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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가정의달] 복을 받아 누리는 길 (잠 3: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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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을 받아 누리는 길 (잠 3:1-10)


가정의 달 5월을 마지막 보내면서“복을 받아 누리는 길”이라는 제목의 말씀으로 함께 은혜 받고자 합니다. 

찬송가 28장에“복의 근원 강림하사 찬송하게 하소서”라는 내용의 가사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만복의 근원이십니다.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은 죽어서 천국 가는 복만 아니라,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도 풍성한 복을 받아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그 복을 받아 누리는 방법에 대해 말씀하신 것이 본문입니다. 하나님이 가르쳐주신 방법을 믿고 따르는 사람은 누구나 다 넘치는 축복을 받아 누렸습니다. 

어느 종교학자가 육신의 욕망대로 살아가는 사람들과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조사해서 대조해 보았습니다. 예수를 잘 믿고 섬기는 사람들은 3,4대에 가서 큰 축복을 받는 사람들이 많은 반면,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그 후손 가운데 정신병자나 장애인이 많이 나왔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세계역사를 볼 때 전 세계 170여 개국 가운데 선진국이 30여 개국이라고 합니다. 이 선진국 가운데 96%가 기독교 국가라고 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복을 받아 누린다는 증거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토록 원하는 축복을 받아 누리는 방법은 무엇이겠습니까?

1. 장수와 평강의 복을 받아 누리는 길 

옛 풍습이나 미신 가운데 장수를 누리게 하는 속설들이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얼굴의 코와 입 사이의 인중이 길어야 오래 산다든가, 또는 손금의 명금이 손바닥의 엄지가락을 싸고 팔목을 돌아가야 오래 산다든가, 또한 귀 바퀴가 넓적하게 커야 오래 산다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음력 정월보름 날에는 국수를 먹어야 오래 산다든가, 아기 돌에는 목에 실 꾸러미를 걸어줘야 오래 산다고도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새차를 사면 핸들 밑에 마른 명태에 실 꾸러미를 붙들어 맨 것을 보았습니다. 이를 볼 때 우리 선조들이 얼마나 오래 살길 바랐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사랑하는 후손들과 더불어 오래 오래 평강을 누리면서 살기를 원합니다. 평강의 복은 준비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내일의 쓸 것을 위해 근검절약을 해야 합니다. 겨울이 올 줄 알면서 준비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엄동설한의 고통을 피할 길이 없습니다. 누구나 다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 죽음을 준비하지 않는다면 죽은 후에 있을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오늘날처럼 사악하고 타락한 세상을 바라보면서 예수님의 재림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하겠습니다. 그 방법이 무엇입니까? 

본문 1절~2절에 말씀하시기를“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그것이 너로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며 평강을 더하게 하리라”하셨습니다. 

또한 본문 7절~8절 말씀에는“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이것이 네 몸에 양약이 되어 네 골수로 윤택하게 하리라”하셨습니다.“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라고 하셨습니다. 자신의 경험이나 생각, 자신이 터득한 지식을 과신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적 교만을 버리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이 곧 평강의 길이며, 몸의 양약이라는 것입니다. 

구약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야곱이라는 사람을 예를 들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야곱은 이스라엘 나라 조상입니다. 야곱은 장자권과 축복권을 가로챈 일로 인해 쌍둥이 형인 에서의 원한을 피해 먼 곳으로 도망을 갔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불쌍히 여기셔서 그에게 아들 열둘과 딸 하나를 낳았을 뿐 아니라 큰 부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때에 하나님은 야곱에게 벧엘로 돌아가 그곳에서 하나님을 섬기라고 하셨습니다. 벧엘을 향해 가던 야곱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물 많고 초지 좋은 세겜이라는 곳에 머물렀습니다.“벧엘”이란“하나님의 집”이라는 뜻이며,“세겜”이란“일부분”이라는 뜻입니다. 벧엘 즉 하나님의 집을 향해 가던 야곱은 절반의 순종으로 세겜에 머물렀습니다. 한발은 교회에 한발은 세상에 딛고 살아가는 얼치기 신앙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벧엘까지 가지 않고 일부분의 순종으로 세겜에 머물면서 행복을 꿈꾸었습니다. 외롭고 힘든 날에는 하나님만 의지하며 매사에 하나님 중심으로 살았던 야곱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은혜로 큰 복을 받았는데 안타깝게도 야곱의 믿음은 변했습니다. 그렇다하여 야곱이 하나님을 아주 떠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야곱은 세겜에서도 예배를 드리며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내 생각이 중심이며, 양들을 잘 키워 돈을 더 많이 버는 것이 삶의 우선순위였습니다. 

세겜이란 뜻이“일부분”이듯, 이제 야곱에게 있어서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생활은 일부분이 되고 말았습니다. 부분적인 순종, 절반의 순종이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야곱의 삶에 있어서 하나님이 전부였습니다. 야곱의 삶의 우선순위는 언제나 하나님이었습니다. 야곱에게 전부였던 하나님은 이제 일부분이 되고 말았습니다. 삶의 목적이 하나님이었는데, 이제는 세상을 즐기는 것이 삶의 목적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면서 야곱은 행복을 꿈꾸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미련한 일인지 야곱은 깨닫지 못했습니다. 마치 레일을 벗어난 열차가 무사히 달리기를 바라는 것과 같았습니다. 야곱이 받아 누리는 모든 축복은 어디로부터 온 것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중심하여 살아갔을 때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이제 하나님은 제쳐놓고 행복을 꿈꾸고 있었습니다. 

그 결과 야곱은 참담한 실패를 겪게 됩니다. 야곱의 집안에 엄청난 회오리바람이 몰아쳤습니다. 외동딸 디나가 그곳 원주민 추장 아들에게 성폭행을 당했고, 이에 복수심으로 가득찬 야곱의 아들들이 세겜의 남자들을 모조리 죽이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지시하신 벧엘이 아닌 세겜에서 머문 결과였습니다. 아내는 그곳 풍습을 본받아 우상을 섬겼고, 딸은 성폭행을 당했고, 아들들은 살인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결과는 하나님이 내리신 저주가 아니라 야곱 스스로 선택한 결과입니다. 그동안 야곱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며 살아온 삶의 우선순위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야곱은 하나님을 우선순위에 두지 않고 세상의 부귀가 우선이었습니다. 그 결과 야곱의 집안에서 가장 소중한 자식들에게 무서운 화가 몰아 닥쳤습니다.

자식들 문제만 아니었습니다. 그 지역 모든 부족들이 힘을 합쳐 야곱 집안을 말살시키고자 했습니다. 20년간 피땀 흘리며 쌓아온 모든 것들은 수포로 돌아갈 처지에 놓였습니다. 이때에 하나님은 다시 야곱에게 삶의 방법을 말씀하셨습니다.“우상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케 하고, 의복을 바꾸고 벧엘로 올라가라.”하셨습니다. 벧엘 즉 하나님의 집을 중심하여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평강과 장수의 복을 받아 누리는 하나님의 방법이었습니다. 순종한 야곱은 하나님의 보호아래 147세까지 살 수 있었습니다. 이 말씀을 볼 때 벧엘 즉 하나님의 집 교회의 소중함을 알 수 있습니다. 교회는 우리가 원하는 축복의 통로인 것입니다.

어느 목사님의 경험담입니다. 어느 여자집사님에게 영리한 딸이 있었습니다. 학교에서 2등을 한 적이 없이 항상 1등만 하는 수재였습니다. 신앙생활도 열심이어서 예배를 빠지는 경우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런데 고3이 되자 어머니 집사님이 딸에게 말했습니다.“얘, 너는 고3때에는 교회에 나가지 말아라. 너는 우리나라 최고의 명문대에 들어갈 아이야.”엄마의 만류로 그 딸은 교회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교회 목사님은 그 집사님에게, 딸이 이전처럼 교회에 열심히 나오도록 하라고 권면했습니다. 

그러자 집사님은“아닙니다. 목사님, 우리 딸은 이 나라 최고 명문대학교에 갈 아이입니다. 고 3이라 교회에 못 옵니다. 주일에도 공부해야 합니다.”목사님이 다시 권면하기를“집사님, 농사를 짓는 사람은 아무리 배가 고파도 씨감자는 먹지 않는다고 합니다. 씨감자를 먹으면 굶어 죽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에게는 주일을 지키는 것이 씨감자인데 절대로 주일을 지키는 믿음을 잃으면 안 됩니다. 딸을 교회에 나오게 하세요.”하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권면을 했습니다.“아닙니다. 3학년 때만 오지 않고 대학교에 들어가면 교회에 다시 올 것입니다.”라고 하며 목사님의 권면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 딸은 주일에 교회에 나오지 않고 열심히 공부하여 원하는 대학교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 학생은 지금까지 2등은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자기가 수재중의 수재로만 알았는데 그 대학에 들어가서 보니까 자기는 지극히 평범한 학생일 뿐이었습니다. 모두가 수재들이였습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자기보다 더 뛰어난 수재가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믿음이 다 떨어진 이 여학생은 깊은 좌절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이 학생은 절망을 견디다 못해 그만 자살을 하고 말았습니다. 
그 후 어머니는 말하기를“목사님, 내 딸이 죽은 것은 내 불신앙 때문입니다. 내가 딸을 죽였습니다.”라며 한없이 울며 후회했다고 합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떠나 육신의 욕망을 우선한 삶은 성공 같으나 실패로 끝이 납니다. 반면 하나님을 굳게 붙든 삶은 실패 같으나 마지막은 성공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이 머물 곳은 벧엘 즉 하나님의 집 교회입니다. 교회에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하나님이 깨닫게 하시는 말씀을 따라 살아갈 때 하나님이 주시는 평강의 복을 받아 누릴 수 있습니다. 

2. 부귀의 복을 받아 누리는 길

사람이 오래 살되, 먹고 배부르며, 남들을 도와주며, 칭찬과 대접을 받으면서 살아야 복입니다. 배가 고파 남에게 얻어먹으며 천대받으며 오래 사는 것은 복이 아니라 욕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오래 사는 동안 넉넉하게 살면서 남을 대접하며 또한 대접을 받으며 살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부귀의 복을 받으려면 투자를 해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6장 7절 말씀에를“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하셨습니다. 씨앗은 심은 종자대로 싹이 납니다. 심은 량대로 수확하게 됩니다. 땅에 심은 씨종자는 땅속에서 썩습니다. 일시적으로 볼 때 손해가 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심겨진 씨앗은 결코 썩어 없어지지 않습니다. 싹이 나고 자라나 풍성한 열매를 맺습니다. 이러한 원리를 따라 본문 9절~10절에 말씀하시기를“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 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성물인 십일조를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시간인 주일을 잘 지키며 열심히 봉사해야 합니다. 가정에서는 부모님을 잘 섬겨야 합니다. 가난한 사람을 도와야 합니다. 선교 사업에 힘을 써야 합니다. 불신 영혼구원을 위한 전도에 힘을 써야 합니다. 이러한 일을 하려면 내 수중의 돈이 나갈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냥 나가고 마는 것이 아니라 재물의 씨앗을 심는 것입니다. 

우리가 왜 십일조를 해야 할까요? 소득의 십분의 일은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레위기 27장 30절에“땅의 십분 일 곧 땅의 곡식이나 나무의 과실이나 그 십분 일은 여호와의 것이니 여호와께 성물이라”하셨습니다. 모든 수입의 십분의 일은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구별해 드리지 않으면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면서 어떻게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누리겠습니까? 

말라기 3장 8절~12절 말씀에“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너희 땅이 아름다와지므로 열방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하셨습니다.

맨소래담(당(Mentholathum)을 만들어 큰 부자 가 된 미국의 하이드(A.A.Hyde)라는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하이드가 은혜를 체험하고 십일조를 드리기로 결단하였을 때 약 10만 달러의 빚을 지고 있었습니다. 하이디는 부채에 시달리고 있음에도 십일조를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직원들이 하이드에게 물었습니다. “사장님 이것은 경제원칙에 어긋납니다. 빚을 지고 있는 사람이 빚부터 갚아야지 어떻게 십일조부터 합니까?” 하이디가 말했습니다. “나는 부채를 상환하는 것보다 도둑질한 것을 먼저 갚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하네.” 직원들이 깜짝 놀라 다시 물었습니다. “아니 사장님이 무엇을 도둑질 하셨습니까?” 하이디는 “말라기서 본문”을 펴들고 말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십일조를 도둑질한 도둑놈이요.” 하나님은 하이드의 이런 마음을 보시고 후에 큰 축복을 주셔서 백만장자가 되었습니다.
십일조는 부담이 아니라 축복입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셔야 축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 교회에 봉사하는 것, 부모님을 섬기는 것,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 이러한 것은 마치 가장 좋은 밭에 가장 좋은 씨앗을 심는 것과 같습니다. 이는 가뭄을 모르는 논밭과 같습니다. 홍수가 없고, 병충해가 없는 논밭과 같습니다. 

우리들의 옛 조상들은 반만년동안 주일에도 일만 했습니다. 선진국의 백성들은 주일에는 교회 가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수입의 십일조를 하나님께 드려 선한 일을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조상들은 십일조를 모르고 다 내가 먹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치적으로 따져볼 때 세계에서 돈을 가장 많이 가진 부자 나라가 되어야 할 터인데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미국의 경우 200년이 조금 넘는 짧은 역사를 가진 나라이지만 세계에서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어있습니다. 그들은 아메리카 신대륙에 가서 먼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예배당부터 세웠습니다. 곡식을 거둬들일 때에는 자기들이 먼저 먹지 않고 하나님 앞에 추수감사예배를 드린 후 먹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십일조를 바쳤습니다. 그들은 복음을 전하고자 온 세계에 선교사를 보냈습니다. 온 세계에 구제품을 보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선한 일을 위해 가진 물질을 아낌없이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거지가 되었습니까? 굶어 죽었습니까? 아닙니다. 이상하게도 미국은 세계의 창고가 되어있습니다. 만일 미국에서 어려운 나라에 곡식을 보내지 않으면 세계의 인구 절반은 굶을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성도 여러분! 부귀는 하나님이 주셔야만 누릴 수 있습니다. 부지런히 일을 해야 합니다만 그러나 하나님이 주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복 주시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엿새 동안 부지런히 일하며 이레째 되는 날은 거룩하게 구별하여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드리는 사람입니다. 선한 일에 힘을 쓰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왜 그렇게 하실까요? 선한 일을 계속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이 이치에 대해 고린도후서 9장 6절~9절에 말씀하시기를“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기록된바 그가 흩어 가난한 자들에게 주었으니 그의 의가 영원토록 있느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 드림의 결과가 무엇입니까?“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하셨습니다.

3. 성공의 길

사람이 실패할 때는 마음이 아프고 앞이 캄캄합니다. 그러나 성공할 때는 기쁘고 삶의 보람을 느끼게 됩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냇가에 심겨진 나무가 가뭄을 모르듯 일생동안 성공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성공의 비결에 대하여 본문 5절~6절에 말씀하시기를“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하셨습니다. 자신의 명철과 지혜를 과신하지 말고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명철을 의지하는 것은 명철이 아니라 어리석음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부족합니다. 완전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자신의 경험이나 지식을 과신하지 않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하 나님은 이러한 사람의 앞길을 지도하시는 것입니다. 

이어령 씨가 쓴 글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나처럼 먹물에 찌든 사람은 죽을 때까지 백 퍼센트 신자는 못 됩니다. 하루에도 몇 번 밤에 자다가도 불현듯 회의와 참회를 되풀이하면서 살지요. 문지방 위를 아슬아슬하게 걷고 있는 자신이 딱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빛과 어둠 사이의 황혼이 아름답듯이 크리스천과 비크리스천의 문지방에는 긴장의 노을이 있습니다.”

내면에 깊이 뿌리 내린 인간의 지식과 경험의 벽을 뛰어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언 3:5~6)

미국의 백화점 왕으로 알려진 페니라는 사람은 일개 잡화점 점원으로 출발해서 나중에는 미국 전역에 1,700여 개의 백화점을 경영하는 억만장자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페니는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정신적 유산을 언제나 소중하게 여겼습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짐아, 너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의 경험에서 나온 충고를 무시하고 네 고집대로만 나가면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을 꼭 잊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경험 많은 윗사람의 경험에서 나온 권면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 권면을 받아들이면 시행착오를 줄이고 원하는 것을 쉽게 빨리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윗사람의 권면을 받아들이는 것이 지혜입니다. 

세상을 살아온 사람들의 경험이 이렇게 소중하다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이겠습니까? 성경을 통해 깨달음을 주시는 하나님의 권면, 기도하는 가운데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의 권면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명철한 사람입니다. 실수가 없으신 하나님의 방법은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생명과 평강의 복을 받아 누리는 길은, 겸손히 주를 섬기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부귀의 복을 받아 누리는 길은, 농부가 땅에 씨앗을 뿌리듯, 내게 있는 물질, 시간, 재능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선용하는 것입니다. 

성공의 복을 받아 누리는 길은,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하나님의 권면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크신 은총이 성도님들의 심령과 가정위에 충만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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