을 것이니다. 그러면 그 많은 돈을 어디에서 마련할 수 있을까? 우리는 그 해답을 에스더 3:13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아하수에로 왕의 허락을 받은 하만은 열두 번째 달인 아달월 13일을 유대인을 진멸하는 디데이(D-Day)로 잡았습니다. 

아달월은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태양력으로 하면 2,3월에 해당합니다. 그 아달월 13일에는 누구든지 유대인을 닥치는 대로 죽여도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재산을 탈취하라’고 말합니다. 70만 명의 유대인들을 다 죽이고 그들이 가지고 있는 재산을 모두 빼앗으면 1만 달란트는 족히 넘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어쩌면 유대인들을 죽이고 그들의 재산을 빼앗으면 왕에게 1만 달란트를 드리고도 자신에게도 많은 돈이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만은 일거양득이 되는 것입니다. 눈엣가시처럼 미운 모르드개만이 아니라 자신의 조상들을 멸망시켰던 유대인들에게 대대적인 복수를 할 수 있게 되고, 더 나아가 유대인들의 재산을 탈취함으로써 엄청난 재산상의 이익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는 왕의 인장인 반지를 받아 조서를 만들고 페르시아 제국 전역에 그 조서를 전달했습니다. 그 조서가 전달되는 곳마다 유대인들은 엄청난 두려움에 떨어야 했습니다. 아달월 13일이 되면 유대인들은 모두 처참하게 죽어야 하고, 그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온 이후 선조 때부터 100여년 이상 피눈물 나게 일해서 만들어놓은 재산을 다 빼앗기게 생겼으니, 어찌 두렵지 않겠습니까?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어마어마한 권력을 가진 하만의 간계에 의해서 유대인들은 페르시아 제국에서 모두 살육을 당해야 하고, 재산을 다 빼앗겨야 합니다. 이보다 더 큰 위기는 없습니다.
지금 페르시아 제국에 있는 유대인들은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사는 시대도 위기입니다. 우리는 위기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물론 에스더 시대의 유대인들만큼의 위기는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자신의 나라로 되돌아가지 못하고 이국땅인 페르시아에 살면서 그 제국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죽게 될 위기, 100여 년 동안 고생고생하며 벌어놓은 모든 재산을 다 빼앗기게 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우리에게 닥친 위기는 그런 위기는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게도 엄청난 위기가 다가와 있습니다. 우리는 경제적으로 넉넉하고 부유하게 살고 있습니다. 아무리 경제가 어렵다 하더라도 지난 역사에서 가장 풍요롭게 살고 있습니다. 미국발 금융위기도 이겨냈고, 유럽발 금융위기 앞에서도 우리는 전혀 흔들림이 없이 잘 버티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숨어 있는 탐욕이 우리 사회를 위기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버진 아일랜드를 비롯한 조세피난처에 빼돌린 어마어마한 돈도 그렇거니와, 아직도 우리 사회에 일반화되어 있는 감추어진 지하경제가 언제 그 부패의 고름이 터질지 모릅니다. 지금까지는 그 고름을 안고도 잘 버텨왔습니다. 그러나 어떤 상황이 그 부패의 고름을 터지게 할지 두려움이 있습니다. 
  
더 걱정스러운 것이 있습니다. 경제의 문제는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잘 이겨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즘 벌어지고 있는 이념의 대립은 언젠가 우리 사회를 무너뜨리는 엄청난 회오리가 될지 모릅니다. 이념 대립에다 요즘에는 지역 감정까지 합세하면서 걷잡을 수 없는 논쟁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요즘 인터넷에 달리는 댓글을 보면 지역감정이 너무 심하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과거 정치적인 목적으로 쓰던 때보다도 훨씬 더 심각합니다.
  
이념이 다를 수는 있습니다. 생각이 다르고 평가하는 가치가 다르기 때문에 같은 문제 같은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가 분명 있을 수 있습니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다른 생각을 서로가 존중해 주어야 합니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해주지 않으면 나만이 옳다는 외골수에 빠지게 되고 그것이 엄청난 수렁이 되고 맙니다. 다양성의 가치를 통해서 발전해가는 우리의 희망찬 미래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수렁이 되고 맙니다.
  
더 안타까운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요즘 인터넷을 통해서 보여지고 있는 이념과 지역감정이 어린 학생들과 젊은 청년들을 중심으로 아무런 개념 없이 사용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른 사고와 온건한 가치관을 만들어가야 할 아주 중요한 시기인 청소년기와 청년기에 왜곡되고 잘못된 가치관이 만들어지고, 잘못된 사상이나 문화가 무비판적으로 수용되고 있는 것이 오늘의 모습입니다. 

그런 왜곡되고 편협한 사고를 가진 사람들은 결국에는 우리 사회에 엄청난 해악을 끼치는 존재가 되고 맙니다. 더구나 바른 사고, 바른 가치관을 갖게 만드는 인문학을 대학에서 추방하고 있습니다. 경쟁력이라는 것을 앞세워 대학에서조차 취직 잘 되는 학과는 살아남고,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 무엇이 참인지, 무엇이 바른 삶인지를 생각하고 깨닫게 하는 학문들은 폐기처분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 사회가 더 나아질 것이라는 것을 누가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예전부터 계속해서 제기되어 왔던 물질만능주의가 여전히 팽배해 있다는 것입니다. 물질에 대한 욕심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지금보다 좀 더 나은 생활을 하고 싶다는 욕심이나 욕망이 우리를 자극해서 우리를 발전시킬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물질이 우리의 삶에 필요한 도구라는 생각을 넘어서 물질에 노예가 된다면, 그 결과는 실로 엄청난 비극으로 우리에게 되돌아올 것입니다. 유대인에 대한 증오와 물질에 대한 욕심이 하만으로 하여금 유대인 전체를 죽이도록 하는 끔찍한 일들을 만들어낸 것처럼 말입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이 점점 더 위기의 수렁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는데, 우리는 이 일에 대해서 무관심하거나, 내가 과여할 문제가 아니라고 방관만 하고 있어서는 분명 안 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시대에 비극을 막기 위해서 하나님으로부터 의인으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10명의 의인이 없어서 멸망당한 소돔과 고모라처럼 되지 않게 하려면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이 시대를 구하는 의인들이 되어야 합니다. 
  
페르시아 제국에 있는 70만 명의 유대인들이 몰살당할 위기에 있을 때 유대인들이 두려움에 떨고만 있었다면 그들은 아달월 13일에 모두 죽임당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아달월 13일의 위기를 헤쳐 나갔고, 유대인 전체가 살아났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대적이었던 하만과 그의 졸개들에게 멋지게 복수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중심에 모르드개와 에스더가 있었습니다. 동족 유대인들이 모두 죽게 될 위기에 처하게 되자 모르드개는 대궐 문 앞에서 굵은 베 옷을 입고 대성통곡을 하게 됩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왕비 에스더는 사촌 오빠인 모르드개가 그런 행동을 하자 그 이유를 묻습니다. 그리고 모르드개는 작금에 일어난 하만의 계략을 왕비 에스더에게 다 알려줍니다. 왕이 그의 인장반지로 도장을 찍어 내려 보낸 조서는 쉽게 철회되거나 변경될 수 없음을 모르드개나 왕비 에스더도 잘 알고 있습니다. 왕의 이름으로 내려진 조서인데, 왕이 그것을 쉽게 철회하거나 그 내용을 변경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한다면 한 나라의 왕으로서의 권위가 서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을 만나 사정 이야기를 하고, 조서의 내용을 철회하도록 간청해야만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왕을 만나러 가야 합니다. 그런데 왕을 만나러 가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당시에는 왕이 부르지 않았는데 왕 앞에 나가는 것은 왕을 암살하려는 자로 취급되어 처형을 당하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것은 아하수에로 왕 이전부터 내려오는 페르시아의 오래된 법이었습니다. 왕을 모시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백성들도 다 알고 있는 아주 중요한 법입니다. 

그런데 에스더는 자기 동족 유대인을 살리기 위해서는 왕을 만나야 합니다. 왕이 언제 자신을 불러줄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왕이 불러줄 때까지 무한정 기다릴 수만은 없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자기 동족이 모두 죽임 당하는 날이 다가와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에스더는 결단을 합니다. 왕 앞에 가기로 말입니다. 이때도 왕이 에스더를 어여삐 여겨 그의 손에 있는 금규를 내밀어 준다면 에스더는 목숨을 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왕이 금규를 내밀지 않는다면 제아무리 왕비라 하더라도 그녀는 죽임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사촌 오라비 모르드개의 권면을 받은 에스더는 왕 앞에 가기로 하고 모르드개를 통해서 온 유다 백성들에게 기도해 줄 것을 요청합니다. 아무리 왕의 사랑을 받고 있는 왕비라 하더라도 왕비라는 권력이나 자리를 가지고는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왕의 사랑을 받고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돕지 않으시면 그 무엇 하나 이루어질 수 없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온 백성들이 금식하며 기도한 후에 에스더는 아하수에로 왕 앞에 찾아갑니다. 에스더가 나타나자 왕은 사랑스러운 마음으로 에스더를 맞아들입니다. 왕의 손에 있던 금규를 내밀어 에스더를 반갑게 맞아들입니다. 그렇게 해서 하만의 간교한 계략은 만천하에 드러나게 되고, 유대인을 모두 죽이려했던 하만이 결국은 자신이 만든 장대에 달려 죽고 맙니다. 하만과 함께 유대인을 죽이려 했던 사람들이 오히려 죽임을 당하고, 페르시아에 있던 70만 명의 유대인들은 죽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기를 극복한 것입니다. 

여러분, 위기에 처한 유대인을 구할 수 있었던 힘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왕비라는 권력을 가진 에스더 때문입니까? 지혜로운 모르드개의 힘 때문입니까? 위기에 처한 유대인을 구할 수 있었던 것은 기도였습니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아하수에로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왕후 에스더를 어여삐 보게 만드셨고, 하만의 계략이 드러났을 때 자신의 권위가 추락될 수 있음을 알면서도 조서의 내용을 바꿔 유대인을 죽이지 못하게 하고, 반대로 유대인을 죽이려 하던 자들을 죽이도록 했습니다. 
  
오늘 우리 사회가 처한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은 무엇입니까? 대학 수능시험 만점자를 수만 명 만들어내도록 아이들에게 공부 많이 시키면 우리 사회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습니까? 나라가 지금보다 부강해지고, 기업들이 돈을 많이 벌면, 그리고 청년들이 취직이 잘 되면 우리나라의 위기가 극복될 수 있는 것입니까? 위기 극복의 힘은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에스더와 같이 왕비의 권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습니다. 기도가 유대인을 살렸듯이 오늘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여 위기에 빠진 우리나라, 우리 사회를 구할 수 있습니다. 기도보다 더 큰 힘이 없습니다.  
  
왕비 에스더도 그것을 잘 알았기에 모르드개를 통해서 온 백성이 금식하며 기도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기도는 능력이 있습니다.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께서 하시도록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기도에 있습니다.
  
20년 동안의 외갓집 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던 야곱은 형 에서가 400명의 군사를 이끌고 자신을 맞으러 온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는 가슴이 답답하고 두려워 어찌할 바를 알지 못했습니다. 자기 나름대로 살아남을 궁리를 다 하고 계획을 다 세워놓았지만, 그것으로는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얍복강가에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밤새도록 천사와 씨름했다고 기록한 것처럼 목숨을 걸고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응답을 받았습니다. 다음 날 아침 형 에서를 만나러 갔을 때 에서의 마음은 이미 다 녹아 있었습니다. 동생에게 복수하기 위해서 군사 400명을 이끌고 왔는데, 야곱을 만났을 때에는 달려와서 목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간절함에 서로 울면서 기쁨의 재회를 하게 됩니다.

기도가 그렇게 만든 것입니다. 기도에는 그런 능력이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나라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은 우리 교단 총회가 정한 나라를 위한 기도주일입니다. 오늘을 ‘나라를 위한 기도주일’로 지킨 이유가 있습니다. 1948년 5월 31일부터 12월 18일까지 203일 동안 우리나라 제헌국회가 열렸습니다. 우리나라 처음으로 법을 만들고 나라를 운영할 국회가 활동을 시작한 것입니다. 

그 첫날인 1948년 5월 31일, 198명의 국회의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시작된 첫 번째 회의를 개회할 때 임시의장이었던 이승만 박사는 ‘우리나라가 독립민주국이 되어 제1차 회의를 열게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기에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고 말하고, 국회의원이었던 이윤영 목사님으로 하여금 기도하게 했습니다. 그 때 제1회 제헌국회에 참석한 모든 의원들이 다 자리에서 일어나 함께 기도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나라가 시작된 것입니다.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우리 교단 총회는 5월 마지막 주일을 나라를 위한 기도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의 공과(功過)를 떠나서 기도로 우리나라가 시작되었다는 것은 참으로 의미 있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도 그 때의 마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지금처럼 혼란과 위기가 계속되도록 방치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지금까지 지켜주신 하나님께서 앞으로도 우리나라를 지켜주시도록,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우리나라에 베풀어주신 은혜를 전 세계에 나눌 수 있는 나라가 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것이 오늘 우리를 불러 이 땅에서 신앙생활하게 하신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에스더와 모르드개, 그리고 유대인들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아하수에로 왕의 마음을 감동시켜 유대인을 위기에서 벗어나게 하신 것처럼, 우리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위기에 빠진 우리 민족을 바른 길로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기도하는 우리를 통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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